새누리당에 닥친 안철수 후폭풍

“나를 따르라!” 눈 맞은 여당의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안철수 리스크’가 국회를 강타했다. 여파가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당·정·청에까지 미치는 모양이다. 성역 없는 후폭풍에 정부와 청와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임시국회 체제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이라는 입장. 반면 여당 내에는 알게 모르게 미소 짓는 자들이 존재한다.

‘일장일단(一長一短)’ 모든 일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는 것처럼 ‘안철수 사태’도 결국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가 새누리당 내에서 들려온다. 최근 정가는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후폭풍이 거센 상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에서는 연일 비주류의 탈당 암시가 쏟아지면서(대부분 암시에 그치고 있지만) 속 시끄러운 한주를 보냈다. 협상 파트너가 없어진 새누리당은 조바심을 내고 있지만, 4·13총선과 관련해서는 은연중에 안 의원의 탈당을 반기는 모습이다.

안철수 탈당
손익계산서

표면적으로 정부여당은 부침을 겪고 있다. 안 의원이 탈당을 밝혔던 지난 13일 후 여의도의 시계는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경제활성화법·노동개혁 5법·테러방지법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주요 쟁점법안의 연내 통과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기대했던 청와대는 허탈하다는 반응. 관련 회의는 연일 소회되고 있다.

해당 상임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안 의원 탈당으로 국회는 올 스톱”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그는 “총선에 매진해야 될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테러방지법이라는 정부 주요과제를 떠안은 국회 정보위원회(이하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간사 이철우 의원은 지난 14일 의원총회에서 “정보위는 교섭단체 소속만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새정치연합 문병호 의원이 무소속이 되면 협상 상대가 없어진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문 의원은 정보위 법안소위 소속으로 새정치연합의 법안 협상을 맡고 있는 인물이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17일, 문 의원은 유성엽·황주홍 의원과 함께 새정치연합을 동반 탈당했고, 이 의원이 우려했던 상황은 현실이 됐다.


가장 애가 타는 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다. 여야는 지난 15일 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 개최를 알렸으나, 여야 간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열리지 않았다.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이다. 어느새 국정현안은 2순위로 밀려버렸다.

뿐만 아니라 본회의 이외 다른 국회 일정 또한 대부분 백지화 됐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논의하려고 열린 기획재정위원회는 야당 의원들이 불참해 파행됐다. 기업활력제고법 상정 문제를 논의하려던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여야 간 충돌로 10여분 만에 파행을 맞았다. 대화 시간 부족이 불러온 참극이라는 게 관계자의 견해다.

국회 파행
누구 책임?

마음 급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정치권을 향해 연일 쓴 소리를 날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논의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와 ‘국민경제자문회의’ 등을 주재하면서 “정치개혁을 먼 데서 찾지 말고 국민들을 위한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며 “국회의 존재이유는 국민들을 대변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지난 15일 국회를 찾아 정의화 의장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이 끝난 후 현 수석은 국회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 의장이 선거법만 직권상정하겠다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생각에 면담을 요청했다”라며 “선거법이나 테러방지법·경제활성화법·노동개혁법안도 직권상정을 하기에는 똑같이 미비한데 선거법만 직권상정을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경제위기에 대비하는 노동개혁법과 서비스법, 기업활력제고법, 국민 안전에 필요한 테러방지법을 외면하고 선거법만 처리된다는 것은 정부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상황을 전했다.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한 압박이라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상황일 뿐 안철수 사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부여당의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새누리당은 앓는 소리하는 겉모습과 달리, 셈법 계산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안 탈당 사태 당·정·청 손익계산서는?
안철수 신당 핵심은 교섭단체 구성 유무

새누리당 핵심 당직자 중 한 명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1~2주의 시간이 경과해봐야 (새누리당의) 득실을 따질 수 있다”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항간에 나도는 ‘여당 180석’의 실현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속단하긴 이르다”면서도 “여러 갈래의 길이 열린 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서울 표심은 변화가 심해 (탈당 여파가) 어디로, 어디까지 미칠지가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질문 당시가 안 의원이 탈당의사를 밝힌 직후였던 것을 감안하면, 해당 소식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긍정의 분위기가 새누리당 내부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려는 줄어들고 기대감은 커지는 모양새다. 당장 ‘4·13총선’을 생각한다면 나쁠 것 없다는 계산이 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이 생각하는 시나리오와 소속 의원들이 생각하는 시나리오가 달라 괴리감이 느껴진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핵심은 안철수계의 교섭단체 구성 유무다. 신당 창당을 예고한 안철수계는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는데, 핵심 측근인 문병호 의원은 줄곧 20~30여명의 합류를 언급해왔다. 문 의원은 지난 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나오면 (현역 의원) 30명은 나올 테니 (내년 총선 때) 우리가 기호 3번은 되겠지”라고 말한 바 있다. 30명은 ‘현역의원 20명 이상’이라는 교섭단체 조건을 상회하는 수다.

안철수 신당
늘어난 선택지

안철수 신당이 교섭단체가 되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위해 손을 내밀 가능성이 있다.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는 줄곧 있어왔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은 여야의 물리적 충돌을 막는 데는 이바지했지만, 소수 독재가 정당화되고 법안 연계투쟁이 일상화되면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제19대 국회를 기준으로 157석의 의석수를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과반을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고 나와 있다. 당·청이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정의화 의장의 직권상정 거부로 그들이 느낄 개정의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여다야(一與多野)’ 체제만으로도 새누리당이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180석의 관건은 서울지역에서 몇 석을 가져오느냐다”라고 운을 뗀 한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래저래 180석을 만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고 전했다.

새누리+안철수 조합? “꿈 아니다”
합리적 보수와 손? 선진당 선례

새누리당의 관심이 180석을 향해 있다면 소속 정치인들의 셈법은 조금 다르다. 특히 초선·신인들을 중심으로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시각이 많다.

한 초선 의원실 관계자는 “확실한 것은 정치 신인들에게 발 디딜 곳 하나가 늘었다는 점”이라며 “내년 2월 (새누리당) 공천 절차가 끝나면 안 의원 쪽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서 그는 “단, 영향력 있는 인사를 원하는 안 의원 측이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전제를 뒀다.


개헌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도 안 의원 측이 새누리당과 손을 잡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권력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서로 맞물린다면, 불가능한 그림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특히 친박계 쪽에서 고려해볼만한 선택지라는 주장이다.

한 재선 의원실 관계자는 “(새누리)당 내 개헌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라며 “안철수계가 30명까지 모이고, 여당 150여명에 새정치연합 개헌론자까지 합치면, 얼추 3분의 2가 나온다”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내에서는 안철수계를 이곳저곳 맞춰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안 의원은 중도 성향의 신당 창당을 예고했다. 반부패·반이분법·반수구보수라는 인재 영입의 3대 원칙까지 제시했다. 합리적·개혁적 보수 세력과 손을 잡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이라는 큰 여야 정당 사이에서 중도로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안 의원의 정치스타일에 대해 중도 보수에 가깝다는 의견이 있어 주목된다. 선진통일당(이하 선진당)이라는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경 충청을 중심으로 한 선진당은 새누리당에 흡수통합된 바 있다. 당시 선진당 또한 중도 보수를 표방했다.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을 때 안 의원도 충분히 힘을 합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반면 회의론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 측과 손을 잡는 것에 대해 “안 의원에게는 새누리당 확장성 저지가 정체성이다”라며 “먼저 손 내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중도 보수
생존법은?


전문가들은 안 의원의 중도 표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진시원 부산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안 의원의 행보에 대해 “제 발로 자멸의 길에 접어든 것”이라며 “(안 의원은) 지역 기반도 약하거니와 대한민국에서 중도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여러 선례를 통해 증명됐다”고 내다봤다. 또한 진 교수는 “선거에서 이기려면 지역·이데올로기·세대, 이 3대 요소를 잘 파고 들어야 하는데 (안 의원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랫동안 국민들은 ‘안철수식 새 정치’를 기다려왔다. 과연 기존 정치를 바꿀 혁신의 모델이 이제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이 또한 신기루에 그칠지, 그것도 아니면 거대 정당에 의해 함몰될지 지켜볼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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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