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대망 밝힐 7대 횃불

7개 중 4개만 켜져도 대권 청신호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한 통신사가 11월 셋째 주 중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북한 방문이 성사될 것이라 보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반기문 대망론’은 공식처럼 불거졌다. 그러나 기대했던 방북 소식은 도통 들려오지 않았다. 이미 지난 5월경 북한으로부터 한차례 퇴짜를 맞은 반 총장이다.

이대로 ‘반기문 대망론’이 가라앉을 것인가. 지난 18일 <연합뉴스>를 통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평양 방문 논의가 사실임을 확인한 복수의 언론은 대망론에 불을 붙였다. 그러나 차일피일 소식이 미뤄지면서 다시 잠잠해지고 있다. 일찍이 지난해 연말부터 ‘점화(點火)’와 ‘소화(消火)’를 반복하고 있는 대망론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로 귀결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①정치색 명확화

반 총장의 경쟁력은 이미 검증이 끝난 상태다. <머니투데이 더300>의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조사·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반 총장은 김무성·문재인·박원순 등 차기 대선주자 빅3와의 가상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맞붙는다는 시나리오에서 반 총장은 55.1%의 지지율을 차지, 31.7%의 김 대표를 23.4%포인트 차로 이겼다. 또 새누리당 후보로 나서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맞붙는다는 구도에서도 모두 승리했다(반 총장 55.0% VS 문 대표 33.9%, 반 총장 51.0% VS 박 시장 38.1%).

특히 모든 대결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 ‘지역’ ‘계층’에 관계없이 중도층·무당층의 결집력을 불러왔다는 점이 가장 큰 수확이다.

그러나 동시에 취약점도 드러났다. 이는 반 총장이 차기 대선 출마를 염두 해두고 있다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안이다.


앞선 결과와 달리, 반 총장은 빅3가 아닌 ‘불특정후보’를 상대할 때 모두 패한다고 나왔다.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시 반 총장의 지지율은 36.0%를 기록, 46.0%를 얻은 가상의 야당후보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새정치연합 후보로 반 총장이 출마한다고 가정해도 지지율이 33.9%로 나타나, 51.6%인 가상의 여당후보에게 패했다(지난 19~20일, 23~24일 실시. 전국 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

국내외 산적한 과제들 ‘암초 혹은 등대’
김·문·박 빅3 상대 모두 승리, 변수는?

즉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빅3와의 대결에서는 정당 지지층에 중도층까지 흡수해 경쟁력을 보였지만, 가상의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혹여 상대 정당에서 반 총장의 대항마로 새로운 인물을 내세운다면 밀릴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그 새로운 인물이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처럼 신드롬을 일으킬만한 파급력을 지녔다면, 반 총장은 의외로 부침을 겪을 수 있다. 불특정후보를 상대할 때 반 총장은 수도권·중도층·무당층을 끌어들이는 힘이 약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뚜렷한 정치색 없음이 향후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②김정은 만남

국외에서는 반 총장이 극복해야할 두 가지 과제가 존재한다. ‘방북’과 ‘테러리즘’은 최근 반 총장을 괴롭히는 사안이면서, 만약 해결만 한다면 단숨에 대선 길을 열어줄 횃불이 될 수 있다.

앞서 유엔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혔듯, 반 총장은 방북을 오랜 숙원사업으로 추진해왔다. 중국 <신화통신>은 지난 17일 반 총장이 23일부터 나흘간 방북한다고 전해 기대감을 높였으나, 현재까지 성사되지 않고 있다.


일찍이 반 총장은 지난 5월경 방북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적 있다. 반 총장은 방한 일정 중 하루를 비워 깜짝 방북을 예고했으나, 갑작스런 북한의 입국 거부로 무산됐다. 당시 반 총장은 서울디지털포럼 연설에서 “북측은 갑작스러운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전했다. 대한민국 정부와 여야 정치권도 잇따라 유감을 표했을 정도로 실망이 컸다.

걸림돌이 있다. 설사 방북이 성사되더라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의 만남까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특히 김 위원장이 정상급 인사와의 만남을 가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총장 임기가 끝나는 2016년 12월31일까지 방북을 성사시킬 수 있다면, ‘평화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반 총장의 방북 추진에 대해 선을 긋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난 5월경 방북 추진 당시에는 청와대·정부가 적극 협조했지만, 최근 청와대는 방북에 대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미국·중국 등 강대국과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선임 유엔사무총장 중 북한 방문을 통해 대통령이 된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쿠르트 발트하임 총장은 지난 1979년 5월경 북한을 전격 방문,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과 만났고 그렇게 평화의 상징이 된 그는 지난 1986년 오스트리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③테러 종식

‘테러리즘’ 또한 반 총장이 2016년까지 해결해야 될 과제다. 지금 세계는 이슬람국가(IS)의 무차별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4일 프랑스 파리에서 테러를 자행한 IS는 얼마 뒤 튀니지에서 일어난 자폭테러 또한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반 총장은 IS에 맞서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반(反)IS전선’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결실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반 총장이 언급한 반IS전선에 대해 러시아의 역할을 언급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최근 러시아-터키 간 갈등이 발발하면서 변수가 많아졌다.

더군다나 일각에서는 반 총장의 테러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비판도 있는 상황이다. 주요 20개국(G20)이 테러 대응 공조를 천명한 데 비해 유엔의 대응이 늦었다는 데서 나오는 지적이다. 방북 추진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테러리즘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반 총장 측이 느낄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④지지세력 결집

국내로 눈을 돌리면 교통정리가 시급한 부분이 있다. 최근 반 총장을 지지하는 군소정당들이 늘어나고 있어 향후 ‘호재’로 작용할지 ‘악재’가 될지 알 수 없다.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창당준비위원회 결성 신고서를 제출한 12개 단체 중 ‘친반연대’가 있어 논란이 된 바 있다. ‘친박연대’처럼 지지자의 성을 붙였음에도 해당 단체가 비난받은 이유는 당사자인 반 총장이 해당 단체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소식이 전해진 후 반 총장 측근은 “반 총장이 모르는 분들 같다. 그분들이 설마 반 총장과 교감을 갖고 그런 모임을 만들었겠느냐”고 반문했고, 반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씨는 지난 1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친반연대를 결성한) 사람 자체도 모르고 황당한 얘기”라며 “(결성한 분들이) 연세도 드셨는데 자중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게 제 희망”이라고 입장을 전했다.


명확한 정치색 없어…모호함이 무기될까
국외완 다른 국내 정치판, 세 결집 필수

그러나 친반연대를 제외하더라도 반 총장을 지지하는 단체는 많은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살아생전에 충청포럼을 만들어 반 총장의 대통령 추대를 위해 움직였다. 그 외에도 충청정가를 대표하는 ‘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랑들의 모임(반사모)’, 충청권 명사들의 모임인 ‘백소회’ ‘충청향우회’ 등이 존재한다. 반 총장이 대선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들의 열의를 하나로 모으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⑤국내 접촉 확대

국내 접촉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도 있다. 대망론이 있지만 충청권은 여전히 정치의 변두리에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영·호남과 수도권 접촉을 늘려갈 것이란 예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20대 총선이 있는 4월이 지나면, 5월부터 차기 유엔사무총장 선출과정이 진행된다”며 “반 총장의 일정에도 여유가 생길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차기 총장 인선이 완료될 시점을 전후로 국내 방문 횟수가 늘어날 수 있다.

#⑥친인척 비리

사적인 부분에서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지난 5월28일 JTBC는 경남기업이 카타르 투자청에 ‘랜드마크72’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반 총장의 조카가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고 관련 내용을 보도했다. 해당 보도가 당시 세간의 큰 관심을 받은 이유는 반 총장의 친인척이 반 총장의 이름을 활용했다는 정황증거 때문이다. 보도 이후 반씨 집안 가계도가 집중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당사자인 조카 반주현씨는 JTBC의 보도가 있던 당일 <연합뉴스>를 통해 “결단코 (반 총장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며 해당 의혹을 부인했다. 이어서 반씨는 “(반 총장에게) 경남기업 문제를 부탁했다면 성사됐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반 총장이 국외에 있기 때문에 친인척 관리가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공직자와 그 가족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피해갈 수 없다는 측면에서 향후 대선길을 좌우할 요소로 꼽힌다.

#⑦차별화 전략

반 총장은 세계정상급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력을 선보인 적은 전무하다. 따라서 주변 인물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기는 한낱 ‘일장춘몽’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충청권 신예들의 약진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반 총장만의 차별화된 모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전제는 누가 뭐래도 반 총장의 출마 여부다. 수차례 대망론에 오르내렸지만, 반 총장은 아직 명확한 답이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모습이 반 총장의 출마에 힘을 싣는 부분이라고 정가는 보고 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친박계와의 교감설이 언론을 통해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 반 총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내년 4월13일로 예정된 제20대 총선 이후에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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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