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별기고> 영화 <사도>로 보는 정치심리학

권력은 결코 나눠 가질 수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권력은 ‘양분(兩分)’될 수 없다. 원한다고 ‘양도(讓渡)’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무턱대고 ‘양보(讓步)’하다간 손안에 있던 것마저도 빼앗기게 된다. 영화 <사도>를 관통하는 권력의 속성은 참혹하리만큼 무자비하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는 혈육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다. 1762년 7월, 권력은 아버지와 아들을 그렇게 갈라놓았다. <일요시사>는 상담심리학 교수이자 영화평론가인 심영섭과 함께 부자지간이지만 정치판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두 인물을 들여다봤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콩 하나도 나누어 먹으라 배웠다. 그런데 그 콩이 눈덩이만큼 커지면…심지어 아비도 아들과 권력을 나눠 가질 수 없는 법이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몰아내고 왕좌에 올랐다. 반대로 아버지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광인(狂人)’으로 몰아 뒤주에 가둬 죽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왕과 세자, 권력자와 후계자는 애증과 의심과 모략의 소용돌이 안에서 서로의 진심을 전달하지 못한 채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신·구 파워게임

이 점은 현재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사의 정치판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도세자와 그 아비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왜 그토록 반목하고 불신할 수밖에 없는가. 영화에서는 이를 ‘부자유친(父子有親)’의 문제로 가족 드라마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그러나 사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다른 당파를 등에 업고 서로 다른 개혁을 꿈꾸며 반목을 시작한다.

형인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시달리며 ‘노론’의 도움으로 즉위한 영조는 당파에서 벗어난 인재 등용을 평생의 숙원 사업으로 정했다. 반면 사도세자는 ‘소론’의 입김이 강했던 후궁과 환관들의 손에서 자라났다. 아비는 나름의 탕평을 시도했다고 자부하지만,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 역시 ‘개혁’의 대상이자 ‘보수’의 상징인 것이다.

실상 영조는 권력의 안전장치와도 같은 노론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반면 사도세자는 왕의 권력을 나눠가지려는 노론 세력이 기득권을 지니고 국방과 납세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노론-소론’의 싸움은 결국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싸움을 상징한다.

영화 <사도>를 둘러싼 당파 싸움과 영조와 사도세자의 개혁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은 최근의 새누리당 주변을 둘러싼 오픈 프라이머리와 계파 갈등을 비교해보면 일종의 기시감마저 든다. 새누리당 내에는 총선 룰 결정과 관련해 ‘친박-비박’간의 갈등이 치열하다. 거국적 차원에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또한 마찬가지다. ‘친노-비노’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문재인 대표가 재신임 투표를 철회하면서 두 세력 간 갈등은 봉합되는 듯 보이지만, 뇌관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정가는 내다본다.

결국 권력자와 후계자는 서로 다른 계파싸움의 대표 주자로 거시적으로는 서로의 권력 창출을 위한 동지이기도 하지만, 미시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당파를 대표하는 적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영화 <사도>는 정치적 계파가 때로 핏줄의 정마저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 모든 가족관계가 정치적인 해석과 관점 안에서 생존권을 확보해야 하는 슬픔을 정확히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영조는 진정 왕위에서 물러나고 싶어했는가. 영화 <사도>에서 영조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은 임금의 자리에 미련이 없다는 말을 내뱉는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궁궐을 옮긴 적이 있을 정도이다. 많은 권력자들이 재위동안 이러한 양위의 제스처를 취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5년 1월경 유신헌법에 대한 신임투표를 제안했고, 같은 해 2월12일 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천명했다.
 



영조가 아들의 효심을 확인하기 위해 ‘선위 쇼’를 벌였듯 정치인들은 신뢰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재신임을 묻는 행위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권력에 눈이 멀어 이복 형(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서 벗어나려 한 영조의 자기 합리화일 뿐, 그는 실질적으로 왕권에서 물러난 적이 없다고 봐야 한다. 즉 권력자가 권좌에서 물러나더라도 막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고 싶다는 무의식적 욕망을 벗어던질 수 없을 때, 후계자에 대한 시험과 질타는 더욱 혹독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영조는 끊임없이 공부를, 즉 실력을 기를 것을 사도세자에게 권유한다. 이는 단 한 줄의 문장을 외우지 못해도 시험에 불합격 처리하는 영조의 모습을 통해 확인된다. 후계자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무시는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이다.

‘친박-비박’ ‘비노-친노’ 역사의 반복
권력자-후계자, 계파 내에선 그들도 적


영화에서 함경도에 있는 진지를 옮기려하자, 영조는 당장 사도세자에게 “니가 뭘 알아. 니가 함경도에 가 봤어”라고 질책을 퍼 붓는다. 사실 영조가 이 장면에서 마음속 깊이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후계자가 나의 ‘꼭두각시’가 되어 줄 정도의 충성도가 있는지의 여부이리라. 따라서 후계자는 자의식을 없애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인내해야 권력자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이 커진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반역을 꿈꾸는 그대의 아내와 장남 노부야스를 죽이시오”라는 편지를 받았다. 그는 아들에게 할복을 명하고 아내에게는 사약을 내려 노부나가의 뜻을 따랐다. 훗날의 때를 기다리기 위해 장남과 아내까지 희생시키며, 지독한 괴로움 속에 참고 또 참으며 자신을 낮추었던 구밀복검(口蜜腹劍)의 전형이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그 본성이 솔직하고 화살처럼 자유로운 사람으로 영화에서 그려진다. 게다가 예술가적 재능과 천분마저 지녔다. 이러한 자의식으로 인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개혁이나 자기주장은 자신의 중요성을 위협하는 크나큰 시기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된다. 반대로 사도세자는 아버지 영조의 표리부동함, 즉 권력자의 이율배반적 모습에 치를 떨게 된다.

이러한 권력자와 후계자의 심리적 갈등은 근대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시작된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간의 갈등은 2008년 친박계가 친이계로부터 공천학살을 당하자 폭발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는 어록을 남기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결국 사도세자는 자신이 가진 유리한 입장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한 채 친모인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어떤 결단을 촉구할 만큼 외롭게 죽어 갔다. 정치 세력화에 실패한 것이다. 일례로 영화에서 영조는 인원왕후의 상중에 술을 마시고 온 사도세자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만 궁녀 한 사람 만이 사도세자를 두둔하고 나선다. 사도는 주위 신하들에게 “아녀자도 내 편을 드는데 경들은 어찌 한 사람도 말이 없는가!”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혼자였다.

설상가상으로 총명한 세손이 등장한다. 찰스 황태자에게 윌리엄 왕자가 생긴 것처럼 조선 왕실에 대안이 생긴 것이다. 사도세자에 대한 영조의 일말의 기대는 세손이 등장하자 서서히 없어져버린다. 냉혹한 정치 현실에서 ‘대체재’가 나타나면 기존의 것은 버려지게 마련이다. 왕은 사도세자를 “존재 자체가 역모”라며 부정하고, 사도세자도 이 즈음에는 광기에 휩싸여 어떤 증세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증상의 핵심에 의대증, 즉 옷을 입지 못하는 병이 존재한다. 영화 내에서 영조는 사도세자에게 “대님을 제대로 매라. 상복을 제대로 걸쳐라”고 수없이 꾸짖는다. 영조에게 옷은 왕의 체통이었고 왕자의 체면이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세자는 맞는 옷을 찾기 위해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 20여벌의 의복을 찢고 버렸다고 한다. 즉 의대증은 사도세자의 전형적인 ‘역할 거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겠다.

슬픔을 생각하다.

영화 말미에 영조는 죽은 세자의 시호로 ‘생각할 사(思) 슬플 도(悼)’, ‘사도’라 이름 짓는다. 슬픔을 생각함. 그러나 슬픔은 상실에 대한 애련함 뿐 아니라 집착의 또 다른 이름일 뿐. 왕의 회고는 슬픔이지만, 사도세자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나은 또 다른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러므로 꿈을 꾸는 후계자여 새 옷을 입으라. 죽음과 분노의 궁전에서 스스로를 자해하기보다, 한 평의 뒤주 속에서 후계자를 얽어매려는 왕의 손에 있기보다, 인내하고 융통성을 발휘하고 서서히 사람들을 그러모으라.

때를 기다린 세손은 영조의 사후 1776년, 마침내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로 즉위한다. 그의 즉위 후 첫 일성은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라 것. 입에 담지도 말고 꿈에서도 보지 말라던 아비를 자신의 정체성의 일부로 규정짓는 것이었다.

<chm@ilyosisa.co.kr>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평론가·심리학자·상담가이자 교수.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생명공학과를 거쳐 고려대 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대구사이버대에서 학과장을 역임 중이다.

심영섭 아트테라피&상담센터 사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사진치료학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8년 <씨네21> 평론상을 수상한 이래, 김기덕·박찬욱·홍상수 등 다양한 감독들에 관한 다수의 영화 평론문을 발표해왔다.


<100분토론> <아침마당>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력이 있으며, 저서로는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영화, 내 영혼의 순례>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영화치료의 이론과 실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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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