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실세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 추적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는 거 보셨습니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삼각편대’를 구축했던 당·정·청이 때 아닌 난기류를 만났다. 각 분야 실세로 통하는 이들이 최근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찹쌀떡 공조’를 동력으로 순항하던 박근혜호는 최근 박차를 가하고 있는 ‘4개 개혁(공공·노동·금융·교육)’ 등 구조개혁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는 모습이다.

당·정·청 간 밀착공조로 순풍을 맞던 박근혜호가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각 영역에서 실세로 활약하던 이들의 도덕성이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근 사위의 마약사건과 ‘봐주기 수사’ 의혹에 휩싸였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측근들을 취업시키기 위해 외압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와대 문고리3인방은 그동안 ‘찌라시’로 여겨왔던 소위 ‘정윤회 문건’이 검찰로부터 일부 사실로 인정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당·정·청 실세
도덕성 상처

먼저 정가를 덮은 이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위의 마약사건 소식이다. 지난 10일 복수의 언론은 김 대표의 둘째딸과 혼인한 이모씨가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지만,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됐다고 대서특필했다.

김 대표는 봐주기 의혹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고 “사위가 재판이 끝나고 출소한 지 한 달 정도 지나서 그 사실을 알게 됐다”며 “정치인의 인척이기 때문에 양형을 약하게 했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기사”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이모씨는 지난 2011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코카인과 필로폰·엑스터시 등 마약류를 총 15차례에 걸쳐 서울시내 유흥업소나 지방 리조트 등에서 의사, CF 감독 등과 함께 마약류를 구매·투약한 혐의로 지난 2014년 말 구속 기소됐다. 법원은 지난 2월경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고,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다. 출소한 이모씨는 김 대표의 둘째딸과 지난달 26일 비공개로 결혼식을 올렸다.


양형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마약류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해당 이슈는 국정감사 대상으로까지 확대됐다.

대검 마약과장을 역임한 바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은 지난 10일 ▲동종 사건의 양형 범위는 징역 4년∼9년6개월이지만, 법원은 양형기준보다 낮은 형을 선고했다는 점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봐주기 의혹을 제기했다.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

임 의원은 ‘사회 지도층에 있는 자 또는 그 자제냐’의 여부에 따라 형의 무게가 달라졌다고 내다보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인물은 총 6명, 사위인 이모씨를 제외한 공범 5명의 처분 결과를 보면, 판매책인 ㅅ씨는 필로폰 판매 및 투약 7회 혐의에 대해 징역 10월을 구형, 법원에서 징역 8월을 선고 받았다.
 

알선책인 ㅈ씨는 판매알선 및 4회 투약 혐의로 징역 10월을 구형,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ㅈ씨는 마약전과 1범이다. 초범인 ㄱ씨는 코카인·필로폰·엑스터시 매수 및 2회 투약 혐의인데 징역 3년을 구형했고, 선고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필로폰 매매 및 엑스터시 1회 투약한 ㅂ씨는 징역 1년을 구형,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반면, 공범 중 한 명으로 강남에 위치한 한 산부인과 병원 이사장의 아들로 알려진 노모씨의 경우 필로폰·엑스터시·신종마약인 스파이스·대마매수 및 8회 투약 혐의가 있음에도 벌금 1000만원을 구형했고, 선고 역시 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사위인 이모씨 또한 알려진 바대로 코카인·필로폰·엑스터시·스파이스 매수 및 15회 투약 혐의로 징역 3년을 구형, 법원에서 ‘양형기준의 하한을 이탈하여 선고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임 의원은 해당 의혹에 대해 “마약 투약에 있어서 공범끼리 유사한 행위를 했음에도 구형 기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상습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면 검찰은 당연히 항소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정·청 실세 도덕성 타격, 지지율 꺾여
김무성 사위 마약사건 배후는 친박계?

정치적 해석도 뒤따랐다. 금태섭 변호사는 지난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김 대표를 둘러싼 정치적 의혹에 한 표를 던졌다. 금 변호사는 마약수사가 진행됐던 시점에 주목해 “(이모씨가 수사 당시) 김 대표의 사위였다면 검사가 알았을 것”이라며 “그런데 이때는 아니었다.

김 대표 딸의 남자친구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즉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모씨 여자친구의 아버지까지 살펴보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금 변호사는 ‘김 대표 흔들기 아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그런 의심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가에서도 일찍이 ‘보이지 않는 손’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권력암투설’ ‘기획사정설’ 등이 나오는 실정이다. 여권 내 한 인사는 이번 사건을 두고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사건 당시와 비슷한 매커니즘”이라고 바라봤다.

정치적 해석을 내놓는 쪽에서는 소문이 실체로 드러난 과정에 주목한다. 일찍이 여의도에서는 김 대표 사위될 사람이 소위 ‘뽕쟁이’라는 괴소문이 나돈 바 있다. 사위가 된 사람이 아닌 미래사위에 대해 한 달 전부터 풍문이 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에 기사화되자마자 해당 판결문이 ‘연판장’처럼 정가에 뿌려졌다고 한다. 특정집단이 개입된 조직적 움직임이란 해석이다. 일각에서는 그 집단이 친박계 주류라고 보고 있다.
 

친박계 쪽은 반발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소설’이라는 반응이다. 한 친박계 인사는 “마약 사위를 정권이 사주해서 만들었나. 아니면 결혼을 시키라고 등 떠밀어 만들었나”며 “단순 마약사범 사건을 이런 식으로 소설을 써서 얽어매는 의도가 더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친박계는 마약 사위 사건과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 김 대표에 대한 공세의 칼날이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심의 눈길은 계속되고 있다.

최경환 부총리
채용개입 의혹

지난 15일 윤상현 청와대 정무특보는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대표에 대해 “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며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들 중에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정가에서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4선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 대표 측은 ‘저의가 뭐냐’는 반응이다. 김 대표 측은 윤 특보의 발언에 대해 경고성 성명을 내려다 김 대표의 만류로 취소했다는 후문이 정가에서 들려온다.


친박계에서 미는 대선후보라는 평을 듣고 있는 최 부총리는 최근 ‘취업개입’ 의혹 등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가 났다.

지난 14일 국회 산업통산자원위원회(이하 산자위)의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이원욱 의원은 최 부총리가 2009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지역구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인턴 황모씨의 중진공 취업 과정에서 외압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은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2013년 중진공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특정직원이 합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게 바로 최경환 부총리다”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진공은 2013년 하반기 신입직원 채용과정에서 서류전형과 임원면접에서 탈락한 황모씨의 점수를 변경해 최종 합격시켰다. 감사원은 지난 7월경 이를 적발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초 서류전형에서 2299위였던 황모씨는 원인모를 이유로 1차에 1200위, 2차에는 176위까지 올랐다. 그래도 합격기준을 통과하지 못하자 배수 인원을 기존 170명에서 174명으로 늘려 합격시켰다.

최경환 잇단 취업청탁 의혹, 압력 넣었나?
찌라시→첩보문건, ‘정윤회 문건’은 사실

산자위 소속 야권의원들은 이 과정에서 최 부총리의 외압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감사원 보고서 내에는 중진공 이사장이 “외부인사의 요망이 있었다”라며 말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는데, 그 외부 인사가 최 부총리라는 것이다.

결국 감사원은 박철규 전 중진공 이사장에 대해 취업압력 의혹 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의뢰한 상황이다. 정가는 실세라 불리는 최 부총리에게까지 수사가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최 부총리는 해명자료를 내고 “중진공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 전혀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후속 의혹도 제시됐다. <한겨레>는 최 부총리가 초선의원으로 활동할 때 7급비서로 운전을 맡았던 ㄱ씨를 황모씨 이전에 중진공에 취업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보도내용에 따르면, 중진공은 2008년 8월경 용역직원으로 ㄱ씨를 채용한 후 2010년 시설관리담당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했다. ▲ㄱ씨가 시설관리 분야에 경험이 전무하단 점 ▲청소·경비·시설관리 용역직원이 공공기관에서 정규직이 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외압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를 제기했던 이원욱 의원은 “중진공은 최 부총리의 취업청탁 해결 창구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며 “10월 종합국감에서 최 부총리가 직접 나와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압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최 부총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의견도 있다. 측근이라곤 해도 인턴과 운전기사의 공공기관 취업을 위해 최 부총리가 나섰다는 게 납득하기 힘들다는 의견이다.

해당 의혹으로 인해 그동안 청년 일자리 창출을 내세운 박근혜정부 입장에서는 명분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최 부총리가 노동개혁 등 정부의 개혁의지를 관철시키는 중심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면에서 더욱 치명적이다. 지난 16일 최 부총리는 부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해 “노동개혁의 목표는 기업이 청년인력을 부담 없이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최근 검찰이 속칭 ‘정윤회 문건’에 대한 입장을 바꿔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검찰은 해당 문건에 대해 ‘찌라시’로 폄하하다 지난 14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등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공무상 비밀이 포함된 범죄첩보 문건’으로 수정했다.

정윤회 문건
검찰 사실 인정

특히 ‘정씨를 포함한 십상시의 정기모임’ 여부에 대해 검찰은 지난 1월경 ‘없었음’이라고 발표했으나, 최근 이를 바꿔 “일부 내용이 허위일 수 있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검찰은 또한 “(정윤회 문건) 내용 전부를 허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씨와 3인방을 포함해 문건에서 ‘십상시’로 지목된 청와대 비서관·행정관 8인은 최초 보도한 <세계일보> 기자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는데, 검찰의 입장 변경으로 존재가 인정되는 꼴이 됐다.

일각에선 검찰이 갑작스레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해당 문건을 유출한 것이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관천 경정과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각각 징역 2년과 10년을 구형받았다.

반면 검찰이 수사 중 ‘자승자박’에 빠졌다는 의견도 있다. 발표 중 검찰은 “정씨의 국정개입 의혹 사건 수사는 종료되지 않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문건과 관련해 새롭게 수사되고 있는 내용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검찰의 추가 정보 입수라는 주장과 문건 내용을 모두 부인하려다 암초를 만난 것이라는 분석이 공존하고 있는 가운데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판결 선고에서는 검찰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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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