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구 물갈이론’ 막전막후

선거 앞두고 난 데 없는 민생시찰 “냄새 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을 찾았다. 지난 7일, 박 대통령은 측근들을 대동한 채 대구를 전격 방문했다. 지난 4일 중국에서 귀국한 지 이틀 만에 보인 광폭행보였다. 정가가 주목하는 점은 박 대통령 주변에서 대구 지역 국회의원 누구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 지난 9일 인천을 방문했을 때는 지역 의원들을 공식 초청하는 등 대조를 이뤘다.


다가오는 20대 총선, 대구에 일대 혼란이 예고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일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아 민생을 살폈다. 특별할 것 없는 지역 방문이었지만, 정가와 언론은 이 소식을 집중 조망했다. 비단 대통령이 고향을 방문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박 대통령은 대구 지역 국회의원 12명 중 단 한 명도 초대하지 않은 채 TK(대구·경북)지역 출마가 예상되는 4명의 청와대 참모진과 함께 시찰을 돌았다.

대구 물갈이
시동 걸었나?

대통령이 지역을 방문하는데 그 지역 의원들과 함께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지역 의원이 방문하는 대통령을 맞는 것은 예의이자 오래된 관행”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언론에서는 ‘대구 물갈이’가 시작된 것이냐는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정가 또한 마찬가지다. ‘박심’이 현직 대구 의원들에게서 떠나있다는 반응이 중론이다. 이미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박 대통령에게 각을 세웠던 지난 6월경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난 9일 한 언론은 새누리당 핵심의원의 말을 빌어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 사태 당시 애매한 태도를 보인 대구 출신 의원들에게 크게 실망했다”며 “청와대 고위직 인사들이 대거 출마해 물갈이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정가와 다른 언론의 반응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8일 오전 청와대출입기자들과 만나 “어제(7일) 대구시 업무보고는 경제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며 “경제활성화와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박 대통령은) 시민들과 직접적인 소통을 원하셨다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다”고 전했다. 이어서 그는 “대구시 업무보고의 형태와 참석 범위는 행사를 주최한 시와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결정됐다”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민 대변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정가가 바라보는 해석은 사뭇 진지하다. 그동안 벼려왔던 대구 물갈이를 시작하겠다는 신호가 아니겠냐는 관측이다. 지역을 방문하면서 그 지역 의원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는 점도 해석의 근거가 되지만 청와대가 밝힌 ‘직접적 소통’이 초대를 하지 않은 이유로써 빈약하다는 반응이다.

인천 행사는
여·야 초청

이를 증명하듯 박 대통령은 지난 9일 인천을 방문할 때 의원들을 대거 초대하는 등 대조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인천 송도에서 열린 ‘2015 지역희망 박람회’ 행사에서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인천 지역구 의원들 모두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여권은 물론 야권 의원들에게까지 보냈다고 한다.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새누리당 인천시당위원장인 안상수 의원과 박상은 의원 2명에 그쳤지만, 대구에서는 단 한명도 초청받지 못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대구 방문을 준비했던 과정을 보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대구지역 의원들을 초대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달성군에 위치한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이하 기술원)을 가장 먼저 방문했는데, 자신의 뒤를 이어 달성군에 당선된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을 초대하지 않았다. 달성군은 박 대통령이 18대 국회 때까지 내리 4선을 지낸 곳으로 19대 국회에는 비례대표로 나선 박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 의원이 당선된 곳이다.

기술원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곧이어 지역주민들과 오찬간담회를 가졌고, 이후 전국 5대 재래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서문시장을 방문해 민생을 살폈다. 이때도 박 대통령은 지역구 의원인 새누리당 김희국 의원을 부르지 않았다.

박근혜 대구 방문, 지역 의원은 전무
청와대 “직접 소통 위해” 해석 경계


이종진(달성군)·김희국(중구·남구) 의원의 공통점은 정가에서 ‘유승민계’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대구지역 의원은 총 12명, 그 중 7명의 초·재선 의원이 유승민계로 분류되는데 새누리당 내 의원들의 모임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소속으로 알려져 있다.

유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친박계로 떠오른 이주영 의원을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들의 조력이 컸기 때문이라고 정가는 분석하고 있다. 일련의 사태로 유 전 원내대표가 위기에 몰리고 사퇴하기까지 과정 속에서도 이들 유승민계 7인이 주변에서 호위무사로서 유 전 원내대표를 지켜줬다는 의견이 많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구 방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의원들은 따로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대구시에게 언질을 했단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언론에 따르면 언질을 받은 권 시장이 행사 직전 새누리당 소속 대구 의원 12명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엔 대구시 위주로 행사를 치르니 못 부르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이에 일부 의원들은 “나만이라도 가면 되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결국 모두를 초청하지 않는 선에서 준비가 마무리 됐다는 전언이다. 이번 결정에는 청와대 참모들의 입김이 결정적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대구지역 의원들 입장에서는 총선을 7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이로써 물갈이론이 현실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이 대구지역 의원들을 배제하고, 함께 유권자들과 스킨십을 가진 인물들이 청와대 측근 4인방이기 때문이다. 안종범 경제수석과 신동철 정무비서관,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은 모두 TK 출마가 유력한 상황이다.

청와대 측근들
대구 출마설

안 수석은 이미 비례대표로 19대 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 의정활동 중 청와대 경제수석에 임명되면서 의원직을 사직한 그는 20대 총선 출마가 유력시 된다. 지난 4월경에는 이한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수성갑 출마가 유력하다고 보도된 바 있다.

이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뛰어들면서 사그라들었지만 이번 동행을 계기로 다시 출마설이 나오고 있다. 거론되고 있는 출마 예상지역은 대구 서구다. 서구는 현재 유승민계로 통하는 새누리당 김상훈 의원의 지역구다.

경북대학교를 졸업한 신동철 정무비서관은 지난 17대 총선 당시 대구 중구·남구에 공천 신청을 한 이력이 있다는 점에서 재출마가 유력하다. 서문시장에 초청받지 못한 김희국 의원과의 경선이 예상된다.

천영식 홍보기획비서관은 학창시절을 보낸 대구 동구 출마가 예상되는 가운데 유승민(대구 동구을) 전 원내대표와 경선장에서 만나는 그림이 나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정가에서는 그동안 안봉근 국정홍보비서관의 대구 달성군 출마설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기술원에 초대받지 못한 이종진 의원의 지역구가 대구 달성군이다. 두 사람의 경합이 예상된다.

공교롭게도 청와대 측근 4인방이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모두 현재 유승민계로 통하는 인사들이 맡고 있다. 결정적으로 물갈이론이 힘을 받는 이유다. 그 외에도 전광삼 청와대 춘추관장은 대구 북구갑, 곽상도 전 민정수석은 본관인 달성군 출마설이 나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 후 보여준 파격행보가 박 대통령이 대구를 찾게 만든 요인이라고 꼽고 있다. 지난달 5일 유 전 원내대표는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의 상갓집을 찾아 대구의 유력주자인 김부겸 전 의원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조문객 중 한 명인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유 전 원내대표와 김 전 의원에게 “앞으로 대구정치를 이끌 두 명의 유망주”라며 “신당을 만들어도 되겠네”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물갈이론? TK출마 유력한 측근 대동
유승민계, 오픈프라이머리 탈출구 될까?


또한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을 두고 시기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 전승절을 마치고 여독이 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고향을 방문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물갈이론의 반향이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때 대통령의 직무수행평가는 하향곡선을 그렸다.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로 6월 3주차 지지율이 29%를 기록, 임기 내 최하점을 찍은 이후 7월 2주차에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 후반~30대 초반에 머물렀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전승절 참석이 있었던 기간 동안 지지율은 34%에서 54%로 급등했다. 2주 만에 20%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치솟는 지지율과 더불어 힘을 얻지 못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도 물갈이론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김 대표가 밀어붙이는 오픈프라이머리는 최근 친박계의 공세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친박계 좌장 서청원 의원은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김무성 대표의 몫이지 우리 몫이 아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친박계 실세 이정현 최고위원은 지난달 18일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비용과 역선택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반드시 여야가 동시에 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친박계 핵심 중 한명인 홍문종 의원은 지난 10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제도적으로 정비가 되어 있지 않고 야당도 비협조적이다. 상당히 현실성이 떨어지는 오픈프라이머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다른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의원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정무특보를 역임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은 지난달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오픈프라이머리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해도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서 우리가 해결책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픈프라이머리
유일한 탈출구?

오픈프라이머리는 유승민계의 생존과도 관련이 있어 주목된다. 아직 세가 약한 유승민계가 내년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는 사태를 막을 방법은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관측이다. 이를 입증하듯 지난 2일 유 전 원내대표와 김 대표, 대구지역 의원 11명(이한구 의원 제외)이 만찬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건배사로 ‘우리 대구는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합니다’라고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유승민계 의원들 입장에서는 지지하는 유 전 원내대표가 전국구로 떠올랐기 때문에 오픈프라이머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승민계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청와대와 친박계의 입김이 공천에 작용하는 것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유승민 존재감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국정감사 첫날부터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10일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감에서 제2롯데월드 허가과정과 관련해 국회 차원에서 재조사하라고 촉구했다. 유 전 원내대표는 “행정부가 스스로 조사할 생각이 없으면 국회가 이 문제에 대해 행동을 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감이 본격 복귀 신호탄?

감사장에서 유 전 원내대표는 “잠실 제2롯데월드 건축논란이 시작될 때 18대 국회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안전의 문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고 질타했지만 그냥 밀어붙였다”며 “(제2롯데월드 건축은) 지난 22년 간 군이 계속 반대한 상황이었는데도 (롯데측이) 안전하다고 해 (허가된)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북한의 지뢰도발로 다리를 다친 하재현 하사의 치료비와 관련, “비단 하 하사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언론에 노출된 하 하사 한 명의 치료비 부담만 국방부에서 할 것이 아니라, 나머지 보도되지 않은 과거의 환자들에 대해서도 같이 살펴봐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정가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의 정치적 복귀 시점을 9월 국감으로 내다봤다. 논란이 됐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도입에서부터 국방부 차원의 도·감청장비 구입, 군대 내 성문제까지 국방위원회에서 지적 가능한 현안이 망라해 있기 때문이다. 유 전 원내대표가 과연 잇단 논란을 딛고 국감을 ‘유승민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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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