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탈당카드’ 만지작거리는 사연

말 안 듣는 청개구리 비박계 ‘길들이기’?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국회에서는 ‘메르스 정국’만큼 뜨거운 것이 있다. 지난 5월29일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는 가운데 당·청 간 갈등이 심화되는 조짐이다. 대통령의 ‘거부권’을 두고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 지도부를 향한 채찍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여·야는 물론 당·청, 심지어 새누리당 내에서도 파열음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 5월29일에 있었던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할 때만 해도 의원들은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 의사를 표하면서 정가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청와대의 계획된 ‘정치권 길들이기’ 전략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부권 행사
길들이기?

갈등의 양상은 이렇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가 합의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위헌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법안 통과 직후 청와대 측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등 강하게 불만을 표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법원의 심사권과 행정입법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삼권분립’ 원칙에 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이어 “이것이 공무원연금개혁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에 송부하기에 앞서 (국회가 개정안을) 면밀 검토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공무원연금개혁과 같이 묶어 통과시킨 것에 대한 강한 불만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 또한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혔다. 지난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으로 인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 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국회는 벌집을 쑤신 것 마냥 혼란에 빠졌다. 지난 5월30일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 합의가 이뤄졌다면 이는 해당 시행령에 실제로 큰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라며 “그럼에도 국회의 수정 요구를 정부가 끝내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어 대법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등 행정입법 수정에 대한 강제성이 없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강제성 여부를 두고는 아직 이견이 있다. 여당 측은 국회법 개정안이 청와대가 걱정하는 것처럼 행정입법권을 강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국회법 개정안 통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시행령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 순 있지만 강제할 순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이 법으로 인해 그동안 모(母)법과 충돌되는 시행령을 수정할 수 있는 강제성이 있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측은 지난 5월30일 강하게 청와대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삼권분립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있고 법과 시행령의 충돌에 따른 최종 해결은 사법부가 하는 것”이라며 “시행령 파동을 보면 청와대의 오만과 월권이 도가 지나치다”고 청와대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왜 삼권분립 위배와 위헌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일까. 국회법 개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유를 확인할 수 있다.

삼권분립
위헌논란

알려진 대로 국회는 입법부다. 국회의원들은 각자가 법안을 발의하는 등 입법기관으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제안된 법안은 여·야 의원들의 논의를 통해 법으로 제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제정된 법과 행정부에서 제정하는 시행령이 충돌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모법을 기반으로 행정기관은 시행령을 제정하게 되는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제정하게 되면 이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따라 법의 취지에 반하는 시행령이 늘어나게 되었고, 국회에서는 이를 개선·수정을 권고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반면 행정부의 수장인 박 대통령은 이러한 국회법 개정안이 행정부의 행정입법권과 그에 따른 자율이 국회 등 입법부에 의해 침해받을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모법과 시행령이 충돌하는 경우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일 ‘법 위의 시행령’ 사례라는 시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시행령을 선정해 공개했다.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강기정 의원이 발표한 것은 총 11개. ▲세월호특별법 ▲누리과정 교부금 지원법 ▲학교보건법 ▲의료법 ▲5?18보상법 ▲노동조합법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법 ▲근로기준법 ▲국가재정법 ▲경제자유구역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을 두고 이종걸 원내대표는 연석회의자리에서 ‘아비 없는 시행령’이라 말하며 청와대의 공세에 맞불을 놨을 정도로 청와대의 주장에 대해 새정치연합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회법 개정안 통과, 위헌 논란 휩싸여
청 “삼권분립 위배, 받을 수 없다” 입장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은 아직 청와대로 송부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마친 이후 정부로 전달될 예정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 3일 “대통령께서 (미국에서) 돌아오시고 나서 편안하게 판단하시라고, 그렇게 (일정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오는 23일에 있을 국무회의에서 심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확실시되고 있는 와중에 정가에서는 친박계가 움직이고 있어 눈길이 간다. 마치 대통령의 시그널을 받은 것처럼 보여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김 대표는 지난 1일 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면 충분한 검토의 결과로 말씀하신 걸로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화살은 모두 유승민 원내대표로 모아지고 있다. 실제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를 보고 있자면 유 원내대표 찍어내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법이 통과된 지 3, 4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야당은 현재 시행중인 시행령을 모두 손보겠다고 칼을 빼들었다. 또 오늘 손볼 시행령을 발표하겠다고 까지 이야기했다”며 “(한마디로) 가관이다”라고 말해 새정치연합 측과 합의해준 새누리당 지도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원내대표 체제 이후 청와대와 당의 갈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며 “협상의 결과가 늘 청와대 당·청 간의 갈등으로 비쳐지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최근 새누리당 내 계파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회의 자리에서 고성을 주고받을 정도로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는 메르스 관련 긴급간담회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처럼 위중한 시기에 우리 정치권이 구태의연한 정치공방에 몰두한다면 설 자리를 영원히 잃지 않겠나 하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함께 참석해 있던 서 최고위원은 “회의에서 메르스 문제만 얘기하려고 했으나 조금 전 김 대표의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며 운을 뗀 뒤 “아무리 대표를 하더라도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들은 전부 당의 싸움을 일으킨 사람이고 본인은 아무 문제없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나무라는 식으로 회의를 이끌지 말기 바란다”고 언성을 높였다.


당내 갈등 심화
유승민 찍어내기

이렇듯 비박계를 향한 친박계의 비판 수위가 높아지자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지도부 길들이기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암시하는 발언을 하자 친박계가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도 그렇지만 거부권 행사가 박 대통령에게 있어 정치적으로 유리하지 않음에도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의 3분의2 이상이 찬성하면 법률로 제정된다. 즉 야당이 130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누리당 의석수 중에 친박계를 제외한 비박계만 찬성해도 3분의2라는 숫자를 넘게 되는데 그렇다면 거부권을 행사한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오히려 역풍을 맞아 앞으로 국정 운영에 있어서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무조건적인 국회법 개정안 수정 또는 철회를 이끌기 위해 다른 카드도 만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카드가 바로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이라고 보고 있어 주목되는 바다.

탈당설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탈당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정가에서 들려오던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이 지난해 7·14전당대회 다음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등 신임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야당이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당이 공격하면 정부는 일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된다”며 “새누리당이 만약 그렇게 하면 내가 여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 보도된 상황이다.

이에 대해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논평할 가치를 못 느낀다”고 일축했지만,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게 정가의 중론이다.

새누리당 계파 갈등 “유승민 내려와!”
대통령 탈당설 솔솔~ 지도부 압박용?

때문에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유사 시 탈당카드를 꺼내들 것이며 그로 인해 친박계를 결집시키는 등 새누리당의 권력지도를 재구성하는 복안을 만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박 대통령에게 지지를 보내온 보수층을 재집결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계속되는 갈등 속에 이정현 최고위원이 최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주목된다. 이 최고위원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회에서 이를 재의결하는 것”이라며 “국회에서 재의결하는 과정에서 폐기되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다”고 지난 4일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그간 박 대통령의 ‘입’을 자처해온 이 최고위원의 당내 역할을 봤을 때 쉽게 넘길 수 없는 발언이라고 보고 있다. 결국 이 최고위원이 박 대통령의 의중을 듣고 움직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과연 친박계로부터 ‘사퇴 압박’까지 받고 있는 유 원내대표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야당과의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은 유 원내대표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당·청협의를 중단시킨 청와대를 향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 3일 청와대 측에서 ‘당·청협의 회의론’이 나온 데 대해 “어른스럽지 못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유 원내대표와 청와대 간 ‘진실공방’도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청와대 측 관계자는 이번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이병기 비서실장 채널로 ‘공무원연금법 처리가 안 되도 좋으니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하지 말라’는 뜻을 원내지도부에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 의견이 당 내부로 공유하지 않았고 그래서 지금의 사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유 원내대표는 “이 비서실장이 국회법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하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진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때 아닌 진실공방에 당·청 간의 관계는 더욱 악화 일로를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탈당?
기대효과 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결국 당·청 간의 갈등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칫 장기화될 수 있는 갈등 양상으로 인해 다른 현안들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당·청 관계가 원활하게 정상화될 수 있을지, ‘메르스’ 진화를 위해서라도 관계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발언 후폭풍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은 위헌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뒤, 위헌이냐 아니냐를 두고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통과된 국회법 개정안이 헌법에 위배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입법권이 국회에 있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없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학계서도 의견 분분 “누구 말이 맞나?”

모 대학의 한 법학과 교수는 “행정부에 위임된 시행령 제정 권한은 삼권분립 영역에서 생산된 것”이라며 “국회가 시행령이 법률취지에 맞게 작동하는지 감독한다는 것은 명백히 행정부에 위임된 권한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는 한 교수는 “원래 입법권은 국회에 존속된 권한인데, 국회에서 세부적인 부분까지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행정부에 위임한 것”이라며 “위탁자가 수탁자 권한을 감시·감독하는 것은 기본 원칙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법리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내다 봤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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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