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신의 한수' 남미 구상 대해부

‘총리 김무성’ ‘당대표 서청원’ 카드는 어때요?

[일요시사] 최현목 기자 = ‘인사가 만사다.’ 인사관리에 관한 옛말을 바탕으로 박근혜정부를 평가한다면 어떤 말이 나올까. 이완구 전 총리는 지난 20일 사의를 표하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더불어 재임기간 63일, 사실상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청와대는 6번째 총리 지명자를 찾고 있다. 그간 다른 자리에 비해 총리직 선임과정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총리만 국한해 본다면 ‘인사참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후 지금까지 김용준, 정홍원, 안대희, 문창극, 이완구 등 총 5명의 후보자를 지명했지만 그 중 이 전 총리를 포함해 2명만 실제 총리가 됐다. 이제 그 두 사람 중 한 명마저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정홍원 전 총리만이 정상적으로 임기를 마친 유일한 총리로 남아있다.

불명예 퇴진
총리 잔혹사

박 대통령을 포함해 청와대는 현재 차기 총리를 골라내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새누리당 이상돈 전 비대위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완구 총리가 사실상 마지막 카드였다”며 “후임 인사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고 진단한 바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는 앞으로 후보자를 결정하는데 있어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고를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많은 후보자의 이름이 하마평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 총리가 사의를 표한 후 언론을 통해서는 차기 총리에 대한 여러 기준들이 거론되고 있다. ‘정치인이냐 비정치인을 뽑을 것이냐’란 문제도 중요한 기준 중에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이 전 총리가 불법 정치자금 의혹으로 사퇴한 것에 비춰봤을 때 비정치인 출신이 될 것이란 이야기도 들려온다.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는 비정치인 출신 후보자는 조무제, 김영란, 목영준, 윤증현 등이다. 이들은 모두 도덕성과 청렴함에 있어서 검증 받은 사람들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조무제 전 대법관은 ‘딸깍발이 판사’로 알려질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유지한 인물로 손꼽힌다. 조 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전관예우’ 의혹에 자유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권 교체마다 차기 총리로 모셔오고 싶어 하는 인물 1순위로 꼽힌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잘 알려진 ‘김영란법’을 발의한 사람이다. 김영란이란 이름이 국민들에게 누구보다 긍정적으로 각인돼 있다는 측면에서 만약 총리로 임명된다면 그간 보여준 인사실패를 만회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 전 위원장 역시 대법관 출신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아 ‘전관예우’에 자유롭다.

목영준 전 헌법재판관의 이름도 들려온다. 청렴한 법조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목 전 재판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나리오다. 특히 그는 ‘헌법 재판관’이란 이력을 가지고 있어 향후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국민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


행정경험을 중시한다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장관도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 국정의 2인자이자 행정부를 총괄하는 국무총리 자리에 현장행정가를 투입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혼란을 벗어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분석이다.

도덕·청렴 우선
비정치계 거론

그러나 들려오는 이야기를 종합해본다면 그래도 정치인 출신 인사들이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박근혜정부에서 ‘정무감각’이란 달콤한 열매를 버릴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렴함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많은 선거를 통해 검증된 인물들이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되는 이유다.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본다면 누가 앞서 있는지 쉽사리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쟁쟁하다. 황우여, 최경환 부총리의 이름도 자주 들려온다. 두 사람은 친박의 핵심실세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라 박 대통령과의 소통에도 무난하다는 진단이다.

황 부총리 측 관계자는 전화인터뷰에서 “황 부총리는 아셈회의를 위해 해외출장 중이다”라며 “전혀 그에 대한 말씀이 없으셨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새누리당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도 유력한 후보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미 이완구 전 총리가 선임되기 전 후보자로 이름이 자주 거론된 바 있으며 서민적 이미지로 도덕적인 부분에서 결함이 없다는 평가다.

행정 경험 또한 다른 인물에 비해 풍부해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실력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총리를 맡아달라고 하면 수락할 것이냐’는 <연합뉴스>의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가정법을 가지고 거기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좀 이상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답한 바 있다.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친박계 핵심인물로 꼽혀 주목받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박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신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4선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국민의 검증은 끝났다는 점이 크게 작용할 것이란 말도 있다.

‘세월호 사건’을 수습했을 때 보여준 진정성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 대목이란 분석이다. 이 전 장관 측 관계자는 전화를 통해 “의원님께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은 알고 계실 것이다”라면서도 “지금 해외출장 중에 계신다. 의원님으로부터 총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전달 받은 게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마평 줄줄, 이완구 다음 누구?
정치인은 물론 비정치인도 물망

같은 4선 의원으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도 유력한 후보자로 손꼽힌다. 이 의원은 원내대표를 지낸 경험이 있어 리더십이 검증됐으며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등 경제관련 현안을 보는 눈이 밝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황이라 박근혜정부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본다면 가장 적임자라는 평가다.

반면 강력한 후보임에도 위험부담이 있는 후보자들이 있다. 오세훈, 황교안이 그들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경우 최근 새누리당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이미 정계 복귀를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들어간 것이란 평가를 받을 정도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력이 있어 총리직도 무난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그러나 ‘복지’와 관련해 야당과 대척점에 있어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관련 사항에 대해 문의하려 오 전 시장 측 측근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황 장관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그간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등 굵직한 사안을 박 대통령과 소통하며 진행했다는 점에서 유력 후보로 꼽힌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국정 공백을 불러온 ‘성완종 사건’이 수사 중에 있다는 점에서 황 장관이 총리로 낙점될 경우 정가 내외에서 반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감각·경험 우선
정치계 후보들

지역적 기준으로 총리를 선임할 것이란 전망도 나와 눈길을 끈다. 거론되고 있는 지역은 충청권과 호남권이다. 충청권이 거론되는 것은 다시 한 번 박 대통령이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를 가져갈 때 충청민심이 많은 힘을 실어줬다는 점이 아직 청와대 내부에서 작용하고 있을 것이란 추측이다.
 

그런 채무의식이 충청 총리를 밀어줄 수 있다는 분석으로 이어졌다. 현재 거론되는 충청권 인사는 이인제, 강창희, 정우택 등이다. 이들 의원실과 통화해본 결과 공통적으로 “의원님으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못했다”면서도 “하마평에 거론되는 것은 언론을 통해 아마 알고 계실 것”이라고 밝혔다.

충청 인사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인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기획원 법무담당관 출신으로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는 등 이력과 경험에 있어선 충분하다는 평가다. 3선 의원까지 성공해 준비된 카드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들려오고 있다. 정 의원실 한 관계자는 “공식입장은 없다”면서도 “충청민들이 느꼈을 아픔에 대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후보만 10명 이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은?
누가 되더라도 ‘독이 든 성배’ 변함없어

호남지역 총리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당대표의 입에서 나온 얘기라 더욱 힘을 받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23일 4·29재보선 광주 서구 지원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께 말씀 드린다”며 “이번 기회에 이완구 총리가 경질되면 그 자리에 전라도 사람 한번 총리를 시켜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잘하겠냐”며 “또 정 승 후보가 이번 선거에 당선돼 최고위원이 되고, (이 최고위원이) 총리를 하면 얼마나 일을 잘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즉, 이 최고위원이 총리로 가면 공석이 된 자리에 정 승 후보를 앉히겠다는 것이다. 정 후보 당선을 위한 파격 공약 중 하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정작 친박계를 통해서는 ‘김무성 총리 임명’이라는 파격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 최고위원을 총리로, 정 후보를 최고위원으로’라고 밝힌 김 대표의 발언과 유사한 전략이라 더욱 눈길이 간다. 친박계 내부에서 나온 말을 종합해보면 ‘김무성 대표를 총리로, 공석이 된 당대표 자리에는 서청원 최고위원을 앉힌다’는 시나리오다.

김 대표가 총리가 됐을 때 박근혜정부가 가질 수 있는 득을 생각해본다면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다. 청와대 입장에서 봤을 때 ‘양수겸장’ 측면에서 김 대표가 적임자라는 분석이다.

첫 번째 김 대표는 여당 최고의 유력 대권주자다. 그런 대권주자를 총리로 임명한다면 떨어지는 지지율을 붙잡을 수 있다. 최근 언론은 물론 정계에서는 이번 성완종 사태로 인한 ‘조기 레임덕’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데드덕’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심각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두 번째는 비박계 최고 핵심을 곁에 둘 수 있다는 이점이다. ‘적은 가까이 두라’는 옛말처럼 최근 기치를 높이고 있는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게다가 만약 서 최고위원이 김 대표를 대신해 당대표가 된다면 국정 운영에 있어서 순풍을 달 수 있다고 친박계는 풀이한다.

김무성 총리?
서청원 대표?

이에 대해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실 관계자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서 최고위원 측 관계자는 “누가 얘길 꺼냈는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라며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라고 했다. 김 대표 측 관계자 역시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총리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으시다”고 말했다. 두 관계자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흔히 들리는 소문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남미 4개국 순방길에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과연 어떤 보따리를 풀어놓을까? 아직 결정권자인 박 대통령의 ‘신의 한수’가 미정인 상황에서 총리 후보자에 대한 하마평은 어디까지나 예상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끊이지 않는 ‘이완구 잔혹사’

최근 <조선일보>를 통해 이완구 전 총리가 인척관계에 있는 검찰 관계자에게 수사상황을 문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해 총리실 측은 이 전 총리가 직접 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내용에 따르면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전화 통화내역 등을 살펴보던 중 이 전 총리와 인척관계에 있는 검찰 간부와 수차례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고, 이 전 총리도 성 전 회장의 자살 이후 해당 간부와 자주 통화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고 지난 23일 보도했다.

총리실 직원, 검찰 측에 수사 문의 논란

이러한 기사가 나간 이후 총리실 관계자는 <KBS>를 통해 “총리 본인이 검찰 간부와 직접 통화한 적은 없다”며 “다만 총리실 직원 이모씨가 이 전 총리와 인척인 검찰 간부에게 전화해 수사상황을 문의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수사상황을 문의한 이씨는 이 전 총리가 충남지사로 근무할 때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측근으로 이 총리 취임 이후 총리비서실에서 근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직원은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조만간 총리실에 사표를 제출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검찰은 이 전 총리의 인척이자 성 전 회장이 이끈 ‘충청포럼’ 멤버로 알려진 검찰 간부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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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