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②비망록 실체 추적

준 사람 있는데 받은 사람 없는 ‘뇌물 수첩’ 진짜 있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주요 유류품은 총 3개다. 하나는 유서, 또 하나는 소위 ‘성완종 리스트’라 불리는 메모 한 장, 다른 하나는 성 회장이 생전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 두 대다. 한 대는 오른쪽 상의 주머니에서, 나머지 한 대는 시신에서 15m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됐다.

비망록은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것, 또는 그런 책자’를 의미한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다른 자수성가 타입의 인사들에게도 보이는 특징처럼 메모를 생활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격 또한 꼼꼼했었다는 정황을 종합해 봤을 때 또 다른 비망록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성 회장의 자살 이후 다수의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리스트 이름들
판도라의 상자

성 회장의 시신에서 발견된 것들은 정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그 중 하나인 ‘성완종 리스트’에는 8인의 이름과 수억원에 해당되는 금액이 적혀있는데 진위여부를 떠나 지금과 같은 사태로 이어진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실명이 거론됐다는 측면에서 검찰 수사의 큰 줄기는 메모를 기초로 진행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

두 번째는 유서다. 유서는 한때 내용이 공개되지 않아 많은 추측을 불러온 바 있다. 그러나 유서를 본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세간에는 유서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유서에는 정치인의 이름은 없으며 가족에 대한 당부의 말이 있을 뿐”이라며 “부인과 아들, 동생들에 전할 당부의 말뿐이었으며 로비라는 단어나 정치인의 ‘정’자도 없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성 회장이 한 언론사와 나눈 통화에 대한 녹취록이다. 북한산 형제봉에서 발견된 성 회장은 지난 9일 <경향신문>과 오전 6시부터 50분간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만 하루가 지나 발표된 녹취록에는 박근혜정부의 1기 비서실장이라고 할 수 있는 허태열 전 실장, 2기인 김기춘 전 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일단 친박 7인·비박 1인 거론
집무 다이어리 기록된 사람은?

녹취록은 정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더욱이 약 50분간의 통화 중 공개된 것은 8분여에 불과해 나머지 42분의 내용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최초 공개된 지 하루가 지난 11일, 2차 녹취록이 공개됐다. 당시 공개된 내용에는 성 회장이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사용하라며 1억원을 건넸다는 주장이 담겨있었다. 성 회장은 “2011년 홍준표가 대표 경선에 나왔을 때 한나라당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캠프에 있는 측근을 통해 1억원을 전달했다. 6월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녹취록의 내용이 이완구 국무총리를 향하면서 의혹은 절정에 치달았다.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대정부질문이 ‘성완종 사태’에 대한 청문회 양상으로 진행된 바 있다. 이때 나온 이 총리의 답변이 성 회장이 녹취록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대치되자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이완구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라는 패널을 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누구 누구 나오나 
녹취록 공개 파장

이어지는 녹취록 공개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전문 공개를 요청했다. 다른 정계 인사들도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녹취록 공개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지난 15일 자정쯤 <경향신문> 홈페이지를 통해 전문이 공개됐다. 내용은 기존에 공개된 내용을 포함해 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을 자랑할 정도로 방대했다.
주목할 만한 사항은 기자와의 대화 내내 성 회장은 ‘신뢰’를 강조했다는 점과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점이다. 성 회장은 이 총리를 9개 대목에서 언급하며 섭섭함을 표현한 것으로 나온다.


전문이 공개되자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리스트에 있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녹취록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 등이다.

유 시장은 리스트에 이름이 적힌 사람이다. 리스트를 보면 3억이라는 금액과 함께 유 시장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 인천시당은 지난 16일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유 시장은 2014년 성 회장을 4차례에 걸쳐 만났고 지방선거에서는 유세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지난 3월에는 성 회장의 구명전화를 받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황없는 전화통화 중 이름이 누락됐을 수 있다며 단순 실수라는 설에 무게를 뒀지만 행적 하나하나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다 보니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MBN 보도 내용에 따르면 유 시장 측은 당연한 결과라며 평소대로 직무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유 시장은 이미 “성 회장과는 19대 국회에서 만난 동료의원 관계일 뿐”이라고 의혹을 부인한 바 있다.

MB 측 인사들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오히려 녹취 전문을 보면 MB 측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해 궁금증을 자아냈다. 당시 기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꼬집어 물어봤음에도 “자신보다 돈이 수백배 많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받으려 했겠냐”며 극구 부인했다. 이를 두고 친박계에서는 ‘성완종 리스트’가 모두 친박 인사들로 작성된 것과 연결시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인물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거론됐다는 점은 논쟁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했다. 성 회장은 반 총장을 언급하며 이 총리가 견제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에 대한 수사도 그러한 견제의 일환으로 시작됐다는 견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보면 성 회장은 “내가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런 게 아닌가”라며 “반 총장을 의식해서 그렇게 나왔다”고 적혀있다. 이어서 그는 “내가 반 총장과 가까운 것은 사실이고 동생이 우리 회사에 있는 것도 사실이고 (충청)포럼 창립멤버인 것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반 총장 견제설’을 일축하고 나섰다. 이 총리는 지난 16일 대정부질문장에서 “마치 반 사무총장의 대권과 저의 문제가 결부돼 제가 고인을 사정했다는 심한 오해가 저간에 깔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어떻게 이렇게 비약할 수 있는가 생각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사실 반 총장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4일 JT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성완종 다이어리’에 따르면 반 총장을 비롯해 새로운 인물들의 이름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는 새정치연합 김한길 전 대표,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야권 인사들의 이름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망록 다이어리
과거 약속 빼곡

일각에서는 다이어리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주의를 요하는 목소리도 있다. 성 회장의 다이어리는 단순히 약속을 기록해 놓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성 회장의 최 측근으로 알려진 박모 전 경남기업 상무는 자신의 자택 앞에서 기자들에게 “일부 언론이 보도한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와 관련한 내용은 ‘오보’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날짜와 장소, 만나는 사람이 적혀 있지만 약속에 나가지 않아도 다이어리에 그런 표기를 하지 않으니 실제로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 모르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이에 따른 해명도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지난 14일 ‘다이어리’를 참고해 보도한 “김한길 당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과는… 2013년 4월27일 롯데호텔 일식당에서 조찬을 함께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에 대해 김 전 대표 측은 보도자료를 내 반박했다.


주장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의혹을 제기한 2013년 4월27일 같은 당 소속 인천시당 당직자-구청장 등과 인천 계양구의 설렁탕집에서 조찬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음을 알렸다. 즉 당시 성 회장을 만난 적 없으며 다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성완종 리스트’ 혐의를 입증할 새로운 물증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말로 하면 이는 비망록이라 불렸던 기존의 자료들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메모와 녹취 진술을 뒷받침할 정황 증거와 보강자료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에 수사의 성패가 달린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미 지난 16일 경남기업에 대한 2차 압수수색을 진행했으며 회계자료와 내부보고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확보한 증거물을 토대로 ‘금고지기’로 알려진 한모 부사장 등 성 전 회장의 핵심 측근들과 회사 임직원들을 조만간 차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만나기만 해도 구설
“모른다” 피하기 급급

공개되지 않은 비망록이 있다면 그건 아마 USB가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한 부사장이 검찰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USB 안에는 현장 전도금 32억원의 인출 내역이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USB 안에 정치인에게 후원금으로 전달한 정황이 포착된다면 ‘리스트’와 ‘녹취록’ 만큼의 파급력을 보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2차 녹취록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만 간다. 지난 1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한 부사장은 성 회장과 함께 금품수수 폭로 대상자를 선별하는 회의에서 나온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이기는 하나, 회의 내용에서 구체적인 자금 전달방식 또는 전달책이 등장한다면 수사는 급진전을 이룰 수 있다고 검찰은 내다보고 있다. 음성이 녹음된 파일은 검찰에 이미 전달된 상황으로 경남기업의 비자금 내역을 담고 있는 USB와는 별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확보한 또 다른 자료도 존재한다. 지난 17일 성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모씨로부터 여·야 유력 정치인 14명에게 불법 자금을 제공한 내역이 담겨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부를 확보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알려진 내용에 따르면 장부의 분량은 A4용지 30장 정도이며 그 속에는 새정치연합 중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8명의 이름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가 오랜 기간 성 회장을 보좌해온 점을 고려할 때 장부의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수사 범위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진다.

광범위 수사
물타기 작전?

일각에서는 이러한 수사 범위 확대를 경고한다. 일찍이 이 총리가 ‘광범위한 수사’를 언급하자 야당 의원들이 반발한 바 있다. 해석에 따라서 야당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으며 이는 전형적인 ‘물타기 작전’이라는 게 야당 의원들의 주장이었다. 의원 중 몇몇은 이 총리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검찰에게 은밀히 지시를 내리는 것과 진배없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온 국민의 관심은 과연 ‘성완종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에 집중된다. 연일 언론을 통해서는 속보와 단독 기사가 빠른 시간 안에 보도되고 있다. 몇몇 정치평론가들은 사설을 통해 이러한 ‘속보 전쟁’을 우려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집중하다보면 이번 사건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진실게임’이 아닌 ‘부정부패 발본색원’이라고 지적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완종 리스트’ 수사팀 보니…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김진태 검찰 총장의 지시 아래 새로운 수사팀이 꾸려졌다.

특별수사팀장에는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임명됐다. 김 총장은 “머뭇거림 없이 원칙대로 가라. 의심받지 않게 철저하게 수사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팀장은 “국민적 의혹이 집중된 이번 사건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갖고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도록 진력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러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직 구조상 현 정권을 상대로 수사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주장이다. 특별수사팀장은 반부패부장이 임명한다. 반부패부장은 검찰총장이 임명한다. 그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이, 그 위에는 국무총리가 있다. 결국 문 팀장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자리라는 해석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문 팀장의 역량을 기대하는 눈치다. 문 팀장은 과거 2004년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측근 비리 특별 파견 검사로 있으면서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당시 보도된 기사를 보면 강단 있는 수사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최근 국민들의 뇌리에 ‘땅콩회항’으로 강하게 박혀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수사도 지휘한 이력이 있다.

그가 호남인사라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검찰에 입문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의혹을 파헤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있는가 하면 수사를 둘러싼 의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호남 출신 검사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시각도 있다.

결국 이 총리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느냐 여부가 이번 특별수사팀의 향방을 가를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총리는 현재 피의자가 아닌 ‘피내사자’ 신분이다. 이는 정식으로 입건해서 조사를 하는 게 아니라 범죄혐의에 대한 의심이 가는 사람을 은밀히 조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사기관을 통해 피내사자는 내사를 받다가 범죄혐의가 인정되면 그때부터 입건되고 ‘피의자’ 신분으로 변하게 된다. 혐의가 없다면 내사는 그대로 종결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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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