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게이트> ③새누리 계파 삼국지

한 지붕 세 가족 ‘동상이몽’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성완종 리스트’에 정국이 뜨겁다.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유류품이 판도라의 상자였던 것일까. 목을 매 자살한 성 회장의 시신 상의에서는 이름과 액수가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한 장의 종이, 8인의 이름, 그리고 수억원의 돈. 친박·비박·친이는 진위 여부를 두고 물고 물리는 공방을 펼치고 있다.

새누리당이 시끄럽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에 여당은 역풍을 맞은 모양새다. 자칫 정권의 정당성마저 흔들릴 수 있는 이번 스캔들에 새누리당 핵심 인물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마치 ‘주초위왕’으로 시작해 ‘기묘사화’로 끝난 16세기 조선과 같은 형국이다. 사실관계는 수사 중에 있다. 그러나 친박·비박·친이계 사이에 오가는 공방을 보고 있노라면 벌써 ‘한나라’가 ‘세나라’로 쪼개진 느낌이다.

진위 여부 두고 
물고 물리는 공방

이번 사태에 대해 당·정·청은 물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한 목소리로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소간의 입장차가 보인다. 특히 새누리당 내에서는 계파 간 눈치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들은 새누리당이 크게 3개의 계파로 갈라져 있다고 본다. 이는 국민들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친박·비박·친이가 그것이다. 일부 정치인들은 기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정계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계파와 무관하다 보기 힘들 정도로 단결된 모습을 보여줘 왔다.

이번 성완종 사태에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과연 ‘친이계에서 시작된 수사가 친박계로 이어질 것인가’하는 부분이다.

잘 알려진대로 이번 사건은 박근혜정부의 ‘사정드라이브’에서 시작되었다. 이완구 총리는 지난달 12일 부패척결을 선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이 총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총리의 선언을 두고 박 대통령의 의중과 같다고 내다봤다. 사정드라이브는 박심을 등에 업고 출발했다.

사정의 칼날이 자원외교를 향하자 친이계는 반발하기 시작했다. 친이계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은 ‘기획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정권 유지를 위한 쇼’로 규정했다. 이번 갈등의 시발점이었다.

신·구 정권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특히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는 등 사정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타깃이 분명해지자 친이계는 더욱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검찰은 갑작스레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발표한다.

압수수색이 발표된 날 언론은 경남기업과 석유공사가 자원외교 비리수사의 1차 타깃이 됐다며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부 기자들 중 일부에서는 ‘경남기업이라는 회사가 규모에 비해 너무 집중적인 수사를 받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4월3일 검찰은 성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성 회장은 그간 ‘MB맨’으로 지목돼 왔다. 평소 친이계 측 사람들과 친분이 있던 성 회장이 자원외교에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었다. 이에 성 회장은 지난 3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은 절대 MB맨이 아니라며 성토했다. 그는 “어떻게 MB정부 피해자가 MB맨일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성완종 메모
친박계 뇌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억울해서였을까. 성 회장은 기자회견을 한지 하루만인 지난 9일, 북한산 형제봉 매표소에서 300m쯤 떨어진 지점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가 남긴 비망록은 친박계에 떨어진 직격탄이었다. 적힌 8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제외한 7인이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그 중에는 박근혜정부 1·2·3기 비서실장인 허태열, 김기춘, 이병기 실장의 이름은 물론 이완구 국무총리,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이름 없는 ‘부산시장’이 적혀있었다.

최근 공개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전문을 보면 성 회장이 메모에 적은 ‘부산시장’은 서병수 현 부산시장인 것으로 추측된다. 녹취록에 따르면 “내가 그 양반(이완구) 공천해야 한다고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한테 많이 얘기하고”라며 언급된 바 있다.

후폭풍은 대단했다. 면면이 핵심인물이란 이유도 있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거세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사태를 두고 ‘친이계를 향하던 검찰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찬박계의 목을 겨누게 됐다’고 표현했다. 각종 언론에서는 금액의 진위여부를 떠나 현 정권 최고의 ‘정치 스캔들’이라 규정했다.

친박계 7인은 성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공통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잘 알지 못 한다”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돈을 받은 사실은 절대 없다”가 그것이다. 유일하게 비박계로 분류되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자신은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면서도 “메모에 등장하는 명단은 모두 (성 회장의) 청탁을 거절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정계의 최대 화두는 이완구 총리의 거취문제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 내 계파 간에도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있다. 심지어 탄핵 얘기까지 야당이 아닌 여당에서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친박 vs 비박·친이 책임 공방전
MB쪽 향하던 검날 당으로 부메랑
총리가 총대? 꼬리자르기 ‘솔솔’


성완종 스캔들의 전말을 살펴보면 이 총리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녹취록 전문을 살펴봐도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대화의 큰 줄기는 이 총리에 대한 대화에서 파생되어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JTBC에서 단독으로 입수한 소위 ‘성완종 다이어리’를 살펴봐도 성 회장은 이 총리를 20개월간 23차례 만난 것으로 확인된다. 이는 다이어리에 나온 정치인 중 최다 만남 횟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이 총리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단, 헌정 사상 현직 국무총리를 수사한 전례가 없다는 측면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친박·비박·친이계 사이에서도 설전이 오가고 있다.

먼저 친이계 측에서는 이 총리의 사퇴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막중한 책임이 있는 총리가 부패 혐의에 연루돼 있고, 청와대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부패에 연루돼 있다”며 “총리는 사실 여부를 떠나 검찰에서 밝혀질 일이니 정치적으로 국정의 막중한 책임이 있다면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관계된 사람들이 스스로 거취를 정해서 당과 대통령의 부담을 줄여주지 않는다면 당은 이들에 대해서 엄혹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 달 전 부정부패 청산 소식에 ‘기획수사’ ‘표적수사’를 주장했던 때와는 입장이 180도 변한 것이다.

비박-친이계
이번에 끝장?

비박계는 사태를 예의주시하지만 전반적으로 친이계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용태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총리는 명명백백한 진실 규명을 위해 총리직을 사퇴해야 한다”면서 “검찰이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이 총리가 결단해주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는 지난 13일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해 특별검사(이하 특검) 실시를 촉구한 바 있다. 그들은 “국민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성완종 파문과 관련해 특검제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친박계 또한 표면적으론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하고 있다. 친박계 한 의원은 “국민 정서가 부정적이다”며 “이 총리가 총리직을 지킬수록 의혹은 확대될 것이다. 더 이상의 확대는 당 차원에서 좋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퇴 요구는 야속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의원도 있다. 또 다른 친박계 의원은 “당에서 자진사퇴를 얘기하고 있다”며 “종이에 적힌 몇 자로 내치는 것은 과도하다”고 생각을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난 15일 ‘이 총리 사퇴론’에 대해 “의견을 잘 수렴해 보겠다”며 아직 결정된 것이 없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친박과 비박·친이계 간의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을 나가는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친박계 측은 이번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연기해야 된다는 야당과 일부 여당 의원들의 요구에 ‘연기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의 뜻을 나타냈다.

반면 날을 세우고 있는 친이계를 비롯한 비박계에서는 ‘대통령이 없는 동안 부패 문제로 수사를 받느냐 마느냐 하는 총리가 직무를 대행할 수 있겠나’라는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대통령의 부재 시 직무를 대행해야 되는 국무총리가 이미 식물총리 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일정을 연기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계속된 계파 간 싸움에 보수층도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누리당 입장에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주요한 문제다.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활빈단’은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지난달 23일에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포스코 관련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요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공방을 두고 야당을 포함한 정계 관계자·정치전문가들은 ‘꼬리자르기’ 의혹을 제기한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홍익표 의원은 지난 15일 대정부질문에서 “총리의 검찰 수사는 정권의 꼬리자르기”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총리는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했지만 의혹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요 계파 3곳에서 같은 목소리가 나오는 이면에는 이 총리 선에서 끝내겠다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 보고 있다.

4일간 진행된 대정부질문은 이 총리에 대한 청문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공세에 이 총리는 “4월은 내게 잔인한 달”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자리에 착석해 있던 의원들은 폭소를 터트렸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완구 끝?
꼬리자르기

사실 새누리당 내 계파 싸움을 두고 ‘삼국지’에 비유하는 것은 오늘내일의 일이 아니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내에서 이상득·이재오·박근혜 간 권력 다툼을 두고 여러 언론에서 ‘계파 삼국지’를 논한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위·촉·오가 서로 전쟁을 벌였던 삼국지처럼 서로 다투고 있는 형국이다. 계파 간 갈등은 케케묵은 논쟁거리인 것이다.

초·재선 모임인 ‘아침소리’는 지난 1월5일 친박과 친이, 비박 등으로 당이 분열되는 모습을 두고 ‘당의 망조’라며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앞으로의 새누리당을 우려하는 목소리와도 같다. 이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김용태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계파 간 시각으로 보는 순간 새누리당은 그냥 망한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지금과 같이 반복되는 당내 싸움에 집권여당으로서의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국민들이 ‘정권 교체’라는 매를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삼국을 통일한 나라가 서로 치고받던 위·촉·오가 아닌 싸움을 지켜본 ‘진나라’인 것처럼 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완구 총리 거짓말 의혹 해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미경 의원이 대정부질문에서 이완구 국무총리의 그간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해 화제다. 이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본 회의장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라는 피켓을 들고 질의했다. 이 총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내용은 크게 3가지, ‘2012년 대선 유세’ ‘3000만원 후원금’ ‘성완종 회장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첫 번째 ‘2012년 대선 유세’의 경우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도왔다는 의혹에 대해 이 총리는 혈액암 투병 중이어서 선거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공개된 사진과 동영상에서는 유세 현장에 나타나 박 후보 지지연설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거짓말 의혹이 제기됐다.

두 번째 ‘3000만원 후원금’ 의혹에 대해 이 의원은 “후원금을 한 푼도 받은 적 없다고 했지만 선거사무소에서 3000만원을 줬다는 말이 나왔다”고 비판했다.

이 총리는 지난 14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성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어떠한 증거라도 나오면 목숨을 내 놓겠다”고 초강수를 둔 바 있다. 그러나 지난 15일 <경향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2013년 4·24재선거를 앞두고 부여에 위치한 이 총리의 선거사무소에 성 회장이 방문해 ‘비타 500’ 박스를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세 번째 ‘성 회장과의 만남’은 이 총리가 그간 극구 부인해 온 내용이다. 이 총리는 그간 성 회장과 친분이 별로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14일 JTBC에서 보도된 내용은 그의 주장과 맞지 않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성 회장과 이 총리는 2013년 8월부터 2014년 3월까지 20개월간 총 23차례 만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국회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혹에 대해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만난 것이고 순수한 개인적인 문제를 갖고 속내를 털어놓는 관계는 아니었다”라고 재차 부인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 제시되는 일련의 거짓말 의혹에 이 총리는 지난 15일 “거짓말한 적 없다. 표현상의 차이나 기억의 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 속에서 줄기가 변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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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