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국가기밀누설 의혹 대해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통령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의 제목처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시간 또한 거꾸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 기록물을 봉하마을로 가져간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적 있다. 그런데 지난달 30일 이 전 대통령 또한 자신의 사저에 대통령 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한 장비를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 한차례 <대통령의 시간>으로 홍역을 치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번에는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기록물을 불법적으로 확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휘말렸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이하 정보공개센터)는 국가기록원과 주고받은 정보공개요청 내용을 공개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강남구 사저
기록물 봤나

정보공개센터가 주장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국가기록원에 ‘2010년 1월 1일부터 2015년 2월 23일까지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요구에 따라 온라인 열람 장비 등을 설치한 현황에 대해 설치일, 요청한 전직 대통령 이름, 설치 장소 등을 포함해 공개하라’고 서면으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국가기록원은 ‘2013년 2월24일 서울 강남구 사저에 대통령 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했다’고 회신했다. 강남구에는 이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추가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측근·비서진과 주고받은 공문서 목록 및 문서사본이 있는가’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자 국가기록원은 ‘정보부존재’를 통지, 서로 주고받은 공문서 및 문서 사본이 없음을 알렸다.

의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인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대통령지정기록으로 관리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외교 및 남북관계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이 언급돼 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의문점을 파헤치던 중 기록원에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결국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 작성을 위해 자신의 사저에 온라인 장치를 설치해 두고 열람한 것 아니냐는 주장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회고록이 출간된 시점에 수많은 언론을 통해 제기된 의혹과 맥을 같이한다. <뉴스타파>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시 비밀기록은 한 건도 남기지 않고 대부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전환했는데 책에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 정상과의 회담과 전화 통화, 북한과의 비밀 접촉,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 등 지정기록물을 열람하지 않고서는 확인하기 힘든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친이계는 이러한 의혹에 전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시간>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은 한 언론사를 통해 “청와대에 마지막까지 있지 않아서 (사저에 대통령기록 온라인 열람 장비를 설치했는지) 그 부분은 알지 못한다”면서 “근거 없이 추리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답할 가치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정보공개센터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관계자 중 한명은 “국민에게 추리를 하게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기록원의 분명한 해명만이 의혹을 없앨 수 있다”고 밝혔다.

불거지는 의혹에 기록원은 해명 자료를 게재했다. 내용을 보면 “이 전 대통령 사저에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한 장비는 설치되어 있다”면서도 “장비로는 대통령기록물 중 일반기록물에 한해 온라인으로 열람이 가능하며, 비밀기록물과 지정기록물을 온라인으로 열람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물론,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설치는 사실
열람은 거짓

이어서 기록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온라인으로 지정·비밀 기록물을 열람하였다는 정보공개센터의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끝을 맺었다.

자세한 내용을 듣고자 소관부서인 대통령기록관 기록제도과에 문의했지만 관계자는 “이번 건과 관련하여 법을 위반한 사실이 없고, 법에 따라 적법하게 처리하였다”고 짧게 답했다.

기록원의 해명이 있음에도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즉각적인 수사 착수를 촉구하고 나섰다. 새정치연합 김희경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출간한 <대통령의 시간>에 대해서는 국익을 저해하거나 국가안보에 직결된 내용을 공개했다는 논란이 있었고, 청와대도 유감과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며 “법으로 열람이 금지된 대통령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을 보고 작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온라인 열람은 대통령지정기록물 및 비밀기록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시민단체 “회고록 위해 온라인장비 설치?”
기록원·이명박 측 “설치했지만 보진 않아”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사건을 언급했다. 천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정책연구와 집필을 위해서 온라인 열람을 호소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범죄자로 몰아간 당사자가 자신은 열람 장치를 버젓이 설치해놓고 편의를 누린다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일”이라며 “국가기록원은 지정기록물은 열람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철저히 조사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사건이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거주하던 봉하마을에 ‘이지원’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유사하다 보고 있다. 2008년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 시스템인 이지원을 구축한 사실을 알고 수사에 착수한 바 있다. 대통령 기록물 반출의혹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였다. 또한 이후 ‘사초폐기 사건’ ‘NLL 대화록 사건’으로 이어진 시발점이라는 견해로 보면 한국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이에 과거 사건과의 형평성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봉하 이지원
사과 받아내


이 전 대통령 측은 설치 자체를 부인하다 최근 “지정기록물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입장을 바꿨다. 즉 장비를 사저에 설치한 것은 맞으나 지정기록물을 열람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열람을 하지 않고 회고록을 작성할 수 있었을까? <한겨레>에 단독으로 보도된 내용을 보면 그 해답에 다가갈 수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월1일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회고록 집필 과정에서) 대통령이 위임한 사람이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대통령기록물을 수차례 열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수석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참모들의 기억이 있고, 메모도 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 나오는 수치가 상세하고, 외국 정상들과 북쪽 인사들 발언이 직접 인용됐다’는 지적에 대해 “참모들의 기억이나 그때 배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종합해서 쓴 것이고, 정확한 내용은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조회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기억과 메모를 기본으로 하되 수치와 같이 정확한 내용이 필요할 때는 대통령기록관에 가서 조회를 한 것이다. 이는 이 전 대통령 측과 기록원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가 ‘부존재’했다는 내용과 대치되는 것이다.

봉하마을 설치 땐 고강도 수사…지금은?
퇴임 대통령, 기록물 대한 인식 바꿔야

이에 대해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김 전 수석이 말한 것처럼 이 전 대통령 측 사람들이 기록원에 방문해서 조회한 것이 맞다”면서 부존재로 답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문서의 존재 유무에 대한 공개 요청이기에 부존재라 적힌 것이다. 실제로 공문서를 주고받은 사실은 없다. 요청서를 주고받은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정보공개센터 측 관계자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공문서라고 적시한 것이다”며 “만약 요청한 내용이 불확실했다면 담당자가 요청인에게 전화를 걸어 정확하게 어떤 내용을 궁금해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인데 기록원 측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정보를 종합해보면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사저에 온라인 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대통령지정기록물 등을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에 기록원을 직접 찾아가 열람한 사실을 알기위해 정보공개센터가 공문서 존재 확인을 요청했으나 부존재로 답이 왔다. 확인하고자 한 사실이 신청서나 요청서가 아닌 ‘공문서’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측근이 기록원을 방문해 조회한 내용을 회고록에 실은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만천하에 대통령기록물의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기록원이 밝힌 바와 같이 법을 위반한 사실은 없으나 도의적 책임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록물 인식
이젠 바꿔야”

2008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로 대통령 기록물을 가져가려 하자 강하게 이의제기했던 이 전 대통령. 그는 일련의 사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 전 대통령 측의 반응에 참여정부 시절 주요관계자는 전화인터뷰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노 전 대통령 때와) 똑같은 일인데 그때는 수사를 시작해서 사과까지 받아냈으면서 퇴임 후에는 본인이 그렇게 했다니…”라고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라면 자신의 기록물을 가지고 나가고 싶어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론이고 역대 대통령들 모두 그런 의혹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 원장은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하면서도 “퇴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한다. 사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자원외교국정조사에 대한 국민여론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명 가량은 국회에서 열리는 자원외교 국정조사 청문회 자리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뉴스타파>의 의뢰로 이 전 대통령의 증인 채택 여부를 묻는 긴급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의견이 67.2%를 기록, 반대의견인 17.3%보다 4배가량 더 높게 조사됐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5.5%로 나타났다.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의 증인 채택 여부에 대해서도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찬성의견이 58.7%로 반대의견 29.0%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12.3%였다.

10명 중 7명 “MB 증인으로 나서야…”

새누리당은 이 전 대통령, 최경환 경제부총리 등에 대해 증인 채택을 요구해 온 새정치연합에 노무현정부 시절 자원외교의 주축으로 알려진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증인 채택을 해야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여론조사가 발표된 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이명박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는 홍영표 의원 등 새정치연합 소속 자원외교국조특위 위원 7명이 이 전 대통령의 국정조사 청문회 출석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회견문을 통해 “새누리당의 증인 채택 거부로 자원개발국정조사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이제는 이 전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자원외교 국부유출의 주범인 이 전 대통령이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진실을 외면하고 여당 뒤에 숨는다면 국민의 지탄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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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