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김기종 아이템’ 활용 노림수

종북숙주 VS 종북몰이 선거판에 때 아닌 북풍 “김기종 대체 넌 뭐냐?”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지난 5일 언론사들은 일제히 보도를 통해 다급한 현장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했다. 국민들은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선혈이 낭자한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대사가 습격 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미관계가 급속히 냉각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 왔다.

김기종.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의 뇌리에 그의 이름은 똑똑히 각인됐다. 칼을 휘두른 목적이 이것이었다면 대단히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사건은 충격적이었고 촉각을 다툴 만큼 위급하게 전개됐다. 사건 직후 과거 일 대사에게 콘크리트를 투척하는 등 그의 지난 행적이 드러나면서 ‘김기종’ 개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나 이후 사태는 이념적 갈등을 지나 ‘선거’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정치전문가들은 말한다.

미 대사 피습
김기종 사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가 25cm 과도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다. 현장에서 김씨를 체포한 경찰은 그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수색 후 경찰은 중간수사 브리핑을 통해 이적성이 의심되는 서적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압수한 증거 중 도서 17점, 간행물 26점, 유인물 23점 중 일부 증거에서 이적성이 의심되는 부분을 포착해 내용과 문구 등을 분석 중이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경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13점에서 이적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료에는 북한의 주체사상 교육용으로 사용되는 <정치사상강좌>라는 유인물을 비롯해 김정일이 쓴 <영화예술론>도 포함돼 있었다.

또한 그는 경찰 조사과정에서 “김일성은 20세기 민족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이지만 북한은 자주적인 정권이라 생각한다” 등의 진술을 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러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그가 가진 이념이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쟁점은 그가 한 행동이 개인 일탈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그를 뒤에서 조종하는 세력이 있는지에 맞춰져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두고 긴장감 넘치는 설전이 오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보도되고 있는 김씨의 기이한 언행을 근거로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돌출행동’이라 규정한다. 현재 김씨는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북은 아니다”고 말하는가 하면 리퍼트 대사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른 바로 다음날 웃으면서 대사의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7차례나 북한을 다녀온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북을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는 등 갈지자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김씨를 두고 리퍼트 대사의 치료 전반을 책임졌던 인요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장은 CBS 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정신과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이 김씨의 ‘개인적 일탈’에 의해 발생했을 확률이 높음을 시사했다.

종북숙주
새정치연합

반면 보수 측은 이번 사태를 종북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종택 <뉴스타운> 객원논설위원은 ‘종북 수사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라는 제하의 글에서 소위 종북세력에 대해 ‘숟가락으로 밥 먹고 두 발로 걸어 다니니까 사람일 뿐 도무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인간이다’라며 ‘이번 미국대사 테러사건을 계기로 종북세력을 말끔히 소탕하고 국민 혈세만 빨아먹는 흡혈귀단체들도 싹 다 정리해 버리자!’고 강력 주장했다.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는 보수단체 회원 3000여명이 모여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국민대회’를 열고 종북세력 척결을 촉구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길로 가려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종북주의자들을 모조리 쓸어 북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 쓸 때”
야당 “종북 올가미 덧씌우려는 속셈”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재 국회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시민들 간의 이러한 이념적 대립이 오히려 순수해 보일 정도다’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야 모두 이번 사건을 발판 삼아 4.29재보선은 물론이고 내년 총선까지 가져가려 하고 있다. 치열한 동상이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원색적 ‘헐뜯기’부터 시작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을 향해 ‘종북숙주’라고 칭했다. 새누리당 박대출 대변인은 현안관련 브리핑에서 “(야당은) ‘종북몰이’ 운운하며 역색깔론을 펼칠 때가 아니다”며 “지금은 새정치연합이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다”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촉구했다. 즉 새누리당은 김기종의 ‘배후세력’으로 새정치연합을 지목한 것이다.


당 지도부도 이에 합세했다. 김무성 대표는 리퍼트 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종북좌파들이 한미동맹을 깨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하고 더 결속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김 대표의 발언을 두고 “종북좌파를 명확히 언급함으로써 논쟁의 포커스가 흐트러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라 평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회의자리에서 “종북세력에 대한 관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해야 하고, 강력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며 “어느 정치권이 뭐라고 하든 이번에 배후를 철저히 가려내 이런 세력이 이 땅에 더 존재하지 않는 단호한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의 이러한 움직임으로 인해 불투명하던 4·29재보선 향방이 유리한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전망한다. 만약 사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내년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계속적인 종북전략을 펼칠 것이라 내다봤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런 새누리당을 두고 종북몰이라 주장하고 있다. 서영교 원내대변인은 사건 직후 ‘새누리당은 비겁한 정치 행태 즉각 중단하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여당 대변인이 오늘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을 종북숙주라고 공격했다”며 “김기종의 과거행적을 들먹이며 야당을 걸고 넘어가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야당에게 종북올가미를 씌워보려는 그 속셈이 너무도 뻔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조차 없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는 서 대변인의 이러한 발언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현함과 동시에 개인의 일탈행동으로 규정짓는 것”이라고 봤다.


사태가 누그러들지 않자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의 이군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김진태 의원, 하태경 의원, 심재철 의원에 대해서 허위사실 유포와 명예훼손의 책임을 묻기 위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이들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새정치연합을 종북세력의 배후로 지목한 인사들이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빠르게 선 긋기에 나섰다. 유은혜 대변인은 사건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김씨는) 성균관대 법대 80학번으로 잘 아는 선배”라며 “워낙 개인적 돌출행동을 반복적으로 많이 했다”고 밝혔다. 유 대변인은 성균관대 81학번으로 80학번인 김씨의 대학 후배다.

이어서 유 대변인은 김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명명했다. 또한 기자간담회 배경에 대해서는 “개인적 범죄행위가 불필요한 이념논쟁으로 번지거나 조직적 연계 가능성 등에 대한 오해가 생길까 봐 정보 차원에서 개인의 삶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종북몰이
새누리당

새정치연합 문 대표는 “미국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논평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마치 종북세력에 의한 것으로 정치에 악용하려 한다면 오히려 한미 양국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리퍼트 대사가 어제 퇴원하면서 한국말로 ‘동네 아저씨로 남겠다. 같이 갑시다’라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성숙한 미국의 대응을 봤다”며 “이와 반대로 우리는 무모하게 종북몰이를 하며 사실상 국익을 해치는 것에 심각히 우려를 표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로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현정부라고 평가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던 지지율(국정수행 긍정평가)에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일주일 전 대비 4.0%포인트가 반등한 39.3%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리얼미터는 “중동 순방과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둘러싼 종북 논란으로 보수층이 결집하며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40%에 근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야 ‘법적 대응’ 여 ‘부끄럽다’ 소송전 예고
박근혜 제부 ‘석고대죄’ 단식 “과하다”

사건 이후에 나온 북한의 반응도 지지율 반등에 한몫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지난 8일 “남측이 고의로 리퍼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를 북한과 연계시키고 있다”며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는가”며 억지 논리를 펼쳤다. 한 북한전문가는 “안중근 의사와 김씨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북한의 백마비마적 논리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노했고 결국 반작용으로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의 제부까지 이번 사태에 뛰어들었다. 공화당 신동욱 총재는 리퍼트 대사가 입원한 신촌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때 아닌 단식에 들어갔다. 그는 ‘석고대죄’란 글귀와 함께 단식을 시작했다.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석고대죄는 예부터 왕실에서만 했다”며 “일반인이 하는 것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이자 현 대통령의 제부가 곡기를 끊고 길가에서 밤을 새면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하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자신의 단식을 분명한 ‘정치활동’이라 알렸다.

이러한 신 총재의 기행에 사회 각층 인사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개인 SNS를 통해 “조선시대에도 중국 사신 앞에서 석고대죄한 신하는 없었다”고 잘못을 지적했다. 진중권 교수는 “꿈에서나 볼법한 어이없는 상황”이라 일축했다. 국민들의 시선 또한 차갑기는 마찬가지였다.


‘미 대사 피습사건’ 수사본부는 김씨가 리퍼트 대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것은 국내 종북세력이나 이적단체 등과 연계되지 않은 단독 범행인 것으로 잠정 결론냈다. 수사관계자는 “김씨는 대단한 위인이 아니다. 그 사람이 무슨 대단한 위인이라고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국내 이적단체나 종북단체에 배후세력이 있겠느냐”며 “현재까지는 김씨 개인의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신동욱 총재
석고대죄 단식

사건 당일 당사국인 대한민국과 미국의 반응은 여야의 반응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렸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에서 백주대낮에 미국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우리 정부와 국민에게 충격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즉 이번 사건을 조직적인 테러로 규정한다는 말이었다.

반면 미국 측은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이나 폭력행위라는 표현을 일관되게 사용했다. 마리 하프 미 국무부 대변인은 “끔찍한 폭력행위였던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범행동기나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규정하지는 않겠다”고 못 박았다.

리퍼트 대사는 수술 후 여야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이번 사건이 양국관계를 손상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다지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여당과 야당 모두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과는 달리 현재 정치권은 서로 소송 전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되는 등 진흙탕 싸움을 예견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가능할지, 이번 기회에 ‘종북’이란 단어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태경 "김기종 변호인이 더한 종북"

‘종북’에 대한 논란은 이제 김씨의 담당 변호인인 황상현 변호사에게까지 번진 상황이다. 황 변호사는 김씨를 두고 “예전에 분신을 해 수전증이 있고 손가락도 틀어져 있어 사실상 살해할 능력은 안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도 아니다”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황 변호사를 두고 “김씨보다 더 한 종북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 의원실에서는 보도자료를 통해 황 변호사를 더한 종북으로 주장하는 근거가 있음을 알렸다. 자료를 살펴보면 한 포탈사이트에서 황 변호사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4개의 글을 볼 수 있다.

문제의 글은 모두 특정사이트에 개제된 것으로써 2011년에 집중적으로 작성됐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지도자의 서거에 조의를 표하며’라는 제하의 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행 열차에서 지병으로 갑자기 서거하였다. (중략) 내년은 강성대국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북미대결의 종지부를 찍는 마당이었는데…”라고 적혀있다.

‘황장엽, 북한 핵융합 성공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에 링크를 걸며 ‘뒤늦게 찾은 뉴스다. 그렇다면 판은 끝났다고 봐야지. 음~~~’이라며 의미심장한 댓글을 달았다.

문제의 사이트는 현재 비공개카페로 전환돼 열람이 불가능한 상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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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