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 미술관 탐방 ③강원 원주 고판화·산·오랜미래

문화의 다양성 배우고 직접 체험하세요

원주시 곳곳에 감영이 있던 시절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자리한다. 책을 만들기 위해 글자나 그림을 나무에 새긴 목판과 판화를 소장·전시하는 고판화박물관, 한지부터 현대의 종이까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뮤지엄 산(SAN), 책 속 이야기와 구전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오랜미래 신화미술관이다.

오랜 시간 지났는데도 화려한 색채 자랑
직접 만든 판화 이용한 전통 책 만들기

강원도 원주시는 조선 초기부터 500년간 강원감영이 있던 도시다.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자, 중앙의 정치이념과 문화를 지역에 전하던 감영은 새로운 생각과 정보가 가득한 책도 출판했다. 중앙에서 만든 책을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 제작·배포하거나, 지역의 정보를 모아 직접 책을 만든 것. 자연스레 목판을 제작하고, 종이를 만들고, 책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하는 기술도 발달했을 터이다. 

신림면 물안길에 자리한 고판화박물관은 고즈넉한 절집 명주사 경내에 있다. 명주사 주지이자 고판화박물관 관장인 한선학 스님은 군 법사 시절부터 판화를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목판과 판화 4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은 그중 일부로, 주제를 정해 전시한다. 2월 전시의 주제는 부적. 삼재를 피할 수 있다는 ‘삼재부판’처럼 직접적인 길흉화복을 주제로 한 부적은 물론, 장수를 기원하는 ‘수성도’와 ‘팔신선 백수도’, 승진을 기원하는 ‘어룡변화도’, 건강과 승진, 장수를 기원하는 ‘복록수삼성도’ 등 저마다 소망을 담은 판화다. 이 작품들은 대부분 판화로 기본 선을 찍어낸 뒤 채색하여 완성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빛바래지 않고 색채가 화려하다.

전시된 판화 보고
승진·장수 기원

현대 인쇄 기술을 이해할 수 있는 목판도 있다. 채색 목판 네 개가 모여 판화 한 장이 된다. 정교하게 인출해야 깨끗한 작품을 얻을 수 있는데, 각 색채의 농담까지 맞춘 전시 작품은 일본의 판화가가 이곳에 방문했을 때 완성했다고 한다.
전시관을 돌아본 뒤에는 판화 체험을 할 수 있다. 목판에 먹물을 골고루 바르고, 한지를 올려 문지른 뒤 떼어낸다. 전통 책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먼저 두꺼운 표지용 종이를 능화판에 얹고 둥근 나무로 골고루 문질러 요철 모양을 인출한다. 다음은 글과 그림이 있는 여러 가지 판화 인출하기다. 속지와 표지를 정리하고 가장자리에 오침 제본용 구멍을 뚫은 다음, 전통 방식으로 노끈을 묶는다. 마지막 작업은 책 제목 정하기. 제목을 쓴 종이를 표지 앞면에 붙이면 완성이다.


지정면 오크밸리2길에 자리한 뮤지엄 산(SAN)은 자연과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오크밸리의 산 정상에 있어 관람 동선을 따라 걷기만 해도 자연과 동화되는 기분이다. 관람은 웰컴센터에서 시작해 자작나무 길이 아름다운 플라워가든, 건물의 반영이 주는 색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워터가든, 종이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페이퍼갤러리, 기획 전시를 하는 청조갤러리, 우리나라 팔도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구성된 스톤가든, 빛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어진다.

뮤지엄 ‘산’, 자연+박물관+미술관
이름도 재밌는‘호시탐탐 진밭마을’

들꽃이 만개한 플라워가든과 눈 덮인 워터가든은 겨울에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2.3km에 이르는 전시 동선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아쉬움조차 잊게 된다. 중간에 휴게 공간과 체험 공간이 있으니 느긋하게 누려보자.
청조갤러리에서는 <사유로서의 형식 : 드로잉의 재발견 전>이 진행 중이다.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김환기, 이중섭, 박수근, 고우영, 앙드레 김, 박경리 등 유명한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의 생각이 담긴 드로잉을 보는 즐거움도 만끽해보자. 다양한 분야 창작자 113명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3월1일까지 계속된다.

문막읍 취병로에 자리한 오랜미래 신화미술관은 우리의 신화를 빚어놓은 공간이다. 조소를 전공한 김봉준 관장이 신화를 연구하여 만든 작품들이다. 창세신화, 건국신화, 마을 신화, 여신 신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김 관장은 다양한 신화를 설명하며 우리 역사 속 신화를 맛깔나게 이해시킨다. 오랜미래 신화박물관은 방문 예약제로 운영된다.

몸과 마음 풀어주는
두부와 달래무침

오랜미래 신화미술관이 있는 진밭마을은 재미있는 곳이다. 마을에 전해지는 호랑이 이야기를 주제 삼아 호랑이 조각도 만들고, 마을 이름도 ‘호시탐탐 진밭마을’이라 정했다. 마을 입구 숲에서 깊숙한 곳까지 여기저기 자리한 체험 공간을 빼놓지 않고 탐험하고 본다는 뜻도 된다.

마을 탐험은 마을 입구 숲에서 시작한다. 마을 숲 아래 캠핑장과 작은 썰매장이 있다. 썰매장은 꽁꽁 얼어붙은 계곡이다. 이곳에서 옛날 썰매를 타다 보면 어느새 배가 고파진다. 이때 찾아갈 곳은 마을 쉼터. 천연 염색, 두부 만들기, 전통 방식으로 콩국 만들기 등 체험 활동은 물론, 산 사이에 자리한 마을답게 산나물 밥상도 맛볼 수 있다. 지금은 봄을 부르는 맛, 달래가 한창이다.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만든 두부와 달래무침 한 접시면 추위에 언 몸과 마음이 저절로 풀어진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다면 호랑이 트랙터를 타고 오랜미래 신화미술관을 지나 마을 끝에 자리한 옛책고을박물관과 목장까지 가보자. 한겨울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 트랙터가 그대로 놀이기구가 된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문화 유적 답사 : 고판화박물관(전시관 둘러보기, 점심 식사, 판화 체험, 책 만들기 체험)→원주역사박물관
명소 탐방 코스 : 진밭마을(오랜미래 신화미술관 관람→점심 식사→마을 체험)→뮤지엄 산

1박 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 고판화박물관(전시관 둘러보기, 판화 체험)→점심 식사→뮤지엄 산→저녁 식사 후 숙박
둘째 날 : 진밭마을(오랜미래 신화미술관 관람, 점심 식사, 마을 체험)→귀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원주시 문화관광 http://tourism.wonju.go.kr
· 고판화박물관 www.gopanhwa.com
· 뮤지엄 산 http://museumsan.org

문의 전화
· 원주시청 관광과 033-737-5122
· 고판화박물관 033-761-7885
· 뮤지엄 산 033-730-9000
· 오랜미래 신화미술관 033-746-5256

대중교통 정보
기차>
청량리-원주 : 하루 19회(06:40~23:25) 운행, 1시간 내외 소요.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원주 :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10~30분 간격(06:10~22:25) 운행, 약 1시간 30분 소요.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자가운전 정보
· 중앙고속도로→신림 IC→영월·주천·법흥사 방면 우회전→신림황둔로 따라 3.69km 진행→신림터널 지나 약 1.3km 진행,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이정표 따라 좌회전→약 680m 진행→고판화박물관
· 영동고속도로 문막 IC→원주기업도시·원주 방면 우회전→원문로 따라 2.6km 진행→오크밸리 이정표 따라 약 15km 진행→뮤지엄 산
· 영동고속도로 문막 IC→부론·여주 방면 좌회전→원문로 따라 약2km 진행→취병로 따라 우회전→약 6.5km 진행→진밭마을 입구 숲 지나 약 750m 진행→오랜미래 신화미술관

숙박 정보
· 베니키아 호텔 비즈인 : 원주시 만대로, 033-748-0100,
· 베니키아 호텔 문막 : 문막읍 왕건로, 033-734-7315, www.munmakhotel.co.kr
· 치악산호텔 : 소초면 치악로, 033-731-7931, www.chiaksanhotel.co.kr
· 치악산자연휴양림 : 판부면 휴양림길, 033-762-8288, www.chiakforest.com

식당 정보
· 원주복추어탕 : 추어탕, 원주시 치악로, 033-762-7989
· 전주밥상 : 한정식·불고기, 문막읍 구암길, 033-735-3534, 5455
· 소반 : 한정식, 문막읍 귀문로, 033-733-7200
· 피그피크닉 : 삼겹살, 지정면 월송석화로, 033-731-9425
· 선매운탕 : 매운탕, 지정면 지정로, 033-732-6076
· 만낭포감자떡 : 감자떡, 지정면 지정로, 033-731-9953

주변 볼거리
원주한지테마파크, 박경리문학공원, 원주역사박물관, 거돈사지, 원주 법천사지, 용소막성당, 원주민속풍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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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