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회고록 VS MB 관전록 전격비교

"자뻑하다간 쌍피 대신 쌍코피 터진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조지 오웰(1903 ~ 1950, 영국작가)의 이 말처럼 자화자찬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의 자세로써 부적절하다. 회고록도 마찬가지다. 단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이 기억의 흐름을 쫓아서냐 아니면 사건을 통해서냐의 차이일 뿐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재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 회고록’으로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쓴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알에이치코리아)은 숱한 화제 속에 예정 출간일보다 3일이나 앞선 지난달 30일에 판매가 시작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MB의 비용>(알마출판사)이 2월3일 출판됐다.

두 책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완벽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는 점에서, 하물며 비슷한 시기에 출판됐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과연 누가 더 진실을 얘기하고 있는지 항목별로 내용을 들여다보자.

자찬 대 자뻑
자원 외교

결론부터 얘기하면 둘은 하나의 사업에 대해 완전히 다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대통령의 시간>에서는 자원외교에 대해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다”라며 “퇴임한 지 2년도 안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즉 자원외교의 성패에 대해 지금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이다.

그 어리석은 생각이 <MB의 비용>에 실려 있다. 자원외교 부분을 저술한 고기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책의 도입부에서 “어떻게 해서 이런 엉터리 투자가 가능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지금 손쓰지 않으면 손실은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라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지금 당장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중에 평가하라는 이 전 대통령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생각이다.


이어서 고 교수는 “자원외교로 에너지 공기업 3사에 생긴 빚이 42조원에 이른다”며 “이는 2015년도 국방·외교·통일 예산을 합한 것보다 높은 액수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최근 문제된 캐나다 하베스트 에너지, 맥시코 볼레오 구리광산처럼 빚낸 돈을 모두 날릴 만한 건이 허다하다는 것이다”라고 현 상황을 우려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우리 정부 시절 공기업이 해외 자원에 투자한 26조원(242억달러) 중 4조원(36억달러)은 이미 회수됐으며, 2014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의하면 미래의 이자비용까지 감안한 현재가치로 환산된 향후 회수 예상액은 26조원에 달한다”고 밝혀 손해 보는 사업이 아님을 강조했다.

또한 “총 회수 전망액이 30조원으로 투자 대비 총 회수율은 114.8%에 이르러 전임(노무현)정부 시절 투자된 해외자원사업의 총회수율 102.7%보다도 12.1%포인트가 높은 수준이다”라는 것이 이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이다.

전국 서점에 때아닌 MB열풍 몰아쳐
자원외교·4대강 사업 자화자찬 일색

그러나 <MB의 비용>에서는 다르게 분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여섯 건의 해외자원개발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최대 10조원의 손해액을 도출해낸다. 특히 이 사업들은 잘하려고 하다가 투자에 실패했다기보다는 겉보기 성과를 위해 절차를 무시해가며 사업을 추진했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관점의 차이인 것일까. 이 전 대통령은 책에서 “오랫동안 유전개발을 해온 서구 선진국들도 많은 검토 끝에 시추해서 기름이 나올 확률은 20%에 불과하다”면서 “실패한 업만을 꼬집어 단기적인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고 지적해 투자한 금액보다 그 이면의 의미를 잘 봐야 한다는 듯한 발언을 한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자원외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해외자원개발 과정에서 비리가 있다면 철저히 조사하여 관련자를 엄벌하면 된다”면서 “그러나 이런 문제를 침소봉대해 자원외교나 해외자원개발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에너지와 자원 확보는 미래의 생존과도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이 책임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해외자원개발의 총괄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 초대 국무총리로 한승수 총리를 임명한 것은 그 같은 이유였다”면서 “국내외의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가 담당하고, 해외자원외교 부문을 한 총리가 힘을 쏟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강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성공 대 사기
4대강사업

<대통령의 시간>에서는 4대강 추진 배경과 경과 등의 내용이 35쪽에 걸쳐 요약돼 있다. 책 전체 분량이 798쪽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책에서 4대강사업에 관한 얘기는 이 전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회상하면서 시작된다.

현대건설 재직 시절 유럽 운하를 보고 처음 한반도대운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대운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직후 불거진 광우병 파동 탓에 백지화 됐고 대신 하천정비사업으로 목적을 바꾸는가 하면, 이름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이하 4대강사업)으로 변경했다는 것이다.

<MB의 비용>에서 4대강사업에 대해 저술한 박창근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는 서두에서 “4대강사업의 진실은 일시적으로 물속에 잠겨 있을지 몰라도 엄연히 숨 쉬고 있다”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우리 국민들은 ‘오래된 상식’을 확인했다. 어서 그들의 몰상식을 백일하에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2013년 위장된 대운하사업으로 드러난 감사결과에 따르면) 이명박정부가 22조원의 국민세금으로 추진했던 4대강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는 뜻이다”고 지적했다.

한편 투자된 22조원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적극 해명했다. 책에서 그는 “200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확정한 4대강사업 예산은 15조3000억원인데, 일각에서 22조2000억원으로 부풀려 비판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는 농림수산식품부와 환경부가 계속 사업으로 진행해온 6조9000억원 예산이 포함된 금액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2013년 3월 감사원이 ‘4대강사업은 대운하를 만들기 위한 의도’라고 감사 결과를 밝힌 데 대해서는 정면 반박했다. 이 전 대통령은 “사업의 입찰 시공 과정의 부정이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파악해야 할 감사원이 대운하 위장설을 발표하는 행위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며 “감사원의 비전문가들이 단기간에 판단해 결론을 내릴 문제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국민들이 회고록에 대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부분은 4대강사업에 대한 자평이다. 이 전 대통령은 4대강사업이 2008년 금융위기 극복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은 물론 2012년 홍수를 예방하는 등 다방면에서 성과가 좋은 사업이라는 것이다.

녹조 발생에 관해선 "4대강사업을 시행한 남한강은 녹조가 없었던 반면 공사를 안 한 북한강과 서울 한강 본류에 극심한 녹조가 나타났다"며 "이 같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4대강 공사로 인해 녹조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MB의 비용>에서는 “(4대강사업이 준공될 무렵인) 2012년부터 낙동강에 녹조가 발생한 이후 내리 3년째다”며 “하천이 녹조가 썩어가고 있고 물에서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고 있음에도 부산과 대구시민, 그리고 경남북도민 약 1300만명은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고 사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국격 대 전시
원전 수주

홍수가 예방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하천법에 따라 국가하천, 지방하천으로 나눠 “(국가하천은) 3000km 길이의 국가하천 중 홍수예방을 위한 4대강사업의 준설구간은 686km에 지나지 않는다”며 “문제는 준설구간이 21세기 들어 홍수로 인한 범람 피해가 크게 발생하지 않는 구간이라는 점이다”고 밝혔다. 이어서 지방하천에 대해서는 “4대강사업으로 홍수 위험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4대강사업은 ‘그린 뉴딜(Green New Deal)’이라 불리면서 국제사회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자평했다. 그는 지난 2011년 10월 미국을 국빈 방문해 가진 오바마 대통령과의 비공식 만찬에서 “식사 도중에 오바마는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한국이 즉각 4대강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면서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정 투자에 나설 수 있었는지 물었다”고 소개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너무 후한 자평에 비판의 목소리가 속출했다. 이준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4대강사업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라고 밝힌 것에 대해 “개가 웃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망국적인 4대강사업의 주동자 MB가 회고록인가 뭔가에서 이런 망언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선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제일 먼저 빠져 나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허풍이다”라며 “길 가던 분견(糞犬)이 이 말 듣고 가가대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라고 말했다.

자원외교를 펼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이하 UAE)를 세 차례 방문해 석유광구개발권을 따냈다는 부분에서 원전을 수주했다는 내용도 함께 담겨 있다.

책에 따르면 “2009년 12월27일, 칼리파 UAE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말하며 원전 수주가 결정된 순간에 대해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UAE 원전 수주가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 미국, 일본, 프랑스와 함께 세계 4대 원전 수출국이 됐다”고 자축했다.

그러한 원전에 대해 <MB의 비용>에서 ‘무너진 원전 안전의 신화’를 저술한 김학진 충남대학교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는 아주 서서히 작동하는 원자폭탄으로 안전 문제는 어떤 상황에서나 최우선 과제다”며 “한국에서 사고 원전을 중심으로 반지름 100km 지역에 아무도 살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국 사회 전체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고 경고했다.

같은 사건 두고 ‘자가당착 일색’ 혹평
남기고 싶은 5년 VS 잃어버린 5년


이어서 김 교수는 UAE 원전 수주를 ‘전시 행정의 끝판 왕’으로 칭하며 “총 수주 금액이 43조원에 달하는 UAE 원전 수주 사업은 밑지는 덤핑이라는 주장이 수주 성공 보도 후 바로 제기됐다”며 “그후에도 수주 욕심에 덤핑으로 낙찰받았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어서 미국의 GE 컨소시엄은 1Kw당 생산단가가 한국보다 82%나 높은 가격이며 그 차이를 금액으로 따지면 328억달러, 즉 35조원이 넘는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대통령의 시간>에는 민감한 사안이 실려 있다. 바로 대북 문제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각국의 정상들과 만난 외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 북한과의 대화 내용도 공개했다. 그 속에는 북한이 다양한 채널로 먼저 남북 정상회담을 요구하면서 우리 측에 그 대가로 대규모 경제지원 등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 및 천안함 폭침에 대한 사과의 대가로 쌀 50만톤 제공을 요구했다고 밝힌 것이다. 자신들의 행적이 남한 대통령의 회고록에 기재됐기 때문에 북한 측의 반응에 이목이 집중됐다.

실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4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대해 반응을 보였다. <노동신문>은 이날 ‘뭇매 맞은 정치무능아’라는 제목의 단평에서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쓴다는 것도 가관이지만 자기 치적을 광고하려고 염치없이 놀다가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은 더욱 꼴불견”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문제의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아 의아함을 자아냈다.

<MB의 비용>에서는 북한 문제 부분을 2부 ‘실정’에서 다룬다. 1부에서는 경제적 비용에 주목했다면 2부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재임당시 얼마만큼 낭비적인 움직임을 보여줬는지를 대담 형식으로 구성해 보여준다. 대담자로 나선 김연철·정세현은 남북관계를 잃어버린 5년이라 칭하며 이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현실성 떨어지는 외교·안보의식에 대해 비판했다.

김연철 인제대학교 교수는 이명박정부의 남북관에 대해 “시각 자체가 외교적 필요성의 측면보다는 이념에 기반한 측면이 매우 강하다”며 “그러다보니 대북정책을 이분법적으로 평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인사 중 일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안 해도 좋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했다”며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을 때도 이명박정부는 이산가족 안 만나도 상관없다는 식의 시각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은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는 남북관계 중단하더라도 지지세력 결집을 통해 5년 동안 힘 있게 권력을 행사하자는 계산이 있었다고 본다”라고 생각을 말했다.

이념 대 손실
대북 관계

즉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북한의 부당한 요구와 도발로 대북 제재를 했다기 보다 정치적 이념 차이로 관계를 단절할 의사가 이미 있었고 마침 그때 발생한 천안함 사건이 남북관계를 끊고 싶었던 이명박정부에게 좋은 구실로 이용당한 셈이라는 것이다.

<MB의 비용>은 결국 잘못된 대북관계가 현재 박근혜정부에까지 영향을 미쳐 상황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이 전 대통령의 집권기인 2008년부터 2013년까지의 잃어버린 5년으로 인해 현재 더 많은 유무형의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MB의 비용>은 “어떻게 그렇게 단시간에 나라를 망가뜨릴 수 있었을까?”라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대통령의 시간>은 “새로운 미래를 위해 우리(이 전 대통령과 함께한 참모들)는 쉬지 않고 달렸다”고 주장한다.

이 전 대통령은 “기억이 용탈돼 희미해지기 전에 대통령과 참모들이 생각하고 일한 기록을 가급적 생생하게 남기고 싶었다”고 그 소회를 밝혔다. 그러나 <MB의 비용> 저자들은 그 5년을 잊고 싶다며, 또는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한다.

누구의 말이 더 공감 가는지는 현명한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 ‘측근 입단속’
“회고록 관련 논란 발언 자제하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둘러싸고 공방이 끊이지 않자 측근들에게 발언을 조심하라고 지시했다.

집필을 총괄한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1일 밝힌 내용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참모진과 회의를 열어 “논쟁을 일으키자는 게 본래의 취지가 아니다”라며 “논란이 될 발언을 자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전 수석은 “물론 외부에서 계속 이명박정부에 대해 근거 없는 비판이 제기되는 데도 입을 다무는 것은 맞지 않아 어느 수준에서 대응은 할 것이다”면서도 “그러나 선도해서 말을 함으로써 논쟁을 일으키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원래 의도와 다르게 전·현정부의 갈등 양상으로 비치는 것은 국민에게 할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탈고한 후 가족들과 외국으로 나갔다가 지난달 30일 귀국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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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