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한옥 ②경기 연천

연천으로 옮겨 앉은 황손의 집 ‘조선왕가’

서울시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경기도 연천의 새로운 터로 옮겨 앉은 조선왕가의 본채 염근당. 집을 옮기기 위해 해체하던 중,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의 집이라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 염근당은 일반 민가에서 보기 힘든 곧게 뻗은 기둥과 서까래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진 곳이 없는 자재는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금강송을 잘 말려 사용한 것이라고.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인상적인 사반정과 어우러져 ‘ㅁ’자 마당을 완성하는 염근당 뒤편엔 별채인 자은정이 있다. 벽과 바닥을 모두 황토로 채워 치유를 위한 장소로 재탄생되었다.

높은 기단 위 조선왕가의 본채 염근당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의 집 상량문

경기도 연천군은 한국전쟁으로 생겨난 비무장지대를 품고 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연천군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은 토박이 주민들과 그 옛날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새로운 삶 터를 찾아온 이들이다. 지금도 맑고 깨끗한 자연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천군 연천읍 현문로에 자리한 조선왕가도 그중 하나다.
조선왕가의 염근당은 원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옆에 있던 이 집은 대학 기숙사에 터를 내주고 사라질 운명이었다. 위기에 처한 염근당을 연천군으로 옮겨 지은 사람은 조선왕가의 주인 남권희·김미향씨 부부다.
건물 해체 도중 집주인이 누구인지 밝혀줄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상량문에는 이 집을 지은 사람이 고종 황제의 손자 ‘이근’이며, 건물의 이름이 ‘미나리처럼 혼탁한 물속에서도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는 기상을 생각하는 집’이라는 뜻이 있는 ‘염근당’이라는 내용이 기록되었다. 황손의 집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있는 귀중한 한옥인 것이다.

남권희·김미향씨 부부는 염근당을 연천으로 옮겨 짓는 동안 커다란 기둥 하나, 장대석 하나 다치지 않고 조선시대 건축양식에 맞게 복원되도록 꼼꼼히 살폈다. 여러 전문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해도 99칸 한옥을 옮기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한겨울 추위에 황토 작업을 할 수 없어 인부들을 돌려보낸 일도 그중 하나. 그 겨울 왜 이리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슬며시 고민이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소나무 위 작은 둥지를 틀기 위해 수많은 나뭇가지를 떨어뜨리며 수고하는 까치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객실 내부에 현대식 화장실을 갖추고 125칸으로 규모를 키운 조선왕가가 만들어졌다.

추운 겨울 이기고
자라는 기상

조선왕가의 한옥은 본채인 염근당과 행랑채인 사반정, 별채인 자은정으로 구성된다. 조선왕가의 손님맞이는 편의시설이 자리한 현대식 건물 1층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입·퇴실 절차와 식사 예약을 마치고 한옥으로 건너가 편안히 쉴 수 있다.
염근당은 황손의 집답게 장대석을 높이 쌓은 기단 위에 우뚝 자리한다.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뻗은 건물은 ‘ㄷ’자 모양이다. 주련으로 장식된 기둥과 대들보는 일반 민가에서 보기 드문 곧게 뻗은 나무를 사용했다. 어디 하나 금 가고 터지지 않은 나무를 보면 오래 전 지은 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모두 궁궐을 지을 때 쓰이는 잘 말린 금강송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염근당은 휜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푸근한 곡선미를 보여주는 민가에 비해 반듯한 위엄이 서린 건축물이다. 저절로 발걸음을 조심조심 떼게 되는 공간이다.
염근당을 내려서면 대문채인 사반정이 있다. ‘一’자 건물인 사반정에는 연천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누마루가 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 이곳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겨도 좋겠다.
염근당 뒤편에 자리한 자은정은 이 집의 별채다. 연천으로 온 주인 부부가 처음 기거하던 곳인데, 지금은 여러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준비되었다. 명륜동 시절엔 고 박정희 대통령도 자주 들른 집이다.


황토로 채운 치유공간 염근당 별채 자은정
화산이 만든 연천군, 계곡지형의 ‘지질교과서’

조선왕가에서는 숙박 외에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 끓인 물로 온몸의 독소를 빼내는 왕가비 훈욕 테라피, 황토편백찜질방에서 찜질하기, 약재 가루를 넣어 비누 만들기 등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글램핑장도 운영된다. 이곳에서 직접 발효한 여러 가지 효소차와 약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운영된다. 단 식사는 예약을 해야만 한다.
조선왕가와 더불어 돌아볼 연천의 관광지는 강과 마주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사적 제223호로 지정된 연천 숭의전지다. 조선시대에 고려 왕 7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곳으로, 숭의전은 한국전쟁 당시 불타고 말았다. 임진강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다.

연천 당포성(사적 제468호)은 여타 성곽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절벽으로 구성된 지형이 천혜의 성벽 역할을 했기 때문. 임진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당포성에 올라서면 삼국시대에 임진강을 따라 오가던 배와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화산이 만든 계곡지형이 있는 연천군은 ‘지질교과서’라고 불린다. 여러 곳에서 주상절리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동이리에도 주상절리가 있다.

강과 마주하는
연천의 관광지

연천에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에 사람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공간이 있다. 연천 전곡리 유적(사적 제268호)이다. 1978년에 주한 미군으로 우리나라에 온 그렉 보웬이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를 발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전곡리 유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먹도끼의 다양한 모양, 매머드 뼈로 지은 집의 형태, 아프리카부터 한반도까지 걸어서 이동한 구석기인의 삶을 보여주는 영상물 등 선사시대의 이해를 돕는 다양한 전시가 펼쳐진다. 아이들과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 문화 유적 답사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동이리 주상절리→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 명소 탐방 코스 : 재인폭포→조선왕가→전곡선사박물관→연천 숭의전지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연천 숭의전지→연천 당포성→전곡선사박물관→조선왕가
· 둘째 날 : 조선왕가→재인폭포→귀가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연천군청 문화관광  www.iyc21.net/_yc/tour/a06_b09_c01.asp
· 조선왕가  www.royalresidence.kr
· 전곡선사박물관  www.jgpm.or.kr

문의 전화
· 연천군청 문화관광체육과 031-839-2061
· 조선왕가 031-834-8383
· 전곡선사박물관 031-830-5600

대중교통 정보
버스>
지하철 4호선 수유역 인근 수유역(강북구청) 버스 정류장에서 일반버스 36번 승차, 한국농촌공사·전곡읍사무소 정류장에서 일반버스 56번으로 환승, 8297부대 정류장에서 하차, 조선왕가까지 약 140m 도보 이동.

자가운전 정보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 IC→3번 국도 진입→양주시→동두천시→소요산역→청산면 소재지→대전삼거리 우회전→청창로 따라 4.7km 이동→연천·전곡 방향 좌회전, 궁평로 진입→양촌삼거리에서 전곡·연천 방향 좌회전→궁평삼거리에서 신답리·재인폭포유원지 방향 우회전→청연로 따라 4.3km 이동→고문리삼거리에서 전곡·연천 방향 좌회전→현문로 따라 1km 정도 이동, 조선왕가

숙박 정보
· 조선왕가 : 연천읍 현문로, 031-834-8383, www.royalresidence.kr (명품고택)
· 초성모텔 : 청산면 청신로, 031-835-2610 (굿스테이)

식당 정보
· 불탄소가든 : 민물매운탕, 연천읍 현문로, 031-834-2770
· 한탄강오두막골 : 가물치구이·민물새우탕, 청산면 청창로141번길, 031-832-4177
· 망향비빔국수 : 비빔국수, 청산면 궁평로, 031-835-3575
· 나능이 : 능이버섯백숙, 전곡읍 평화로, 031-833-9988

주변 볼거리
한탄강 관광지, 평화누리길, 연천 경순왕릉, 연천 호로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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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