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20년’ 공포의 지존파사건 그 후…

인육 씹으며 세상을 씹었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인육을 먹는다"는 '연쇄살인집단'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다. 지존파로 명명된 이들은 전국민이 지켜보는 TV 앞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는 말로 충격을 안겼다.

카메라 셔터는 쉴 새 없이 터졌고, 의기양양한 20대 초중반 사내들의 입가엔 냉소가 번졌다. 1994년 9월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이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이들의 말이 저릿저릿한 이유다.


지난 7월 정윤석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가 관객과 만났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살인사건, 삼풍백화점 붕괴 등 1994년을 전후로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대형 사건들을 다룬 영화다. 공교롭게도 삼풍백화점이 붕괴한 당시의 시대상과 세월호가 침몰한 지금의 사회 분위기는 여러모로 대비되고 있다.

공포의 1994
혼돈의 2014

문제의 지존파 사건은 1994년 9월19일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지존파 조직원이었던 김현양(당시 22세·사망)은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검거됐다. 그는 범행동기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솔직히 (돈) 없는 사람은 항상 없어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이어 "더 죽이고 싶었는데 못 죽여서 한이 맺힐 뿐"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조직원은 "돈 없는 놈 무시한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우리처럼) 돈 없는 사람들 무시하는 놈들은 다 죽이고 싶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국제적인 테러조직을 제외하고 살인을 위한 집단을 만들어 이를 직접 실행에 옮긴 조직은 그 사례가 드문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지존파 조직원은 불특정 부유층을 상대로 증오범죄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TV드라마 덕분에 1994년이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은 그 해를 '공포의 해'로 부른다. 1994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칼럼을 인용하면 '터질 것은 다 터진 한 해'였다.

20년 전 9월 연쇄살인 소식으로 '발칵'
1994년 박한상·온보현 사건 등 잇달아

실제로 1994년엔 유독 대형사건이 많았다. 자신의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고 시체를 불태운 박한상 사건, 여성 6명을 납치해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2명)한 온보현 사건 등이 지존파 사건 전후로 발생했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도 뒤숭숭했다. 이 무렵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7월8일)했고, 성수대교가 붕괴(10월21일)해 49명의 사상자(32명 사망)를 내는 등 대한민국은 한 달에 한 번씩 충격에 휩싸였다. 같은 해 연말에는 서울 아현동에서 도시가스가 폭발해 100여명이 다치고 12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빚어졌다.

지존파 사건은 김일성 사망의 여파가 잦아들 때쯤 각 신문 머리꼭지를 장식했다. 시기적으로는 박한상 사건 이후 5개월 만에 터진 대형 살인사건이었다. 패륜범 박한상씨는 강남에서 소위 '잘 나간다'는 오렌지족이었는데 지존파가 증오한 대상과 정확히 들어맞아 화제가 됐다.

부자를 증오한다
범행을 계속한다

당시 신문보도와 재판기록 등을 참고한 지존파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993년 4월 지존파 두목 김기환(당시 26세·사망)은 중학교 후배 강동은과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 문상록을 만나 "더러운 인간들을 청소하자"고 제의했다.


포커를 치고 있던 이들은 마스칸, 그리스어로 야망이란 뜻을 가진 범죄조직을 결성했다. 후일 이들을 검거한 서울 서초경찰서의 고병천 수사관은 강동원 등이 김기환을 '지존'으로 부른 것에 착안해 지존파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진다.

김기환은 "세상이 오염됐다"는 생각으로 일찍부터 사회 고위층을 겨냥한 살인을 계획했다.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줄곧 반장을 했던 그의 생활기록부에는 "이해력이 빠르고 산수나 계산능력이 우수하다"는 지도의견이 적혀있었다.

실제로 김기환은 두뇌가 나름 명석했다고 한다. <삼국지>를 10번이나 읽을 정도로 독서량이 엄청났고, 바둑은 프로에 준하는 1급이었다고 알려졌다. 때문에 일각에선 정신연령(고등학교 1∼2학년 수준)이 낮았던 조직원들이 김기환의 꾐에 이용당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같은 해 김기환은 강동은의 소개로 강문섭을 영입했고, 전남 영광에서 트럭운전을 하다 만난 김현양을 조직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스무살 백병옥까지 모두 6명이 지존파로 활동했다. 유일한 여성조직원 이모(23세)씨도 있었지만 그는 법원에서 살인에 가담하지 않은 사유가 참작돼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지존파 일당은 1993년 5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모두 5명을 살해·유기하는 끔직한 범행을 저질렀다. 1994년 충남 논산에서 최모(당시 23세·여)씨를 윤간 및 살해·암매장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8월에는 조직자금을 빼돌리려 한 같은 조직원 송봉은을 살해·암매장했다. 이 가운데 최씨는 지존파가 저지른 살인예행연습의 희생양으로 이유 없이 살해돼 안타까움을 줬다.

비슷한 시기 지존파는 '돈 있고 백 있는 놈의 것을 빼앗고 그들을 죽인다'는 내용의 행동강령을 만들어 이를 실행할 목적으로 자금을 모았다. 강령을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우리는 부자들을 증오한다 ▲각자 10억(원)씩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배반자는 처형한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 등이다.

지존파 일당은 대전·분당 등 신도시 건설 현장에서 각자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다. 일부 자금 출처가 의심되는 부분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이 모은 돈은 수천여만원에 이르렀다. 범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끼니마저 걸렀다고 하니 이들의 집요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살인공장서
차례로 죽였다

1994년 5월 김기환의 고향인 전남 영광에는 '살인공장'이 들어섰다. 지존파 아지트였던 그곳에는 창살감옥과 사체를 태우기 위한 소각시설(화덕)이 마련됐다. 뿐만 아니라 공기총, 다이너마이트, 도끼 등 다양한 살인도구가 구비됐다.

이들의 치밀한 범행준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압구정 한 유명백화점의 VIP명단을 입수해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하루 600만∼700만원어치 이상의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우선 범행대상으로 지목됐다. 당시 1000여명이 적힌 우수고객명단에는 정·관계 유명인사, 재벌 2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존파 사건으로 일부 부유층이 밤잠을 설쳤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논픽션 다이어리>의 정 감독이 쓴 연출의도를 인용하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로 시작된 지존파의 범행은 정작 '돈 많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죽이지 못한 채 검거되며 일단락됐다.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해 인육을 먹었다는 지존파의 범행은 처절함을 넘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살인공장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목 김기환은 고향 선배 조카인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됐다. 법정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그는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는데 지존파 일당은 김기환의 옥중 지시를 받아 범행을 계속했다.


1994년 9월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던 이모 여인은 카페 밴드 마스터이자 애인인 이종원(당시 36세·사망)의 그랜드 승용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러 갔다가 지존파에게 납치됐다. 지존파 일당은 이 여인을 윤간한 뒤 이종원에게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목 졸라 살해했다.

이어 이종원의 시신을 차량 운전석에 앉히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경찰은 이 사건을 최초 음주운전에 의한 단순사고로 오인했다고 전해진다.

남은 이 여인의 처리를 놓고 김현양과 다른 조직원들은 심하게 다퉜다. 당시 김현양은 이 여인에게 연인의 감정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지존파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도화선이 됐다. 김현양의 고집으로 이 여인은 살아남아 지존파와 함께 생활했다.

1994년 9월13일 경기도 성남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던 소윤오-박미자 부부가 납치됐다. 소윤오 부부는 고급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지존파의 타깃이 됐다.

하지만 소윤오는 개인 빚까지 내가며 회사를 지키려던 성실한 사업가였다. 고급차도 회사영업용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지존파로부터 1억원 가까이 갈취당한 뒤 무참히 살해됐다. 살해 과정에는 미리 준비한 공기총과 도끼가 동원됐다. 소윤오 부부의 사체는 소각됐다.

백화점 고객명단 유출
정재계 유명인사 벌벌


1994년 9월15일 김현양은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다가 폭발해 부상을 입었다. 그는 치료차 병원에 가면서 이 여인과 동행했다. 당시 "이 여인을 죽여야 한다"고 했던 문상록 등으로부터 이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치료를 받는 동안 이 여인은 병원에서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탈출했다. 김현양 등이 쫓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택시를 세 번이나 갈아탔다. 이 여인이 도착한 곳은 서울 서초경찰서. 이모 여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1994년 9월17일 이모 여인의 자리는 강동은의 애인이었던 여성조직원 이씨가 대신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틀 뒤 들이닥친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을 조직에 끌어들인 '5명의 악당'과 함께였다. 당시 감옥에 있던 두목 김기환은 "녀석들, 여자는 어머니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진다.

앞서 밝혔듯 지존파의 범행은 빈부격차와 부자들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에서 출발했다. 불행하게도 실제 피해자는 평범한 서민밖에 없었다. TV화면에선 "우리는 악마의 씨를 타고났다"는 이들의 악다구니만 생중계됐다. 주류 언론은 지존파를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로 그렸다.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동정론이 공존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됐는지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1994년 10월31일 서울형사지법 합의22부(당시 이광렬 부장판사)는 김기환, 김현양 등 지존파 일당 6명에게 살인·사체유기·범죄단체조직 및 가입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피고인들이 구속기소된 지 불과 25일 만에 1심 재판이 끝난 것이다.

다음해인 1995년 1월 <한겨레>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5.3%는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힘으로 '돈'을 첫손에 꼽았다. '권력'은 39.1%였다. 흥미로운 점은 지존파 사건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1.8%가 '사회구조의 잘못'을 짚었다는 것이다. 개인의 성격은 8.3%, 가정환경은 27.9%였다.

법무부는 같은 해 11월 지존파 6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한상씨는 사형이 확정됐지만 집행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관에게 "오늘(조간신문)은 내가 톱이냐, 지존파가 톱이냐"고 물었던 온보현은 형장의 이슬이 됐다. 이들과 함께 사형된 죄수 중에는 가정집에 침입해 아기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여 부녀자를 다섯 차례 강간한 배모씨, 김모씨 등이 눈에 띄었다.

지존파사건 직후 발생한 성수대교 참사, 사상 유례가 없는 사망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로 10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된 예는 없었다. 이준 전 삼풍건설산업 회장의 경우엔 징역 7년6월이 선고됐다.

이례적 사형집행
부자는 솜방망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존파 사건은 올해로 꼭 20년을 맞았다.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익부빈익빈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화됐다. 올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근로 및 사회정책에 대한 국민의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1.3%가 '부자는 극소수이고 가난한 사람이 많은 사회'라고 답했다. 또 올 4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부자에 대한 인식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는 ‘존경할 만한 부자가 많지 않다’고 답했다.

지존파는 죽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 안에는 부정하게 돈을 번 부자들이 기득권을 대물림하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부자를 증오한다"는 지존파의 강령이 오늘날에도 저릿저릿한 이유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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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