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에 빠지다 ❷경북 안동

'덩실덩실' 800년 이어온 신명나는 ‘탈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12세기 중엽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즐겼다. 8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서민의 애환과 웃음을 담아 탈춤을 춘 것이다. 양반과 선비로 대변되는 지배계층을 비판하고, 파계승을 통해 종교의 타락을 비꼬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탈춤을 보며 21세기 관객이 웃음을 터뜨린다. 신명과 흥겨움이 가득한 공연은 꼬마관객도 지루할 틈이 없다. 풍산유씨 대종가 양진당과 서애 유성룡 선생의 충효당 같은 고택과 흙담이 아름다운 하회마을을 구석구석 거닐고,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안동한지전시관과 하회세계탈박물관도 들러보자. 안동민속박물관은 안팎이 두루 알차다. 월영교와 안동호반나들이길도 봄볕 아래 걷기 좋다.

‘경북의 흥과 멋’ 담긴 하회별신굿탈놀이
박물관·하회마을 등…전통매력에 푹

중요무형문화재 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고려 시대(12세기 중엽)부터 마을 사람들이 해온 탈놀이다. 별신굿은 ‘별난 굿’ ‘특별한 굿’을 뜻하는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5~10년에 한 번씩 큰 굿판을 벌였기에 붙은 이름이다.
옛날에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 즈음에 마을의 수호신(혹은 서낭신)에게 동신제(당제)를 올렸는데, 별신굿은 5~10년마다 혹은 특별한 주문이 있을 때 열렸다. 굿판에 탈놀이가 곁들여진 것은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함으로, 마을에 재앙이 닥치지 않고 복을 주기 바라는 의미라고 한다. 1928년 마지막 별신굿이 있고 40여 년간 중단된 것을 1970년대에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회원들이 복원하여 다시 세상에 선보였다. 지금은 안동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이자,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러 안동에 들를 정도가 됐다. 우리나라 대표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의 근간이기도 하다.

하회탈 고장
‘봄’을 만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당시 지배 계층과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이 아름다운 여인네를 보고 파계하는가 하면, 양반과 선비가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벌이고, 가난하고 힘없는 할미는 서민의 애환을 대변한다.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탈춤을 하회마을 양반들이 노여워하기는커녕 경제적인 후원까지 해준 것은, 평민들이 굿판을 통해 쌓인 울분을 풀고 불만을 해소함으로써 마을 공동체가 더욱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연중 상설 공연을 하고, 찾는 이들이 많아 주중에도 공연이 마련된다. 원래는 열 마당이지만 상설 공연에서는 무동 마당, 주지 마당, 백정 마당, 할미 마당, 파계승 마당, 양반·선비 마당 등 여섯 마당을 한 시간가량 선보인다. 소 한 마리를 잡아놓고 춤추는 백정 마당은 힘이 느껴지고, 신세 한탄하며 베 짜는 할미 마당에선 관객도 숨을 죽인다. 초랭이의 촐싹거리는 춤은 어눌한 이매 춤과 함께해 두드러진다. 양반은 “여기에 내보다 더한 양반이 어디 있노?” 하며 신분을 뽐내고, 선비는 학식을 자랑하며 사서삼경보다 나은 팔서육경을 읽었다고 허세를 부린다. 모든 마당이 끝나면 탈을 벗고 인사한 다음 춤을 추며 빠져나가는데, 이때 관객이 한데 어우러져 춤추기도 한다. 풍자와 해학, 웃음과 눈물이 있는 탈놀이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빠져든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가 특별한 또 다른 이유는 탈에 있다. 우리나라 지방마다 고유의 탈춤과 탈이 전해오지만, 국보로 지정된 것은 안동 하회탈 11점과 이웃마을 병산탈 2점이 유일하다(병산별신굿은 전승되지 않음). 하회탈은 12세기 중엽에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눈, 코, 입이 선명하고 주름살과 얼굴 표정에 생동감이 넘친다. 턱을 분리해서 제작한 양반, 선비, 중, 백정 탈은 얼굴을 젖히거나 숙이는 등 움직임에 따라 표정 변화가 크다. 하회탈을 깎았다는 허 도령이 마지막 탈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턱이 없는 채 남았다는 이매 탈은 연기자의 입과 턱이 그대로 드러나 더욱 풍부한 연기가 가능하다. 순박한 이매의 함박웃음은 하회 탈춤을 재미있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하회별신굿탈놀이는 춤판이 벌어지는 동안 배우와 관객이 자연스럽게 소통한다. 백정은 관객을 향해 연신 말을 걸고, 할미는 관객에게 동냥하는 시늉을 한다. 이를 걸립이라 하는데, 풍물과 재주를 부려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일을 뜻한다. 실제로 관객이 뛰어나와 불쌍한 할미의 바가지에 돈을 넣어주기도 한다. 관객이 “잘한다” “얼씨구” 같은 추임새를 넣거나 크게 손뼉을 치면 배우들도 흥이 나는 것은 당연지사. 추우나 더우나, 관객이 많거나 적거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박수가 나온다.
탈춤 공연은 현재 하회마을 주차장 옆 임시 공연장에서 펼쳐진다. 마을 안에 자리한 전수관과 공연장 공사가 끝나는 5월 말까지는 임시 공연장 신세를 질 예정이다. 상설 공연은 1~2월은 토·일요일, 3~12월은 수·금·토·일요일 오후 2시에 열린다. 7~9월에는 토요일 오후 7시 안동댐 개목나루, 일요일 오후 7시 낙동강변 음악분수 옆 공연이 더해진다. 

 

탈놀이가 끝나면 느긋한 걸음으로 하회마을을 둘러본다. 안동 하회마을은 경주 양동마을과 더불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풍산유씨의 동성 마을로, 낙동강 줄기가 마을을 S자로 휘감아 흘러 물돌이(하회)라 했다. 마을에는 풍산유씨 대종가 양진당(보물 306호), 서애 유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보물 414호),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멋을 보여주는 화경당(북촌댁) 등 빼어난 고택이 즐비하다. 흙과 돌로 반듯하게 쌓아 올린 담장과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 정겨운 초가, 수령 600년에 이르는 삼신목, 강변에 자리한 만송정 솔숲, 절벽 위에서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부용대 등 볼거리로 가득하다.

 

안동시내에서 하회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들러보면 좋은 곳이 두 군데 있다. 먼저 안동한지전시관은 닥나무에서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한지 공장, 한지 제품과 공예품을 전시·판매하는 전시관, 하회탈을 비롯해 다양한 한지 공예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관 등이 한군데 모여있어 흥미롭다. 하회탈 모형에 한지를 여러 장 겹쳐 바른 다음 색깔 한지로 장식하는 탈 만들기 체험이 인기다. 하회마을 주차장을 지나 매표소 가는 길에 자리한 하회세계탈박물관은 하회탈을 비롯한 우리나라 각 지역의 탈, 아시아와 유럽 등 세계의 탈을 함께 전시해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21세기 속
조선시대


안동은 ‘지붕 없는 박물관 도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역사 유적과 고택이 많다. 안동민속박물관에서는 선조의 유교적인 삶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다. 출생부터 관혼상제까지 삶의 궤적에 따라 전시물이 구성되었다. 야외 박물관에는 석빙고, 선성현객사, 돌담집, 초가, 초가도토마리집, 까치구멍집 등 고가 20여 채가 마을을 이루듯 모여 있다. 

 

야외 박물관과 강 서쪽을 이어주는 월영교는 낮에도 좋지만, 조명이 들어오는 저녁이나 달 밝은 밤에 더 운치 있다. 월영교에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안동호반나들이길로 접어든다. 지난 12월에 완공된 이 산책로는 법흥교까지 2km 남짓한 거리로, 강바람을 느끼며 가볍게 걷기에 그만이다. 

 

안동의 맛으로는 헛제삿밥, 안동찜닭, 간고등어구이, 안동국시 등이 있다. 주전부리가 생각난다면 안동역 맞은편에 자리한 하회탈빵이나 정도너츠 안동점, 미슐랭에서도 인정한 맘모스제과가 제격이다.


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코스
안동한지전시관→하회세계탈박물관→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 공연→하회마을→월영교


1박2일 여행 코스
· 첫째 날 : 안동한지전시관→병산서원→하회세계탈박물관→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 공연→하회마을(숙박)
· 둘째 날 : 안동민속박물관→안동호반나들이길→월영교→임청각, 군자정→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관련 웹사이트 주소
· 안동관광 www.tourandong.com
·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www.hahoemask.co.kr
· 안동 하회마을 www.hahoe.or.kr
· 안동민속박물관 www.adfm.or.kr
· 하회세계탈박물관 www.mask.kr
· 안동한지전시관 www.andonghanji.com


문의 전화
· 안동시청 체육관광과  054)840-6392
· 하회별신굿탈놀이보존회  054)854-3664
· 안동하회마을관리사무소  054)854-3669
· 하회마을 관광안내소  054)852-3588
· 안동민속박물관  054)821-0649
· 하회세계탈박물관  054)853-2288
· 안동한지전시관  054)858-7007



대중교통 정보
기차> · 
청량리-안동: 하루 8회(06:40~21:13)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 서울-안동: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5회(06:00~23: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8회(06:10~22:00) 운행, 약 2시간50분 소요.
* 문의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버스>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 이지티켓 www.hticket.co.kr

자가운전 정보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IC→경서로 6km→상리길 3.2km→안교사거리 하회마을 방면 좌회전→지풍로 4.6km→하회삼거리 하회마을 방면 좌회전→하회마을 주차장(주차 후 도보 15분 혹은 셔틀버스 이용)


숙박 정보
· 안동파크호텔 : 안동시 경동로, 054)853-1501, www.andongparkhotel.com
· 다우모텔 : 풍산읍 장터중앙길, 054)858-9100
· 농암종택 : 도산면 가송길, 054)843-1202, www.nongam.com
· 북촌댁 : 풍천면 하회북촌길, 054)853-2110, www.bukchondaek.com
· 안동군자마을 : 와룡면 군자리길, 054)852-5414, www.gunjari.net


식당 정보
· 묵향 : 한우구이·불고기, 안동시 경동로, 054)840-7710~1
· 까치구멍집 : 헛제삿밥, 안동시 석주로, 054)821-1056
· 옥류정 : 간고등어정식, 풍천면 전서로, 054)854-8844~5, www.안동맛집옥류정.kr
· 추임새파크 : 안동찜닭, 풍천면 전서로, 054)853-4001


축제와 행사 정보
·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 2014년 9월26일~10월5일, 안동 시내 일원(탈춤공원 및 하회마을),
                                         www.maskdance.com

주변 볼거리
안동댐, 온뜨레피움, 전통문화콘텐츠박물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유교문화박물관, 이육사문학관, 도산서원, 안동군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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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