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정치인들 몸값 높아진 속사정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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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갈까?" 지금은 무소속 전성시대

[일요시사=정치팀] 무소속 정치인들이 연신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얼마 전까진 당에서 쫓겨나다시피 했던 인물들도 최근엔 여기저기서 쇄도하는 영입 러브콜로 몸살을 앓고 있을 정도다. 특히 이들은 거취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며 자신들의 주가를 한껏 더 끌어올리고 있다. 무소속 정치인들의 몸값이 높아진 속사정은 무엇일까?

무소속 국회의원들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무소속 박주선 의원이다. 3선인 박 의원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당시 이른바 '동장 투신자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자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사건은 선관위의 불법선거인단 단속과정에서 박 의원의 선거운동원으로 추정되는 전직 동장이 투신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박 의원은 이후 민주당 모바일 경선인단을 불법으로 모집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고, 민주당은 박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까지 처리했다.

높아진 몸값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합(가칭)이 동시에 러브콜을 보내오면서 행복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몸값 또한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직접 박 의원과의 만남을 요청해 두 사람이 오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박 의원은 대놓고 김 대표에게 과거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 상정을 막지 않은 데 대한 섭섭함을 표했다고 한다.


지난 10일엔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까지 나섰다. 권 고문은 박 의원을 만나 민주당에 복당할 것을 설득했다. 박 의원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직접 복당을 요청했으나 답을 듣지 못하며 사실상 거절당했었다.

박 의원 외에도 다른 무소속 국회의원들의 몸값 역시 높아졌다. 총선 승리 직후 논문표절 의혹이 불거지며 새누리당을 자진 탈당한 문대성 의원은 최근 복당이 확정됐다. 당내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당 지도부는 문 의원의 복당을 강행했다. 

정의당을 탈당한 무소속 강동원 의원 역시 안철수 의원이 이끄는 새정치연합(가칭)행 가능성이 끊임없이 거론되며 초선의원답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무소속 의원들의 몸값이 높아진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우선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역 의원들의 출마선언이 이어지면서 각 정당들로서는 한 석이 아쉽게 됐다.

일례로 현재 새누리당은 총 155석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지방선거에서 현역의원들이 대거 차출돼 후보로 나서고 7월과 10월 재보선에 의석을 잃을 경우 과반 의석(151석)이 무너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단 한 석이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은 좀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무소속 국회의원들이 새정치연합행을 택한다면 민주당과 경쟁관계인 새정치연합에 더욱 힘이 실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무소속 국회의원 챙기기에 나서는 것은 안철수 견제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진 안 된다던 복당, 지금은 '일사천리'
지방선거 차출 비상, 안철수 견제 '다목적 포석'


특히 박주선 의원의 경우 호남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박 의원이 움직이면 광주·전남 지역의 기초단체장, 전·현직 광역의원 등 20여명이 박 의원과 함께 새정치연합행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민주당으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태다.

민주당으로서는 박 의원을 끌어안아야 호남에 부는 안철수 바람을 차단할 수 있다. 민주당 지도부가 한때 내쳤던 박 의원에게 다소 굴욕적인 모습까지 보이며 복당을 추진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새정치연합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새정치연합은 현재 현역 국회의원 2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의석 5석을 확보하게 되면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후보들이 동일한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고 국고보조금도 크게 늘어난다.

박 의원의 경우 동장 투신자살 사건뿐만 아니라 정치자금법이나 선거법 위반 의혹 등으로 자주 재판을 받은 바 있다. 모두 무죄로 끝났지만 '4번 구속 4번 무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은 결코 자랑스러운 기록은 아니다.

때문에 박 의원의 영입과 관련해 새정치연합 내부에서도 새정치와는 맞지 않는다는 반발이 있었지만 안철수 의원이 직접 "모두 무죄를 받은 내용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오히려 박 의원을 두둔했다는 후문이다.

또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현역 무소속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당적은 없지만 지역에서 명망이 높은 정치인들의 몸값도 높아지고 있다. 이번 6월 지방선거는 박근혜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게 되면서 여야 모두 선거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당내 마땅한 후보군이 부각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무소속 후보군들에게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시장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오거돈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새누리당과 민주당, 새정치연합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오 전 장관은 과거 두 차례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경력이 있지만 현재 당적을 갖고 있지 않다. 최근 오 전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산시장선거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그러자 각 당이 오 전 장관을 영입하기 위해 물밑 작업에 나선 것이다.

야권의 유력한 경기지사 후보로 거론되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경우도 몸값이 수직상승하고 있다. 김 교육감은 친민주당 성향이긴 하지만 교육감은 공식적으로는 당적을 가질 수 없어 무소속인 상태다.

지난 17일 열린 김 교육감의 출판기념회에는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개인 일정까지 변경해가며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했고, 안철수 의원은 축사를 통해 "제가 가야 할 길과 김 교육감이 가는 길이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김 교육감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부작용도 생겨

하지만 정치권에서 무소속 영입 경쟁이 가열되면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새누리당은 앞서 지난해 10월과 11월에도 탈당·뺑소니 전력이 있는 김태환 전 제주지사와 성희롱·선거법 위반 전력이 있는 우근민 제주지사의 재입당을 승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국민보다 정파의 이익을 우선해 문제가 있는 정치인을 무조건 받아들이고 보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라는 지적이다. 심지어 일부 정당에서는 문제가 있는 무소속 정치인을 영입하면서 '자리'까지 약속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사실 문제인사들을 슬그머니 복당시키는 행태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던 일"이라면서도 "문제인사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공당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명일 기자 <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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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