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오락고수 집결지 ‘정인오락실’ 가보니…

마우스? 조이스틱 협객들의 한판 승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골목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은 전국구 오락실로 유명해 오락실계의 성지로도 불린다. 정인오락실의 게이머들은 주로 고시생, 학생, 노동자들로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동전 몇 푼만 있으면 1∼2시간 동안 게임을 이어가는 건 기본. 몇몇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은 인터넷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한다. <일요시사>가 그곳을 찾아가봤다.

노량진에는 각종 학원가 및 고시원이 즐비해 있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시생이거나 공시생이다. 이들은 시험준비에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합격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량진에는 시험이 아닌, 다른 경쟁도 존재한다. 바로 오락실 게임 경쟁이다. 세계적인 종합격투기 UFC처럼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옥타곤이 노량진 골목에 숨어있다.

과거 전성기를 누렸던 오락실. 요즘은 동네에서도 오락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오락실은 ‘멸종’ 위기다. 특히 PC방의 등장은 이를 가속화했다. 넘쳐나는 PC방에 비해 오락실은 문을 닫고 있는 형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는 오락실이 있다. 바로 노량진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이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락실계의 ‘성지’로 통한다. 먼 길을 찾아오는 성지 순례객도 있다. 오락실 향수에 젖은 고수 게이머들로 가득찬 정인오락실에 들어가봤다.

향수 부르는
추억의 오락실

오락실 문 앞에는 선물 뽑기, 인형 뽑기, 완력 테스트기, 농구 게임 등이 있었다. 겉모습은 일반 오락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간판에 있는 게임 캐릭터가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줬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


파리 날리는 일반 동네오락실과 달리, 이곳의 모습은 매우 활발하고 열정적이었다. 게임할 자리가 없어 서서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찬찬히 이들 틈에서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조이스틱의 화려한 움직임이 그들의 ‘스킬’을 대변했다. 조이스틱을 잡은 왼손과 버튼을 누르는 오른손은 매우 재빠르게 움직였다. 실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오락실을 한바퀴 쭉 둘러보니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킹 오브 파이터, 94∼2002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시리즈’ 등으로 압축됐다. 다른 게임도 있지만 역시나 주력 게임은 ‘대전 액션게임’이다.

계속 구경을 하던 중, 드디어 자리가 났다. 반대쪽에 앉은 게이머는 매우 작은 체구로 게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킹 오브 파이터즈’ 오락 기계에 미리 준비해둔 동전을 넣고 대결을 신청했다.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놀았던 초등학교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주력 캐릭터 3개를 고르고 게임에 임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힘 한 번 못써보고 캐릭터 하나가 쓰러졌다.

‘오랜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다시 두 번째 캐릭터로 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 번째 캐릭터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며, 상대방 캐릭터 하나에 세 캐릭터가 몰살당했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게임 패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노량진 골목에 위치…전국구 최강 오락실
전국서 모인 최고 실력 챔피언급 플레이

자존심을 구긴 채, 아쉬운 마음을 붙잡고 ‘아도겐’으로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로 자리를 옮겼다. 구경꾼들이 많아 부담이 컸지만, 이내 동전을 넣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름대로 기술을 써가며 버텨봤지만, 기량 차이가 뚜렷했다. 이렇게 또 패배하며 2패의 전적을 안고 붉어진 얼굴로 구경꾼들 사이로 돌아갔다.

사실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한때 하루 종일 조이스틱을 잡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인오락실 게이머들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실력은 ‘최상급’이었다. 구경꾼들이 쉽게 동전을 넣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서 계속 구경만 하고 있던 A씨에게 말을 건넸다. 왜 계속 구경만 하냐고. 그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말했다. 패배가 두려운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면 쪽팔리다”고 일축했다.

멍하니 서서 게임을 지켜보던 A(27)씨는 사실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흔히 ‘공시생’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공시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다. 공시생들은 학원과 독서실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종종 푼다고 한다.

게임마다 다르지만 보통 100원에서 300원이다. 1000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1시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자신보다 기량이 높은 실력자와 붙었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현란한 조이스틱
화려한 기술 연발

노량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고시생, 공시생들만 있는 건 아니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도 오락실 안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펌프’였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춘 화려한 발동작을 볼 수 있었다.

여고생 B(18)양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고등학생들도 많이 찾는 일종의 아지트다. 방과 후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고 노래방 기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건전한 행동이라고.

그런데 기자가 오락실에 들어올 때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오락실 게임 협객임이 분명해 보였다. 목장갑을 끼고 조이스틱을 잡고 있던 그는 갈색 안전화를 신고 남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인상착의를 보아 하니 일용직 노동자였다. 나이도 꽤 많아 보였다. 그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게임이 끝난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게임을 마친 그는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주변 게이머들에게 물어보니 오락실에서 꽤나 유명한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실력과 더불어 매너도 좋다고 전해진다.

정인오락실은 예전 오락실 모습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유명하다.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차별점도 있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유명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을 실시간으로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중계하고 있다.

생중계 장면은 오락실 좌측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이 방송 화면은 각종 이벤트 시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전해진다. 마니아들은 게임 방송을 꾸준히 시청하며 자신의 실력을 보완하기도 한다.

보통의 오락실의 경우 스틱 게임보다는 리듬 게임이나 슈팅 게임 등 체감형 기계들을 앞으로 뺀다. 반면 정인오락실은 옛 오락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최신 기계들을 구석으로 넣고 고전 스틱 게임을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 기계 앞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추억의 80∼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응답하라 1990
20세기 오락실


정인오락실 내 리듬 게임은 단 세 대다. 펌프인 ‘FIESTA EX’와 ‘EZ2DJ’의 구버전인 BE, 신작 AE가 놓여있다. 리듬 게임은 일반 오락실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인오락실의 사정은 다르다. 오락실계의 효자로 알려진 ‘코인 노래방’은 총 12대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기계가 많았다. 근처 고시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나 스틱 게임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철권’이다. 정인오락실에는 철권 시리즈가 알차게 들어가 있다. 철권 시리즈의 요금은 300원이다. 단 ‘철권6’의 플레이 요금은 200원이다. 타 오락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가장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건 ‘킹 오브 파이터즈’일 것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기계 앞에 모여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요금은 100원이다.

무려 20년 넘게 오락실계의 왕좌로 군림하고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고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게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세월이 멈춘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플레이 요금은 역시나 100원이다.

정인오락실은 노량진동의 고시생, 공시생 및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의 놀이터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격투 게임 마니아들의 성지임과 동시에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끝없는 매치’ 서 있는 구경꾼이 더 많아 
역사 속으로…PC방에 밀려 ‘멸종’ 위기


한국 오락실의 역사는 1980년대 초반 흑백 오락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락실 기계는 나무로 처리돼있었고 흑백 게임이었다. ‘벽돌깨기’와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 두 게임이 한창 인기였다.

벽돌 깨기는 조이스틱이 아닌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서 바를 좌우로 이동시키는 독특한 조작 방식이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흑백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니터에 노랑, 빨강, 파랑의 셀로판지를 붙이기도 했다.

80년대 초반은 오락실 붐의 시작이었다. 흑백 오락기와 함께 컬러 오락기가 하나둘 늘었기 때문이다. 방구차, 팩맨, 갤러그, 개구리, 엑스리온, 너구리, 뽀빠이, 킹콩, 타잔 등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게이머들은 쾌재를 불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갤러그’는 단연 지존이었다. 특유의 ‘뿅뿅’ 총알 쏘는 소리는 오락실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했다. 유독 갤러그 기계는 여러대 설치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갤러그는 그 자체가 오락실을 대표했다. 남녀불문 손 쉬운 플레이로 국민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팩맨은 입이 달린 노란색 덩어리가 작은 노란색 덩어리들을 먹고 다니는 게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오락실 게임 중 하나다. 움직일 때 ‘파쿠파쿠’ 소리를 내 ‘파쿠맨’이었고 표기는 ‘Puck man’이었다. 하지만 욕설 같다는 문제가 미국에서 제기돼 ‘Pac man’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방구차는 방구같은 매연을 내뿜어서 쫓아오는 다른 차들을 못 움직이게 만들고 코스상의 깃발들을 모조리 먹는 것이 포인트인 게임이다. 중독성 강한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아이들까지 이 배경음악을 알 정도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퀄리티 높은 그래픽에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게임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너무나 많은 게임이 나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 중에서 특히 ‘버블보블’의 인기는 갤로그 이후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새로운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다.

어느 오락실에 들어가나 버블버블 효과음이 가장 먼저 들려왔다. 원제는 ‘버블보블(Buble Boble)’이지만 한국에서는 ‘보글보글’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여러 개의 속편이 나왔지만 최초의 버블보블만한 게임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오락실의
어제와 오늘

80년대 후반에는 그래픽과 사운드가 더욱 향상됐다. 이 시기의 메이저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사실 테트리스는 당시 나온 게임들과 비교해 그래픽과 사운드는 별로였지만 중독성 면에서는 최강이었다. 러시아풍의 멜로디도 매력 중 하나였다.

90년대 들어서 더욱 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무장한 게임들이 나왔다. 대전 격투 액션게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지금의 오락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87년에 나온 ‘스트리트파이터’의 속편으로 제작됐지만 철저하게 대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방향키와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액션은 모든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기초가 됐다. 이후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 등의 대전 격투게임이 잇따라 나왔다.

본격적인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시대는 90년대 중후반에 터졌다. 그리고 ‘킹 오브 파이터즈’와 ‘철권’이 대전 격투게임의 양대산맥으로 자리 잡게 된다. 킹 오브 파이터즈는 ‘94’ 시리즈를 시작으로 인기를 누려 ‘98’ 시리즈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동전 있으면 1∼2시간 훌쩍
스트레스 날릴 최적의 장소

‘철권’은 한국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주목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3D 대전 격투게임을 대표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리듬&댄스 게임 시대가 도래했다. ‘비트매니아’라는 게임은 대전 격투게임 일색이던 오락실의 판도를 180도 뒤집었다. 특히 ‘DDR’이 대히트를 치며 국내 오락실은 리듬&댄스 게임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리듬&댄스 게임에 밀려 기존의 게임들은 사라져갔고 리듬&댄스의 시대도 저물었다. 그러면서 오락실 전체가 자연스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98년,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면서 ‘PC방’이 생겼다. PC방은 게임방으로서 오락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때부터 오락실은 점점 줄어들고 PC방이 급증했다.

현재까지도 많은 게이머들 PC방을 찾는다. ‘온라인 게임’을 ‘e스포츠’라고 부를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러나 여전히 조이스틱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도 옛 오락실을 추억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추억의 오락실 게임
‘뿅뿅’ 스마트폰서 부활

추억의 오락실 게임이 스마트폰에서 부활하고 있다. ‘벽돌깨기’ ‘1942’ 등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 모바일 타이틀로 부활하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존의 게임성을 계승 발전시킨 친숙한 플레이 방식과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시켜 남녀노소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그래픽은 물론 게임 내에 등장하는 기기들도 당시 실존했던 캐릭터들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해 신구세대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복고 바람 타고 모바일 재탄생

오락실 게임의 간단하고 쉬운 플레이 방식이 모바일 게임에 적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많은 게임들이 오락실 게임의 방식을 차용했다.

‘애니팡’이 대표적이다. 애니팡은 퍼즐게임의 원조인 ‘비주얼드’가 뿌리다.

고전 게임의 원리에 다양한 아이템과 소셜 요소를 집어넣어 현대인의 손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아예 고전게임의 IP(지적재산권)를 직접 들여와 게이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경향도 있다.

한 모바일게임 업체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과거 그들이 즐겼던 오락실 게임들이 모바일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최근 사회의 복고트랜드와 맞물려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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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