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오락고수 집결지 ‘정인오락실’ 가보니…

마우스? 조이스틱 협객들의 한판 승부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골목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은 전국구 오락실로 유명해 오락실계의 성지로도 불린다. 정인오락실의 게이머들은 주로 고시생, 학생, 노동자들로 국내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동전 몇 푼만 있으면 1∼2시간 동안 게임을 이어가는 건 기본. 몇몇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은 인터넷방송을 통해 생중계되기도 한다. <일요시사>가 그곳을 찾아가봤다.

노량진에는 각종 학원가 및 고시원이 즐비해 있다. 길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시생이거나 공시생이다. 이들은 시험준비에 매우 바쁜 하루를 보낸다. 합격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량진에는 시험이 아닌, 다른 경쟁도 존재한다. 바로 오락실 게임 경쟁이다. 세계적인 종합격투기 UFC처럼 치열한 격투가 벌어지는 옥타곤이 노량진 골목에 숨어있다.

과거 전성기를 누렸던 오락실. 요즘은 동네에서도 오락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오락실은 ‘멸종’ 위기다. 특히 PC방의 등장은 이를 가속화했다. 넘쳐나는 PC방에 비해 오락실은 문을 닫고 있는 형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인기를 누리는 오락실이 있다. 바로 노량진에 위치한 ‘정인오락실’이다.

이곳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오락실계의 ‘성지’로 통한다. 먼 길을 찾아오는 성지 순례객도 있다. 오락실 향수에 젖은 고수 게이머들로 가득찬 정인오락실에 들어가봤다.

향수 부르는
추억의 오락실

오락실 문 앞에는 선물 뽑기, 인형 뽑기, 완력 테스트기, 농구 게임 등이 있었다. 겉모습은 일반 오락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저 간판에 있는 게임 캐릭터가 이곳의 정체성을 말해줬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사람들로 붐빈다는 것.

파리 날리는 일반 동네오락실과 달리, 이곳의 모습은 매우 활발하고 열정적이었다. 게임할 자리가 없어 서서 구경하는 이들이 많았다.

찬찬히 이들 틈에서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지켜봤다. 조이스틱의 화려한 움직임이 그들의 ‘스킬’을 대변했다. 조이스틱을 잡은 왼손과 버튼을 누르는 오른손은 매우 재빠르게 움직였다. 실력자들이 모여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오락실을 한바퀴 쭉 둘러보니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킹 오브 파이터, 94∼2002 시리즈’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시리즈’ 등으로 압축됐다. 다른 게임도 있지만 역시나 주력 게임은 ‘대전 액션게임’이다.

계속 구경을 하던 중, 드디어 자리가 났다. 반대쪽에 앉은 게이머는 매우 작은 체구로 게임을 이어가고 있었다. ‘킹 오브 파이터즈’ 오락 기계에 미리 준비해둔 동전을 넣고 대결을 신청했다. 하루 종일 오락실에서 놀았던 초등학교 당시 기억을 되살리며 주력 캐릭터 3개를 고르고 게임에 임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녹록지 않았다. 힘 한 번 못써보고 캐릭터 하나가 쓰러졌다.

‘오랜만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다시 두 번째 캐릭터로 힘을 써봤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 번째 캐릭터까지 처참하게 무너지며, 상대방 캐릭터 하나에 세 캐릭터가 몰살당했다.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게임 패배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노량진 골목에 위치…전국구 최강 오락실
전국서 모인 최고 실력 챔피언급 플레이

자존심을 구긴 채, 아쉬운 마음을 붙잡고 ‘아도겐’으로 유명한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로 자리를 옮겼다. 구경꾼들이 많아 부담이 컸지만, 이내 동전을 넣고 플레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나름대로 기술을 써가며 버텨봤지만, 기량 차이가 뚜렷했다. 이렇게 또 패배하며 2패의 전적을 안고 붉어진 얼굴로 구경꾼들 사이로 돌아갔다.

사실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한때 하루 종일 조이스틱을 잡은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인오락실 게이머들은 당해낼 수 없었다. 그들의 실력은 ‘최상급’이었다. 구경꾼들이 쉽게 동전을 넣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자리에서 계속 구경만 하고 있던 A씨에게 말을 건넸다. 왜 계속 구경만 하냐고. 그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다”고 말했다. 패배가 두려운 게 아니냐는 질문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면 쪽팔리다”고 일축했다.

멍하니 서서 게임을 지켜보던 A(27)씨는 사실 공무원 준비생이었다. 흔히 ‘공시생’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공시생들의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다. 공시생들은 학원과 독서실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이곳에서 종종 푼다고 한다.

게임마다 다르지만 보통 100원에서 300원이다. 1000원짜리 한 장만 있으면 1시간 버티는 건 일도 아니다. 물론 자신보다 기량이 높은 실력자와 붙었을 때는 말이 달라진다.

현란한 조이스틱
화려한 기술 연발

노량진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고시생, 공시생들만 있는 건 아니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들도 오락실 안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이 주로 하는 게임은 ‘펌프’였다.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춘 화려한 발동작을 볼 수 있었다.

여고생 B(18)양에 따르면 정인오락실은 고등학생들도 많이 찾는 일종의 아지트다. 방과 후 오락실에서 펌프를 하고 노래방 기계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건전한 행동이라고.

그런데 기자가 오락실에 들어올 때부터 스트리트 파이터 기계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오락실 게임 협객임이 분명해 보였다. 목장갑을 끼고 조이스틱을 잡고 있던 그는 갈색 안전화를 신고 남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인상착의를 보아 하니 일용직 노동자였다. 나이도 꽤 많아 보였다. 그가 일어나길 기다렸다.

게임이 끝난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다. 게임을 마친 그는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 주변 게이머들에게 물어보니 오락실에서 꽤나 유명한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실력과 더불어 매너도 좋다고 전해진다.

정인오락실은 예전 오락실 모습 그대로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유명하다. 추억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차별점도 있다. 실제로 TV에 나오는 유명 게이머들의 게임 장면을 실시간으로 ‘아프리카 TV’를 통해 생중계하고 있다.

생중계 장면은 오락실 좌측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통해 볼 수 있다. 물론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시청이 가능하다. 이 방송 화면은 각종 이벤트 시 유용하게 활용한다고 전해진다. 마니아들은 게임 방송을 꾸준히 시청하며 자신의 실력을 보완하기도 한다.

보통의 오락실의 경우 스틱 게임보다는 리듬 게임이나 슈팅 게임 등 체감형 기계들을 앞으로 뺀다. 반면 정인오락실은 옛 오락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다. 최신 기계들을 구석으로 넣고 고전 스틱 게임을 전면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임 기계 앞에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추억의 80∼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응답하라 1990
20세기 오락실

정인오락실 내 리듬 게임은 단 세 대다. 펌프인 ‘FIESTA EX’와 ‘EZ2DJ’의 구버전인 BE, 신작 AE가 놓여있다. 리듬 게임은 일반 오락실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정인오락실의 사정은 다르다. 오락실계의 효자로 알려진 ‘코인 노래방’은 총 12대로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기계가 많았다. 근처 고시생들이 자주 찾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역시나 스틱 게임이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철권’이다. 정인오락실에는 철권 시리즈가 알차게 들어가 있다. 철권 시리즈의 요금은 300원이다. 단 ‘철권6’의 플레이 요금은 200원이다. 타 오락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을 자랑한다.

가장 많은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건 ‘킹 오브 파이터즈’일 것이다.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기계 앞에 모여있다. 그만큼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요금은 100원이다.

무려 20년 넘게 오락실계의 왕좌로 군림하고 있는 ‘스트리트 파이터’는 고전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게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세월이 멈춘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플레이 요금은 역시나 100원이다.

정인오락실은 노량진동의 고시생, 공시생 및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의 놀이터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격투 게임 마니아들의 성지임과 동시에 삶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끝없는 매치’ 서 있는 구경꾼이 더 많아 
역사 속으로…PC방에 밀려 ‘멸종’ 위기

한국 오락실의 역사는 1980년대 초반 흑백 오락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락실 기계는 나무로 처리돼있었고 흑백 게임이었다. ‘벽돌깨기’와 ‘스페이스 인베이더’ 이 두 게임이 한창 인기였다.

벽돌 깨기는 조이스틱이 아닌 다이얼을 좌우로 돌려서 바를 좌우로 이동시키는 독특한 조작 방식이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흑백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니터에 노랑, 빨강, 파랑의 셀로판지를 붙이기도 했다.

80년대 초반은 오락실 붐의 시작이었다. 흑백 오락기와 함께 컬러 오락기가 하나둘 늘었기 때문이다. 방구차, 팩맨, 갤러그, 개구리, 엑스리온, 너구리, 뽀빠이, 킹콩, 타잔 등 다양한 게임이 쏟아져 게이머들은 쾌재를 불렀다.

특히 그중에서도 ‘갤러그’는 단연 지존이었다. 특유의 ‘뿅뿅’ 총알 쏘는 소리는 오락실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했다. 유독 갤러그 기계는 여러대 설치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갤러그는 그 자체가 오락실을 대표했다. 남녀불문 손 쉬운 플레이로 국민게임으로 자리매김했다.

팩맨은 입이 달린 노란색 덩어리가 작은 노란색 덩어리들을 먹고 다니는 게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오락실 게임 중 하나다. 움직일 때 ‘파쿠파쿠’ 소리를 내 ‘파쿠맨’이었고 표기는 ‘Puck man’이었다. 하지만 욕설 같다는 문제가 미국에서 제기돼 ‘Pac man’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방구차는 방구같은 매연을 내뿜어서 쫓아오는 다른 차들을 못 움직이게 만들고 코스상의 깃발들을 모조리 먹는 것이 포인트인 게임이다. 중독성 강한 배경음악으로도 유명하다. 요즘 아이들까지 이 배경음악을 알 정도다.

그리고 8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 퀄리티 높은 그래픽에 다양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게임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에는 너무나 많은 게임이 나와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 그 중에서 특히 ‘버블보블’의 인기는 갤로그 이후 엄청난 바람을 일으켜 새로운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다.

어느 오락실에 들어가나 버블버블 효과음이 가장 먼저 들려왔다. 원제는 ‘버블보블(Buble Boble)’이지만 한국에서는 ‘보글보글’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여러 개의 속편이 나왔지만 최초의 버블보블만한 게임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 오락실의
어제와 오늘

80년대 후반에는 그래픽과 사운드가 더욱 향상됐다. 이 시기의 메이저 게임은 ‘테트리스’였다. 사실 테트리스는 당시 나온 게임들과 비교해 그래픽과 사운드는 별로였지만 중독성 면에서는 최강이었다. 러시아풍의 멜로디도 매력 중 하나였다.

90년대 들어서 더욱 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로 무장한 게임들이 나왔다. 대전 격투 액션게임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시기였다. ‘스트리트파이터2’가 지금의 오락실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트리트파이터2는 87년에 나온 ‘스트리트파이터’의 속편으로 제작됐지만 철저하게 대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방향키와 버튼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액션은 모든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기초가 됐다. 이후 ‘아랑전설’과 ‘용호의 권’ 등의 대전 격투게임이 잇따라 나왔다.

본격적인 대전 격투 액션게임의 시대는 90년대 중후반에 터졌다. 그리고 ‘킹 오브 파이터즈’와 ‘철권’이 대전 격투게임의 양대산맥으로 자리 잡게 된다. 킹 오브 파이터즈는 ‘94’ 시리즈를 시작으로 인기를 누려 ‘98’ 시리즈로 인기의 정점을 찍었다.

동전 있으면 1∼2시간 훌쩍
스트레스 날릴 최적의 장소

‘철권’은 한국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주목받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3D 대전 격투게임을 대표했다.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는 리듬&댄스 게임 시대가 도래했다. ‘비트매니아’라는 게임은 대전 격투게임 일색이던 오락실의 판도를 180도 뒤집었다. 특히 ‘DDR’이 대히트를 치며 국내 오락실은 리듬&댄스 게임들로 가득했다.

이렇게 리듬&댄스 게임에 밀려 기존의 게임들은 사라져갔고 리듬&댄스의 시대도 저물었다. 그러면서 오락실 전체가 자연스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98년,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등장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스타크래프트 열풍이 불면서 ‘PC방’이 생겼다. PC방은 게임방으로서 오락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이때부터 오락실은 점점 줄어들고 PC방이 급증했다.

현재까지도 많은 게이머들 PC방을 찾는다. ‘온라인 게임’을 ‘e스포츠’라고 부를 만큼 인기가 높다. 그러나 여전히 조이스틱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오늘도 옛 오락실을 추억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추억의 오락실 게임
‘뿅뿅’ 스마트폰서 부활

추억의 오락실 게임이 스마트폰에서 부활하고 있다. ‘벽돌깨기’ ‘1942’ 등 198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게임들이 모바일 타이틀로 부활하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존의 게임성을 계승 발전시킨 친숙한 플레이 방식과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시켜 남녀노소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특히 그래픽은 물론 게임 내에 등장하는 기기들도 당시 실존했던 캐릭터들로, 매우 자세하게 묘사해 신구세대를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복고 바람 타고 모바일 재탄생

오락실 게임의 간단하고 쉬운 플레이 방식이 모바일 게임에 적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에 초기부터 많은 게임들이 오락실 게임의 방식을 차용했다.

‘애니팡’이 대표적이다. 애니팡은 퍼즐게임의 원조인 ‘비주얼드’가 뿌리다.

고전 게임의 원리에 다양한 아이템과 소셜 요소를 집어넣어 현대인의 손맛을 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아예 고전게임의 IP(지적재산권)를 직접 들여와 게이머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경향도 있다.

한 모바일게임 업체 관계자는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중장년층이 늘면서 과거 그들이 즐겼던 오락실 게임들이 모바일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최근 사회의 복고트랜드와 맞물려 이같은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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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