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론 부인' 속 안철수-박원순 수상한 '밀약설' 전모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4.01.29 10:29:59
  • 댓글 0개

끝까지 연대 안 한다고? "냄새 난다 냄새나"

[일요시사=정치팀]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양측 모두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갈등의 골자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만 안겨주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두 사람은 불과 3년 전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며 극적으로 서울시장 자리를 쟁취했었다. 두 사람의 극한 대립에는 어떤 노림수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무소속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낮은 인지도를 가진 박 시장이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안 의원의 '양보'였다. 당시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분류되며 약 50%의 지지를 얻고 있던 안 의원은 단 5%의 지지를 받고 있던 박 시장에게 전격적으로 후보직을 양보하며 물러났다.

어제의 동지
벼랑 끝 승부

두 사람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내며 새누리당이 줄곧 차지해온 서울시장 자리를 쟁취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때때로 만남을 이어가며 정치적 동반자로 지내왔다.

그런 두 사람 사이가 이번에는 참 애매하게 됐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벼랑 끝 승부를 펼치게 된 것. 안 의원이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반드시 내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피력하면서 두 사람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게 됐다.

안 의원은 지난 21일 제주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당 창당을 공식선언했다. 이날 안 의원은 "오는 2월 창당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늦어도 3월까지 신당을 창당하겠다"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밝혔다. 특히 그는 지방선거 때 서울을 포함해 17개 광역단체에 모두 후보를 내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안 의원과 박 시장의 벼랑 끝 대결이 기정사실화 된 순간이었다.


지방선거의 꽃은 누가 뭐래도 서울시장 선거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수도이며, 인구 1천만의 거대도시 서울의 시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동안 정치권은 지방선거의 승패를 판가름 해왔다.

박원순 결국 안철수신당행 택할까?
신당 완주로 박원순 미리 견제?

지방선거를 통해 새정치의 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안 의원으로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명분이 마땅치 않다. 박 시장은 현재 서울시장 후보군 중 지지율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지층이 크게 중첩되는 안철수신당 후보가 출마할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이처럼 야권의 지방선거 방정식이 복잡해진 가장 큰 이유는 안 의원 측이 야권연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안 의원 측 창당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추위) 금태섭 대변인은 최근 민주당과의 야권연대 여부에 대해 "민주당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단순히 2등과 3등이 힘을 합치는 것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없다"며 "정말 야권이 이길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 정도가 돼야 연대를 말할 수 있다"며 물리적인 야권연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확실히 밝혔다.

질 게 뻔한데
연대는 못해?

그래서 당초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 측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민주당이 경기도지사 후보를 내지 않는 방법으로 간접적 연대를 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내다봤다. 이른바 서울-경기 빅딜설이다. 하지만 안 의원 측이 서울시장 후보를 반드시 내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강력하게 밝히고 나서면서 정치권의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벌써부터 야권에서는 이대로라면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만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의원과 박 시장은 서로 한 걸음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두 사람이 다른 노림수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이 신당 후보를 끝까지 완주시킴으로써 박 시장의 재선을 막으려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박 시장은 유력한 차기 대권 후보군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대권을 꿈꾸는 안 의원의 잠재적 경쟁자인 것이다.

반면 박 시장이 재선에 실패할 경우엔 단번에 유력 대권 후보군 반열에서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안 의원이 신당 후보를 완주시켜 잠재적 경쟁자인 박 시장을 미리 견제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으로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를 내야 한다는 명분과 잠재적 대권 경쟁자 견제라는 실리를 동시에 얻는 다목적 포석이라는 얘기다.

양측이 서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단지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쪽이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다른 한쪽은 단일화를 위해 무엇인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있는 지금은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절대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며 양측이 대립하고 있지만 선거가 임박해서는 결국 단일화에 임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의 신당행 가능성도 꾸준히 점쳐지고 있다. 안 의원 측의 무소속 송호창 의원은 과거 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다소 뜬금없는 제안으로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놨다. 박 시장이 민주당을 탈당하고 지방선거에 안 의원 측 후보로 나가달라는 제안이었다.

송 의원은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야권연대 가능성을 말한 게 아니라 박 시장이 민주당 당적을 버리고 신당에 합류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았다. 박 시장은 이미 민주당적을 유지하고 내년 선거에 나설 것임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수차례 밝힌 상태여서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정치권 일각에선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아무런 사전교감 없이 갑작스럽게 그런 발언을 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게다가 아무리 박 시장이라고 해도 현재 민주당의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의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점이다.

특히 박 시장은 정통 민주당원 출신이 아닌 탓에 민주당 내 경선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박 시장은 민주당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조직이 매우 빈약하다. 현재 민주당 내에서 박 시장을 추대 방식으로 선거에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다소 우세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서울 지역은 야권세가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 만한 선거라고 판단하는 민주당 내 많은 거물급 인사들이 서울시장 선거에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룰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민주당은 최근 당원과 대의원의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공직후보 선출방식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박 시장이라도 당내 경선에서 반드시 승리한다고 장담할 수 없다.

숨겨진 노림수
안-박 연합?

박 시장이 신당에 입당하지는 않더라도 일종의 우호조약을 맺고 또 한번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과 협력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 의원이 자기 세력을 확대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나는 호남처럼 자기사람을 심어서 '직할통치'하는 방식이고, 또 하나는 우호적인 인사를 만들어 '간접통치'하는 방식이다. 안 의원과 박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또 한번 연대한다면 간접통치의 대표적인 지역이 서울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박 시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포기하고 7월 재보선에 나설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당장은 상상하기 힘든 카드지만 3자 구도가 형성될 경우 박 시장의 패배 가능성은 크게 높아진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방선거에서 패배한다면 박 시장은 대권에서 순식간에서 멀어질 뿐만 아니라 재기하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박 시장이 후보직을 신당 후보에게 양보한 후 재보선에 출마한다면 박 시장 개인적으로는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후 바로 대권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에 중도사퇴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서울시장직보다 오히려 차기 대권 도전에 훨씬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서울시장 양보 후 7월 재보선 출마?
지방선거 겨냥한 다양한 가능성 대두

최근 안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는 (자신이) 양보 받을 차례"라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이 안 의원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향후 이미지메이킹 과정에서도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현재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해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안 의원이 직접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왔다. 안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의 이야기라며 펄쩍 뛰었다.

재보선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지역민들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것이다. 설사 나간다 하더라도 시민들은 안 의원이 또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최후의 선택은?
끝까지 몰라

하지만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시장을 꺾을 만한 후보군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당원과 지지자들 사이에서 안철수 직접 출마론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정치전문가는 "지금은 양 진영이 '연대 안 한다' '반드시 후보 낸다' '반드시 출마 한다'라는 등의 온갖 약속을 쏟아내고 있지만 향후 선거과정에서 약속을 깰 명분이야 얼마든지 만들면 된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 앞에 수도 없이 약속을 뒤집는 게 정치판"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 의원과 박 시장이 내릴 최종 결론은 끝까지 지켜봐야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