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통합진보당 계보 대해부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3:58:01
  • 댓글 0개

전국 곳곳에 '이석기 사람' 숨어있다

[일요시사=사회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국회 체포 동의를 거쳐 '내란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번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의원을 위시한 지하혁명조직 'RO'로부터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으로 이어지는 소위 NL 정파의 숨겨진 '고리'가 밝혀질지 정국은 지금 폭풍전야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89.3%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에 참석한 289명의 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258명이었다.

RO의 뿌리는
경기동부연합

현재 이 의원에게 씌워진 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녹취록 공개 등으로 기정사실화된 모양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 측은 관련 강력히 혐의를 부인하며 지하 혁명조직으로 지칭된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내란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서 RO를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RO는 "조직 가입식에서 단체 강령을 구두로 하달 받고, 단체 가입 시부터 그 실현을 결의함으로써 폭력적 방법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을 공유하고 국회를 사회주의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RO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국정원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라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회합의 성격도 '당 차원의 세미나'라고 못박았다.


그래서 다수 관계자는 RO의 실존 여부가 이번 수사를 판가름하는 열쇠라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RO에 정식 편제가 있는지 그들에게 무슨 직책이 부여됐는지 등이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정원은 "RO에서 파생된 RO산악회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며 그 수장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는 "1997년 해체된 민족민주혁명단(민혁당) 잔존세력이 모여 재건한 조직이 RO산악회"라며 "RO산악회는 이 의원의 지시에 따라 회합 여부가 결정 나는 것은 물론 주요 지령에 따라 조직원들의 활동 범위가 정해진다"고 분석했다.

RO 실체 두고 진실게임 "경기동부연합 실세"
경기서 시작해 전국구 조직으로 수사 확대

국정원은 RO산악회의 뿌리를 지난 19대 총선 과정에서 이름이 알려진 '경기동부연합'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소위 NL(민족해방) 계열 전국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하부 조직 중 하나로 경기 성남·용인을 근거지로 한 운동권 세력이다. 이중 수사망에 오른 RO산악회는 경기동부연합의 비선라인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믿을만한 전언에 의하면 공안당국이 체제전복세력으로 지목한 RO산악회가 지금은 해체된 조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RO산악회는 1991년 운동권 전국조직인 전국연합이 건재하던 때 활동하던 조직이지만, 전국연합의 해체 이후로는 산악회 형태가 아닌 폐쇄된 사조직 형태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그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최근까지 RO산악회의 정확한 조직도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어도 내란을 꾸미려면 체계적인 조직 편제와 그에 따른 업무 분장 등이 필수적인데 이를 입증할만한 조직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구두를 통해 확인되는 '가느다란 실'을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전체적인 밑그림'을 완성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종북몰이
계속된다


그런데 RO산악회의 해산은 이번 내란 예비음모 사건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먼저 통합진보당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RO란 이름은 국정원이 고의로 조직의 이름을 명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RO는 'VO(Vangard Organization·전위조직)', 'MO(Mass Organization·대중조직)' 등과 함께 운동권 조직체계의 한 단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해당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으로 이름을 올린 김칠준 변호사는 "이름을 알 수 없을 땐 '성명불상 단체'라고 해야 한다"며 "이름을 붙이면 행위에 대한 입증이 없어도 단체라는 이름으로 일망타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국정원이 개개인을 조직 단위로 묶어 '반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건의 공개수사 전환 후 검찰을 통해 나온 멘트가 눈길을 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의 첫 타깃이 RO산악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첫 타깃'이라는 표현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RO산악회는 '수사의 게이트'일 뿐이지 '마지막 종착지'는 아니다. 다시 말해 검찰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정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RO 출신 인사들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현역 정치인, 특수 공무원 등의 범죄 혐의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 밖의 인물로 분류되지만 검찰의 내사 혐의가 일정 부분 사실로 증명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놀라운 건 사정당국이 경기동부연합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조직을 주시하고 있다는 첩보다. 때문에 이번 수사가 이 의원을 구속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을 시작으로 NL계열 계파에 대한 전면적인 확대 수사가 예정된 것이다.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은 지난 몇 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끈질긴 내사를 받아왔다. 근 10년 사이 세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자산의 약속'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에 대거로 입당한 후 광주·전남 연합과 같이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당시 경기동부연합에 밀려 탈당한 정치인은 PD(민중민주) 계열의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 등이다.

경기동부연합은 학생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운동권 조직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의 시각일 뿐 '경기동부연합'은 기성 정치권의 '친노'처럼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이 의원이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 입학한 1982년께가 경기동부연합의 태동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기 성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재야 운동가들은 공업단지인 성남을 '혁명의 도시'로 부르며 군부와의 투쟁을 벌였다.

아울러 성남에는 도시빈민이 많은 탓에 경제적 차별 또한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성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의원은 이런 사회·정치적인 배경 속에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항쟁 이후 재야 운동권 세력이 사회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일부는 기성정치권에 편입됐다. 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에 남아서 통일·노동 운동을 계속했다. 현재 경기동부연합으로 통칭되는 사람들은 이 시기 성남으로 모여든 운동가 집단의 후신이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은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으로 꼽힌다.

경기동부연합
패권적·종북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운동권 출신 대학생 및 노동 운동가들은 1991년 전국연합의 깃발 아래 모였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후 최대의 '전국적 운동조직'으로 불리는 진보 세력의 총아이며, 불행히도 진보 계파정치의 뿌리이다. 


당시 전국연합의 주류는 '한총련' 등으로 대표되는 통일운동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운동세력 모두가 지금 말하는 '종북세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 당시 최대 화두는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의회정치로 편입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였다. 



전국연합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분화됐다. 제도권 정치로의 편입 여부가 세력을 갈랐다. 당시 정치세력화에 반대한 지역연합은 광주·전남연합, 서울연합, 대구·경북연합, 인천연합이었다. 반대로 정당운동을 선택한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 사업장 등을 기반으로 한 노동운동 세력이 탄탄했던 울산연합은 정당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후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에서 만나 당권다툼을 벌였다.

이처럼 범운동권 세력이 정당운동을 저울질했던 시기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운동 세력은 전국연합에서 급격히 힘을 잃었다. 경기동부연합의 민주당 지지파도 마찬가지. 당시 연합원들은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할 것이냐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냐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온건파'로 분류된 시민운동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후 경기동부연합은 범NL계열 중에서도 좀 더 급진적인 인물들이 면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함께하는 실천가의 삶을 목표로 했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집단 문화와 엄격한 규율로 조직을 유지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NL 정파 중 경기동부연합은 자신의 사생활마저 포기하고 통일운동에 몰입하는 등 조직의 헌신도 측면에서 다른 조직보다 월등했다"며 "단 그들은 조직에서 벗어날 경우 다른 정파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NL 노선'을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계파는 크게 3가지다.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이다. 이들은 흔히 '평등파'로 불리는 PD계열 운동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너무 패권적이고, 너무 종북적이란 내용이었다. 이중 패권적인 측면에서 가장 정도가 심했던 건 앞서 언급한 경기동부연합이다.

성남 기반 재야운동세력 후신
라이벌은 울산연합·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은 당직을 가지지 않은 비선라인이 조직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고, 명령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른바 대표자는 대중적인 인물을 세우고, 조직의 브레인인 '실세'는 막후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식이다.

이는 과거로부터 공안당국의 주 타깃이 조직의 대표자가 돼왔던 것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모든 정통 NL 조직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비선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화는 아직 대학가 일부 총학생회에 남아있다.

현재까지 경기동부연합과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정치세력은 울산연합이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고 ▲다양한 지역 사업 등에 손을 뻗쳐 자금을 마련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조직의 존재를 감췄고 ▲대학생·노조원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양성해 왔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은 조직의 확장성 여부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NL계열 정파가 조직원 규모를 늘리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NL 조직의 핵심 논리는 '불확실한 확장'이 아닌 '혁명이 가능한 수준의 조직원 유지'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날(혁명의 날 혹은 전쟁)이 왔을 때 대중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활동가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즉 전쟁 이후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NL 정파 간에도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계파 사이의 견해는 엇갈린다. 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계기가 바로 통합진보당 경선 파문이다. 당시 울산연합의 경우 정치적 판단을 중시해 이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제명할 것을 종용했지만 경기동부연합은 이를 거부했다. 이 경선 파문은 결국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져 통합진보당의 당원 명단을 사정당국에 넘겨주는 계기가 됐고, 공안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됐다.

울산·인천연합
모두 노린다

경선 파문 이후 경기동부연합의 정치적 파트너는 농민운동을 기반으로 한 광주·전남연합이 됐다. 지금은 이들을 합쳐 범경기동부연합으로 부른다. 정치권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난 총선 전후의 문건을 보면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물로는 이 의원과 김 의원을 비롯해 이정희 대표, 김선동 의원, 오병윤 의원, 윤원섭 전 민중의소리 대표,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 신창현 전 인천시당 위원장 등이 꼽힌다.

울산연합과 인천연합은 각각 노동자 세력이 더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인천연합에는 전국농민회가 포함돼 있고, 울산연합에는 경남·부산연합 등이 합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연합은 각각 경기동부연합보다 전통이 더 오래됐기 때문에 세력과 자금력 면에서 경기동부연합보다도 앞서 있는 것으로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지금 공안당국이 원하는 건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NL세력' 전체라며, 지금은 여론을 관망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대학생 운동권에 손을 뻗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과거 NL계열 조직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 몇몇 대학에 북한의 지령 유통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나에게도 제의가 왔었는데 만약 그 유통책의 윗선이 확인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기사 내용 중 일부는 임미리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논문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