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 통합진보당 계보 대해부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3: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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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곳곳에 '이석기 사람' 숨어있다

[일요시사=사회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국회 체포 동의를 거쳐 '내란 혐의'로 구속된 가운데 이번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이어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의원을 위시한 지하혁명조직 'RO'로부터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으로 이어지는 소위 NL 정파의 숨겨진 '고리'가 밝혀질지 정국은 지금 폭풍전야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89.3%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표결에 참석한 289명의 의원 가운데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258명이었다.

RO의 뿌리는
경기동부연합

현재 이 의원에게 씌워진 내란 예비음모 혐의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등 관계기관의 녹취록 공개 등으로 기정사실화된 모양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과 이 의원 측은 관련 강력히 혐의를 부인하며 지하 혁명조직으로 지칭된 RO(Revolution Organization)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이번 '내란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국정원은 국회에 제출한 이 의원의 체포동의요구서에서 RO를 지하혁명조직으로 규정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RO는 "조직 가입식에서 단체 강령을 구두로 하달 받고, 단체 가입 시부터 그 실현을 결의함으로써 폭력적 방법에 의한 사회주의 혁명의 목적을 공유하고 국회를 사회주의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의원 측은 "RO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국정원이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라며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고 있다. 녹취록에서 드러난 회합의 성격도 '당 차원의 세미나'라고 못박았다.


그래서 다수 관계자는 RO의 실존 여부가 이번 수사를 판가름하는 열쇠라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RO에 정식 편제가 있는지 그들에게 무슨 직책이 부여됐는지 등이 재판 과정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정원은 "RO에서 파생된 RO산악회가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며 그 수장으로 이 의원을 지목하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정원 관계자는 "1997년 해체된 민족민주혁명단(민혁당) 잔존세력이 모여 재건한 조직이 RO산악회"라며 "RO산악회는 이 의원의 지시에 따라 회합 여부가 결정 나는 것은 물론 주요 지령에 따라 조직원들의 활동 범위가 정해진다"고 분석했다.

RO 실체 두고 진실게임 "경기동부연합 실세"
경기서 시작해 전국구 조직으로 수사 확대

국정원은 RO산악회의 뿌리를 지난 19대 총선 과정에서 이름이 알려진 '경기동부연합'으로 판단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은 소위 NL(민족해방) 계열 전국조직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의 하부 조직 중 하나로 경기 성남·용인을 근거지로 한 운동권 세력이다. 이중 수사망에 오른 RO산악회는 경기동부연합의 비선라인으로 통칭된다.

그러나 믿을만한 전언에 의하면 공안당국이 체제전복세력으로 지목한 RO산악회가 지금은 해체된 조직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RO산악회는 1991년 운동권 전국조직인 전국연합이 건재하던 때 활동하던 조직이지만, 전국연합의 해체 이후로는 산악회 형태가 아닌 폐쇄된 사조직 형태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그 실체가 불명확하다는 게 핵심이다.

실제로 국정원은 최근까지 RO산악회의 정확한 조직도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적어도 내란을 꾸미려면 체계적인 조직 편제와 그에 따른 업무 분장 등이 필수적인데 이를 입증할만한 조직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구두를 통해 확인되는 '가느다란 실'을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전체적인 밑그림'을 완성하는 척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종북몰이
계속된다


그런데 RO산악회의 해산은 이번 내란 예비음모 사건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먼저 통합진보당 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RO란 이름은 국정원이 고의로 조직의 이름을 명명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RO는 'VO(Vangard Organization·전위조직)', 'MO(Mass Organization·대중조직)' 등과 함께 운동권 조직체계의 한 단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돼 왔다.

해당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으로 이름을 올린 김칠준 변호사는 "이름을 알 수 없을 땐 '성명불상 단체'라고 해야 한다"며 "이름을 붙이면 행위에 대한 입증이 없어도 단체라는 이름으로 일망타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즉 국정원이 개개인을 조직 단위로 묶어 '반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지점에서 이번 사건의 공개수사 전환 후 검찰을 통해 나온 멘트가 눈길을 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이번 수사의 첫 타깃이 RO산악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중 '첫 타깃'이라는 표현이 무척 의미심장하다.

복수 관계자에 따르면 RO산악회는 '수사의 게이트'일 뿐이지 '마지막 종착지'는 아니다. 다시 말해 검찰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현재 사정당국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RO 출신 인사들과 다양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현역 정치인, 특수 공무원 등의 범죄 혐의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 밖의 인물로 분류되지만 검찰의 내사 혐의가 일정 부분 사실로 증명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놀라운 건 사정당국이 경기동부연합보다 조금 더 큰 규모의 조직을 주시하고 있다는 첩보다. 때문에 이번 수사가 이 의원을 구속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을 시작으로 NL계열 계파에 대한 전면적인 확대 수사가 예정된 것이다.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은 지난 몇 년간 국정원과 검찰의 끈질긴 내사를 받아왔다. 근 10년 사이 세가 비약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군자산의 약속'을 계기로 민주노동당에 대거로 입당한 후 광주·전남 연합과 같이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때 당시 경기동부연합에 밀려 탈당한 정치인은 PD(민중민주) 계열의 정의당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전 의원 등이다.

경기동부연합은 학생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8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운동권 조직이다. 그러나 이는 외부의 시각일 뿐 '경기동부연합'은 기성 정치권의 '친노'처럼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이 의원이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에 입학한 1982년께가 경기동부연합의 태동으로 추정된다. 당시 경기 성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재야 운동가들은 공업단지인 성남을 '혁명의 도시'로 부르며 군부와의 투쟁을 벌였다.

아울러 성남에는 도시빈민이 많은 탓에 경제적 차별 또한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무렵 성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 의원은 이런 사회·정치적인 배경 속에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항쟁 이후 재야 운동권 세력이 사회로 빠르게 유입되면서 일부는 기성정치권에 편입됐다. 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이 활동하던 지역에 남아서 통일·노동 운동을 계속했다. 현재 경기동부연합으로 통칭되는 사람들은 이 시기 성남으로 모여든 운동가 집단의 후신이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은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으로 꼽힌다.

경기동부연합
패권적·종북적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운동권 출신 대학생 및 노동 운동가들은 1991년 전국연합의 깃발 아래 모였다. 전국연합은 해방 이후 최대의 '전국적 운동조직'으로 불리는 진보 세력의 총아이며, 불행히도 진보 계파정치의 뿌리이다. 


당시 전국연합의 주류는 '한총련' 등으로 대표되는 통일운동세력이었다. 그러나 이 통일운동세력 모두가 지금 말하는 '종북세력'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 당시 최대 화두는 '종북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의회정치로 편입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였다. 



전국연합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분화됐다. 제도권 정치로의 편입 여부가 세력을 갈랐다. 당시 정치세력화에 반대한 지역연합은 광주·전남연합, 서울연합, 대구·경북연합, 인천연합이었다. 반대로 정당운동을 선택한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이었다.

특히 현대자동차 사업장 등을 기반으로 한 노동운동 세력이 탄탄했던 울산연합은 정당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후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은 통합진보당에서 만나 당권다툼을 벌였다.

이처럼 범운동권 세력이 정당운동을 저울질했던 시기에 민주당을 지지했던 시민운동 세력은 전국연합에서 급격히 힘을 잃었다. 경기동부연합의 민주당 지지파도 마찬가지. 당시 연합원들은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할 것이냐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냐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온건파'로 분류된 시민운동 세력은 경기동부연합 주류에서 밀려났다. 이후 경기동부연합은 범NL계열 중에서도 좀 더 급진적인 인물들이 면면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주·민주·통일운동을 함께하는 실천가의 삶을 목표로 했고, 군대를 방불케 하는 집단 문화와 엄격한 규율로 조직을 유지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NL 정파 중 경기동부연합은 자신의 사생활마저 포기하고 통일운동에 몰입하는 등 조직의 헌신도 측면에서 다른 조직보다 월등했다"며 "단 그들은 조직에서 벗어날 경우 다른 정파에서 받아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NL 노선'을 갖고 있는 통합진보당의 계파는 크게 3가지다. 울산연합과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이다. 이들은 흔히 '평등파'로 불리는 PD계열 운동가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너무 패권적이고, 너무 종북적이란 내용이었다. 이중 패권적인 측면에서 가장 정도가 심했던 건 앞서 언급한 경기동부연합이다.

성남 기반 재야운동세력 후신
라이벌은 울산연합·인천연합

경기동부연합은 당직을 가지지 않은 비선라인이 조직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고, 명령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른바 대표자는 대중적인 인물을 세우고, 조직의 브레인인 '실세'는 막후에 숨어 영향력을 발휘하는 식이다.

이는 과거로부터 공안당국의 주 타깃이 조직의 대표자가 돼왔던 것에 대한 나름의 대응책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모든 정통 NL 조직은 중요한 정치적 판단을 비선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문화는 아직 대학가 일부 총학생회에 남아있다.

현재까지 경기동부연합과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정치세력은 울산연합이다. 경기동부연합과 울산연합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꾀했고 ▲다양한 지역 사업 등에 손을 뻗쳐 자금을 마련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조직의 존재를 감췄고 ▲대학생·노조원을 중심으로 '후계자'를 양성해 왔다.

여기서 흔히 오해하는 부분은 조직의 확장성 여부다. 일부 보수언론들은 NL계열 정파가 조직원 규모를 늘리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상 NL 조직의 핵심 논리는 '불확실한 확장'이 아닌 '혁명이 가능한 수준의 조직원 유지'다.

이를 두고 한 관계자는 "우리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날(혁명의 날 혹은 전쟁)이 왔을 때 대중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활동가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즉 전쟁 이후의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NL 정파 간에도 대중운동을 바라보는 계파 사이의 견해는 엇갈린다. 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낸 계기가 바로 통합진보당 경선 파문이다. 당시 울산연합의 경우 정치적 판단을 중시해 이 의원과 김재연 의원을 제명할 것을 종용했지만 경기동부연합은 이를 거부했다. 이 경선 파문은 결국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이어져 통합진보당의 당원 명단을 사정당국에 넘겨주는 계기가 됐고, 공안당국의 수사가 본격화되는 도화선이 됐다.

울산·인천연합
모두 노린다

경선 파문 이후 경기동부연합의 정치적 파트너는 농민운동을 기반으로 한 광주·전남연합이 됐다. 지금은 이들을 합쳐 범경기동부연합으로 부른다. 정치권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지난 총선 전후의 문건을 보면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물로는 이 의원과 김 의원을 비롯해 이정희 대표, 김선동 의원, 오병윤 의원, 윤원섭 전 민중의소리 대표, 안동섭 경기도당 위원장, 신창현 전 인천시당 위원장 등이 꼽힌다.

울산연합과 인천연합은 각각 노동자 세력이 더 강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인천연합에는 전국농민회가 포함돼 있고, 울산연합에는 경남·부산연합 등이 합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두 연합은 각각 경기동부연합보다 전통이 더 오래됐기 때문에 세력과 자금력 면에서 경기동부연합보다도 앞서 있는 것으로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 이 관계자는 "지금 공안당국이 원하는 건 경기동부연합이 아닌 'NL세력' 전체라며, 지금은 여론을 관망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대학생 운동권에 손을 뻗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과거 NL계열 조직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 몇몇 대학에 북한의 지령 유통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나에게도 제의가 왔었는데 만약 그 유통책의 윗선이 확인되면 대한민국 전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기사 내용 중 일부는 임미리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논문을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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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