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아기자기 작은 박물관여행 ⑤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우리 것에 대한 ‘사랑의 결실’맺다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낙안읍성 인근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전시한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하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있다. 2011년 개관한 이곳은 평생 우리 것을 사랑하고 지키고자 한 고 한창기 선생의 열정과 고집이 깃든 공간이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남도의 명소 ‘순천’
다양한 문화·유산의 보고…절경 만끽은 ‘덤’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을 둘러보려면 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1976년 월간 문화 종합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고 한창기 선생이다. 1936년 벌교에서 태어난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과 발군의 세일즈 실력으로 브리태니커 한국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유물 800여 점 보유
희소가치 높아

영어와 세일즈라는 무기로 정상에 섰지만, 정작 그는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있었다. 초가집을 없애고 마을 길을 넓히는 새마을운동으로 우리의 옛것이 서서히 파괴되고, 아름다운 청춘들이 독일의 광부와 간호사로 떠나며, 외화 반출이 금지되던 시대다. 선생은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팔아 많은 수익을 남겼는데, 영국으로 수익금 대신 편지를 보냈다. 백과사전을 판 수익금으로 한국 전통문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편지다.


판소리다섯마당의 음반과 악보를 남긴 것, 100회에 걸쳐 판소리음악회를 연 것, 잎차와 다기와 반상기를 보급한 것 등이 선생이 시작한 한국 전통문화 사업이다.

<뿌리깊은나무>는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선생의 관심과 애정이 발현된 잡지다. 제호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문헌 <용비어천가>에서 따왔으며, 창조적이고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잡지 형식을 추구했다. 한글·한자 혼용, 세로쓰기 방식이던 당시 신문이나 잡지와 달리 한글 전용, 가로쓰기 방식을 처음 선보였다. 잡지는 안타깝게도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1980년 8월 강제 폐간됐다.

한창기 선생이 창간한 잡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은 유물 전시실과 야외 전시 공간,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으로 구성된다. 유물 전시실은 선생이 만든 잡지의 이름을 따 각각 뿌리깊은나무(상설 전시실), 샘이깊은물(기획 전시실), 배움나무(세미나실)로 나뉜다. 전시실에는 유물 800여 점이 전시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기와, 옹기, 토기에서 청자, 백자, 불교 의식 용구, 민속용품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문화재급 유물도 있지만, 아직도 온기가 남았을 것 같은 서민 생활용품도 제법 많다. 서까래의 목재를 보호하기 위해 끼우던 서까래막새, 청동기시대의 별 모양 돌도끼, 한글과 한자가 혼용된 ‘정순왕후국장반차도’ 등 특이하면서도 희소가치 있는 유물들이다.

“의미 있는 일이라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한다”던 선생은 평생 홀로 지내면서 문화재를 수집했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도 문화재를 보듬었다. 선생이 마지막으로 수집한 문화재는 백자청화 매죽문 필통이라고 한다. 선생은 199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산은 성북동 자택 한 채가 유일했다. 하지만 선생이 평생 수집한 문화재 6500여 점은 이제 우리의 유산이 되었다.

박물관 주변에 멋들어진 한옥 한 채가 있다. 1920년대에 지어진 백경 김무규 선생 고택으로, 전남 구례에서 옮겨왔다.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송화가 눈먼 뒤 아버지 유봉과 함께 머무르는 곳으로, 하얀 한복을 입은 이가 사랑채 누마루에 앉아 거문고를 타자 유봉이 구음을 부르는 장면이 이 집에서 촬영되었다. 고택은 전형적인 양반 상류 주택으로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구성되었다.

문화와 자연의
향기 그윽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지척에 낙안읍성이 있다. 순천 낙안읍성은 1983년 사적 302호로 지정되었는데, 사적으로 지정되기까지 한창기 선생이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낙안읍성은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이 가장 좋다. 특히 서문을 지나 남문으로 내려오는 돌계단에서 낙안읍성의 풍경이 가장 잘 보인다. 남문까지 길게 이어진 성곽 길과 초가집, 흙길 등 온통 누런빛이 감도는 읍성의 풍경이 예스럽다.

낙안읍성의 진산인 금전산 자락에는 금둔사가 있다. 이곳에서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촬영했다. 금둔사에는 토종 매화 100여 그루가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납월홍매가 있다. 이르면 양력 1월 말에 꽃이 핀다니 봄 생각에 설렌다면 금둔사를 찾아볼 일이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은 자연경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갯벌과 갈대가 어우러진 생태계의 보고다. 갈대 데크를 따라 용산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것은 순천만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순천만에 대한 예의다. 생태 체험선과 갈대 열차도 타보자. 생태 체험선을 타면 순천만의 S자 갯골을 따라 나갔다가 대대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왕복 6km 선상 투어를 한다. 갯벌에서 쉬거나 먹이 활동을 하는 노랑부리저어새, 흑두루미, 청둥오리, 가마우지 등 다양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물때에 따라 운행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미리 확인해야 한다.


갈대 열차는 순천문학관에 가기 위한 교통편이다. 순천문학관은 <무진기행>으로 잘 알려진 소설가 김승옥 선생과 동화 작가인 고 정채봉 선생의 주요 작품과 유품을 전시한 곳이다. 갈대 열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30분 정도 걸리며, 순천문학관에 머무르는 시간은 15분 정도다.

해돋이와 해넘이의 장관도 빼놓지 말자. 여수반도 위로 장엄하게 떠오르는 화포해변의 해돋이로 시작해 고흥반도 뒤로 고요히 넘어가는 와온해변의 해넘이로 마감하면 순천 여행의 감흥은 하릴없이 깊어진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당일 코스
선암사 → 낙안읍성 → 점심 식사 → 뿌리깊은나무박물관 → 순천만자연생태공원

1박2일 코스
첫째 날 : 송광사 → 점심 식사 → 선암사 →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 금둔사 → 뿌리깊은나무박물관 → 저녁 식사와 숙박
둘째 날 : 낙안읍성 → 순천드라마세트장 → 점심 식사 → 순천만자연생태공원 → 순천문학관 → 와온해변 해넘이 → 귀가

웹사이트 주소
관광순천 http://tour.suncheon.go.kr
선암사 www.seonamsa.net
송광사 www.songgwangsa.org
낙안읍성 www.nagan.or.kr
순천만자연생태공원 www.suncheonbay.go.kr

문의 전화
순천시청 관광진흥과 061)749-4221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061)749-8855
순천만자연생태공원 061)749-4007
낙안읍성 061)749-3347
선암사 061)754-5247
송광사 061)755-0107
순천드라마세트장 061)749-4003
순천문학관 061)749-4392

대중교통
기차_용산-순천, KTX 하루 6회(05:20~19:20) 운행, 약 3시간10분 소요.
순천역 앞에서 61번(하루 5회), 63번(하루 10회), 68번(하루 9회) 버스 이용, 낙안읍성에서 하차.
※문의 : 코레일 1544-7788, www.korail.com 순천역 061)744-3172
버스_서울-순천, 우등고속 하루 19회(06:10~20:50) 운행, 약 3시간45분 소요.
대전-순천, 하루 4회(10:10~18:2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동대구-순천, 하루 4회(07:30~19:30) 운행, 약 3시간 소요.
부산-순천, 하루 8회(07:00∼22:00)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61번(하루 5회), 63번(하루 10회), 68번(하루 9회) 버스 이용, 낙안읍성에서 하차.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www.centralcity seoul.co.kr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www.djbusterminal.co.kr 대구터미널 070-8224-2222, www.usquare.co.kr 부산고속버스터미널 1577-9956 순천종합버스터미널 1666-6563
비행기_김포-여수, 하루 8회(06:40~18:05) 운항, 1시간 소요.
※문의 : 한국공항공사 1661-2626, www.airport.co.kr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승주 IC → 승주 방면 우회전 → 서평삼거리에서 낙안읍성 방면 857번 지방도로 우회전, 약 20km 직진 → 낙안읍성 주차장 → 뿌리깊은나무박물관

숙박
밀라노모텔 : 순천시 장선배기2길, 061)723-4207
에코그라드호텔 : 순천시 백강로, 061)811-0000, www.hoteleco grad.com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 : 승주읍 선암사길, 061)749-4202, www.scwtea.com
낙안민속자연휴양림 : 낙안면 민속마을길, 061)754-4400, www.huyang.go.kr
순천자연휴양림 : 서면 청소년수련원길, 061)749-4070, http://huyang.sc.go.kr

식당
전주산들청국장 : 청국장, 순천시 팔마2길, 061)725-6447
길상식당 : 산채정식, 송광면 송광사안길, 061)755-2173
대원식당 : 한정식, 순천시 장천2길, 061)744-3582
전망대가든 : 짱뚱어탕, 별량면 일출길, 061)742-9496
진일기사식당 : 김치찌개백반, 승주읍 선암사길, 061)754-5320

주변 볼거리
송광사, 선암사, 순천왜성, 고인돌공원, 주암호, 상사호, 정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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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