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별기획] MB정부 출범, 그 이후…③대형 사건·사고 풀스토리

  • 강현석 angeli@ilyosisa.co.kr
  • 등록 2013.02.07 18: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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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펑펑' 하루도 편한 날 없었다

[일요시사=사회팀] "이보다 더 바쁠 순 없다." 한 경찰 관계자는 MB정부 5년을 평가해달라는 얘기에 이렇게 답했다. 유난히 대형 사건이 많았던 지난 5년. 반드시 짚고 가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모아봤다. 


MB정부 5년은 말그대로 다사다난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민주화 정부 출범 이후 MB정부만큼 경찰력이 바삐 돌아간 적이 없었다"며 지난 5년을 회상했다. 그만큼 이번 정부 들어 사건·사고가 많았다는 뜻이다.

항간에서는 MB정부가 '꼼꼼한(?) 정부'로 불리지만 사건·사고 뒷수습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없다는 게 각계의 중론이다. MB정부의 대형사건 처리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건 지난 2008년 소위 '명박산성'으로 대변되는 '촛불정국'이 개시되면서다.

꼼꼼한 그분의
사건·사고 처리

지난 2008년 5월 10대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반대하는 촛불 집회 참가자였다. 이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광우병의 위험을 전해 듣고 친구들과 함께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에 정부는 '전교조 배후설' 카드를 꺼내들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10대인만큼 교육 현장에 있는 전교조가 학생들을 선동하지 않았겠냐는 얘기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흘러나왔다.

현장에 있던 학생들은 코웃음을 쳤다. 이와 동시에 촛불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20∼30대 청년층이 서울광장에 결합했고, 아이들 '먹을거리' 걱정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가정주부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폭등하는 물가와 불안정한 일자리에 시름하던 직장인들도 촛불 행렬에 대거 합류했다.

치솟는 촛불의 기세가 청와대를 위협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하지만 문제가 됐던 쇠고기 위생조건검역 장관고시 강행을 기정사실화했다.

이에 반발한 시민들은 도로를 점거한 채 가두시위에 나섰다. 경찰은 불법시위라며 물대포와 방패를 동원해 이들을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경찰의 진압은 연일 과격해졌고 시위대도 이에 맞서 폭력성을 띄었다. 촛불은 어느새 큰 횃불이 됐다.

당시 경찰 수장이었던 어청수 경찰청장은 "(시위 참가자들은) 폭력 시민이기 때문에 강경 진압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시민들은 '쇠고기 재협상'에서 '이명박 퇴진'으로 구호를 바꿨다. 매일 밤 서울 종로 일대에는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한 전·의경과 경찰 호송버스가 진을 쳤다. 정부와 시위대 간 끝을 알 수 없는 '벼랑 끝 대치'는 두 달이 지나서야 정부의 승리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정권초기 광우병 촛불 시위로 '전국 들썩들썩'
서울 한복판서 현대사 비극 용산참사 벌어져

그러나 광우병 촛불 시위는 우리나라 집회 풍토를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살벌한 죽창을 든 폭력 시위가 아닌 종이컵에 촛불을 든 문화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첫 집회였기 때문이다.

시위 기간 서울 곳곳에서는 흥겨운 노래가락이 퍼졌고, 함께 하는 춤사위가 광장마다 이어졌다. 초기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가 비폭력을 외치다보니 경찰력과 직접 맞서기보다는 공권력에 대한 날선 풍자와 유머가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선풍적인 인기도 이 같은 사회지형의 변화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회 저명인사들의 반성도 이어졌다. 당시 김지하 시인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온라인을 통해 소통하고 토론하는 새로운 정치집단이 대한민국에 생겨났다" 평한 뒤 "정치권이나 지식인을 비롯한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젊은 세대와의 교감을 더욱 넓히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촛불서 놀란 MB

용산서 터트렸다

그러나 촛불이 켜진 광화문 일대를 말없이 바라봤다던 이 대통령은 이때부터 시위대에 대한 적대감을 키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촛불시위의 트라우마는 끝없이 MB정부를 괴롭혔다. '촛불 정국' 이후 경찰은 '명박산성'과 같은 소극적인(?) 대응을 벗어나 방패를 들고 직접 내리찍는 강경진압을 선택했다.

그리고 곧바로 현대사의 비극인 '용산참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2009년 1월 서울 용산4지구 철거민 40여명은 철거가 예정된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그들은 정부의 재개발 정책을 반대하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들이 농성에 돌입한 시점부터 비극은 막을 올렸다.

이?날 경찰은 특공대를 동원해 강제진압에 나섰다. 철거민이 올랐던 망루에는 난데없이 불길이 일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절규와 함께 현장은 불바다로 변했다. 이 불길에 고 이상림씨를 비롯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원 1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전체 부상자는 23명에 달했다.

'용산참사'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날,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은 사건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김 전 총장의 사퇴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용산참사'는 다시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용산4지구 철거민 대표 이충연씨 등을 상대로 특수공무집행 방해 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기소된 이씨 등은 1심에서 모두 4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민변 등의 사민·시회단체는 검찰의 기소내용을 반박하며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화염병을 농성자가 던진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경찰 측에도 진압 과정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대법원은 2010년 11월 기소된 철거민들에 대해 유죄를 확정했다.

이씨 등이 수감된 후 이씨 가족과 철거민 유가족들은 매해 '용산참사 추모제'를 열었다. 사고가 발생한 용산4구역 재개발은 참사 발생 4년이 지나도록 답보 상태다. 비록 최근 용산참사 수감자들이 설 특별사면으로 풀려나긴 했지만 용산참사 진상규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어 공은 박근혜 정부로 넘어간 상황이다.

극심한 좌우분열
천안함 사건터져

용산참사가 벌어진 해와 같은 해인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하면서 우리나라는 극심한 좌우 분열을 겪게 된다. 해방 공간 이후 최대의 갈등 국면에 접어든 2010년. 북한발 대형 사고가 터졌다.

소위 '천안함 침몰 사건'이라 불리는 이 대형 국가재난은 당시 정치 상황과 맞물려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 변수로 급부상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각기 다른 해석이 우후죽순처럼 불거졌고, 진보와 보수로 나뉜 정치적 입장은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한 진실을 상호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0년 3월. 인천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PCC-772(천안함)가 침몰했다. 정부는 이 사건을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 지칭했다. 국방부는 "북한 정찰총국이 우리나라 초계함을 침몰시켰다"고 브리핑했다.

당시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104명의 군인 중 58명은 구조됐으나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모두 사망자로 확인됐다. 더불어 수색과정에서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순직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 실종자 수색 작업을 하던 '금양98호' 역시 인천 서해 부근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전원이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인한 사망자는 점점 늘어났다.

논란도 점차 확대됐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미국, 영국, 스웨덴 등의 국제 전문가 24명이 포함된 '천안함 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한 것"이라고 공식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천안함 공격을 규탄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하지만 합동조사단의 발표를 반박하는 증거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수함의 이동 경로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부터 어뢰가 북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이에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의혹 제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당시 북한은 사고 지점에 암초가 많다는 점을 근거로 스스로 좌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놓고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으나 결론은 '피격설'로 마무리됐다. 남북 간의 긴장은 고조됐으며, 대한민국 안에서도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는 글을 쓴 시민이 국정원으로부터 내사를 받는 등 이른바 '용공 논란'이 점화됐다.

이에 대해 천안함 조사 의혹을 제기한 이승헌 버지니아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천안함 발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고소됐다"며 "이것은 현재 우리 사회가 합리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고 비판했다.


천안함·연평도 도발 초긴장
연쇄살인·아동성폭행 잇달아

'천안함 사건'으로부터 8개월 후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통해 또 한 번 대한민국의 안보를 건드렸다. 2010년 11월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예고 없는 집중 포격을 가했다.

북한이 대한민국 영토를 직접 타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건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한민국은 보복 사격을 했고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남북 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남북 간의 기류가 심상치 않자 언론은 좌우 갈등이 극명한 민감한 이슈보다는 살인·성폭행과 같은 자극적인 이슈에 천착한다. 괜한 걸 건드렸다가 이해당사자로부터 고소를 당하거나 정부기관으로부터 내사를 받는 것에 비해 강력 사건은 비교적 안전한(?) 이슈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경향은 지난 2009년 용산참사 이후 "'강호순 사건'을 활용해 여론을 반전하라"고 지시한 청와대발 메일로 한 차례 드러난 적이 있다. 그러나 MB정부 들어 흉악범들이 기승을 부린 건 사실. 그 첫 시작은 지난 2008년 조두순이었다.

2008년 12월. 조두순은 초등학생 A양을 납치·성폭행했다. '조두순 사건'으로 알려진 이 범죄로 피해자 A양은 생식기와 내장 대부분이 파열되는 치명적인 내상을 입었다. 조두순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2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이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아동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최대 50년까지 상향 조정하고 공소 시효도 폐지하기로 하는 법안을 입법했다.

2009년 12월. 정부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주도한 아동성범죄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후 3개월도 되지 않아 '김길태 사건'이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10년 2월, 김길태는 예비 중학생인 한 아이를 납치·성폭행·살해하고 그 시신을 유기했다. 범죄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은 6년 만에 피의자 신상을 공개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범죄 예방 효과는 없었다.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는 더 잔인한 성격을 띠게 됐다.

2011년 4월. 늘어나는 성폭행 사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자 법무부는 모든 성범죄자들의 신상을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신상공개도 희대의 살인마 오원춘의 범행을 막진 못했다.

2012년 4월. 오원춘은 20대 여성 B씨를 집으로 납치한 뒤 강간을 시도했으나 실패, 이후 목 졸라 살해한 뒤 그 시신을 토막 냈다. 범행의 잔혹함이 가져다주는 충격도 컸지만 경찰의 늦장 대응은 당시 범국민적인 분노를 촉발했다. 이 사건으로 조현오 경찰청장은 스스로 옷을 벗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이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유족들은 오원춘 사형 판결을 목 놓아 기다렸다. 많은 국민도 오원춘의 사형을 바랬다. 하지만 오원춘은 대법원 선고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현재는 오원춘 사건으로 인해 사형수들에 대한 형 집행이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천안함 정국 이후
성폭행 보도 봇물

실질적인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됐던 대한민국은 이제 다시 '사형'을 부르짖는 상황에 놓여 있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금강산 관광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용산 참사 진실규명은 아직도 멀어 보이며, 전국에서는 철거민과 개발업자들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쇠고기 협상으로 물꼬를 튼 한·미 FTA가 2011년 체결됐지만 정부가 약속한 체감 경제 이득은 전무하다. 먼 미래의 누군가는 아마 MB정부를 '잃어버린 5년'이라고 평가할지도 모르겠다.

 

강현석 기자<k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지난 5년간 재난·재해

▲08년 02월 숭례문 방화사건 (사망 없음)
  08년 12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사망 8명)
▲09년 02월 화왕산 억새태우기 사고 (사망 6명)
  09년 11월 부산 실내사격장 화재 사고 (사망 10명)
▲10년 01월 한국 중부 폭설 (사망 1명·피해 106억)
  10년 11월 포항 요양원 화재 참사 (사망 10명)
▲11년 4월 구제역 파동 (사상 36명·피해 2000억)
  11년 7월 한국 중부 집중호우 (사망·실종 71명)
▲12년 5월 부산 노래방 화재 사고 (사망 9명)
  12년 8월 태풍 볼라벤 상륙 (사망·실종 25명·피해 80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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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K-POP 1위 하이브, 수사 리스크 타개책 있나?

[일요시사 취재1팀 ] 장지선 기자 =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가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업계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지만 내부는 엉망진창이라는 풍문이 돌고 있다. 레이블 간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졌고 주력 IP는 과거와 비교해 힘을 못 쓰는 모양새다. 연예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하려는 걸까? 2024년 5월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 자산 총액과 자본 총액을 더한 자산이 5조원을 넘긴 곳을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한다. 2024년 3월 공개한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하이브 자산 총계는 5조원을 넘었다. 당시 기준으로 재계 순위 85위에 올랐다.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공정거래법상 기업의 의무가 늘어난다. 엄격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상징성도 얻는다. 실제 하이브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국가 차원에서 하이브가 ‘업계 1위’로 인정받은 셈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K팝의 세계화로 앨범, 공연, 콘텐츠 등이 주요 수익원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급격히 성장한 것이 반영됐다”고 지정 배경을 밝혔다. 하이브의 대기업집단 지정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의 갈등이 한창 불거질 무렵에 이뤄졌다. 앞서 2024년 4월 하이브는 그룹 뉴진스 등이 소속된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고 있던 민 전 대표가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감사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 이른바 ‘민-하 대전’의 시작이었다. 이후 뉴진스, 다른 레이블까지 싸움에 뛰어들었다. 뉴진스는 자신들의 프로듀서는 민 전 대표라고 주장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고 다른 레이블은 민 전 대표가 제기한 표절 의혹 등에 반발해 소를 제기했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계약 문제도 송사로 번졌다. 그 사이 뉴진스는 쪼개졌고 멤버 1명은 계약 해지 후 피소됐다. 내부 문제 외에도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경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카카오와의 갈등도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와 하이브는 ‘아이돌 명가’로 불리는 SM을 인수하기 위해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였다. 인수전이 과열되면서 카카오가 주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범수 의장이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가 보석 석방되기도 했다. 1900억원대 부당이득 혐의 경찰 영장 청구, 검찰 반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두문불출 상태였다. 미국에 머물다가 인터넷 방송 BJ ‘과즙세연(본명 인세연)’과 거리를 걷는 사진이 찍혀 입길에 오른 것을 제외하면 행보를 알기 어려웠다. 방 의장이 프로듀싱을 도맡아 온 방탄소년단(BTS)도 ‘군백기(군대+공백기)’ 상태였다. 하지만 BTS의 광화문 공연 이후 방 의장에 대한 언급이 늘었다. BTS는 멤버 전원이 군대에 다녀온 뒤 ‘완전체’ 첫 행보로 광화문 공연을 선택했다. 정부와 서울시가 하이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된 공연은 각종 논란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하이브에 특혜를 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 시점도 이때다. 지난달 21일 광화문 일대는 경찰 등에서 동원된 경비 인원으로 삼엄했다. 광화문 인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문이 이뤄졌고 그 수위는 살벌했다. 공연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들도 검문 대상으로 지목됐고 결혼식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사람도 어김없었다. 정부와 전폭적인 지원에도 BTS 공연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인파는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앞서 26만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공연 직후 경찰은 4만명으로 추산했고 하이브는 10만여명으로 발표했다. 어떤 기준을 갖다 대도 예상치보다 적은 인원이 모이면서 공연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와 모두의 광장인 광화문을 사기업이 특정 시간대에 독점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회사 뒤에 숨어 있나 실제 BTS의 광화문 공연은 ‘관급 행사’를 방불케 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전 국무총리가 하이브를 방문했고 서울시는 공연 당일 경비를 위한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 물 샐 틈 하나 없는 경비 체제를 구축한다는 명분으로 안전 관리에만 경찰 6700여명 등 모두 1만5000명에 이르는 인력이 동원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가세했다. 이 대통령은 공연 전에는 안전 관리를 당부하는 목소리를 냈고 공연 이후에도 호평을 남겼다. 이 대통령은 공연 이후인 지난달 2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번 공연은 광화문 홍보를 넘어 대한민국 홍보에 결정적이었다”며 “기획을 잘 해서 잘 진행했다”고 평했다. 대통령까지 언급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공교롭게도 방 의장에 대한 비판으로 튀었다. 방의장이 현재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점, 그 내용이 주식과 관련된 것이라 정부 정책에 반한다는 점 등이 화두가 됐다. 이 대통령은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이라면서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방 의장은 하이브 IPO(기업 공개) 이전인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설명하는 등 기망행위를 통해 주식을 매수하고 이후 자신과 관련된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액수는 19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7월 이 대통령의 ‘주가조작은 패가망신’ 경고 이후 주식시장을 교란한 혐의를 받는 인사들에 대한 금융 당국의 제재가 강해졌다. 당시 지목당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방 의장이었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해 7월16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 위반 혐의로 방 의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경찰도 같은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미국 압박 경찰 발끈? 검․경의 중복 수사 우려까지 불거졌던 사안은 경찰이 내사에 착수한 2024년 말 이후 1년 반이 지나도록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방 의장을 처음 소환한 이후 같은 해 11월까지 총 5차례 조사했다. 이후 5개월간 추가 소환이나 신병 확보가 진행되지 않으면서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1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방 의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정보 서울경찰청장은 구속영장 청구 하루 전인 지난 20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방 의장 수사는 거의 마무리됐다”며 “법리를 검토 중이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종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고 다음 날 방 의장에 대한 신병 확보에 나선 것이다. 방 의장 측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장기간 성실히 수사에 협조했음에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 법적 절차에도 충실히 임해 최선을 다해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압박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최근 방 의장의 미국 방문과 관련해 출국 협조를 요청하는 서한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한에는 오는 7월4일 예정된 미국 독립기념일 250주년 행사 참석과 BTS의 월드투어 지원 필요성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방 의장은 출국금지 상태다. BTS 광화문 공연부터 특혜 의혹 솔솔 나와 주한미국대사관의 행보에 경찰 내부는 격앙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BTS 콘서트나 독립 250주년 기념행사 등을 고리로 미국 측을 움직여 수사 편의를 우회 압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이번 사건의 공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지난해 미국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는 상황이라 방 의장이 입을 맞추거나 도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경찰의 신병 확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하이브는 국민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주한미국대사관의 서한 발송이 당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하이브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행사 참석을 요청받은 적도 없고 출국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고 전했다. 구속 갈림길에 서 있던 방 의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반려로 한숨 돌리게 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 24일 방 의장에게 신청된 구속영장을 돌려보냈다. 검찰은 “현 단계에서 구속을 필요로 하는 사유 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일단 구속 위기는 피했지만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하이브의 최대 변수가 되는 모양새다. 하이브는 핵심 IP인 BTS 컴백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상황에서 광화문 공연이 한 차례 논란이 된 데 이어 오너 리스크까지 덮쳤다. 무엇보다 방 의장이 하이브에 끼치는 영향이 절대적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발생할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후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너 리스크 K-팝도 영향 연예계 관계자 사이에서는 방 의장의 사법 리스크가 하이브를 넘어 K-팝 업계에 미칠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우리나라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K-팝의 이미지가 업계 1위 수장의 오너 리스크로 얼룩질 수 있다는 걱정이다. 방 의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