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이라크의 결말을 모를 리 없다. 2003년 이라크는 ‘대량살상무기’ 의혹 하나로 미국의 공격을 받았고, 정권은 붕괴됐다. 사담 후세인은 처형됐고, 국가는 해체 수준의 혼란에 빠졌다. 이 장면은 중동 전체에 “핵이 없으면 무너진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란은 그 메시지를 가장 깊이 받아들인 나라다. 그래서 이란의 핵 개발은 군사 전략이 아니라 ‘정권 생존 전략’이다.
북한은 이보다 더 노골적이다. 북한은 이라크와 리비아의 사례를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핵을 ‘체제 보장의 수단’으로 규정해 왔다. 리비아는 핵을 포기한 뒤 정권이 붕괴됐고, 이라크는 핵이 없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북한의 결론은 단순하다. “핵을 가지면 공격받지 않는다.” 실제로 핵 보유 이후 북한 체제는 단기적 안정성을 확보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 대가다. 핵을 선택하는 순간 국가는 경제를 포기하는 구조에 들어간다. 이란, 이라크, 북한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은 ‘제재’다. 핵 개발 또는 그 의혹은 곧 금융 제재, 무역 차단, 투자 봉쇄로 이어진다. 달러 결제망에서 배제되고 글로벌 시장에서 밀려난다. 자원을 가지고 있어도 팔 수 없고, 팔아도 제값을 받지 못한다. 경제는 성장 대신 봉쇄를 선택하게 된다.
이란은 그 대표적 사례다. 세계 4위 석유, 2위 천연가스를 보유하고도 1인당 소득은 약 5000달러 수준에 머문다. 같은 산유국인 카타르는 7만달러를 넘는다. 차이는 자원이 아니라 시장 접근성이다. 이란의 자원은 제재에 묶여 시장으로 흐르지 못한다. 자원은 부의 원천이 아니라 ‘갇힌 자산’이 된다.
이라크 역시 다르지 않다. 막대한 석유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쟁 이후 국가 시스템이 무너졌다. 정치 불안과 부패, 인프라 붕괴가 겹치면서 자원이 경제로 전환되지 못했다. 현재 1인당 소득은 약 6000달러 수준이다. 자원이 있어도 국가가 작동하지 않으면 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북한은 더 극단적이다. 석탄, 철광석, 희토류 등 자원이 풍부하지만 1인당 소득은 약 1000~1500달러 수준에 머문다. 제재로 정상적인 수출이 어렵고, 일부 자원은 중국에 의존적으로 저가 판매된다. 자원이 산업으로 확장되지 못하면 국가는 부유해질 수 없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핵 또는 군사력을 통해 ‘정권 생존’을 우선했고, 그 대가로 ‘경제 제재’를 감수했다. 그리고 자원을 산업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구조에 갇혔다. 생존은 얻었지만 번영은 잃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이론이 등장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오티는 ‘자원의 저주(Resource Curse)’를 통해 자원이 많은 나라일수록 오히려 성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자원의 양이 아니라, 그것을 시장에서 가격으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국가의 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원이 아니라 제도라고 강조했다. 포용적 제도는 시장을 확장하지만, 권력 유지에 집중된 제도는 시장을 위축시키고 경제를 고립시킨다.
이란, 이라크, 북한은 이 두 흐름이 결합된 사례다. 자원은 충분했지만, 핵을 선택하는 순간 국제 시장과의 연결이 차단됐고, 동시에 권력 중심의 제도가 강화됐다. 결국 자원은 산업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통제의 수단으로 묶였으며, 경제는 외부와 단절된 구조에 갇혔다.
이번 이란 사태 역시 이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핵은 협상의 카드이자 방어막이다. 그러나 그 방어막은 동시에 경제를 가두는 벽이 된다. 갈등은 반복되고 제재는 지속된다. 전쟁이 끝나도 고립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다음은 어디인가. 일부 국제 안보 전문가들은 이제 미국의 전략적 시선이 북한으로 향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든, 체제 압박이든,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흐름은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라크 다음이 이란이었다면, 그 다음이 북한이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아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핵을 가진 북한, 제재 속에 있는 북한, 그리고 그 체제가 만들어낸 경제 구조는 한반도의 현실이다.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안보와 경제가 동시에 연결된 문제다.
자원은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지 않으며 구조가 결정한다. 핵을 선택한 국가는 시장에서 밀려났고, 시장에서 밀려난 국가는 가난해졌다. 이란, 이라크, 북한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같은 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그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기준이 있다. 핵을 이미 가진 국가들이, 핵을 가지려는 국가를 막는 질서는 분명 완전하지 않다.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정성 논란도 피할 수 없다. 누구는 허용되고 누구는 금지되는 구조 자체가 정치적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지금의 국제 질서는 이 불완전함 위에서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인류가 선택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1968년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 확산을 제한하기 위한 국제적 약속이다. 핵이 늘어날수록 전쟁의 문턱은 낮아지고 충돌은 통제 불가능해진다. 결국 이 조약은 파국을 지연시키는 최소한의 장치이며, 대부분의 국가는 이 불완전한 규칙을 받아들이고 유지해 왔다.
문제는 이 약속이 무너질 때다. 이란, 이라크, 북한처럼 핵을 둘러싼 선택의 갈림길에 선 순간, 국제 질서와의 충돌은 구조적으로 발생한다. 제재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되고, 고립은 일시가 아니라 지속 상태가 된다. 핵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질서 밖으로 나가는 선언이거나, 혹은 질서 안에서 제거되는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대가는 이미 세 나라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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