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왜 수입을 전략으로 안 보나

세계는 이미 ‘공급망 전쟁’ 참전

한국은 오랫동안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였다. 무역 흑자가 국가 성적표였고, 해외로 얼마나 많이 파느냐가 정부와 기업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이었다. 한국무역협회(KITA)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각종 수출 진흥 기관이 한국 경제의 심장처럼 작동해 왔다. 수출이 곧 국력이었고, 수출 증가는 곧 성공이었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 공식은 무너졌다.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식량, 의약품, 희토류까지 한국 경제의 핵심은 이제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다. 필요한 것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오느냐가 성장과 안보를 동시에 결정한다. 지금 세계는 수출의 시대가 아니라 공급망의 시대다.

성장과 안보
동시에 결정

그런데 한국의 제도와 인식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수출을 장려하는 조직은 강력하지만 수입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은 주변부에 놓여 있다. 무역협회와 코트라에 비해 한국수입협회(KOIMA)의 존재감은 턱없이 작다.

산업과 안보가 결합된 이 시대에 수입은 곧 국가의 생존선인데 우리나라가 수입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수출의 나라, 그러나 이젠 공급망의 나라= 한국은 수출로 성장한 나라다. 무역협회와 코트라는 지난 60년 동안 수출 전선의 사령부 역할을 해왔다. 수출 실적은 곧 국력으로 인식됐고, 무역 흑자는 정부의 성과표였다.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무역국가로 성장했다. 이 구조는 한국의 산업화와 중산층 형성을 동시에 떠받쳤다.

그러나 이제 구조가 바뀌었다. 반도체와 배터리, 에너지와 식량, 의약품과 희토류는 모두 해외에서 원료와 부품이 들어와야만 산업이 돌아간다. 수출은 돈을 벌지만, 수입은 공장을 살린다. 공급망이 무너지면 아무리 수출 능력이 있어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최근의 경제 위기는 모두 공급망에서 시작됐다.

이제 한국은 ‘수출의 나라’에서 ‘공급망의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오느냐가 국가 경쟁력이 된다. 이 변화에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 국가 번영은 취약해진다. 경제 성과와 국가 생존이 더 이상 같은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수입 전쟁’에 들어섰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무역 전쟁의 본질은 수출이 아니라 수입 통제다. 반도체 장비, 배터리 원료, 희토류, 의약품 같은 전략 물자는 이제 군사적 자산처럼 관리된다. 누가 누구에게서 들여오느냐가 외교의 핵심이 됐다. 공급망은 이제 외교 협상 테이블의 가장 앞줄에 놓여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2020년 들어 공식 무너져

유럽과 일본은 이미 수입을 국가안보 문서에 포함시키고 있다. 특정 국가 의존도를 제한하고, 공급선을 다변화하며, 위기 시 비축 물량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에너지와 원자재, 핵심 부품 등에 이르는 조달 체계를 국가 전략으로 다루고 있다. 수입은 더 이상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조달 전략이 곧 안보 전략이 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한국만 여전히 수출 지표에 매달리고 있다. 공장이 멈추는 이유는 주문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품과 원료가 끊겼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조선과 자동차 모두 공급망 앞에서 동시에 취약해진다. 공급망이 곧 경제의 생명선이다. 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성장도 안보도 함께 흔들린다.

수입협회, 가장 조용한 전략 기관= 수입협회는 화려하지 않다. 대기업 광고도 없고, 언론의 주목도 적다. 그러나 이 조직은 한국 산업의 혈관을 관리하는 곳이다. 에너지, 원자재, 부품, 식량, 소재가 이 협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온다. 보이지 않지만 이 흐름이 멈추면 산업은 즉시 마비된다. 바로 이 점이 수입협회의 존재 이유다.

수입협회는 단순한 중개 조직이 아니다. 해외 공급자 발굴, 국가별 리스크 분석, 조달선 다변화, 긴급 수입 체계 구축까지 모두 담당한다. 이는 무역이 아니라 경제 안보의 영역이다. 민간 조직이지만 사실상 국가 공급망의 한 축이다. 산업통상부와 외교부의 정책이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연결하는 역할도 맡는다.

수입협회
큰 역할

한국이 경제위기를 맞을수록 이 조직의 중요성은 커진다. 수입이 끊기는 순간 산업은 멈추고, 산업이 멈추면 국가는 흔들린다. 수입협회는 평소 보이지 않지만, 위기 때 가장 중요한 기관이다. 이들이 조용히 버텨주기에 경제는 연속성을 유지한다. 공급망의 마지막 안전망이 바로 이곳이다.

수입협회 부회장이 던진 경고= 필자는 최근 이의시 수입협회 부회장을 만났다. 그는 “지금 세계는 물건을 파는 경쟁이 아니라,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경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원자재와 핵심 부품은 이미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왔다고 했다. 국가 간 관계가 곧 조달 능력을 결정하는 시대라는 의미였다.

그는 또 “수입선 하나가 끊기면 공장 하나가 아니라 산업 하나가 멈춘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반도체를 수출하지만, 그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와 장비는 외국에서 들어온다. 이 체인이 끊기면 수출은 무의미해진다. 공급망이 끊긴 수출은 숫자만 남을 뿐이다.

이 부회장의 말은 업계의 하소연이 아니라 국가 전략에 대한 경고였다. 수입을 관리하지 않는 나라는 산업 주권을 가질 수 없다. 이 시대의 경쟁력은 확보 능력이다. 누가 더 많이 파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오래 버티느냐의 경쟁으로 세계는 이미 바뀌었다.

수출 강국, 그러나 수입 전략은 비어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출 지원 체계를 갖고 있다. 무역협회와 코트라는 해외시장 개척과 기업 지원에서 막강한 역할을 해왔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것이 한국 성공의 핵심이었다. 수출 드라이브는 한국을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국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지금 제조업의 병목은 판매가 아니라 조달이다. 공장을 더 지을 수 있어도, 원료와 부품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정책과 예산은 여전히 수출 쪽에 집중돼있다. 이 구조는 현실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무엇보다
공급망 유지

수입협회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국가 전략의 중심에는 서 있지 못했다. 현장에서 조달 리스크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조직이 제도권에서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이 불균형이 바로 한국 경제의 가장 위험한 구조적 취약점이다. 수출과 수입의 위상이 뒤바뀐 시대에 제도는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다.

공급망은 경제가 아닌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은 곡물과 에너지의 흐름을 무너뜨렸으며, 중동의 불안은 한국 산업의 연료비를 흔들었고, 대만 해협의 긴장은 반도체 공급망을 위협했다. 이 세 지역의 불안은 서로 다른 전쟁처럼 보이지만, 모두 한국의 조달선에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 세계의 균열이 곧바로 한국 경제에 비용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공급망은 금융이나 무역을 넘어 군사와 외교의 영역이 됐다. 누가 누구에게서 들여오는지는 그 나라의 전략을 말해준다. 수입 루트는 곧 외교 지도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는 정치적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수입 구조는 이제 국가 전략 문서에 올라가야 할 사안이 됐다.

한국이 수출 중심 사고에 머물면, 우리는 언제든 외부 충격에 취약해진다. 수입을 전략화할 때 비로소 국가는 안정된다. 조달 능력이 흔들리지 않을 때 산업도 외교도 일관성을 가질 수 있다. 공급망을 통제하는 나라만이 위기 속에서도 자율성을 지킬 수 있다.

수입협회는 보이지 않는 국경수비대= 군대가 영토를 지킨다면, 수입협회는 산업의 국경을 지킨다. 철강, 배터리, 반도체, 식품, 의약품 산업이 끊기지 않도록 해외 공급망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역할이다. 수입협회는 총알과 미사일이 아니라 계약서와 선적 스케줄로 국가의 생존선을 지킨다. 전쟁이 나지 않아도 경제 봉쇄는 언제든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협회는 전쟁과 제재가 시작되기 전 대체 루트를 만들 수 있다. 가격이 폭등하기 전에 조달선을 바꿀 수 있다. 이는 시장 기능이 아니라 국가 기능이어야 한다. 민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정치·외교 리스크를 미리 분산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공급망은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안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고 수준의 지원 체계
결국 세계의 흐름 결정

수입협회는 이미 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가 이를 공식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안보·외교·산업 정책의 한 축으로 제도화하지 않는 한 수입협회의 역량은 개별 기업의 대응 수준에 머문다.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가 인프라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의 관세는 수출 정책이 아닌 ‘수입 통제’= 도널드 트럼프가 벌였던 관세 전쟁은 흔히 ‘미국의 보호무역’으로 해석되지만, 본질은 수입 통제였다. 그는 미국에 들어오는 철강, 알루미늄,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부품의 흐름을 정치적으로 재설계했다. 중국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도 미국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미국의 조달선을 중국에서 떼어내기 위한 전략이었다.

트럼프가 문제 삼은 것은 ‘얼마나 팔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서 사느냐’였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값이 싸다는 이유로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관세, 수입 규제, 원산지 규칙을 동원해 미국 기업들의 구매 루트를 바꾸려 했다. 이는 무역 정책이 아니라 공급망 통제 정책이었다.

앞으로도 미국은 이 전략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에 대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것을 국가 전략으로 유지하고 있다. 관세는 수입 가격을 조정하는 도구일 뿐, 그 목적은 조달 질서를 바꾸는 데 있다. 이것이 바로 세계가 이미 ‘수입 전쟁’에 들어섰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미국과 일본은 ‘수입 조직’이 국가 권력= 미국에는 눈에 띄는 ‘수입협회’라는 간판은 없지만, 실제로는 훨씬 강력한 국가 조달 체계를 갖고 있다. 미 상무부, 국방부, 에너지부, 그리고 전략물자 조달을 담당하는 DLA(Defense Logistics Agency)는 전 세계 공급망을 군사 작전처럼 관리한다.

미국이 반도체, 희토류, 배터리, 의약품을 어디서 들여올지를 결정하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다.

일본은 더 노골적이다. 일본의 JOGMEC(에너지·금속광물자원기구), 무역보험기구(NEXI), 종합상사 네트워크는 사실상 국가 수입 사령부다. 일본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만들어 둔 조달망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일본은 자원이 없는 나라임에도 공급망 위기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이 두 나라는 수입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다. 조달선, 비축량, 대체 루트는 국가 전략 문서에 들어간다. 한국처럼 수입을 민간의 거래 문제로 방치하지 않는다. 수입 조직이 곧 국가 권력인 나라와 수입을 여전히 ‘상거래’로 보는 나라 사이의 격차가 바로 오늘의 글로벌 경쟁력 차이다.

한국 경제의 다음 전략 축은 수입= AI 시대와 기후위기 시대에 한국은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 전기차, 반도체 공장은 모두 이전보다 훨씬 많은 원자재를 소비한다. 수입 없는 첨단산업은 존재할 수 없다. 기술 강국일수록 해외 자원과 부품에 대한 의존도는 오히려 더 커진다.

한국 경제
다음 전략

이제 한국 경제의 전략 축은 수출에서 수입으로 이동해야 한다.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국가의 질문이 돼야 한다. 공급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나라는 성장의 속도도, 위기의 깊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수입협회는 그 질문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조직이다. 이 조직을 중심부로 올려놓는 순간, 한국은 비로소 공급망 국가가 된다. 수출로 컸다면, 이제 수입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자원을 지배하는 국가는 시장을 지배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국가는 결국 세계의 흐름을 결정한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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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