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그린란드 매입 구상을 둘러싸고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 갈등을 빚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한국 관세 협상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각) SNS 트루스소셜에서 “한국 입법부가 한·미 간 무역 합의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다”며 “자동차, 목재, 의약품 등 기타 모든 상호 관세(국가별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는 이재명 대통령과 지난해 7월30일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고, 10월29일 한국에 왔을 때 합의 조건을 재확인했다”면서 “왜 한국 국회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합의된 거래 내용에 맞춰 관세를 신속하게 인하해 왔다”며 “무역 상대국도 그렇게 행동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정경제부는 이날 긴급 메시지를 내고 “현재 미국 측의 의중을 파악 중에 있다”며 “앞으로 한국 국회의 법안 논의 상황을 전달하는 등 미국 정부와 소통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이날 임이자 국회 재정경제위원장과 면담해 특별법 처리 문제를 논의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도 즉각 반응했다. 국회 재경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정태호 의원은 당정협의회 뒤 기자들과 만나 “대미투자특별법을 오는 2월까지 상정해 통과시켜달라는 게 정부의 요청이었다”며 “12월과 1월은 일종의 법안 숙려 기간으로, 2월 첫째·셋째 주 전체회의 개최를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 비준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관세 협의가 이뤄진 결과, 트럼프의 뜻대로 관세 인상 보복이 가해질 수 있는 취약한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면서 “대미 통상 상황 파악을 위해 당장 긴급 현안질의를 열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관세 압박이 단순히 ‘빠른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수준을 넘어, 입법 지연을 고리로 재협상 구도를 만들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현지 언론이 한국의 ‘대미 투자 집행 지연’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미국 측 논리에 힘이 실린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지난 20일 <블룸버그>는 원화 약세 등 외환시장 부담을 이유로 한국이 올해 예정됐던 대미 투자 최대 200억달러(약 29조3280억원) 집행 시점을 늦출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앞서 구 부총리는 지난 16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외환 상황에서는 적어도 올해 안에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긴 어렵다”며 속도가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다만 이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루는 게 아니”라며 “투자 대상 프로젝트 선정 등 절차를 감안하면 투자 자금이 올 상반기 안에 집행되기는 쉽지 않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일각에선 허위·조작 정보 유통 시 플랫폼 사업자에게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에 대한 미국 측 불만이 누적돼온 점도 이번 압박의 배경으로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 국무부는 지난해 성명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표현의 자유를 저해한다”며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구상을 둘러싼 덴마크 등 EU 회원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관세 인상을 협상 카드로 꺼냈던 전례를 들어, 이번 조치 역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오는 2월1일부터 덴마크 등 유럽 8개국에 1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가, 지난 21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동 뒤 “그린란드의 향후 지위와 관련한 합의 윤곽을 마련했다”며 보류한 바 있다.
한편,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두고 여야 이견은 여전하다. 민주당이 투자 이행을 위한 제도적 틀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국회 비준 필요성과 재정 부담을 문제 삼고 있다.
송 원내대표는 지난달 2일 “이재명정부가 매년 약 30조원의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안긴 한·미 관세 협상을 맺어놓고도, 마땅히 거쳐야할 국회 비준 절차는 외면하고 있다”며 “법부터 먼저 만들겠다는 것은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재정 충당 방식과 별도 공사 설립 등에서도 중대한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입금과 보증채권 등 사실상 모든 재정 수단을 동원해 매년 2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사실상 재정으로 충당하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며 “민간 투자처럼 포장됐지만 국가 재정을 투입하는 구조로, 외화 자산 운용 수익으로 전액 충당하겠다는 정부 설명과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상업적 합리성에 따라 투자를 거부할 수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호도하고 있지만, 그 경우 관세 재부과가 불가피할 텐데, 어떤 대책이 있는지 누구도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공허한 말잔치에 불과한 협상 실패”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승인’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양국은 지난해 11월14일 서명한 ‘한미 전략적 투자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 이행을 위한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는 달의 1일자로 관세 인하 조치를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당시 정부는 곧바로 법안 처리 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내놨던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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