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AI 시대, 이제 태양 위에 시간 올려놓을 때

세계 단일 시간, 선택 아닌 행성 문명의 조건

우리는 시간을 너무 오래 태양에 맡겨뒀다. 동쪽에서 해가 뜨면 아침이고, 머리 위에 오르면 낮이며, 서쪽으로 기울면 저녁이 되고, 사라지면 밤이라는 질서는 인류 수천년 동안 거의 의심받지 않았다. 인간은 그 그림자 속에서 하루를 나눴고, 각 나라의 시간대는 태양의 위치를 기준으로 정해졌다. 국경은 곧 시간의 경계였다.

그러나 지금, 이 질서가 여전히 유효한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AI로 묶인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는 태양보다 빠르고, 거래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으며, 전쟁과 재난, 금융과 여론은 실시간으로 지구를 관통한다. 뉴욕의 새벽 결정이 서울의 점심을 흔들고, 런던의 오후 뉴스가 시드니의 밤을 깨운다.

이미 우리는 같은 사건을 같은 순간에 겪고 있다. 그런데도 시간만은 여전히 각자의 태양 아래 흩어져 있다.

1884년 국제자오선회의가 그리니치를 세계 시간의 기준으로 채택한 이후, 인류는 140년 동안 하나의 자오선(경도선)을 중심으로 시간을 맞춰 살아왔다. 그러나 AI와 초연결의 문명으로 들어선 지금, 그 기준은 더 이상 삶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19세기의 태양이 만든 시계 위에서 21세기의 디지털 문명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 이 표준을 존중하되 역사 속에 놓아두고, 새로운 시간 통합 체계로 넘어가야 할 때다.

지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이는데, 시간만은 고대의 자연 질서에 묶여 있는 셈이다. 발상을 뒤집어 보자. 지금까지는 태양이 낮과 밤을 만들고, 그 위에 시간이 얹혀 있었다. 이제는 시간을 낮과 밤 위에 놓을 수는 없을까. 전 지구가 하나의 표준 시간표 속에서 살고, 각 지역은 그 시간표에 맞춰 생활의 낮과 밤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계를 쓰면 어떤 나라에서는 오전 7시가 저녁이 되고, 오후 7시가 아침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기이해 보이지만, 이는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낯섦’의 문제다. 시간의 기준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배신이 아니라 문명의 선택이다.

인류는 이미 여러 차례 시간 감각을 바꿔왔다. 농경 사회의 해 뜰 때 일하고 해 질 때 쉬던 질서는 산업화와 함께 무너졌고, 교대 근무와 야간 노동, 24시간 도시는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글로벌 금융은 개인의 생체 리듬을 지역 태양과 분리해 놨다. 시간의 기준은 이미 태양에서 시스템으로 이동해 왔다.

그러나 AI의 등장은 이 변화를 ‘편의’가 아니라 ‘필연’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AI는 단순히 인간을 대신해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AI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최초의 행위자다. 서버는 밤이 없고, 알고리즘은 피로가 없으며, 데이터는 휴일을 모른다. AI가 작동하는 세계에는 원래부터 ‘근무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제도는 인간의 생체 리듬 위에 세워졌다. 국가도, 금융도, 군대도, 법원도 결국은 ‘사람이 깨어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AI가 의사결정과 감시, 거래와 방어의 주체로 들어오면서 이 구조는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세계의 중요한 판단이 더 이상 인간의 주간과 야간에 맞춰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AI가 지배하는 문명에서 시간대는 기술적 의미를 잃는다. 뉴욕의 새벽이든 서울의 밤이든, AI는 동일한 속도로 감지하고 계산하고 반응한다. 그때도 인간만 “아직 출근 전이라” “지금은 야간이라”는 이유로 결정을 미룬다면, 그것은 기술과 제도의 시간 불일치, 곧 문명적 병목이 된다. 세계 단일 시간은 이 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문명 장치다.

세계 단일 시간은 이 흐름의 극단이자 완성형에 가깝다. 첫째 이유는 AI 시대의 의사결정 구조다. AI는 쉬지 않는다. 글로벌 AI 시스템이 국가별 시간대에 따라 분절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비효율의 집합이다. 하나의 표준 시간 아래서 데이터 수집과 판단, 대응이 이뤄질 때 인류는 비로소 ‘동시에 사고하는 문명’에 가까워진다.

재난 대응, 전염병 관리, 금융 시스템 안정, 군사 경보 체계 역시 시간의 통일이 곧 대응 속도의 통일로 이어진다. 반도체 공급망과 금융 시장, 안보 판단이 초 단위로 연결된 한국 같은 국가일수록 시간 분절의 비용은 더 크다. 시간은 이미 경쟁력의 일부다.

둘째 이유는 지구촌이 하나의 사회가 됐기 때문이다. 국제 회의와 글로벌 협업은 매번 “당신 시간으로 몇 시냐”를 확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시간의 분열이 만들어낸 구조적 비용이다. 세계 공용 언어가 영어라면, 세계 공용 시간은 아직 없다.

그리고 셋째, 가장 급진적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외계 문명과의 조우 가능성이다. 이는 공포를 조장하기 위한 상상이 아니라, 문명 시스템을 시험하는 사유 실험이다. 기술 문명 간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그 순간의 핵심은 병력이나 무기가 아니라 탐지·판단·대응의 속도일 가능성이 높다.

외계 문명과의 충돌에는 전선도, 국경도, 낮과 밤도 없다. 모든 판단은 밀리초 단위로 이뤄진다. 그때 지구가 여전히 “유럽은 밤이다” “아시아는 근무 시간이 아니다”라는 시간 논리에 묶여 있다면, 그것은 전쟁 이전에 이미 패배한 상태다. 하나의 행성이 외부 문명과 맞서면서 내부의 시간조차 통합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문명이 아니라 지역 연합에 불과하다.

“우리 쪽은 지금 새벽이라 결정권자가 자고 있다”는 말은 문명 수준의 농담이 된다. 이 비유가 과장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시간 통합을 문명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행성 문명의 최소 단위다.

세계 표준화의 역사에서 가장 거대한 사업은 사실 시간의 표준화였다. 초와 분, 시를 정하고 원자시계로 정확도를 맞추는 과정은 인류 과학의 정점이었다. 이제 다음 단계는 분명하다. ‘시간의 정확성’에서 ‘시간의 통일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론 반론은 정당하다. 시간은 문화고, 생활 리듬이며, 자연의 일부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우리는 이미 자연 시간에서 벗어났다. 교대 근무와 24시간 배송, 글로벌 금융은 태양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지금의 시간대는 자연 보호 장치라기보다 과거에 대한 관성에 가깝다.

해결 방식도 있다. 강제 전환이 아니라 병행이다. 문화와 종교의 시간은 존중하되, AI·안보·금융·재난 대응 같은 공적 시스템 영역부터 단일 시간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의례의 시간과 운영의 시간을 분리하는 이중 구조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 논의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우리는 자연이 만든 질서에 문명을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연을 이해한 위에 문명의 질서를 재설계할 것인가. 태양은 계속 뜨고 지겠지만, 그 위에 얹힌 시간만큼은 이제 인류가 선택할 수 있다.

시간이 낮과 밤 위에 놓이는 순간, 인류는 처음으로 행성 단위의 문명이 될 것이다. 그때 오전 7시가 저녁이든, 오후 7시가 아침이든 그것은 본질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같은 속도로 판단하며, 같은 시간 위에서 책임을 나누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낮과 밤으로는 세계가 하나 될 수 없다. 그러나 시간으로는 하나 될 수 있다. 세계가 하나라면 시간이 하나여야 한다. 그 불편함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태양의 그림자 속에서만 21세기 문명을 흉내 내는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skkim596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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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