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헌정질서 파괴한 권력의 퇴장 방식

조선 유배에서 배우는 처벌의 기술

지난 13일 내란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이는 아직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우리 사회의 형벌 감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형 집행이 수십년째 중단된 나라에서 특검이 최고형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법적 실효성을 떠나 강력한 정치적·도덕적 메시지를 던진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국가에서 사형 구형은 실질적 처벌의 예고라기보다 ‘가장 강한 비난’의 표현에 가깝다. 문제는 법이 비난의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집행되지 않을 형벌을 최고형으로 설정하는 순간, 형벌은 책임을 묻는 제도가 아니라 분노를 관리하는 장치로 변하고, 이는 법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전직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항소와 상고를 거치며 감형됐고, 정권교체 시점에는 특별사면이나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가 반복해 온 구조적 관행이다. 이번 사형 구형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이 흐르면 무기징역이나 중형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다음 정권에서는 ‘국민 통합’이나 ‘정치적 부담 해소’라는 명분 아래 석방 논의가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형 구형은 실질적 책임을 묻는 형벌이라기보다, 향후 감형과 석방을 전제로 한 상징적 카드에 그칠 뿐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게 우리는 무엇을 묻고 싶은가. 개인의 범죄 책임인가, 아니면 헌정질서를 훼손한 정치적 책임인가. 대통령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제도인 만큼, 그가 대표했던 국가 운영의 시간 전체를 감방이라는 공간에 가두는 방식이 과연 성숙한 민주주의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을 일반 중범죄자와 동일한 교도소 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이 정의의 완성인지, 아니면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또 하나의 상징적 장면인지 고민해야 한다. 응징의 강도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책임을 어떻게 남기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조선의 유배 제도를 떠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다. 조선을 오늘의 민주공화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조선이 권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준 정치적 계산과 제도적 완충의 지혜는 참고할 가치가 있다.

조선이 온정적인 국가는 아니었지만, 권력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는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었다.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중심에서 배제하되 존재 자체를 말살하지는 않았다. 유배는 처벌이면서 동시에 질서 유지의 기술이었다. 권력을 상실시키되, 제도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조선 왕조에서 왕이 유배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그 사례는 유배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강화도와 교동도로 보내졌다. 반정 세력은 그를 처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을 죽인 정권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해야 했고, 왕조의 정통성을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연산군은 살아 있었지만, 권력에서는 완전히 제거됐다. 유배는 자비가 아니라 왕권을 무력화하는 가장 계산된 처벌이었다. 왕을 살려두는 선택은 인간적 배려가 아니라 정치적 기술이었다.

광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외교적으로 실리를 추구했지만 지배 이념과 충돌했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광해군은 강화도와 제주로 유배됐다. 조선은 그의 정책 노선을 부정했을지언정, 왕이라는 존재를 공개적으로 처형함으로써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유배는 정치 노선에 대한 단죄였고, 제도를 지키기 위한 절충이었다. 왕을 제거하되 왕정은 유지하는 방식, 이것이 조선 유배의 핵심이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폐위된 후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은 왕으로서의 통치가 역사적으로 단절된 존재로 남았고, 다른 왕들과 달리 ‘조’나 ‘종’으로 끝나는 묘호를 받지 못했다. 유배는 단순한 신체적 격리가 아니라, 권력과 통치의 시간 자체를 종결시키는 제도적 선언이었다.

이 두 사례를 끌어오는 이유는 조선의 유배가 관대한 처벌이 아니라 가장 정치적인 처벌이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조선은 개인의 책임과 제도의 연속성을 분리할 줄 알았다. 그래서 왕을 죽이지 않고, 유배지로 보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형 집행이 없는 현대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방식은 오히려 조선보다 덜 현실적이다. 조선은 살아 있는 권력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집행되지 않을 형벌이라는 상징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은 결국 감형과 석방이라는 정치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조선 유배 제도의 취지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별도의 처벌 체계를 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가칭 ‘헌정질서 파괴자 유배제’다.

이는 임기 중 또는 퇴임 후 중대한 헌정질서 파괴가 확인될 경우, 일반 교도소 수감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거주 제한을 명시하고 정치 활동과 공적 발언을 장기간 제한하는 제도다. 예우와 경호를 최소화하고, 국가기록 관리하에 책임을 명시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헌정질서 파괴자 유배제는 가택연금처럼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처분이 아니다. 이는 조선의 유배처럼 권력의 중심에서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공간의 처벌이다. 수도와 정치 무대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보내 공적 발언과 정치적 접촉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감시가 아닌 단절, 보호가 아닌 퇴장이 이 제도의 본질이다.

이는 결코 면죄부가 아니다. 자유를 제한하되, 인격과 역사 전체를 파괴하지 않는 처벌이다. 무엇보다 ‘중형 선고 후 정권이 바뀌면 풀려난다’는 반복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응징의 강도를 높이는 대신, 책임의 지속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센 형벌이 아니라 더 정확한 형벌이다. 사형을 구형해 놓고 집행하지 않는 모순, 중형을 선고해 놓고 정치적 판단으로 석방하는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조선은 왕조국가였지만, 권력을 다루는 데 있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정교했다.

전직 대통령을 감방에 넣는 것이 정의의 완성은 아니다. 책임을 제도 속에 남기고, 권력을 역사 속으로 보내는 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형 없는 국가가 선택해야 할 가장 일관된 해법이다. 헌정질서 파괴자 유배제 제안은 바로 그 권력의 퇴장 방식을 더 정교하게 제도화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skkim5961@naver.com>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