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덮치는 고환율 공포

계엄도, 탄핵도 없는데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진정한 공포는 소리 없이 다가오는 법이다. 모두가 안심하고 있을 때, 괜찮다고 여길 때 순식간에 뒤에서 덮친다. 대비가 없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뒤늦게 허둥지둥하다가는 더 큰 화를 입는다.

경제 정책에 있어서 이재명정부의 핵심 전략은 부동산에 고여 있는 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부동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집을 가지고만 있으면 반드시 ‘우상향’하리라는 생각이다. 이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각종 규제 정책을 내놨지만 실패한 배경이기도 하다.

코스피 4000

이재명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시절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주가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국내 산업의 높은 수출 의존도,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실제보다 우리나라의 주가가치가 낮게 책정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이 대통령은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 발표문’을 SNS에 공개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1400만명의 투자자들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대통령은 “국민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인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혁신적 기업을 믿고 투자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주가 5000시대를 향한 드라이브가 걸렸다. 주식 투자자들은 새 정부가 출범했다는 기대감에 너도나도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비상계엄, 탄핵 등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대선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불식된 점도 주가 부양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개미(일반 투자자)’가 국장(국내 증시)으로 돌아오고 외국 투자자 사이에 ‘바이 코리아(buy Korea)’ 분위기가 본격화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지난 6월20일 3021.84에 마감해 3년6개월만에 처음 3000선을 넘었고 10월27일에는 장중 4000선을 뛰어넘었다.

코스피지수 4000 돌파는 출범 후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로 말 그대로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코스피 4000 돌파 이후 부침이 있긴 하지만 4000 내외를 오르내리면서 코스피 5000시대도 꿈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금융정보서비스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내년 코스피 밴드를 제시한 국내 증권사는 총 7곳으로 이들은 코스피 하단을 3500~4000으로, 상단을 4500~5500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코스피 4000시대가 만든 환호에 가려진 악재다. 전문가는 외환위기 이후 월간 기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인 원·달러 환율과 단기간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압력을 우려했다. 특히 12월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내년에는 1500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경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중소기업에서는 이미 고환율에 대한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2일 수출과 수입을 수행 중인 중소기업 635개사를 대상으로 ‘환변동 관련 중소기업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소기업 중 30.9%는 환율 급등으로 피해를 봤다고 응답했다.

환율 상승이 기회가 아니라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수출입을 병행하는 회사로 좁히면 이 수치는 40.7%까지 오른다. ‘이익이 발생했다’는 응답(13.9%)보다 3배가량 많은 수치다. 다만 수출만 하는 기업 중 62.7%는 영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익 발생은 23.1%, 피해 발생은 14.2%였다.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
정부 폐장일 앞두고 총력전

환율 급등에 따른 피해 유형(복수응답)은 ▲수입 원부자재 가격 상승(81.6%) ▲외화 결제 비용 증가(41.8%) ▲해상·항공 운임 상승(36.2%) 순이었다. 특히 응답 기업 중 중소기업 55%는 환율 상승으로 증가한 원가를 판매가격에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원가는 오르는데 기업 수익성은 악화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 중 41.9%는 내년 환율 전망을 ‘1450원~1500원 수준’으로 예상했다. 목표 영업이익 달성을 위한 적정 환율은 평균 1362.6원으로 조사됐다. 100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들은 정부 지원책으로 안정적인 환율 운용 노력(35.6%), 해상‧항공 물류비 지원(35.65), 원자재 가격 상승분 보전 지원(32%) 등을 꼽았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최근 달러 약세 국면에도 원화 약세가 지속되는 점을 고려하면 원·달러 환율 1400원대가 뉴 노멀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수출보다 수입 기업이 월등히 많은 국내 중소기업의 현실을 참작할 때 납품 대금 연동제 활성화와 원가 부담 완화 중심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실제 환율은 수입 물가를 자극해 국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만큼 정부가 나서서 불길을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환율 상승으로 외화 부채가 과대 평가되면 기업이 투자를 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고환율의 배경으로 ‘서학 개미(외국 주식 투자자)’를 잡도리하려는 기색을 보이면서 일반 투자자 사이에 불만이 나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투자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지만 시장에서는 서학 개미 투자 활동을 부추기지 말라는 압박으로 해석하고 있다.

선봉에는 금융감독원이 섰다. 지난 2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 19일부터 키움증권과 토스증권에 대한 현장 검사에 돌입했다. 해외 투자 영업 행태 관련 실태 점검 이후 현장 검사로 전환해 문제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살펴본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해외투자 관련 거래대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증권사는 속속 해외투자 신규 마케팅을 중단하기로 했다. 최근 증권업계는 신규 가입 시 해외투자 지원금을 제공하거나 수수료 무료 등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확보했다. 하지만 금감원의 조치로 당분간 해외투자 행사, 광고 등 관련 이벤트를 일절 중단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외환시장 폐장일(오는 12월30일) 전까지 환율 잡기 ‘총력전’에 나선다.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오른 환율을 잡지 않으면 내년에는 방어가 더 어렵다는 계산이 반영된 조치로 보인다. 특히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으로 나라 전체가 어수선했던 지난해 말 결산 환율(1472.5원)보다 높아질 경우 시장에 미칠 충격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가려졌나

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00원을 돌파한 것과 관련해 “고물가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반에 위기가 현실화됐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 1400원대 환율은 외환위기(1997~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2009년), 레고랜드 사태(2022년)에 이어 4번째였다. 하지만 이정부 들어 환율 1400원대는 ‘뉴 노멀’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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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