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캐럴 되살려 대중사회의 온기 회복해야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12월이면 거리는 자연스럽게 캐럴로 채워졌다. 특별히 누가 틀자고 정한 것도 아니고, 국가의 지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가게의 문틈에서, 노점의 스피커에서, 시장 골목의 낡은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던 캐럴은 연말이라는 시간 자체를 설명해주는 공기였다.

특히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캐럴은 물질이 아닌 분위기로 사람을 위로했다. 작은 소리였지만, 연말을 버텨온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온기가 됐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거리에서 캐럴을 듣지 못한다. 많은 이들은 그 이유를 ‘저작권’이라고 말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소멸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거리의 캐럴이 만들던 연말의 풍경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12월의 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합창장이었다. 백화점 앞, 재래시장, 동네 가게, 심지어 버스 종점 근처에서도 캐럴은 어김없이 흘러나왔다. 음질은 거칠었고, 스피커는 낡았지만, 그 소리는 사람들에게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캐럴은 소비를 자극하는 음악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리듬이었다. 특별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에게도 캐럴은 ‘함께 사는 시간’의 상징이었고, 아이들에게는 설렘을, 어른들에게는 한 해를 버텨온 자신을 위로해주는 배경음이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일수록 캐럴은 더 큰 위로가 됐다.


그래서 캐럴은 단순한 ‘크리스마스 노래’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리에서 공유되는 정서였고, 개인이 선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함께 듣게 되는 사회적 소리였다. 그 소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가 더 이상 같은 소리를 함께 듣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캐럴은 원래 ‘크리스마스 노래’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캐럴을 크리스마스 전용 음악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 캐럴(carol)은 중세 프랑스어 ‘카롤(carole)’에서 유래한 말로, 본래는 둥글게 손을 잡고 추는 원무를 의미했다. 즉 캐럴의 본질은 ‘함께 부르고 함께 움직이는 노래’였다.

종교적으로도 캐럴은 성탄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부활절, 고난 주간, 성령 강림절 등 교회력 전반에 걸쳐 불려왔고, 실제로 옥스포드대가 엮은 <The Oxford Book of Carols>에는 연중 모든 절기에 맞는 캐럴이 실려 있다. 캐럴은 특정 날짜의 음악이 아니라, 공동체가 시간을 함께 건너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캐럴은 점차 상업화되고, 크리스마스 이미지에 고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럴의 핵심은 여전히 ‘함께 듣고, 함께 부르는 소리’였다.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 공동의 소리가 사회에서 더 이상 허용되지 않는 구조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캐럴이 없어진 이유, 저작권 아냐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진 이유로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것은 저작권 문제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설명에 불과하다. 실제로 저작권료 납부 의무는 카페, 대형마트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되며, 대부분의 소규모 가게는 저작권 문제 없이 음악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그 원인은 소음 규제와 에너지 규제다. 현행 소음·진동관리법에 따르면 매장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틀 경우 주간 65dB, 야간 60dB를 넘으면 과태료 대상이 된다. 이는 일상 대화 수준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행인이 자연스럽게 들을 만큼의 음악을 틀기조차 어렵다.

여기에 에너지 절약 규제까지 겹친다. 매장 안에서 음악을 틀고 문을 열어두는 방식은 난방 효율 저하를 이유로 단속 대상이 된다. 결국 법과 제도는 ‘거리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상황’ 자체를 구조적으로 차단해버렸다. 캐럴은 불법이 된 것이 아니라, 허용 불가능한 소리가 된 것이다.

음악 소비 방식 변화와 거리 침묵

캐럴이 사라진 또 다른 이유는 음악 소비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거리의 스피커와 라디오, 음반 노점이 새로운 노래를 접하는 통로였고, 자연스럽게 들은 음악이 대중의 귀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음악은 개인이 선택해 듣는 대상이 되면서, 공공의 공간에서 함께 소비되는 문화는 사라졌다.

MP3와 스트리밍,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음악은 완전히 개인화됐다. 이제 음악은 거리나 공간을 채우는 소리가 아니라, 각자가 선택해 소비하는 대상이 됐다. 듣는 시간과 장소, 취향까지 철저히 개인의 몫이 되면서, 함께 듣는 경험은 줄어들었다.

이 변화는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거리의 소리를 앗아갔다. 캐럴은 집 안이나 이어폰 속에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공공의 공간에서는 울리지 않는다. 거리의 침묵은 기술 발전의 부산물이자, 사회 구조 변화의 결과다.

캐럴이 흐르던 거리, 대중사회의 감정

캐럴이 울려 퍼지던 시절의 사회는 ‘대중사회’였다. 대중사회란 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시간표, 비슷한 정보, 비슷한 리듬 속에서 움직이는 사회를 말한다. 방송은 동시에 시청됐고, 음악은 동시에 들렸으며, 계절의 분위기도 공유됐다.

대중사회에서는 개인의 취향보다 공동체의 정서가 앞섰다. 거리의 캐럴은 누군가에게는 시끄러울 수 있었지만, 이를 함께 사는 사회가 치르는 자연스러운 비용으로 받아들였다. 그 안에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이 사회에서는 질서와 통제가 비교적 쉬웠고, 동시에 공동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캐럴은 그런 대중사회의 감정을 묶어주는 장치였다. 듣고 싶지 않아도 귀에 들어오는 소리였지만, 그 불가피함조차 공동체를 이루는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다중사회로의 전환과 개인의 우선성

오늘날 우리는 대중사회를 지나 ‘다중사회’에 살고 있다. 다중사회란 개인이 각자 다른 정보, 다른 취향,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사회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같은 것을 보지 않고, 같은 소리를 듣지 않는다.


다중사회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공동체의 편의보다 앞선다. 소음은 더 이상 함께 감수하는 요소가 아니라, 즉각 제거해야 할 불편으로 인식된다. 그 결과 누군가에게 불편한 소리는 곧바로 규제의 대상이 되고, 캐럴 역시 공동체의 정서를 나누는 소리가 아닌 ‘원치 않는 소음’으로 분류된다.

이 변화는 음악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에는 국가와 조직의 정보가 절대적이었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보호가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는 진보이지만, 동시에 공동의 경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콘서트는 허용된 대중성, 캐럴은 금지된 대중성

흥미로운 것은 대중사회가 사라진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공간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다. 수만명이 모이는 가수의 콘서트나 스포츠 경기장에서 동시에 노래하고 환호하는 장면은 전형적인 대중사회의 모습이다. 대중사회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공간’ 안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콘서트장의 소음은 문제 되지 않는다. 수만명의 함성도 사전에 통제되고, 한정된 공간에서 비용을 지불한 사람만 누리기에 허용된다. 오늘날 사회는 대중성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약된 대중성’만 인정하며 누구나 듣게 되는 거리의 캐럴만 규제한다.

이 대비는 오늘날 사회가 불편해하는 것이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공동체적 경험임을 보여준다. 콘서트는 관리되기에 허용되지만, 거리의 캐럴은 통제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기에 불편의 대상이 된다. 다중사회는 대중사회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대중성만 선택하고 있다.


다중사회의 장점과 분명한 한계

다중사회는 개인의 선택과 거부가 존중되는 자유로운 사회다. 누구도 같은 것을 보거나 듣도록 강요받지 않으며, 각자의 취향과 속도가 우선된다. 그러나 그 자유의 이면에서, 함께 느끼고 공감하는 공동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대중사회는 하나의 리듬 속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위기 앞에서도 빠르게 결집할 수 있었다. 같은 정보와 감정을 공유했기에 방향을 정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면 다중사회는 각자의 판단이 존중되는 만큼, 모두가 옳아도 하나의 움직임으로 모이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

캐럴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함께 듣는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다. 다중사회는 효율적이지만, 따뜻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단점을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럴 되살려 대중사회의 온기를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정부가 12월20일부터 31일까지 약 12일 만이라도 캐럴에 한해 소음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자. 이는 무분별한 허용이 아니라, 소리의 크기와 시간대를 정해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인정하자는 제안이다.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간만큼은 거리의 온기를 다시 허용하자는 뜻이다.

이는 연말에 국민에게 던지는 어떤 정치적 메시지보다 강력한 위로가 될 수 있다. 특히 60대 이상 세대에게 캐럴은 추억이며, 삶을 버텨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도 지켜야 할 정서가 있다.

시대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좋은 것까지 없애는 것이 진보는 아니다. 이제는 다중사회의 자유 위에 대중사회의 따뜻함을 다시 얹을 때다. 거리의 캐럴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법과 제도는 사람의 마음을 가두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숨 쉴 공간을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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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