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가 야인’ 조현문 유령 재단 미스터리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5.05.29 11:53:22
  • 호수 15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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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키고 돈 안 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이 법률 자문을 맡았던 법무법인 바른과 소송에 휘말렸다. 상속세 감면 혜택을 받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는 데 일조한 바른의 업무 보수 미지급 관련해서다. 앞서 친형인 조현준 회장을 고발한 조 전 부사장이 효성가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이 법무법인 바른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바른은 조 전 부사장이 ‘효성 형제의 난’을 일으켰던 10년 전부터 시작해 그룹 법률 자문을 맡았다. 조 전 부사장이 공익재단 단빛재단을 설립할 때도 함께했으나, 성공 보수에 대한 이견이 발생해 사이가 틀어진 꼴이다.

차남의 반란

앞서 바른은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43억원 규모의 약정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지난 16일 1차례 진행됐다. 당시 바른은 “법률 업무에 대한 위임 약정을 맺고 일부 업무는 성공 조건을 성취시켰다. 조 전 부사장이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행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그간 발생한 보수 4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조 전 부사장은 바른이 제시한 업무 내용 및 진행 경과를 볼 때 그만큼의 금액을 청구할 정도의 업무를 수행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소송 제기 및 가압류 신청은 매우 황당하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향후 객관적 사실과 법리를 바탕으로 성실히 재판에 임하겠다. 법정서 반드시 진실을 가릴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타임 차지(시간제 보수) 내역을 봐도 실제 바른이 수행한 업무는 전체 위임 사무 중 사소한 부분”이라며 “성공 보수 및 추가 특별 보수는 지급조건 자체가 성취되지 않아 청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바른 측은 “기본 보수가 발생한 이유, 어떻게 성공 보수 조건을 성취했는지를 보여주려면 의뢰인이 변호사가 주고받은 모든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밖에 없다”며 “이를 원하지 않기에 제안했던 것”이라는 협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원래 업무 이외 다른 업무들이 많아져 추가 보수도 늘어났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지난 1월, 바른 측이 조 전 부사장을 상대로 낸 16억원 규모의 주식가압류 신청이 법원서 인용되면서 그는 해당 주식을 처분할 수 없게 됐다.

조 전 부사장이 지난 9월에 설립했던 단빛재단은 현재까지도 홈페이지에 공익사업 관련 보도자료나 활동 내역이 단 한 줄도 게시되지 않고 있어 재단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국세청 홈텍스에 따르면, 단빛재단 첫해의 사업연도 종료 연월은 지난해 12월로, 최초 공시일자는 지난달 29일이었다. 단빛재단의 결산서류 등 공시자료엔 기본순자산 471억1602만원, 보통순자산 545억6824만원, 부채 1916만원이 기재돼 총자산가액은 1017억원 규모에 달한다.

‘형제의 난’ 때부터 법률 자문
성공 보수 두고 틀어져 소송전

단빚재단의 설립은 과거 ‘효성 형제의 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형 조현준 효성 회장 간 촉발됐던 법정 다툼서 조 전 부사장은 조 회장과 주요 임원진의 횡령 및 배임 의혹 등으로 고소·고발에 나섰다. 조 회장도 협박으로 맞고소하는 등 법적 갈등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 지난해 7월, 조 전 부사장이 “갈등을 종결하고 화해하고 싶다”며 고 조석래 명예회장이 남긴 유산에 대해선 “선친이 물려주신 장속 재산 전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공익재산 설립을 약속했다. 그 약속으로 만든 재단이 바로 단빛재단이었다.


재단의 명칭은 아침 해의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초대 이사장엔 신희영 전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내정됐다. 조 명예회장이 남겼던 상속재산은 총 1000억원대인 것으로 추정됐다. 현행법상 조 전 부사장이 내야 할 상속세는 절반인 500억원가량이었으나, 공익재단 설립으로 전액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단빛재단의 공익목적사업은 대한민국 외교 역량 강화 및 국가 안보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외교 관련 학술, 정책 개발, 연구 및 인력 양성 활동 지원인 것으로 확인된다. 인력 및 시설, 기타 비용으로 7억6332만원을 사용했으며, 기타 사업비용으로 2억7942만원이 들어가 총 10억4275만원의 사업비용이 발생했다.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된 내용은 지난달 30일, ‘2024년 단빛재단 법인세법 시행령 제39조에 따른 공시’뿐이었다. 결국 조 전 부사장은 5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납부 의무를 피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게 아니냐는 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한편, 조 전 부사장은 ‘형제의 난’을 계기로 가족들과 의절했다. 지난해 9월 상속재산을 통해 단빛재단을 설립할 때 공동상속인인 형제들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있었으나, 이로써 형제간 화해를 이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재계 안팎의 평가다.

조 전 부사장은 같은 해 3월 조 명예회장 별세 당시 유족 명단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조 전 부사장은 과거 고 신해철과 함께 밴드 ‘무한궤도’의 키보디스트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도 있다. 신해철과는 유치원 시절부터 알고 지낸 보성고등학교 동창이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 무한궤도 멤버로 출전해 대상을 거머쥐며 음악적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록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는 않았지만, M.C The Max의 이수와 신시사이저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을 정도로 강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사망했을 당시, 호주에 있던 조 전 부사장이 한달음에 달려와 통곡했다는 일화는 둘의 깊은 우정을 보여준다.

그는 2011년 효성그룹 신입사원 환영회서 피아노를 직접 연주할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다.

8개월째 조용한 단빛재단
‘500억원’ 상속세 감면용?

음악인의 삶을 뒤로한 조 전 부사장은 경영인의 길을 택했다.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와 경영대학원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 하버드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로펌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이후 부친 조 명예회장의 부름을 받고 귀국해 효성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그의 경영 참여는 순탄치 않았다.

2014년 효성중공업 부사장 재직 중 그는 친형인 조 회장을 포함한 그룹 임원 8명을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하며 재벌가에 전대미문의 파장을 일으켰다.

효성가 측은 조 명예회장이 아들들에게 각 계열사를 맡기고 성과에 따라 후계 구도를 정하려 했는데, 조 전 부사장이 맡았던 중공업의 성과가 부진하자 후계 구도서 멀어질 것을 우려해 그가 비리를 폭로한 것이라고 맞섰다.


형제 싸움은 법정 싸움으로 이어져, 조 회장은 횡령과 배임 혐의에 의해 2020년 12월30일 대법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 선고됐다.

지난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25단독 김지영 판사는 조 전 부사장과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이사의 강요·공갈 미수 혐의를 심리하는 13차 공판기일을 오는 30일에서 내달 6월13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 이는 조 전 부사장 측의 기일 변경 신청을 재판부가 받아들인 결과다.

조 전 부사장과 박 전 대표는 2022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효성그룹 비상장 계열사 주식의 고가 매입, 그리고 조 전 부사장에게 긍정적인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 배포를 효성그룹에 요구하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조 회장 경영 비리 자료를 검찰에 넘기겠다고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복잡한 가족사를 겪어온 조 전 부사장은 효성그룹과의 ‘완전한 절연’을 약속했다. 그는 단빛재단을 설립하고 지난해 9월부터 두 달간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 상장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 834억원의 재단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조 전 부사장은 여전히 HS효성더클래스 3.48%, 효성티앤에스 14.13%, 효성토요타 20%,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 10%, 신동진 10% 등 효성 비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들은 조 전 부사장이 과거 그룹에 몸담았을 때부터 소유했던 주식으로,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도 그 숫자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상한 재단

조 전 부사장 측은 언론을 통해 “애초에 약속한 내용은 상속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었고, 이는 모두 이행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이어 “비상장주식도 정리할 계획이지만, 조 전 부사장이 제시한 가격을 다른 형제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거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지분 정리 의사는 확고하나 가격 협상 난항으로 지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조 전 부사장이 현재 진행 중인 강요·공갈미수 혐의 재판을 의식해 시간을 끄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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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