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피의자들 검찰 물밑 협조 내막

다 된 수사에 영장 잿가루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수사를 두고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는 분위기다. 경찰은 핵심 인물들의 진술을 뒷받침할 중요 증거인 비화폰 서버를 확보하지 못했다. 검찰의 영장 반려가 원인이다. 한두 번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는 검찰이 성과를 독차지하려는 것이라는 불만이 상당하다.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12·3 비상계엄을 수사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를 꾸렸으나 핵심 증거로 꼽히는 ‘비화폰 서버’는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검찰만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공조본 안팎에서는 검찰과 일부 피의자 간 물밑 협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비화폰 내역
처음 제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성훈 대통령 경호처 차장으로부터 ‘비화폰 불출대장’과 일부 통화 내역을 제출받았다. 이는 지난 1월24일 검찰이 경호처에 ‘수사 협조 의뢰 요청(자료 제출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자 건네받은 것이다.

비화폰 불출대장은 ▲비화폰 번호 ▲사용자 ▲지급 일자 ▲회수 일자 ▲현재 보관 장소 등이 적혀있는 내부 보안 자료다.

김 차장이 제출한 비화폰 불출대장에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의 통화 기록이 포함됐다. 이 외에도 김 차장은 검찰에 김 전 장관이 예비용으로 받아가 건넨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비화폰 불출대장과 통화 기록 일부도 제출했다.


경호처는 형사소송법 제110조, 제111조를 근거로 공조본의 압수수색에 응하지 않아 왔다. 군사상·직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인 만큼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하거나 수색할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경호처는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여한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경찰의 협조를 거부했다.

경찰 관계자는 “1월 중순쯤 국무회의 참석자의 비화폰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고 지금까지도 경호처는 공조본의 협조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서울서부지검으로부터 김 차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이 영장에는 윤 대통령 부부 등의 비화폰 불출대장보다 보안 수준이 낮은 박종준 전 경호처장, 김 차장, 이광우 본부장, 김신 가족부장의 비화폰 불출대장이 적시돼있었다.

검찰의 협조 요청 공문에 제출했던 자료라면 경찰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으나, 경찰은 경호처의 방해로 아무것도 확보하지 못했다. 김 차장은 현재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아직 검찰에선 피의자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청구 수차례 반려
“성과 독차지 수작” 반발

검찰은 김 차장과 이 본부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을 세 차례 기각했다. 서부지검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형소법 110조 등 예외가 부기되는 등 논란이 있어 특수공무집행방해의 범의(범죄의 고의)가 있는지 다툼이 있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 체포·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비밀을 요하는 장소를 압수수색하려면 책임자의 승낙을 받아야 한다’는 형소법 110·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기재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 제기했던 바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물적인 압수수색과 달리 체포영장에는 형소법 조항이 적용되지 않아 문제 될 게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법원도 체포영장에 대한 윤 대통령 측의 이의 신청·체포적부심 신청을 기각하며 영장에 문제가 없다고 못 박았다.

경찰 내부에서는 계엄 사태 연루자들이 유독 검찰에만 협조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경찰 간부는 “김 차장 외에도 검찰에는 순순히 진술하거나 자료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이들이 있다. 압수수색이나 강제수사를 진행하지 않아도 검찰이 확보한 자료가 많은데, 물밑 협조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실제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검찰에 자진 출석하기 직전 노 전 사령관에게 전달했던 비화폰으로 검찰 수뇌부와 접촉했다. 해당 비화폰은 김 차장이 김 전 장관에게 지급하고, 김 전 장관이 노 전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이 해제된 날 김 전 장관에 돌려줬지만, 김 전 장관은 같은 날 사의를 표명하면서도 비화폰을 경호처에 반납하지 않았다.

공수처 압색
오, 소환 검토

김 전 장관은 이 비화폰으로 ‘검찰 넘버2’격인 이진동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검찰 출석 전인 지난해 12월6일 오후 통화를 나눴다. 김 전 장관은 이후 비화폰을 반납한 뒤 같은 달 8일 검찰에 출석했다가 긴급 체포됐고, 19일 뒤인 12월27일 구속 기소됐다.

이날 국회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차장검사도 통화 사실을 시인했다.

이 차장검사는 “김 전 장관의 신병확보가 가장 중요한데, 김 전 장관이 있는 곳이 군사 보호시설 안에 있어서 사실상 영장을 받아도 집행이 어렵다”며 “수사팀서(김 전 장관 출석) 설득이 어렵다고 해서 제가 직접 통화해서 설득해보겠다고 한 과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장관이 당시 있던 공관이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곳이어서 형사소송법상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수색을 할 수 없는 장소인 만큼 자진 출석을 유도했단 취지다.

경찰은 수사 초기 김 차장의 방해를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8일, 김 전 장관의 공관과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서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인 김선호 차관의 승인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집무실은 문제없이 압수수색했는데 공관을 압수수색하려 할 때 난데없이 경호처가 막아섰다. 윤 대통령 관저가 근처에 있었기에 막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경찰은 경호처와 협의를 거쳐 김 전 장관 공관 압수수색은 임의제출 방식으로 진행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대신 경찰은 경찰관 1명을 김 전 장관의 공관에 들여보내 압수 대상 확인 등을 할 수 있도록 박 전 처장과 합의했다.


검에만
순순히…

김 차장은 박 전 처장을 ‘패싱’하고 이 사실을 윤 대통령에게 직보했다. 윤 대통령은 김 차장의 보고를 받은 뒤 박 전 처장을 크게 질책했고, 당시 공관촌 안내실서 압수 조서 등을 작성하던 경찰들은 밖으로 쫓겨나야 했다. 압수수색 절차는 압수 조서를 작성하고 압수 목록을 교부해야 종료된다.

이와 관련해 경찰은 윤 대통령이 경호처 주요 간부에게 ‘수사기관·외부인을 한 발자국도 들어오게 하지 말라’라고 지시한 내용을 적은 메모를 확보했다. 또 경호처 관계자에게서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을 한 발자국도 공관으로 들어오게 하지 말라”라고 지시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저지 혐의 등으로 김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검찰은 세 차례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경찰은 서울고검에 영장심의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일부 계엄 연루자들의 협조를 얻는 데 실패한 경찰은 지난 4일 윤 대통령, 김 전 국방부 장관, 노 전 사령관의 외환 혐의 관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과 공수처에 이첩했다. 경찰은 현재까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피의자 11명을 입건했고, 검찰에 8명을 송치하고, 공수처 등에 18명을 이첩한 상태다.

공수처는 김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 반려 의혹과 관련해 심우정 검찰총장과 이 차장검사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다. 동시에 검찰은 국회 허위 답변 의혹을 받는 오동운 공수처장에 대한 강제수사를 마치고 조만간 소환조사도 검토 중이다.


앞서 한 시민단체는 지난달 27일, 심 총장과 이 차장검사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직무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이 시민단체는 “심 총장과 이 차장검사가 검찰의 비상계엄 사태 개입 의혹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지휘권을 남용해 김 차장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반려했다”고 밝혔다.

김용현·김성훈 선택적 협력…사실상 수사기관 쇼핑
자진 출석 전 수뇌부와 통화 ‘플리바게닝’ 약속?

반면 검찰은 윤석열 대통령 영장 청구 여부에 허위 답변 의혹을 밝히기 위해 지난달 28일 공수처장실 등 공수처 청사를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오 처장과 차정현 부장검사, 수사기획관 등은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를 받는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지난 1월 공수처에 ‘윤 대통령 사건 관련 체포영장 외 압수수색영장·통신영장 등을 중앙지법에 청구했는지’ 질의서를 공수처에 보냈다. 이에 공수처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공수처가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가 기각된 영장이 4건이 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히며 오 처장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다. 공수처는 이에 대해 “파견 직원이 작성해 국회에 제출한 것으로 안다”며 답변 과정에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최근 오전 기자들과 만나 “금요일 압수수색으로 윤 대통령 변호인단 측의 정치권 영장 관련 의혹은 다 해소됐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의혹은)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연히 저희가 협조를 안 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당연히(압수수색에 협조했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 측이 공수처에서 수사기록을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데 대해선 “우리에게 (기록을)청구할 이유가 없다”며 “이미 원본을 검찰에 넘겼고 법원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 처장 소환 여부와 시점, 검찰 압수수색 범위에 대해선 “검찰에 물어봐 달라”고 말을 아꼈다. 비상계엄 수사 상황에 대해선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 있고,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공수처 관계자는 “고발이 들어온 건에 대해서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겠다”며 “전날 고발 내용이 접수된 것으로 파악돼 현 단계서 수사 진행 상황이 어떻다고 말하긴 이르다”고 말을 아꼈다.

주도권
갈등 과열

공수처의 수사 권한과 검찰, 경찰의 수사 권한은 각기 달라 비상계엄 수사 초기부터 논란이 일었다. 대표적으로 내란죄에 대한 수사 가능 여부, 윤 대통령에 대한 조사와 기소 등을 두고 검찰과 공수처 사이에 잡음이 이어졌다.

공수처 출신 한 관계자는 “공수처 내부서 불만이 상당하다. 외부서 봐도 검찰이 ‘어디 덤벼봐라’식의 압력을 행사하는 걸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특검이 진즉에 출범했다면 없었을 갈등”이라고 지적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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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