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연설·발표’ 시 청중 설득하는 스피치 방법

[인트로]

우린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린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위대한 연설가로 꼽히는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전차군단의 전격전에

큰 위기를 맞은 영국을 단결시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국 내에서는 독일과 타협해 전쟁을 끝내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처칠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연설로

전쟁 앞에 당황하고 두려운 영국인들을 단합시켰고

결국 미국의 참전을 끌어내며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이 연설은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명연설로 꼽히고 있죠.

 

최근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윈스턴 처칠의 연설을 인용하며


러시아와의 전쟁서 강한 항전 의지를 드러내 우크라이나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연설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위대한 연설가들의 말에는 어떤 비법들이 숨어 있을까요?

 

[오프닝 영상]

 

1. 청중과 아이컨택

미국의 저명한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눈은 혀만큼이나 많은 말을 한다.

게다가 눈으로 하는 말은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발표자는 단순히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청중과 시각적으로 연결돼 메시지를 공감으로 이끄는 사람이죠.

 


아이컨택이 있어야 교감이 일어나고 설득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약 청중이 너무 많아 모든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없다면

효과적인 시선 처리를 위해 청중을 세 부분으로 나누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왼쪽, 중앙, 오른쪽으로 나누고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세요.

그 반대 방향으로도 이동할 수 있겠죠?

 

이렇게 하면 청중 전체와 소통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며


발표자의 안정감도 더 커집니다.

 

너무 빠르거나 불안정한 시선 이동은 피하고,

각 부분에 적절한 시간 동안 집중해

자연스럽고 균형 있는 시선 처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같은 방법은 모든 청중에게 연결감을 줄 뿐 아니라,

발표자 본인도 긴장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천천히, 그러나 확신에 차도록 청중을 바라보세요.

고개를 숙인 채 원고에만 의존한다면 청중은 금세 집중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니 원고 작성 시 간단한 키워드와 메모만 기록하고,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자신감을 키워보세요.

 

2. 제스쳐를 활용하라

아무런 제스처 없이 단조롭게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

눈 맞춤과 손동작 등 제스처를 섞으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훨씬 강력하게 전달됩니다.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화의 의미는 55%가 바디랭귀지로 전달된다고 합니다.

말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인 바디랭귀지입니다.

 

2004년 7월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기조연설 당시

무명에 가까운 신인 정치인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이 찬조 연설 하나로 온 국민을 감동하게 했고

4년 뒤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이 연설에서 보여준 오바마에 제스처는

단순히 손짓을 넘어 메시지의 힘을 더해주는 도구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오바마같이 화려한 동작들이 어렵다면

손을 들어 강조하거나 청중을 향해 가벼운 손짓,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으로도

전달력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연설은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몸으로 이야기하고 시각적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임을 기억하세요.

 

3. 명확하고 간결한 언어

복잡한 단어나 문장은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방송서 가끔 등장하는 충청도식 돌려 말하기 화법을 보면

충청도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표현일지라도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오해하기 딱 좋은 표현입니다.

 

이런 화법을 완곡어법이라고 하는데요.

이는 화자가 자신의 의도를 간접적으로 전달해

청자가 뜻을 짐작하게 만드는 표현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청자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위대한 연설가들은 복잡한 말로 청중을 감동시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간단하고 명확한 말로 청중의 마음과 행동을 끌어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짧은 문장과 쉬운 어휘를 사용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습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 언어 기술연구소에 따르면 트럼프의 문법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으로 평가됐죠.

하지만 트럼프는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니 불필요한 단어를 줄이고 핵심만 남겨 보세요.

복잡함 대신 명확함을, 긴 문장 대신 간결함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과 깊은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4. 톤과 속도로 강조하라.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집중력은 고작 8초라고 합니다.

그러니 중요한 부분에서는 평범한 전달 방식으로 주의를 끌 수 없습니다.

이럴 때는 목소리의 톤과 속도를 조절해 보세요.

중요한 키워드를 말할 때 목소리를 약간 높이거나

천천히 말하며 청중에게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여기가 중요하다!”고 말 대신 느낌으로 전달하는 거죠.

만약 점심식사 후 발표라면 성시경의 라디오 톤으로 말했다간

청중 대부분이 기절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이럴 땐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로 청중을 깨워야겠죠?

 

톤과 속도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미리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 두고 이를 활용한다면

발표의 생동감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5. 유머는 발표의 윤활유

아무리 진지한 주제라도 중간중간 적절한 유머 한 스푼은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을 살펴보면 항상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청중과 더 가깝게 소통합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중 가벼운 일화와 농담을 자주 활용했습니다.

그는 청중을 웃게 만들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죠.

퇴임을 앞둔 그는 백악관서 출입기자단 연례 만찬을 주최했습니다.

그 자리서 오바마는 공화당이 트럼프의 외교정책 경험 부족을 걱정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트럼프가 오랫동안 미스유니버스 대회를 주최해 왔던 경험을 빗대

“트럼프는 숱한 세계 지도자들을 만났잖아요. 미스 스웨덴, 미스 아르헨티나”

라며 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괜한 기대를 주기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녹아든 유머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상 별 볼 일 없는 얘기면 그 민망함은 발표가 끝나도 남을 테니깐 말이죠.

 

또 젊은 청중 앞이라면 유행하는 밈이나 유행어 등을 활용하거나

특정 지역의 풍습이나 먹거리, 관습 등을 연설에 포함해

청중의 상황이나 문화적 맥락 등을 고려하는 것도 좋습니다. 

 

6. 이미지 트레이닝

멘탈 트레이닝, 멘탈 리허설이라고도 불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은

캐나다 올림픽 대표팀 선수들의 99%가 사용할 만큼

이미 많은 스포츠 선수가 사용하는 검증된 스포츠 심리 기술입니다.

 

뇌 과학 연구에 따르면 실제 행동을 상상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신체 동작을 실행할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과 동일하다고 합니다.

즉, 뇌는 상상과 현실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미지 트레이닝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동작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상상하는 것입니다.

전설적인 골프 선수 잭 니클라우스는 공이 도착할 장소를 바라본 후

공이 그리는 포물선과 땅에 떨어지는 모습까지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본 뒤에야 스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미지 트레이닝은 운동뿐만 아니라

발표나 강의와 같은 상황서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차분하게 말하고

미소를 지으며 청중을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수백, 수천번 머릿속으로 연습해 보세요.

 

이 과정을 통해 평소보다 훨씬 여유롭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친 자신의 모습에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7. 비유적 표현

비유란 어떤 대상을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는 다른 대상에 빗대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는 복잡한 개념을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활용되죠.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은 특히 재치 있는 비유로 많은 어록을 남겼습니다.

그의 발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불판 비유’입니다.

 

그는 정치의 변화를 강조하며 이를 고기 굽는 불판에 빗대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50년 동안 똑같은 판에다 삼겹살 구워 먹으면 고기가 시커멓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판을 갈 때가 왔습니다.”

 

이 발언은 정치판의 개혁 필요성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한 사례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습니다.

 

이처럼 비유는 복잡한 메시지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비유를 활용하면 말이나 글의 설득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습니다.

 

8. 핵심 주장 반복, 강조하기

핵심 주장을 반복하고 강조하는 것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선언을 한 지 100년이 되는 해 수많은 청중 앞에서 역사적인 기념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특히 후반부에 네다섯 문단을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구절로 여러 번 반복하며 시작했죠.

킹 목사는 이 강렬한 구절을 통해 인종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청중에게 생생히 전달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함으로써 청중의 기억 속에 깊이 새기고

연설에 리듬감을 더해 강력한 설득력을 만들어냈습니다.

 

반복은 청중의 감정을 고조시키고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탁월한 기술입니다.

 

핵심 메시지를 명확히 한 뒤 반복적으로 강조해 보세요.

이를 통해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청중을 사로잡는 스피치는 다양한 기술과 노력이 결합해야만 가능합니다.

 

위대한 연설가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청중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행동을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힘입니다.

이 점을 마음에 새기며, 멋진 연설가로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정을 시작해 보세요.

 

이제 무대는 여러분의 것입니다. 성공적인 발표를 기원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기획: 홍조언
구성&편집: 홍조언

 

<joun201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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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