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체포 후 시나리오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1.20 10:29:39
  • 호수 1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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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서 법 기술 난사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구속됐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앞으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절차를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소 이후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맡았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같은 행적을 밟을 수도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지난 15일 오전 10시33분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했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오전 2시50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경찰의 관저 진입이 목전에 다다르자, 뒤늦게 자진출석을 언급했다. 이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도 직접 참석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수단 총동원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영장 발부 후 10일 이내 기소해야 하고, 수사를 계속해야 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지방법원 판사의 허가를 받아 10일 이내 범위서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수처가 10일 동안 윤 대통령을 조사한 후 검찰에 넘기고, 검찰이 10일 동안 추가 조사한 후 기소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지난 2일 체포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압수수색 영장 집행에 대한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지난해 12월31일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영장 효력을 다투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고, 가처분을 신청했다.

윤 변호사가 진행한 절차들은 현행법에 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윤 변호사가 이의신청이라고 표현한 준항고와 권한쟁의심판은 인용 가능성이 처음부터 희박했다. 체포에 대한 불복은 집행 전 이의신청이 아니라 집행 후 체포적부심·준항고 청구로써 진행할 수 있다.


윤 변호사가 말한 이의신청은 형사소송법 제417조에 규정된 준항고를 의미한다. 이 절차는 검사·사법경찰관의 구금·압수·압수물 환부 관련 처분 등에 대한 취소·변경을 청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준항고라는 명확한 용어가 아닌 이의신청이란 애매한 표현을 쓴 것은 의미심장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체포·구금되지 않은 사람이 준항고를 제기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당시 윤 대통령 측은 “집행이 목전에 이르러 집행을 받은 것과 같은 정도로 볼 것이므로, 집행받기 전이라고 하더라도 엄정한 법 집행을 위해 영장 집행을 불허할 것을 구한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중범죄 혐의로 인해 탄핵소추돼 직무 정지된 대통령 개인에 대한 체포 시도의 부당함을 다툴 수 있는 절차가 아니다.

윤 대통령 측의 권한쟁의심판 언급을 놓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1일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인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직격했다.

윤 대통령 측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각종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체포 후 48시간 내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하기 때문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실익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체포 당일 오후 9시47분 서울중앙지법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했다.

공수처가 청구하고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에 항의했던 기존 입장을 유지·광고하기 위한 의도란 분석이 있었다. 체포적부심을 맡았던 소준섭 서울중앙지법 형사32단독 판사는 지난 16일 오후 11시10분 체포적부심을 기각했다.

그러자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차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젠 윤 대통령이 ▲구속적부심 ▲압수수색에 대한 준항고 ▲보석을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


적부심, 준항고, 기피…방어책 주목
두 전직 대통령처럼…재판 보이콧?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31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영장에 “형사소송법 제110조·제111조는 이 영장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원칙상 대통령 관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라서 책임자의 승낙을 요구한다.

시설 책임자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 외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 이 부장판사는 윤 대통령 측과 대통령경호처(이하 경호처)가 군사상 비밀을 근거로 압수수색을 거부할 것에 대비해 위 문장을 추가했다. 윤 대통령 측은 “이 부장판사에겐 그런 권한이 없다”고 반발하면서 권한쟁의심판을 언급했다.

경호처는 “대통령 관저는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라는 것을 근거로, 특수공무집행방해 성립 가능성을 감수하면서 공수처의 체포·압수수색 시도를 막았다. 민주당은 지난 3일 박종준 전 경호처장을 비롯한 경호처 관계자들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박 전 처장은 지난 10일 사퇴 후 경찰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았다.

윤 변호사가 이의신청이라고 표현한 준항고는 윤 대통령 체포와 함께 집행됐던 압수수색에 대한 적법 여부를 다투는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12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검찰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선동죄 관련 압수수색 집행에 대한 준항고를 제기했던 선례도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 이 전 의원에 대한 유죄를 확정할 때, 압수수색의 일부 위법을 인정하면서도 “위반의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을 검찰이 아닌 공수처가 기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공수처는 내란죄 관련 수사권·기소권이 없다. 경찰과 공조수사본부를 꾸린 이유도 경찰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기 때문이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을 기소하면, “공소 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는 취지로 공소 기각 판결이 선고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소는 검찰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 대통령 측이 보석을 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소 전엔 보증금 납입 조건부 피의자 석방(일명 기소 전 보석)을 신청할 수 있고, 기소 후엔 보석을 신청할 수 있다. 기소 전 보석은 증거인멸·보복 우려 가능성이 있으면 허용되지 않는다. 윤 대통령이 구속된 이유는 증거인멸 우려였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유죄 인정 시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가 선고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다.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피고인은 법원이 필수적으로 보석을 허가하는 필요적 보석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될 때만 허가되는 임의적 보석을 신청해야 한다.

기소 후 공판준비절차가 마무리돼 공판이 시작되면, 윤 대통령은 기일마다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구속 기소된다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포승줄에 묶인 채 호송버스서 내리는 모습이 기일마다 촬영돼 보도될 것이다. 또 첫 재판은 촬영이 허가될 가능성이 있고, 일반인에게 추첨으로 방청권을 배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전 대통령 재판서는 지지자들이 기일마다 법정에 참석했고, 가끔 소란을 부렸다.


아울러 탄핵 심판처럼 형사재판서도 판사에 대한 기피를 신청해 절차 지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윤 대통령 측은 탄핵 심판서 조한창·정계선 신임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가 기각됐다. 또 두 전직 대통령 모두 형사재판 진행 중 재판 보이콧을 선언하고, 출석하지 않았던 적도 있다.

묵비권 행사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들까지 모두 사임해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선임한 후 재판을 진행했다. 윤 대통령도 이들처럼 재판을 거부하면서 출석하지 않거나 변호인들까지 모두 사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두 전직 대통령은 모두 윤 대통령이 검사로서 직접 기소했다. 이들처럼 재판에 임한다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하나 더 보탤 것으로 예상된다.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 체포·구속은 이렇게 역사의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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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