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정치 사법화’ 실상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1.13 10:23:25
  • 호수 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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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비싼 ‘아무 말 대잔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체포 시도가 현실화하자, 국민의힘의 선을 넘은 법률 왜곡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당해산심판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왜곡화·정치의 법 선동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가 지난달 27일 가결되자,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총리로서 ▲법률안 거부권 행사 건의 ▲비상계엄 국무회의 심의 반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등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수행한 직무일 뿐, 탄핵 사유라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결집 유도
불순 의도

같은 달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권한 없는 영장 청구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와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권한쟁의심판은 다툼을 하는 당사자가 직접 대립하는 구조기 때문에, 심판을 청구하려면 당사자 능력과 당사자 적격을 갖춰야 한다.

한 총리 탄핵소추에 문제가 있다면, 한 총리가 직접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3자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특이하다.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은 ‘개인 윤석열’이 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해 표현할 수 있다. 또 영장이 발부된 자체가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놓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이라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는 것은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한 윤갑근 변호사는 같은 날 “공수처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 제31조는 공수처 사건의 제1심 재판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다. 또 법률엔 명백히 제1심 재판이라고 규정돼있다.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지, 윤 변호사의 주장대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는 것으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갈음했다.

강성 지지자들에 “방해해 달라”
탄핵·체포 과정 비상식적 주장


윤 변호사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역사에 길이 남을 주장을 이어간다. 그는 “경찰기동대는 관련법상 체포영장 집행 권한이 없다”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이라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시민 누구에게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현행범은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범 체포엔 ▲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등 적법 요건이 필요하다. 또 공조본은 “경찰기동대는 관저 주변 집회시위 관리 및 질서유지 업무만 담당했다”고 반박했다. 시민들은 관저에 들어갈 수 없다. “경찰기동대와 시민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남는다.

아울러 “다수의 언론에 배포할 목적으로 작성돼 공연성이 인정되는 입장문을 수단 삼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해달라’는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부추긴 것 아니냐”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제기됐을 것이다. 교사행위의 방법은 제한이 없다. ‘유혹’도 교사행위 방법에 포함된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사실상 철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내란죄 철회는 소추 사유 중대 변경이므로 각하해야 한다”이란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자 대리인단은 “내란 행위를 심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함없다”며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헌법 위반으로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탄핵 심판의 논점을 ▲12·3 비상계엄 사태 전반의 헌법 위반 ▲계엄 절차 관련 계엄법 위반 ▲형법상 내란죄 논란 등으로 정리했다. 대리인단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용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헌법 위반·형법 위반을 모두 포함해 탄핵소추했지만, 형법 위반을 다투는 과정서 윤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를 우려해 헌법 위반 논점만 남겨두고 양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혹’도
교사행위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총력을 다해 각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형법 논점을 없애면, 탄핵 심판 심리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저러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노렸던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심리를 질질 끌어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추 사유서 형법 위반 논점을 제외하면, 좋아할 일 아니냐”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기준을 “직무집행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라고 규정했다. ‘이나’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고, 법률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다. 둘 다 적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파면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기한이었던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모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중진 의원들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형법상 내란죄 논점이 철회된 것을 항의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시각에 따라선 특수공무집행방해 시도와 진행 중인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는 강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각종 언행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의 법 왜곡화 혹은 정치의 법 선동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다수 있고, 권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다.

자신들의 언행이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를 개연성은 높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고 볼 여지가 남는다. 궁지에 몰리면 못 할 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자국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에게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오이를 예고 없이 시식시켰다. 그들이 오이를 먹은 곳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던 후쿠시마시였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은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두 사람에게 오이를 먹인 후 “정말 감사하다. 두 분의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복구 지원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외교 관례를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법률을 놓고 진행되는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당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현재에 이르게 한 공동 책임이 있다. 양당은 ‘프로 고발러’로 알려진 습관적인 고발장 제출자들과 관련이 있다. 국민의힘엔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를 운영하는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힘 인사들을 주로 고발한다. 이들은 수시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노출된다. 이들의 고발은 언론 보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정파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일부 언론은 이들의 고발 중 구미에 맞는 것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강경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양산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선동이다.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선동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서울시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부대변인으로 임명해 본의 아니게 그 관련성을 공인했다. 이들이 프로 고발러로 알려지는 과정을 토대로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권 원내대표와 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직접 법 왜곡 발언이나 행동에 앞장서는 등 프로 고발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지난 2009년 논문 <민주화 이후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연구>엔 스페인의 사회학자 호세 마리아 마라발 마드리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서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치> 일부가 인용돼있다.

오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마라발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정치인의 책임성 제한 ▲선거에 연패한 야당이 새로운 차원의 경쟁 돌입 ▲정부의 야당 약화 시도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에 따라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되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훼손된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법의 지배의 실현이 아니라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법의 지배가 강화되는 경향 한편엔 사법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 사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화 이전에 의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부의 정치화는 정치의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의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선결 과제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지난 2023년 발표한 논문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서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라며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오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다른 헌법기관에 의해 견제받지도 않으며, 사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홍 교수도 비슷한 예측을 하면서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점점 늘어나는 정당해산심판 요구
사법부 권력 비대화 위험 경고도

그 경고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거대정당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되고, 만약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 우리 헌정사에 엄청난 여파를 남길 것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해 12월6일 처음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면, 개혁신당부터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음날 “당이 조직적으로 국헌 문란 행위에 가담했다면 정당 해산 사유인 위헌정당이라는 것이 판례”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정당 해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지난 5일 정부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위헌정당인 본질은 윤석열을 옹호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날 때, 정부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청구한다. 우리 헌정사에선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인용된 사례가 유일하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적극적으로 두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 의원의 사건은 내란 음모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군을 동원했다.

국민의힘은 집단행동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진지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정치의 사법화와 민주주의>서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되는 단계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가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 갖춰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실질적인 정착서 비롯되고 촉진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동화
왜곡화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선동화·왜곡화가 돼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어느덧 공공연하게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란 사태 자체의 후유증 못지않은 것이 정치권이 구조화시킨 정치 사법화의 문제점을 수습하는 것일 듯하다.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비싼 관람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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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