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데까지 간 ‘정치 사법화’ 실상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5.01.13 10:23:25
  • 호수 1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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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비싼 ‘아무 말 대잔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과 체포 시도가 현실화하자, 국민의힘의 선을 넘은 법률 왜곡 언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정당해산심판 요구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왜곡화·정치의 법 선동화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가 지난달 27일 가결되자, 국민의힘은 의원 108명 전원 명의로 즉각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 주진우 의원은 “총리로서 ▲법률안 거부권 행사 건의 ▲비상계엄 국무회의 심의 반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 등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정당하게 수행한 직무일 뿐, 탄핵 사유라 할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결집 유도
불순 의도

같은 달 31일엔 윤석열 대통령의 변호인단이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체포영장과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변호인단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권한 없는 영장 청구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내란죄로 체포영장을 발부해 대통령의 헌법 수호와 비상계엄 선포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권한쟁의심판은 2개 이상 기관이 특정 권한의 존재 여부와 범위를 놓고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말한다. 권한쟁의심판은 다툼을 하는 당사자가 직접 대립하는 구조기 때문에, 심판을 청구하려면 당사자 능력과 당사자 적격을 갖춰야 한다.

한 총리 탄핵소추에 문제가 있다면, 한 총리가 직접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취지다. 제3자인 국민의힘은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 자체가 없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에 대해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것도 특이하다. 윤 대통령은 직무가 정지됐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없다.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불만은 ‘개인 윤석열’이 법원에 체포적부심을 청구해 표현할 수 있다. 또 영장이 발부된 자체가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의미한다.

이는 법원의 판단을 놓고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보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법원의 체포영장 적법성을 다투고 싶다면, 체포 적부의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면 될 일”이라며 “해괴한 절차를 언급하는 것은 오직 시간 끌기를 통해 극단적 지지자들의 결집을 유도하려는 불순한 의도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수처가 서울서부지법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참가한 윤갑근 변호사는 같은 날 “공수처가 이례적으로 윤 대통령 체포영장만 서울서부지법에 청구한 영장 쇼핑”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법 제31조는 공수처 사건의 제1심 재판 관할을 서울중앙지법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엔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다른 법원에 기소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단서가 있다. 또 법률엔 명백히 제1심 재판이라고 규정돼있다. 체포영장 청구는 피의자 신병 확보 절차다.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것이지, 윤 변호사의 주장대로 위법하다고 단정할 순 없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 5일 윤 대통령 측이 신청한 효력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는 것으로 윤 변호사의 주장에 대한 답변을 갈음했다.

강성 지지자들에 “방해해 달라”
탄핵·체포 과정 비상식적 주장


윤 변호사는 지난 2일, 형사소송법 역사에 길이 남을 주장을 이어간다. 그는 “경찰기동대는 관련법상 체포영장 집행 권한이 없다”며 “기동대가 공수처를 대신해 체포·수색영장 집행에 나선다면, 직권남용 및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이라서 경호처는 물론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시민 누구에게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현행범은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다. 다만 현행범 체포엔 ▲범죄의 명백성 ▲체포의 필요성 등 적법 요건이 필요하다. 또 공조본은 “경찰기동대는 관저 주변 집회시위 관리 및 질서유지 업무만 담당했다”고 반박했다. 시민들은 관저에 들어갈 수 없다. “경찰기동대와 시민의 충돌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소지가 남는다.

아울러 “다수의 언론에 배포할 목적으로 작성돼 공연성이 인정되는 입장문을 수단 삼아,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해달라’는 특수공무집행방해를 부추긴 것 아니냐”고 해석될 위험이 있다.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하기 위해 경찰과 충돌했다면, “특수공무집행방해 교사행위를 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함께 제기됐을 것이다. 교사행위의 방법은 제한이 없다. ‘유혹’도 교사행위 방법에 포함된다.

국민의힘은 탄핵 심판에 대해서도 비상식적인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단은 지난 3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사실상 철회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 측과 국민의힘은 총력을 기울여 “내란죄 철회는 소추 사유 중대 변경이므로 각하해야 한다”이란 주장을 퍼트리고 있다.

그러자 대리인단은 “내란 행위를 심판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변함없다”며 “형법상 내란죄가 아닌 헌법 위반으로 주장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을 통해 탄핵 심판의 논점을 ▲12·3 비상계엄 사태 전반의 헌법 위반 ▲계엄 절차 관련 계엄법 위반 ▲형법상 내란죄 논란 등으로 정리했다. 대리인단의 형법상 내란죄 철회는 12·3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용 자체를 철회하는 것이 아니라,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기준을 바꾼 것이다.

헌법 위반·형법 위반을 모두 포함해 탄핵소추했지만, 형법 위반을 다투는 과정서 윤 대통령 측의 시간 끌기를 우려해 헌법 위반 논점만 남겨두고 양을 대폭 줄인 것이다.

‘유혹’도
교사행위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이 총력을 다해 각하를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박 교수는 “형법 논점을 없애면, 탄핵 심판 심리가 빨리 끝날 것 같으니 저러는 것”이라며, “형사재판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노렸던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심리를 질질 끌어 시간을 벌려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소추 사유서 형법 위반 논점을 제외하면, 좋아할 일 아니냐”면서 윤 대통령을 조롱했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소추 대상이 되는 공무원의 기준을 “직무집행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라고 규정했다. ‘이나’라는 말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같은 사안을 헌법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고, 법률 위반이라고 규정해 소추할 수도 있다. 둘 다 적용할 수도 있다.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수호 관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 행위로 인정되면 파면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 44명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기한이었던 지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정문 앞에 모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하려고 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일부 중진 의원들과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같은 날 헌법재판소를 방문해 형법상 내란죄 논점이 철회된 것을 항의했다.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시각에 따라선 특수공무집행방해 시도와 진행 중인 재판에 압력을 행사하는 강요 행위로 해석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측의 각종 언행은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 정치의 법 왜곡화 혹은 정치의 법 선동화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국민의힘엔 법조인 출신 의원들이 다수 있고, 권 원내대표는 지난 2017년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소추위원이었다.

자신들의 언행이 법 상식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모를 개연성은 높지 않다. 그만큼 궁지에 몰렸다고 볼 여지가 남는다. 궁지에 몰리면 못 할 일이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1년 자국을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원자바오 당시 중국 총리에게 원전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산 오이를 예고 없이 시식시켰다. 그들이 오이를 먹은 곳은 방사능 수치가 가장 높게 나왔던 후쿠시마시였다. 당시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일본은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었다.

간 나오토 당시 일본 총리는 두 사람에게 오이를 먹인 후 “정말 감사하다. 두 분의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복구 지원에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외교 관례를 모두 벗어던진 것이다. 법률을 놓고 진행되는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당시 일본 정부의 행동을 연상시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모두 정치의 사법화를 극단적으로 추구해 현재에 이르게 한 공동 책임이 있다. 양당은 ‘프로 고발러’로 알려진 습관적인 고발장 제출자들과 관련이 있다. 국민의힘엔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를 운영하는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있다.

궁지에
몰렸다

김한메 사법정의 바로 세우기 시민행동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힘 인사들을 주로 고발한다. 이들은 수시로 고발장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노출된다. 이들의 고발은 언론 보도를 노리고 진행되는 측면이 있다. 특정 정파성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일부 언론은 이들의 고발 중 구미에 맞는 것엔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보도한다.

이 과정을 거쳐 강경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결과가 양산된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고자 하는 사람의 심리를 악용하는 선동이다. “극단적인 지지자들만 선동하면 된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국민의힘은 이 의원을 서울시의원으로 당선시키고 부대변인으로 임명해 본의 아니게 그 관련성을 공인했다. 이들이 프로 고발러로 알려지는 과정을 토대로 정치의 사법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민의힘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되자, 권 원내대표와 주 의원 등 검사 출신 의원들이 직접 법 왜곡 발언이나 행동에 앞장서는 등 프로 고발러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오승용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의 지난 2009년 논문 <민주화 이후 정치의 사법화에 관한 연구>엔 스페인의 사회학자 호세 마리아 마라발 마드리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난 2003년 저서 <정치적 무기로서의 법치> 일부가 인용돼있다.

오 교수가 인용한 바에 따르면, 마라발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를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으로 규정한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발생하는 상황을 ▲정치인의 책임성 제한 ▲선거에 연패한 야당이 새로운 차원의 경쟁 돌입 ▲정부의 야당 약화 시도 등으로 정리했다. 이어 “정치인과 정부의 전략에 따라 법의 지배가 정치적 무기가 되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은 훼손된다”며 “정치의 사법화는 법의 지배의 실현이 아니라 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오 교수는 “법의 지배가 강화되는 경향 한편엔 사법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 사례는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 불신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독특한 사례”라고 진단했다. 이어 “문제의 핵심은 사법부의 정치화 이전에 의회의 문제 해결 능력 부재에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면서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부의 정치화는 정치의 장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의회와 정당의 정상화가 선결 과제로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도 지난 2023년 발표한 논문 <법과 정치의 분화와 통합>서 “정치의 실패가 정치의 사법화를 불러온 것”이라며 “정치가 제 기능을 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가 확산한 이유는 정치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고, 또 할 수 있는 문제를 사법에 떠넘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정치의 사법화가 사법부의 권력 비대화로 이어질 위험을 경고한다.

오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삼권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근대 대의민주주의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경고했다. 그 이유로는 “입법부·행정부와 달리, 국민이 직접 선출하지 않고, 다른 헌법기관에 의해 견제받지도 않으며, 사법적 판단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홍 교수도 비슷한 예측을 하면서 “사법에 의해 정치가 식민화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점점 늘어나는 정당해산심판 요구
사법부 권력 비대화 위험 경고도

그 경고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언급하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어서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수십년 역사를 가진 거대정당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이 제기되고, 만약 인용되는 사태까지 발생하면, 우리 헌정사에 엄청난 여파를 남길 것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은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이 지난해 12월6일 처음 언급했다. 당시 이 의원은 “국민의힘이 윤 대통령에게 동조하고, 가볍게 퉁치고 넘어가려고 하면, 개혁신당부터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을 걸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다음날 “당이 조직적으로 국헌 문란 행위에 가담했다면 정당 해산 사유인 위헌정당이라는 것이 판례”라며 국민의힘을 향한 정당 해산 가능성을 언급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지난 5일 정부에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법무부에 제출했다.

혁신당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이 위헌정당인 본질은 윤석열을 옹호하는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어긋날 때, 정부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청구한다. 우리 헌정사에선 지난 2014년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인용된 사례가 유일하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적극적으로 두둔했다는 사실이었다. 이 전 의원의 사건은 내란 음모였던 것과는 달리, 윤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실제로 군을 동원했다.

국민의힘은 집단행동을 불사하면서 윤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국민의힘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진지해지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의 사법화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지난 2010년 발표한 논문 <정치의 사법화와 민주주의>서 “헌법규범이 생활규범으로 정착되는 단계서 나타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며 “정치의 사법화가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요건이 갖춰져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권력분립의 실질적인 정착서 비롯되고 촉진되는 현상이라는 점도 간과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선동화
왜곡화

하지만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의 법 선동화·왜곡화가 돼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어느덧 공공연하게 체포영장 집행 방해를 시도하고, 지지자들에게 체포영장 집행 저지를 선동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란 사태 자체의 후유증 못지않은 것이 정치권이 구조화시킨 정치 사법화의 문제점을 수습하는 것일 듯하다. 국민의힘의 ‘아무 말 대잔치’는 비싼 관람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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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충돌’ 검찰개혁 엇박자 막전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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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추석 연휴 전에 검찰개혁을 진행하려던 더불어민주당이 신중한 입장에 들어갔다. 검찰개혁 초안을 발표하려던 당의 의견에,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수장 정성호 장관이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정 장관의 의견에 대해 여권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비판까지 했다. 당정 간 불협화음으로 검찰개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왔다. 당 지도부와 정부는 뒷수습에 나섰지만, 완전히 진화될지 관심이 모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계속 강조해 온 ‘검찰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공언대로 ‘추석 전 검찰개혁 입법 마무리’를 목표로 속도전에 돌입한 가운데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민주당 지도부와 결이 다른 의견을 연일 내놓으며 당정 간 불협화음이 나타났다. 속도전 앞두고… 민주당 국민주권 검찰 정상화 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6일, 회의를 열고 검찰개혁의 대원칙인 수사권·기소권 분리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할 방침이었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안으로 수사권·기소권의 분리 대원칙을 실현하기 위해 검찰청을 폐지한다. 그리고 기존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이관하기 위해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설치할 예정이다. 공소청은 기존 검찰의 기소권을 이관받아 기소와 공소 유지, 영장 발부 등 검찰의 고유 업무를 도맡는다. 중수청의 경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의 수사를 담당한다. 이 외에도 국수위 설치 여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위는 국무총리 산하 기관으로 경찰을 비롯해 중수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 국가 수사 기관 전체를 통솔하는 시스템이다. 이번 검찰 조직 재편으로 수사 기능을 갖게 될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중 어느 소속으로 할지 등의 쟁점 현안들도 정리돼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을 제외한 수사기관은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있다. 이들은 각각 행안부와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소속돼있다. 이 같은 초안에 대해 당 안팎에선 우려를 제기했다. 특히 국수위의 권한이 자칫 과도해지면, 정부의 수사 통제와 외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앞서 밝힌 것처럼 행안부 산하에 이미 경찰이라는 수사기관이 있는 상황에서 중수청까지 포함될 경우, 행안부의 수사 기능이 자칫 과도하게 커지는 것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공소청의 보완수사권에 대한 당과 정부의 이견도 걸림돌이다. 당은 수사와 기소 분리 대원칙 측면에서 공소청에 보완수사권을 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법무부는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진 상황에서 원활한 사건 처리를 위해서는 공소청에 보완수사권 부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6일 초안 발표 예정이었지만 구체안 두고 특위·법무부 입장 차 지난달 25일 민주당 검찰정상화특위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비공개 회의를 열었지만 최종안을 내지 않았다. 민형배 특위위원장은 지난 7일 비공개 당정대 협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속도 조절론은 없다”며 이날 회의를 최종안 확정을 위한 데드라인으로 예고했지만, 180도 달라졌다. 대신 이날 회의는 법안의 완결성에 집중했다고 한다. 특위 간사인 이용우 의원은 "초안이 사실상 나왔다고 보면 된다"면서도 "그야말로 특위안이고, 당정대 간의 논의 과정이라든지 국민적 공론화를 해 나가는 과정이라든지 이 과정이 여전히 많이 남아서 최종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의 속도조절 배경에는 개혁의 주체이자 객체인 법무부의 입장이 있던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정 장관에게 ‘검찰개혁의 핵심이 수사와 기소의 분리냐’고 물었다. 이에 정 장관은 “그렇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개시하거나 인지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은 분리해낸다는 게 1차적인 목표”라고 답했다. 다만 정 장관은 “현재는 (검찰이) 보완수사 요구 또는 재수사를 할 수 있는데, (사건이) 핑퐁처럼 왔다 갔다 하다가 과거보다 사건 처리 기간이 2배 이상 늘었다”며 “이런 문제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어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건) 전건 송치를 할 것인지, 전건 송치를 하지 않는다면 수사지휘권을 줄 것인지, 송치된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범위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부연했다. 정 장관은 민주당이 중수청을 행안부 산하에 두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경찰·국가수사본부·공수처·중대범죄수사청 4개 수사기관이 모두 행안부 밑에 들어가면 권한이 집중된다”고 우려했다. 또 기존 검찰청을 공소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헌법상 검찰총장 임명 관련 규정들과 검사 관련 규정들도 있기 때문에 위헌 문제를 제기하는 분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정 장관의 다른 의견 국수위에 대해서는 “지금 나와 있는 안에 의하면 국수위가 경찰의 불송치 사건에 대한 이행을 담당하게 돼있는데 최근 통계에 4만건 이상 된다”며 “독립된 행정위원회가 4만건 이상 사건을 다룬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6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도 국민의힘 정점식 의원이 ‘검찰 조직을 폐지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묻자 정 장관은 “검찰을 해체한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검찰이 수행해오던 기능을 재분배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에 대해 “민주당의 당론은 아직 아니”라며 “1차 수사기관, 특히 경찰의 부실·봐주기 수사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의원이 ‘검찰청 폐지로 검찰의 전문 수사 역량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취지로 질문하자 정 장관은 “굉장히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을 교란하는 금융 범죄 또는 조세 사건은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 고도의 수사 기법이 필요하고 법리적 쟁점들이 많다”며 “이런 전문 수사 역량을 중수청에 어떻게 이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은 회의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검찰의 수사개시권과 인지수사권은 완전히 배제돼야 한다”면서도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검찰개혁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견설 진상은? 그러면서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사이의 ‘핑퐁’ 등 책임 떠넘기기, 수사 지연, 부실 수사로 인해 국민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며 “개혁은 구호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할 때 비로소 성공한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당 안팎에서는 정 장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검찰개혁 특위 위원장인 민형배 의원은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입장에 관한 질문에 “당 지도부는 장관께서 좀 너무 나가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특위안에는 그런 내용이 없고, 당정에서 합의됐거나 의논해서 한 건 아니”라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 의견을 말씀한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정 장관이 행안부 산하 중수청 설치 방안에 우려를 밝힌 데 대해서도 “당에서 입장을 내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장관 본분에 충실한 건가, 이런 우려가 좀 있다”면서 “(장관이) 저희 특위 초안을 모르는 상태 같다”고 지적했다. 당 지도부의 의견을 내세워 정 장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한 것이다. 이른바 ‘검찰개혁 4법’을 발의하고 관련 논의를 주도해 온 김용민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서 “바꾼다고 모든 것이 개혁은 아니다”라며 “개혁을 왜 하려고 하는지 출발점을 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도부·정부 나서 진화 “당 결정대로 따라갈 것” 민주당과 정 장관의 의견이 갈리면서 ‘당정이견’설이 분출한 가운데,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28일 오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 지도부 인사말에서 “개혁의 작업은 한 치의 오차·흔들림·불협화음 없이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 과정에서 당정대는 원팀 원보이스로 굳게 단결해서 함께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김병기 원내대표도 “국민주권정부의 실질적 성과는 당정대 원팀 정신이 그 중심에 있다”며 “다음 주부터 우리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정기국회가 시작된다. 이재명정부 국정 기조와 국정 과제의 실천을 (당이) 더 확실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당정 일치 기조를 강조했다. 정부와 대통령실에서도 수습·진화에 나섰다. 이날 워크숍 현장에 방문한 정 법무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이견은 없다”며 “어쨌든 입법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니라 당이 갖고 있다. 당에서 잘 결정되는 대로 잘 논의해서 따라갈 것”이라고 한발 물러났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도 당과 법무부 사이 이견에 대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며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전체적인 로드맵을 합의했다. 정부와 당이 각자 검찰개혁안에 대한 여러 가지 각론에 대한 의견들을 제기하기도 하고 수렴하기도 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당과 정부의 의견만 다른 게 아니라 당 내부에도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각각의 의견들이 다 도출되는 과정이라고 본다. 말하자면 일종의 공론화 과정에 이제 들어간 것이다. 대통령실은 이 내용들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 수석은 “다만 바라건대 내용 자체의 토론에 좀 집중했으면 좋겠다”며 “특정인과 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공격 같은 건 하지 말고 이렇게 내용 토론으로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법조계 의견은? 한편 법조계에선 정 장관이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평소 소신과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 한 법조인은 “정 장관은 외골수처럼 직진하기보다 남의 편을 설득하고 내 편을 혼내가면서 합의점을 찾는 정치를 해온 사람”이라면서 “강성 개혁에 집착하기보다는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변화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