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VC’ 꽂힌 재벌가 속사정

나쁠 것 없는 1석2조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기업이 투자 회사를 만들어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그림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를 계기로 이 같은 현상이 한층 확연해진 양상이다. 오너 경영인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나 마찬가지다. 상생이라는 대의를 내세워 후계자의 경영 성과를 부각시킬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기업이 주도해 설립 및 운영하는 벤처투자사를 뜻한다.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그간 일반 지주회사는 CVC를 보유할 수 없었지만, 2020년 12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의 CVC 설립이 제한적으로 허용됐다. 당시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지분 100% 보유 ▲외부 자금 40% 미만 조달 ▲펀드 조성 시 총수 일가 및 계열사 출자금 합계액 20% 이하 등이었다.

줄줄이 설립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대기업들은 CVC 설립에 적극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 산하 CVC는 지난해 말 기준 스타트업 101곳에 총 1764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CVC를 운영하는 대기업은 총 13곳이었다. 이 가운데 두산, GS, 세아 등이 CVC 운영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산은 2023년 7월 두산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같은 해 12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신기술사업금융업 라이선스를 따며 벤처·스타트업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두산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2월 ▲㈜두산 ▲두산에너빌리티 ▲두산밥캣 ▲두산테스나 ▲두산로보틱스 등으로부터 200억원씩 출자받아 총 1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결성했다.

두산인베스트먼트는 우수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두산이 신재생에너지, 로봇, 수소 등을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만큼, 두산인베스트먼트는 그룹 핵심 계열사들과 사업 결합을 도모할 만한 벤처기업을 적극 발굴할 것으로 보인다.


GS는 GS벤처스를 통해 친환경 에너지·건설·유통 신사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해외에서는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GS퓨처스를 운영하며 유망 신기술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세아는 2022년 11월 지분 100%를 출자해 세아기술투자를 설립했다. 세아기술투자는 철강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미래 제조업 분야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투자 열풍
경영 성과 내세우는 용도?

대기업들이 CVC를 주목하는 건 위험 부담을 줄이면서 혁신 기술 확보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M&A를 통한 신사업 진출은 실패 시 엄청난 자원 손실을 야기하지만, CVC를 내세운 투자는 실패하더라도 금전적 손해가 제한적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신기술 개발 속도가 빨라지면서 개별 기업의 역량만으로 시장을 선도하기 어려운 경영 환경인 것도 CVC를 주목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CVC 관련 장벽을 낮추는 작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 공정위는 일반 지주회사 산하 CVC가 해외 창업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확정했다. 이번 개정안은 국외 창업기업이 ‘중소기업창업 지원법’상 요건을 충족하면 해외 투자를 제한하지 않겠다는 게 골자다.

벤처 업계는 정부의 CVC 규제 완화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대기업과의 전략적 협업이 수월해질 수 있고, 대기업 지주회사의 풍부한 유동성이 벤처기업을 향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다만 CVC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쓰인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CVC의 진짜 목적이 재벌기업 후계자의 경영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함이라고 보기도 한다.


지난해 8월 동국인베스트먼트는 금융감독원 승인을 통해 설립 5개월 만에 신기술사업금융회사로 공식 등록됐다. 동국인베스트먼트는 지난달 12일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출자하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사업 ‘CVC 스케일업 펀드’ 위탁운용사(GP)로 선정된 상태다.

재계에서는 장세주 동국홀딩스 회장의 장남인 장선익 동국제강 전무가 동국인베스트먼트를 승계 작업에 활용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장 전무는 2020년 동국제강 상무에 오른 지 2년 만에 구매실장 전무로 승진했고, 지난달 초 동국씨엠 구매실장을 겸하는 등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그럴듯한 이유

실제로 장 전무가 머지않아 동국인베스트먼트 경영에 직접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계속되고 있다. 동국인베스트먼트에서 성과를 내고,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장 전무가 직접 챙기는 모습을 부각시킬 거란 계산이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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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북풍 공작’ 노상원, 탈북민 휴민트 접촉 정황

[단독] ‘북풍 공작’ 노상원, 탈북민 휴민트 접촉 정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12·3 불법 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민간인 신분임에도 정보사 안가서 군 간부들과 회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비상계엄 때 활동할 HID 요원 선발을 계획했다. 회의를 마친 노 전 사령관이 수시로 접촉한 이들이 있다.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이다. 노 전 사령관이 실제 북풍 공작을 실행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계엄 전부터 회의를 진행한 데 중 한 곳이다. 탈북민 출신 휴민트도 연루돼있다.” 한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주도한 이 모임의 장소는 대방아트센터로 알려진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중앙신문단 건물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12·3 불법 계엄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했다. 계엄 전 적극 회의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군·정보사 관계자들은 노 전 사령관이 회의를 마치면 탈북민 출신 휴민트(Human Intelligence)와 접촉했다고 강조했다. 21세기의 대북 첩보는 HID뿐만 아니라 북한 사람과 탈북민이 휴민트로 활동하며 첩보 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정성욱 대령과 김봉규 정보사 중앙신문단장(대령)과 회동한 이후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과 접촉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노 전 사령관이 만난 휴민트들은 현직 군인이 아니다. 정보사 내부에서는 이들에 대해 ‘민간인 블랙’이라고 하지만 현재 휴민트로 활동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과 지난해 3월부터 경기도 안양과 신길동 인근서 만났고 불법 계엄 직전까지 모임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군 정보 소식통은 “노 전 사령관이 국정원 파견 근무 시절부터 알고 지낸 이들이다. 김용현 전 장관에게 대북 첩보를 제공해 이쁨받을 때 이들의 공이 컸다. 노 전 사령관은 탈북민 출신 휴민트들과 회의한 내용을 항상 김 전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탈북민 출신 휴민트는 휴민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북 첩보를 알고 있는 이들이다. 북한 현지서 활동하다 내려와 대북 교란 전략과 혼란 유도 전문가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정보사 중앙신문단 위장 ‘대방아트센터’ 회동 노, 탈북 출신 휴민트 미팅 후 김용현에 보고?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국정원이 관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육군 대북 첩보 공작 전문인 820(인간정보)병과에서 관리한다. 노 전 사령관은 150(일반정보) 출신이다 보니 대북 첩보 및 공작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다. 일부 언론서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정보사령관이 전문가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탈북민 출신 휴민트라면 ‘북풍 공작’ 적임자라고 볼 수 있다. 속초서 교육받은 북파공작원들이 공작 행위에 뛰어나다고 하지만 탈북민 출신들을 능가할 순 없다. 군은 수십년간 탈북민 출신들을 휴민트로 적극 활용해 왔다. 이들이 있었기에 북한과의 ‘정보 전쟁’서 우위를 점해 왔다”고 단언했다. 노 전 사령관과 신길동 건물서 만난 인물은 총 3명이다. 김 대령과 노 전 사령관, 정승욱 대령 등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모인 장소는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대방아트센터다. 탈북민들은 이곳을 대성공사라는 국가정보원 안가로 알고 있다. 국정원 직원들도 왕래하긴 하지만 정보사 소속의 6073부대 겸 중앙신문단 건물이다. 과거에는 중앙정보부·정보사·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국방정보본부·경찰 등 5개 기관이 이곳에서 탈북민을 합동으로 신문했다. 중앙신문단으로 명칭이 바뀐 건 1994년 4월이다. 2008년에는 관련 업무를 모두 경기도 시흥에 있는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로 넘겼다. 합신센터는 국정원이 관리했다. 2010년 탈북민 급증으로 합신센터가 모든 인원을 수용하지 못하자, 중앙신문단은 2014년까지 4년 동안 다시 탈북민을 받았다. 중앙신문단장인 김 대령은 12·3 불법 계엄 사태 당시 HID 파견을 주도한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수사를 받고 있다. 김 대령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대방아트센터서 정 대령과 함께 불법 계엄 선포 3주 전부터 HID 요원 선발을 논의했다. 3주 전부터 HID 선발 논의 정 대령은 최근 공수처 소환조사에서 “중복되는 인원은 최종 조율했고, 김 대령이 노 전 사령관이 ‘인원들 중에서 전라도 출신은 제외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 조사를 받은 다른 정보사 관계자도 “대방아트센터서 선발한 HID 요원들이 서울로 오면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 회의한 내용을 노 전 사령관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노 전 사령관의 수첩에는 HID 요원들이 체포한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을 수용할 방법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관할 지휘통제 벙커인 B1 벙커 외에도 추가적인 구금시설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방아트센터는 이미 장기간 수용과 심문에 필요한 시설을 갖췄다. 공수처는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노 전 사령관이 주도하는 수사2단이 이 건물을 본부로 뒀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에 강하게 집착했다. 관련 증거 확보를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들을 고문할 물품까지 준비했다. 지난해 11월17일 경기 안산에 위치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부정선거와 관련된 놈들은 다 잡아서 족치면 부정선거했던 게 다 나올 것”이라며 “야구방망이, 니퍼, 케이블 타이 등 물건을 준비해 놓으라”고 지시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에 대해서는 ‘직접 심문’ 의사를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달 1일 안산 롯데리아서 정 대령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노태악은 내가 확인하면 된다” “야구방망이는 내 사무실에 갖다 놓아라” “제대로 이야기 안 하는 놈은 위협하면 다 분다”는 등 심문 과정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도 남겼다. 정 대령은 이때 노 전 사령관에게서 A4용지 10여장 분량의 문서를 전달받았다. 선관위 직원 체포 작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와 자료였다. “북서 활동한 공작·대북 혼란 야기 전문가” 공조본, 노 진술 거부 사실관계 확인 못해 그중 ‘부정선거와 관련된 선관위 직원’이라고 적힌 명단엔 선관위 전산 직원 5명, 정보보호 직책 직원 2명, 선관위 산하기관인 여론조사심의위원회 직원 23명 등 모두 30명의 이름이 담겼다. 정 대령은 최근 공수처 조사에서도 “선관위 직원 30명 이름은 노 전 사령관이 작성해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외부에 공개되지도 않은 선관위 개별 직원들의 직책과 이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선관위 홈페이지에는 과장급 이상 간부 외 실무 직원들의 이름은 공개돼있지 않다. 정보사 고위 관계자는 “수사2단은 모두 현역 군인으로 구성됐는데 선관위 직원 명단 확보는 군 외부 인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은 함께 자리한 김 대령에게 “선관위 홈페이지 관리 직원을 확보하고 ‘부정선거 자수 글’을 올리라”고 지시했다. 앞서 정 대령의 법률 자문을 맡은 김경호 변호사는 지난 20일 ‘대국민 사과 및 자료 공개문’을 배포하고 ‘햄버거 회동’을 통해 “선관위 직원들을 사실상 자유를 박탈하는 수단(필요하면 케이블 타이 논의)까지 검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정보사 ‘체포조’의 구체적인 도구 사진까지 공개했다. 송곳, 망치, 야구방망이, 케이블 타이, 안대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정보사 간부는 30여명의 체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하고 포승줄과 복면 등을 준비, 요원들에게 “포승줄로 묶고 얼굴에 복면을 씌운 후 수방사 벙커로 이송하라”고 지시했다. 군 정보 소식통은 “검찰이 공개한 사진 속 도구들은 정보사 물품이 아니다. 비상계엄이 지속됐다면 수사2단서 쓸 물품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정보사 내부는 현재 그야말로 아사리판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계엄에 개입되면서 존폐 위기까지 언급되고 있다. 특히 대북 첩보·공작 비전문가들이 두루 요직을 차지하면서 문 사령관을 향한 분노도 커지고 있다.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에 신임 100여단장으로 취임한 정모 준장은 문 사령관의 최측근이자 공작 비전문가”라며 “100여단장으로 150출신을 내세우는 건 간첩이 판치라는 얘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보망 초토화 공작요원들과 HID로 이뤄진 100여단은 지금까지 820특기 출신이 여단장을 맡아왔고, 820 내부서 준장으로 임기제(2년) 승진을 해왔다. 820특기 내부서 준장 승진자가 없는 경우에는 100여단 내에 있는 최선임 대령이 여단장 직무 대리를 맡아 왔다. 공작요원, HID 등 인간정보를 주특기로 하는 이들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100여단장이 공작 업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인물이 된 셈이다. 다른 군 고위 관계자도 “이미 정보사 간첩 사건으로 휴민트망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황인데 비전문가가 여단장을 맡은 건 정보사 문 닫으라는 소리”라며 “내부서도 분노가 상당하다. 간부들이 내란범 최측근의 말을 듣겠냐”고 되물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