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㉝“바다 너머 무엇이 있을까?”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12.23 03:00:01
  • 호수 15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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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작열하는 태양 빛 아래 맨살을 드러낸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었다. 용운은 수영도 서툴거니와 숫기가 적어서 그 속에 끼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안면을 트고 통성명을 한 서울 손님 ‘양돼지’ 녀석이 자꾸 불러대는 바람에 마지못해 나갔다. 

원장 딸과 밀담

모래밭에 반사된 햇볕은 눈이 부셔서 아플 지경이었다.

용운은 수영을 가르친다기보다 그저 양돼지와 함께 얽혀 뒹굴면서 개구리 헤엄과 뒤로 누워서 나가는 송장헤엄 따위를 익혔다. 사장 왕거미가 모래사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문득 하늘을 보는데 연보랏빛 수영복을 입은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단발머리를 한 그 소녀의 하얀 목덜미와 등허리가 햇빛보다 더 눈부셔서 용운은 몇 번이고 자맥질을 했다.

소녀는 용운과 눈이 마주치자 해맑게 한번 웃더니 깊은 바다 쪽으로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마치 헤엄 실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소녀는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또 미소를 지으며 따라오라고 손짓하는 것이었다.

용운이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자 소녀의 미소는 갑자기 물속으로 가라앉아 버리고 한쪽 손만 다급히 흔들어댔다.

용운은 장난인지 사실인지 몰라 지켜보았다. 그러나 손마저 수면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보곤 죽을 둥 살 둥 모르고 헤엄쳐 그쪽으로 갔다.

짧은 순간 소녀의 얼굴이 사라져 버린 그 시퍼런 바다가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용운은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워하던 바다가 차라리 안락했다. 죽음이 무섭지 않으니 더 이상 겁나는 게 없었다.


예쁜 소녀를 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건 어디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엄마를 찾고 싶은 일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뒤쪽에서 호호호 하고 웃음소리가 났다. 곧 이어 부드러운 팔이 목을 휘감았다.

“놀랐니?”

“그럼 안 놀라겠니?”

“내가 정말로 죽은 줄 알았니?”

“뭐…… 혹시 장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어.”

“그럼 왜 이리루 왔니?”

“아깐 알았는데 모르겠어, 지금은. 계속 헤엄쳐서 저 바다를 넘어가고 싶어.”

“나하구 함께 갈까?”

소녀는 용운의 귓가에 입을 대고 속삭이며 매끄러운 두 다리로 용운의 하체를 휘감아 조였다. 

그때였다. 해변가 쪽에서 호각소리가 날카롭게 빽빽 울리더니 이어 왕거미 사장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와! 어서 이리 돌아오란 말이야! 죽으려고 환장한 거야, 응?”


용운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왕거미 사장에게 한번 찍혀 걸리면 뼈도 못 추리고 그 시간부터 선감도가 바로 지옥으로 변하며,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된다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무지개 빛깔 파라다이스
“보이지 않는 괴로움 있어”

용운은 먼 바다 쪽을 한번 돌아다본 후 즉시 소녀의 팔을 끼고 해변 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수평선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소녀가 할딱이며 귓가에서 소곤거렸다. 용운도 할딱이며 대답했다.


“자…… 유…….”

대꾸하다가 용운은 바닷물을 한 모금 들이켜곤 캑캑거렸다.

“호호, 오색 무지개 빛깔의 문이 열린 파라다이스가 있을 듯도 해. 우리 같이 가볼래?”

용운은 소녀의 초롱한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 가고 싶어!

이 지옥에서 탈출해 엄마를 찾고 그리고 내가 태어나 뛰놀던 고향 땅에도 가보고 싶어. 그러면 내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입술을 조금 옴직거렸을 뿐 결국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안 돼! 이젠 어서 돌아가야 해. 넌 서울로 돌아가면 행복한 무지개가 뜬 집이 있잖아. 어서 가자!”

“흥!”

소녀는 샐쭉해지더니 어조가 좀 변했다.

“뭐가 무서워서 그러니, 응? 죽음? 난 때로는 죽고 싶은걸.”

“너가 왜?”

용운이 묻는 사이 바닷물이 입으로 들이쳤다. 

“흥! 아빤 여기서 폼을 재고 있지만 우리 집안 꼴은 아주 우스워. 아마 사실을 알면 지금처럼 저러진 못할걸. 호호…….”

소녀는 용운을 따라 헤엄을 치면서 종알거렸다.

“왜 그런데?”

“흥! 우리 엄만 아빠한테 폭행당해서 죽고 지금 새엄마 년은 뒤루 호박씨 까면서 살살 놀러 다니고 있어. 그런데두 아빤 자기가 잘하는 줄 착각하고 폼이나 재구 있어. 아빠가 우리 엄마에게 프로포즈할 때 엄마가 거절하자 권총을 빼들고 위협했대.”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덧붙였다.

“정말 비겁하지 않니? 남자로서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랬을까?”

“니네 아빠가 누군데?”

“히히, 몰랐니? 여기 원장님이시랜다. 호호호…….”

용운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더 앞으로 나가고 싶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왕거미 사장이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채 용운을 잔뜩 노려보고 있었다.  

심한 질책과 폭행을 당할 줄 알았던 용운은 왕거미 사장이 의외로 별 말 없이 미소까지 지어서 의아스러워하면서도 속으로 한숨을 폭 내쉬었다.

왕거미 사장의 눈은 소녀의 허연 허벅지와 미끈한 다리를 흘끔흘끔 훔쳐보며 번들거렸다. 

“다음에 또 봐.”

소녀가 장밋빛이 섞인 푸르스름한 입술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응.”

용운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왕거미의 눈에 의해 위축되어서 소녀의 하얀 귀에까지는 전달되지 못한 듯했다. 소녀는 단발머리를 흔들며 걸어가 버렸다.

기약 없는 말소리

그녀의 매끈한 종아리에 박꽃 누나의 절뚝거리는 여윈 다리가 겹쳐졌다. 용운은 소녀와 헤어져 학원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에게나 겉으로 보이지 않는 괴로움이 있는가 보구나. 아마 그 소녀를 다시 볼 수는 없겠지.”

용운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다음에 또 봐.” 하던 기약 없는 말소리만 귓가에서 떠돌았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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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