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조 폰지사기’ 돈세탁에 감긴 시장님 추적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1.25 12:41:06
  • 호수 1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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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갤러리서 그림 산 돈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가짜 가상자산 예치 사이트를 만들어 투자자 1만671명으로부터 5062억원을 가로챈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일당은 금융관계법령에 따른 인·허가를 받거나 등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원금 보전을 약속하면서 투자를 유도했다. 특히, 수익금을 세탁하기 위해 현직 광역시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갤러리서 수억원대 미술품을 구매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수천억원대 가상화폐 폰지사기(불법다단계·유사수신) 의혹을 받는 ‘와콘’ 변영오 대표 등 2명과 국장·지사장·센터장급 간부 40명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지난달 29일 밝혔다. 이들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기),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다. 변 대표 등 구속된 2명은 지난 7월23일, 그 외 직원들은 지난달 23일 검찰에 넘겨졌다.

피눈물로

앞서 일당은 본사와 지사, 센터 등 전국에 있는 사무실서 사업설명회를 열고 “가상자산을 예치하면 해외카지노 사업 등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 40일의 약정 기간이 지난 뒤 원금을 그대로 돌려주고 20% 상당의 이자를 지급해주겠다”고 투자자들을 속였다.

이들은 상위 업체 SAK-3(싹쓰리)의 김대천 회장이 소개한 해외카지노 정킷 사업에 일부 투자할 뿐 피해자들에게 설명한 수익사업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다. 이는 전형적인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수법으로 볼 수 있다. 

피해금 대부분은 일당의 수당과 돈세탁 용도의 미술품, 요트, 토지 구입, 정치인 로비를 위한 상품권 구입 등에 사용됐으며 기존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수당과 소개비는 신규 투자자들의 투자금으로 충당했다. 또 실제 예치 사이트인 것처럼 꾸민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투자금이 안전하게 예치되고 약정 이자도 정상적으로 지급되는 것처럼 보였던 해당 사이트는 단순 전산 담당이 입력한 숫자만 나타나게 설정된 것일 뿐, 실제 투자금과 가상자산은 모두 총책 김 회장의 계좌로 입금된 것으로 조사됐다.

투자 피해자들은 김 회장이 모든 사건의 설계자라고 설명했다. 싹쓰리는 변 대표를 포함해 6명의 이사(지분자)를 뒀다. 김 회장 일당은 마카오 카지노 정킷방 운영을 통해 수익을 내서 지급하겠다고 투자자들을 모집했으나, 이들은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 이 일로 인해 경찰의 수사를 받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실상 김 회장의 돈세탁 역할을 맡은 변 대표는 지난해 11월 전국 지사를 돌며 투자자들에게 “지난해 6월부터 출금이 막힌 이유로 싹쓰리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못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싹쓰리 일당을 고소했고, 투자한 원금과 그 업체의 재산을 다 파악한 상태라고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카카오톡 대화 기록을 살펴보면, 김 회장이 변 대표에게 ‘H 화랑에 총 7억3700만4000원을 송금해달라’는 내용이 담겼다. 김 회장은 2022년 5월31일, 7월16일, 9월1일 3차례에 걸쳐 모 광역시 소재 H 화랑에 각각 3억1220만4000원, 1억5680만원, 2억6800만원을 송금하라고 했다. 이에 변 대표는 즉각 이체확인증을 보내며 답장했다. 

취재 결과, H 화랑은 소재지인 모 광역시장의 아내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확인됐다. 실제로 김 회장 측은 H 화랑서 광역시장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시에 수억원을 기부하며 광역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의 장인 권모씨도 해운회사를 운영하며 지자체장을 후원했다고 알려졌다.

다단계 폰지사기 혐의 와콘 변영오 일당 송치
상위 업체 ‘SAK-3’ 김대천 회장 기막힌 작전

또 다른 대화 메시지에는 김 회장이 변 대표에게 ‘상품권을 구입해야 한다’며 2022년 10월7일, 11월8일과 지난해 2월6일 각각 3억5000만원, 2억8830만원, 1억9200만원을 입금하라고 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해당 상품권을 H 화랑 대표의 남편인 광역시장에게 전했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김 회장이 구매한 약 10억원에 달하는 호화 요트도 발견돼 피해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싹쓰리와 와콘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본 한 남성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광주시에 거주한 A씨는 지난해 11월28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매체가 입수한 A씨의 유서에는 김 회장에 대한 원망이 담겼다.

A씨의 유서 마지막에는 “김 회장, 김주현, 강주연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는 내용과 함께 피해자 구제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 유서에 언급된 김주현은 직업 군인 출신으로 직접 투자 설명회를 갖고 투자자들로부터 끌어모은 이더리움을 김 회장에게 전달하는 최종 모집책의 역할을 했다. 김씨와 내연관계인 강주영은 자금관리를 맡았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의 고령 여성이다. 경찰은 투자자 1명 소개 시 그 투자액의 10%를 소개비로 지급하는 수법이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고 있다. 1인당 최대 피해금액은 92억원에 달했다. 와콘은 변 대표와 함께 구속된 공범이 기존에 갖고 있던 유사수신 조직을 활용해 투자자들을 늘려나갔다.

비전문가들은 알기 어려운 가상자산 투자라는 점도 피해를 키웠다.

경찰은 지난 3월부터 전국 경찰서에 접수된 사건 490건을 병합해 수사에 착수했다. 변 대표가 설립·운영한 서울 본사와 전국 지사 및 일당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고, 피의자 42명을 포함해 프로그램 개발자·직원 등 관련자 50여명을 조사했다.

압수수색 과정서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시계 등을 압수했고, 추가 자금 추적 등을 통해 전체 101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에 대해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 결정을 받았다.

회원 수만 약 1만2000명으로 추정되는 와콘은 IT회사를 표방했지만, 뚜렷한 수익구조 없이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선순위 투자자에게 고배당을 지급한 다단계 폰지사기 의혹을 받는다. 전국 곳곳에 지사를 두고 금융당국에 등록하지 않은 채 티핑·메인이더넷 사업 등으로 가상화폐 스테이킹 상품을 운용했다. 

투자자 모집 과정서 지인 소개비로 무제한 레퍼럴(거래 수수료) 수익을 두고 직급에 따라 고배당을 지급하는 등 다단계 방식을 취했다.

광역시장 부인 화랑에 7억 이상 송금 
로비용 상품권 구입에 총 8억3030만원

경찰은 싹쓰리를 대상으로도 수사 중이다. 현재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김 회장은 변 대표를 포함한 6명의 지분자를 두고 와콘과 같은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모았다가, 지난해 2월부터 원금 및 이자 미반환 사태가 발생했다. 싹쓰리로 인한 피해 금액은 와콘서 돌려받지 못한 금액과 다른 지분자들에게서 거둬들인 투자금까지 포함해 1조원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와콘을 제외하고 다른 지분자들은 P2P(개인간 거래) 방식으로 개인 다단계를 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와콘을 변호한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의 남편 이종근 변호사가 농·수·축산물 거래를 가장한 폰지사기 혐의를 받는 시더스그룹 휴스템코리아 등의 변호도 맡아 눈길을 끌었다. 논란이 일자 최근 이 변호사는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휴스템코리아의 이상은 회장과 본부장 손모씨 등 4명은 지난 1월10일 구속 기소됐다. 또 휴스템코리아 법인 등 6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이 변호사가 검사 시절 수사 지시한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 관계자를 퇴임 후 변호한 사안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지난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이 전 검사장의 변호사법 위반 의혹 사건을 범죄수익환수부(부장검사 유민종)에 배당했다.

앞서 법조윤리협의회는 지난 8일 제131차 위원전원회의를 열고 지난해 하반기 공직 퇴임 및 특정 변호사에 대한 수임 자료 검토 결과 이 변호사를 포함해 총 4명에 대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2021년 대검 형사부장 시절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 관계자 중 한 명을 퇴직 후 변호한 것으로 전해졌고, 법조윤리회는 수입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브이글로벌 코인 사기 사건은 코인업체 브이글로벌이 발행한 코인 ‘브이캐시’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 5만여명에게 2조8000억원을 가로챈 사건이다. 이 변호사는 이 과정서 주요 피의자인 브이글로벌 관계사 대표 김모씨와 공범으로 기소된 곽모씨에 대한 변호를 수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이 변호사는 1조원대 피해를 낸 휴스템코리아 사기 사건의 휴스템코리아 법인과 대표 이모씨, 4400억원대 유사 수신업체 아도인터내셔널의 관계자 변호도 맡았지만 박 의원이 출마한 지난 총선 과정서 전관예우, 고액 수임료 논란이 일자 사임했다.

로비 시도?

국민의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휴스템코리아 사기 사건 관련 이 변호사를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대검에 고발했고, 중앙지검은 이를 범죄수익환수부에 배당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이 변호사는 인천지검 2차장검사,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 대검찰청 형사부장, 서울서부지검장 등을 지냈고, 2016년 불법 다단계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유사 수신·다단계 분야서 블랙벨트(공인전문검사 1급)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법무부 정책보좌관으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 실무 총괄을 맡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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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