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돌아온 트럼프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 탈환에 성공했다. 민주당 해리스 후보에 박빙이 아닌 압승을 거뒀다. 민주당을 지지하던 히스패닉과 흑인 집단 사이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호의적인 분위기가 조성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서 한국 외교·안보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했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으로 취임한 대통령이자 그로버 클리블랜드 이후 131년 만에 첫 임기 후 재선에서는 낙선하고 3번째 선거서 당선된 인물이다. 수백건의 논란을 달고 사는 그의 재등장으로 국제 정세 지각변동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사업가 출신
재집권 성공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보유 재산이 많은 미국 대통령이다. 로널드 레이건에 이은 미국 역대 두 번째 셀럽 출신이기도 하다. 그는 1946년 뉴욕서 부동산 재벌인 프레드 트럼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메리 앤 매클라우드 트럼프는 스코틀랜드서 온 이민자였고, 가정부로 일하다 아버지인 프레드와 결혼했다. 그의 친할아버지 프레더릭 트럼프와 친할머니인 엘리자베스 크라이스트 트럼프는 당시 바이에른 왕국 칼슈타트서 온 독일계 이민자였다.

트럼프는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자존심이 강한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도저식으로 추진하는 추진력이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으나, 반대로 자기만이 옳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선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항상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도 자신보다 앞설 수 없고 본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성향이 강하다. 트럼프는 어린 시절부터 일반적인 성향이 아니었다고 한다. 극단적인 수준으로 자신감이 넘쳤으며 그 누구도 존경하거나 롤모델로 삼지 않았다.


트럼프의 극단적 자기애는 사업체에서 자신의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으로 드러난다. 몇몇 반대자들은 트럼프의 자신감이 병적인 수준으로 높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로 규정한다.

트럼프의 저서를 보면 그 성격의 진가가 드러난다. 트럼프는 “옛날 이야기는 싫다. 현재와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발언한 적도 있다. 그 외 트럼프를 잘 아는 이들의 일화를 들어보면 자존감이 강하고 타인에게 지는 것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한다.

트럼프는 할리우드서 성공을 거둔 배우 아세니오 홀을 보는 관점도 달랐다. 홀이 대중으로부터 극심한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트럼프에게 홀은 그저 하찮은 존재로 평가됐다.

트럼프의 첫 번째 아내 이바나 역시 굴욕을 끔찍이 싫어하는 트럼프와 관련한 일화를 얘기했다. 결혼하기 전 두 사람은 콜로라도로 스키 여행을 떠났다. 스키 실력이 상당했던 이바나는 자신의 실력을 트럼프에게 미리 귀띔해주지 않았다.

이바나는 “트럼프 앞에서 제비 돌기를 두 차례 하고선 사라졌는데 트럼프가 화가 많이 났다”며 “트럼프는 스키를 벗어던지고 레스토랑으로 갔는데 (자신보다 여자친구의 실력이 뛰어났다는)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자기 자신을 “나는 매우 반항적인 사람”이라며 “논쟁이든 육체적인 다툼이든 모든 싸움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트럼프가 13세였을 때는 심지어 음악교사가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며 교사를 폭행했다고 한다. 이 같은 어린 시절 기행으로 인해 트럼프의 부모는 그를 뉴욕 군사학교에 입학시켰다.

어린 시절부터 악동·이단아…군사학교 계기
카지노·연예 사업 등 벌이다 수차례 파산도


이후 트럼프는 군사학교를 대단히 싫어했는지, 부모에게 잘못했다고 자주 빌었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도 그가 하급생 시절에는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였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상급생이 되자 군사학교를 좋아했다. 명령을 받는 건 무척 싫어했지만 남에게 명령하는 건 무척 즐겼기에 그는 노력 끝에 중대장 생도가 됐다.

그는 훗날 이 상류층을 위한 사립 군사중고등학교서 5년간 군대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정작 군대는 면제를 받았다. 1966년과 1968년 징병검사 당시 현역 판정을 받았다가 68년 재검서 1-Y(평시 면제/전시 징집) 판정을 받았고, 전시 징집 상황에 놓이자 입영 연기를 거듭한 끝에 다시 재검을 신청해 1972년에 4-F(전/평시 모두 면제) 판정을 받았다.

거친 언행과 성격, 다부진 덩치와 달리 트럼프는 술과 담배를 절대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는 형 프레드 트럼프 주니어가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해 폐인이 돼 사망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술을 가끔 즐겼으나 알코올 의존증으로 사망한 형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 절대로 술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단 한 번도 술을 입에 댄 적이 없다고 한다.

한 청소년 행사에 참석해서 즉석으로 아이들을 뒤에 세워놓고 “나는 도널드 트럼프 앞에서 술, 담배, 마약을 하지 않기로 서약합니다”라는 약속을 읽게 하기도 했다. 백악관 내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된 관료들은 다 해임했을 정도다.

흡연자인 장관들도, 백악관 보좌관들도 트럼프 앞에서는 담배 냄새를 안 풍기게 철저히 입을 가글했다고 한다. 일부 측근들은 이를 계기로 금연에 도전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트럼프는 뉴욕 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USC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할리우드서 활동하려던 기존의 계획을 접고 포덤 대학교서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로 편입해 졸업한 후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는 길을 택했다.

사업가의 길을 걸었던 그는 본인 소유의 회사를 4번 파산시킨 전력이 있다. 1991년 애틀랜틱시티의 타지마할을 당시 돈으로 10억달러 넘게 빚더미에 올려 앉히고는 파산신청을 시작으로, 다음 해인 1992년 트럼프 플라자 호텔(부채 5억5000달러), 2004년 트럼프 호텔과 트럼프 카지노(부채 18억달러), 2009년 트럼프 엔터테인먼트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파산했다.

어릴 때부터
극단적 성격

타지마할 카지노의 실패 이후 은행의 신뢰를 잃은 트럼프는 이후 피자 광고, 햄버거 광고 및 TV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했다. 시카고를 비롯한 많은 미국 주요 도시에는 트럼프의 이름이 크게 걸린 빌딩이 하나씩은 있는데 이건 본인이 지은 건물이라서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빌려준 것이다.

대한민국에도 서울, 부산 등에 트럼프월드가 있을 정도다. 이 밖에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른 책들을 내기도 했다. 부동산 사업뿐만 아니라 미스 USA와 미스 유니버스를 소유하는 등 연예 사업도 진행했다.

트럼프는 젊은 시절부터 언론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그의 저서에는 “언론은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고, 싸움 붙이는 걸 좋아한다” “언론이 날 이용하듯이 나도 언론을 이용한다”는 등 단순히 언론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사실상 ‘언론이 공격하면 이용하라’고 적혀있다.

실제 2016년 미국 대통령선거서 트럼프는 언론과 적대 관계를 형성했고, 인터넷, 신문, 텔레비전, 유튜브, SNS 등에는 사실상 트럼프 이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주장한 ‘언론을 역으로 이용하라’는 전략이 대선에도 통한 것이다.


트럼프가 영향을 받은 몇 안 되는 사례로 1970년대 매카시즘으로 유명한 로이 콘 변호사를 꼽을 수 있다. 로이 콘은 트럼프에게 “악명도 이득이 된다”고 조언했고 트럼프는 저서에도 비슷한 문구를 적기도 했다.

트럼프는 기업인으로서의 행보가 주가 돼 연방 상·하원 의원과 정부 공직은 물론이고, 주지사나 지방 의회 의원과 같은 자치단체 경력도 없어 정치 경력은 전무했다.

트럼프는 2000년대 당시 민주당의 성향과 일치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의료보험 개혁을 찬성하거나 유색인종에게 호의적인 발언을 하고, 낙태로 처벌받아서는 안 된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실제 그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러나 2008년 대선서 매케인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예측 불가능(unpredictable)”하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성 정치인들에게 피로를 느끼고 있던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게 됐다. 악명도 명성이라는 말대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계기가 되면서 공화당 경선을 1위로 통과하더니 결국 정치인으로 유명했던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정치 신인이었던 그가 당선되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다.

감옥행 모면
위험한 복귀

2018년 5월 기준 여론조사에 발표한 트럼프 정부의 지지율은 약 41.2~42.3%, 반감도는 52.5~52.9%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여론은 나빴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여론이 좋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여느 중간선거와 마찬가지로 대통령 심판 선거로 작용했던 2018년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졌다. 중간선거 역사상 100년 만에 최고로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분노한 민주당과 지키려는 공화당이 거세게 맞붙었으나 결과는 트럼프에게 불리해졌다는 평이 상당했다. 상원은 민주당이 방어하는 형태였으나, 공화당이 2석을 더 가져가 수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43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얻어 과반수로 하원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2020년 미국 대통령선거서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에게 패배해 조지 H. W. 부시 이후 28년 만의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다.

트럼프는 4년 만에 복귀에 성공했다. 그는 지난 6일(미국 동부 시각) 오전 2시30분 자택이 있는 플로리다 팜비치서 연설을 통해 “오늘밤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며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영광”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당선을 “미국 역사상 본 적이 없는 정치적 승리”라고 자평하면서 “미국의 황금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를 통해 공화당이 다시 상원 다수당이 됐고, 하원 다수당 지위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은 우리에게 전례 없고 강력한 권한을 줬다”며 행정부에 이어 의회 권력도 차지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미국을 다시 안전하고 강하고 번영하고 자유롭게 만들 것”이라며 “내가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는 지난 4년간의 분열을 뒤로 하고 단결할 시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우선주의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미국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적어도 당분간은 우리나라(미국)를 가장 우선해야 한다”면서 “국경을 굳게 닫을 것이고, 사람들이 미국에 올 수는 있지만 반드시 합법적인 방식으로 와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날 트럼프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누르고 승리를 확정지었다. <AP통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체 선거인단 538명의 과반(270명)을 웃도는 277명을 확보해 해리스 부통령(선거인단 224명)을 눌렀다.

이번 대선서 트럼프는 7대 경합주(선거인단 93명)서 해리스를 크게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트럼프는 남부 선벨트(Sun Belt)로 분류되는 경합주 조지아(16명)와 노스캐롤라이나(16명)서 승리를 확정 지었다.

돈·혐오 무기로 4년 만에 백악관 탈환
미디어 역이용 점령…행보는 예측 불가

경합주 중 선거인단 수가 19명으로 가장 많아 핵심 승부처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도 트럼프가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AP통신>은 트럼프가 백악관 탈환이라는 목표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향후 4년간 그의 형사 소송은 중단되게 됐다. 법무부 당국자들은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다는 법무부 방침에 따라 트럼프의 두 건의 연방 형사사건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국 법무부는 트럼프가 대선서 패했더라도 이들 사건이 대법원 상고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쟁점이 첨예해 당분간 재판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왔다.

이에 공소를 유지해 취임 전 몇 주간 소송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최종 결정은 잭 스미스 연방 특별검사에게 달려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첫 임기 중 취득한 국가기밀문건을 2021년 퇴임 후 플로리다 자택으로 불법 반출해 보관한 혐의와 2020년 대선 패배를 뒤집으려 한 혐의 등으로 형사 기소된 상태다. 이 사건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이 임명한 스미스 특별검사가 수사해 기소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형사 기소된 전직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임기 중 형사 처벌 가능성은 낮아질 것으로 법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척 로젠버그 전 연방검사는 “합리적이고 불가피하지만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연방 사건 외에도 트럼프는 두 건의 형사사건에 더 연루돼있다. 뉴욕서 진행된 성추문 입막음 돈과 관련된 회계장부 조작 사건과 조지아주 검찰이 제기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의혹이다. 뉴욕 사건과 관련해서는 트럼프 변호인단이 오는 26일로 예정된 형량 선고 일정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이 사건으로 트럼프는 최대 4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대통령 당선자에 대한 선고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선고가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조지아 사건은 수사 검사와 풀턴카운티 검사장이 사적인 관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재판이 중단된 상태다.

트럼프는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기소가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트럼프는 “취임 직후 2초 내에 스미스 특별검사를 해임하겠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법무팀은 사건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기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반도
영향은?

스티븐 청 트럼프 대선캠프 대변인은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라는 국민의 압도적인 명령으로 당선됐다”며 “이제 국민은 사법제도 무기화를 즉각 중단해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을 통합하고 국가 발전을 위해 함께 일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다만 퇴임 후 사건이 다시 진행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트럼프를 변호했던 제임스 트러스티 변호사는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사건을 기각할 것이라고 낙관하지 않는다”며 “적극적으로 소송을 취하하기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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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