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브로커 티내는 명태균

얼마나 우스우면…대통령까지 협박

[일요시사 취재1팀] 최윤성 기자 = 김건희 여사 ‘공천 관련 의혹’ 논란의 중심에 선 명태균은 경남지역서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일종의 정치 컨설턴트 역할을 하며, 여러 정치인들과 접점을 넓혀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각종 인터뷰를 통해 논란을 점점 더 키우고 있는 상황서 정치권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지역 정가에서 유명인사로 알려진 그는 누구일까?

최근 명태균의 과거 행적과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며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지역 정가서 ‘정치 브로커’로 여겨졌던 명씨는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데 이어 연일 언론에 폭로성 발언을 쏟아내며 여권의 긴장감을 키우는 모양새다. 그가 여권 주요 인사들과 친분을 드러내며 폭로를 이어가는 가운데,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 반복 중이다.

연일 폭로
핵심 키맨

지난 1970년 경남 창원서 태어난 명씨는 한때 역술인 등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창원 일대서 여론조사 업체 등을 운영했으며 정치 컨설팅도 해왔다.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종합광고 대행 및 신문, 소프트웨어 개발, 인쇄출판 등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주)좋은날을 운영했던 기업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 과거 창원대학교에 1억원의 발전기금을 출연하는 등 지역발전을 위해 활동했다. 

(주)좋은날은 지난 2003년에 설립됐으나,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창원대학교 발전기금 외에도 명씨는 중소기업진흥공단 경남본부서 청년 창업자의 경영을 돕는 선배기업인 멘토단으로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야 알려졌지만, 그는 지역 정가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2018년 ‘미래한국연구소’를 창립하고 (주)피플네트웍스리서치(PNR)와 함께 여론조사 관련 업무를 진행하면서 정치권 관여 폭을 넓혀왔다. 


유명인사였던 명씨의 호칭은 다양했다. 누군가는 그를 ‘정치 컨설턴트’라고 불렀고, 다른 이들은 ‘브로커’ 또는 ‘사기꾼’이라고 칭했다.

명씨가 전국적 인지도를 누리게 된 것은 지난달 19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매체 <뉴스토마토>의 집중 보도를 통해서다. 해당 매체는 명씨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친분을 바탕으로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지난 2022년 6월 보궐선거 공천과 지난 4·10 총선 지역구 이동에 개입했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김 전 의원이 경남 창원에 낸 변호사 사무실 주소지가 명씨가 사실상 운영해 온 여론조사 업체와 같았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지역 정치권에 따르면, 김 전 의원은 지난 2020년 1월 창원시 진해구에 법무법인 ‘선택’을 설립하고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4월, 21대 총선서 창원 진해 지역구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경선서 탈락했다. ‘선택’의 부동산등기부등본을 확인하면 같은 해 7월 주소는 경남 창원시 진해구 진해대로 한 빌딩 3층으로 돼있다. 이 주소는 당시 명씨가 운영하던 미래한국연구소와 동일하다. 

당시 미래한국연구소의 소장 명함은 김 전 의원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모씨로 돼있다. 김씨는 명씨가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진 또 다른 인터넷신문·인터넷방송·여론조사 업체인 <시사경남> 보도국장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명씨는 인터넷 매체인 <시사경남>의 CEO 겸 편집국장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론조사가 주된 무기로 여론의 흐름을 읽는 능력을 비롯해 정치 현안에도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역 정가서 상당한 유명인사
정치 현안에 해박하다는 평가


지난 9월19일 <뉴스토마토> 보도에 따르면, 창원을 비롯해 경남 일대서 정치하는 사람들 중 명씨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국민의힘 신성범 의원은 명씨에 대해 “무속인은 아니고 지극히 정상”이라며 “독특한 시각으로 정치를 새롭게 분석하는 희한한 촌놈”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명씨를 처음 만났다는 신 의원은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정치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고 느꼈다”며 “선거 기획 능력이나 그런 것이 탁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몰랐던 정치의 흐름을 많이 설명해줬다”고 교류해 왔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레귤러하게 공부하지 않아 약간 울퉁불퉁한 경향은 있지만, 오히려 레귤러 출신들이 갖지 못한 창의력이 있어 보였다”며 “일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눈이 있고, 발상이 좀 더 열려 있었다”고 말했다. 

명씨의 과거 이력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지난 2019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창원시 공무원에게 로비를 통해 승진시켜주겠다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이 외에도 무자격 상태로 여론조사를 실시 및 보도한 혐의, 불법 선거운동 등의 혐의로 수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가 운영한 미래한국연구소가 해당 기간 총 4차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이하 여조위)의 고발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도 지난 6일 공개됐다.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이 여조위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여조위는 지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미래한국연구소에 여론조사 기준 위반 행위로 총 4차례 고발 처분과 1차례 과태료 처분, 3회 경고 처분을 했다. 

위반 행위는 대부분 ‘표본 대표성 미확보’와 ‘미신고’였다. 연구소는 지난 2019년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보궐선거와 관련해 선거 후보자의 의뢰로 비공표용 조사 9건을 임의 구축한 전화번호 DB로 조사를 실시한 것으로 나타나 여조위가 고발 조치했다. 법원은 연구소 대표와 연구소에 각각 300만원 벌금을 선고했다. 

연구소는 21대 총선과 관련해 지난 2019년과 2020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표본 대표성 미확보와 편향된 질문지 사용 등이 포착돼 여조위로부터 두 차례 고발당했다.

두 사안을 병합 심리한 법원은 연구소 대표에게 벌금 500만원, 연구소에 벌금 300만원을 결정했다. 연구소는 제8회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 2022년 5월에도 자체 보유 휴대전화 DB로 조사를 실시하고, 특정 전화번호를 중복으로 사용해 고발됐고 벌금형이 내려졌다. 

다양한 호칭
숨겨진 이력

명씨는 5년 전 사기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 9월30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창원지방법원은 지난 2019년 7월10일 사기,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받는 그에게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명씨가 지난 2016년 4~5월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창원시 6급 공무원 A씨에게 로비를 통해 2017년 상반기 5급으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했다.

같은 해 5월부터 10월까지 피해자와 골프 라운딩을 하거나 식사 자리서 피해자가 ‘시청 어느 부서에서 근무하며 직급은 무엇인지’ ‘근무 성적이 어떤지’ 등에 대해 물어보고 창원시장의 친구, 비서실 공무원 등과 친분이 있는 것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명씨는 ‘승진 부탁을 누구에게 하려면 인사 명목이 있어야 한다’며 A씨로부터 금전을 요구했고, A씨는 같은 해 11월22일 그의 차량서 현금 3000만원을 건넸다. 이후 12월26일, 다른 공무원에게도 승진 로비 명목으로 225만원 상당의 여성용 골프용품 세트를 받았다.

또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로 선출된 지난 2021년 국민의힘 경선 당시 대의원을 포함한 당원 전화번호 약 57만건이 명씨에 의해 유출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노종면 의원은 지난 10일, 명씨가 국민의힘 당원 56만8000여명의 전화번호를 입수해 이들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여론조사에 활용된 국민의힘 당원 목록에는 책임당원과 대의원 분류, 성별과 지역, 휴대전화 안심번호 등이 포함됐다. 본 경선 기간(2021년 10월9일~11월4일)에 조사가 실시됐다는 점과 공신력이 의심스러운 외부 기관으로 당원 정보가 유출됐다는 점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미래한국연구소는 국민의힘 최종 후보 4명(원희룡, 홍준표, 유승민, 윤석열)의 본선 경쟁력 및 각 후보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대 1 가상대결 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당시 윤석열 후보의 압도적인 우위로 나타났다.


이에 같은 날 국민의힘은 명씨에게 지난 대선 경선 당시 당원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을 자체 조사하기로 밝혔다. 국민의힘 서민수 사무총장은 노 의원이 제기한 ‘당원명부 유출’ 의혹에 대해 “어떻게(명부가) 흘러갔는지 우리가 차근차근 지금부터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보도된 명씨의 언론 인터뷰는 여권을 뒤흔들었다. 그는 지난 6일 진행된 JTBC와의 인터뷰서 “(언론엔)내가 했던 일의 20분의 1도 나오지 않았다”며 “입 열면 진짜 뒤집힌다” “내가 (감옥에)들어가면 한 달 만에 이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날 <동아일보> 인터뷰에선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의 서울 서초동 자택에 대여섯번 방문해 국무총리 인사 추천 등 여러 정치적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또 대선 당시 윤 대통령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과정에도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거물급 인맥
영향력 과시

또 이날 밤 보도된 채널A 인터뷰에선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검사에게 묻겠다고 했다.

보도 이후 논란이 커지자 명씨는 인터뷰를 진행한 기자에게 연락해 “(하야, 탄핵 발언은)농담삼아 한 이야기”라며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와 지속적으로 소통했다는 등의 주장을 하는 데 대해 재차 일축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정치인들을 통해 명씨를 만나게 됐다”며 “윤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한 뒤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인 2021년 7월 초 자택을 찾아온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가 명태균을 데리고 와 처음으로 보게 됐다”고 언론 공지를 통해 밝혔다. 

이어 “얼마 후 역시 자택을 방문한 국민의힘 정치인이 명씨를 데려와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된 것이고, 윤 대통령이 당시 두 정치인을 자택서 만난 것은 그들이 보안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명씨가 대통령과 별도의 친분이 있어 자택에 오게 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후 경선 막바지쯤 명씨가 윤 대통령의 지역 유세장에 찾아온 것을 본 국민의힘 정치인이 그와 거리를 두도록 조언했고, 이후 대통령은 명씨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당시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많은 분들로부터 대선 관련 조언을 듣고 있었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의 조언을 들을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 본청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서 “뛰는 천공 위에 나는 명태균이냐”고 비꽜다. 

박 원내대표는 “요즘 김건희는 정권 실세, 명태균은 비선 실세라는 말이 돌아다닌다”면서 “용산 대통령실은 켕기는 게 있는지 침묵으로만 일관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2년 김영선 전 의원의 재보선 공천이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무상으로 여론조사를 제공한 대가라는 증언이 나왔다”며 “사실이라면 현직 대통령 부부가 공천 장사를 했다는 것이고, 명씨가 윤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를 무상 제공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비선 실세라는 말 돌아다녀”
“입도 뻥끗 못 한 상황 한심”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명씨를 두고 “제2의 최순실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조 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서 “명태균씨 또는 제2의 명태균, 제3의 명태균이 김건희씨를 통하거나 윤 대통령에게 바로 인사 개입, 인사 농단을 했다거나 정책 관련 개입을 했다면 이게 바로 제2의 최순실”이라며 “이 문제에 초점을 두고 이를 밝히기 위해서 저희 당은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도 나왔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날 원외 당협위원장과의 비공개 자유토론서 ‘김 여사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전해 듣고 “행동할 때가 됐다”며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선택을 해야 한다면 민심을 따를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당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정감사 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일방적인 얘기들이 알려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렇게 신빙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씨에 대한 당 차원의 조치 가능성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보면 발언자들의 내용이 서로 충돌되는 지점도 있다”며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승민 전 의원도 입장을 밝혔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보수 정치인들이 명태균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사람과 어울려 약점이 잡히고 이 난리가 났는데 누구 하나 입도 뻥끗 못하는 상황이 한심하고 수치스럽다”고 한탄했다. 

그는 “불법 공천 개입이든 불법 정치자금이든, 명씨와 관련된 모든 의혹들을 검찰은 철저히 수사하고 법대로 심판해야 한다”며 “만약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이 사건을 덮으려 한다면 검찰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며, 특검을 피할 명분이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이트 우려
정치권 술렁

명씨가 연일 윤 대통령 부부 및 유력 정치인과의 친분을 드러내는 주장을 이어가면서 여권 내부에서는 파장이 커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특히 그 발언의 진위 여부에 따라 이번 사건이 게이트급으로까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yuncastle@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