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먹는 여의도 철새들 막전막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22 09:38:57
  • 호수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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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갈등 풀 수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과거부터 정당을 옮기는 철새들은 많았다. 하지만 계파를 옮기는 철새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다. 대선주자의 부각·몰락에 따라 계파는 형성과 해체를 반복했다. 지나치게 당무에 개입해 계파 갈등을 확산시키는 대통령의 존재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6일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명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함께했다. 원외 인사로는 김종혁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이날 회동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진행된 것이라서 친한계의 본격적인 태동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친윤서
친한으로

현재 친한으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 김 최고위원·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한때 친윤(친 윤석열)계로 분류됐다. 김 최고위원 및 신 부총장은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윤 대통령의 편에 서서 이 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점화된 이후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친한 입장에 섰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연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내 정가에선 정치인의 정당 이동을 유난히 민감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수(13회)의 당적 이동 전력을 가진 ‘피닉제(피닉스+이인제)’로 불렸던 이인제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높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대결 구도가 굳어지면서, 이제는 정당 이동보다는 계파 이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이동이든 계파 이동이든,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명분이 필요하다. 

정치사에는 늘 당쟁이 있었다. 특히 조선 당쟁에서는 거대 정당이 분열되는 흐름도 흔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역사 속 당쟁에는 정책의 차이·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중국에선 환관 정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후한 말 청류파·탁류파의 갈등이 있었고, 북송 시절 왕안석의 신법을 놓고 신법당과 구법당의 갈등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각각 이황·이이라는 양대 유학자를 따르는 제자들이 학문적 계보 차이로 당쟁을 이어갔다. 계파 갈등으로 인해 분당하더라도, 상대 정당 혹은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분당이 대부분이었다.

현대 한국 정치는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보다는 대권주자에 대한 줄서기 차원서 계파 갈등이 진행된다.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갈등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발탁 혹은 구 민정계 등 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대한 줄서기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비서관 거취 ▲의대 정원 확대 ▲해외직구 규제 ▲특검법 등 김 여사 관련 논란 등 각론에서는 윤 대통령과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윤 대통령과의 근본적인 정책 및 정치관 등 총론에선 차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위의 견해 차이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산발적으로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

지난 16일 재보궐선거서 국민의힘은 부산 금정구청장·인천 강화군수를 수성했다. 한 대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당시 한 대표가 유세 현장서도 ‘정부 쇄신론’을 강조했던 만큼 윤 대통령과의 충돌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통령 지나치게 당무 개입해 갈등 확산
복수 교섭단체로 파벌 견제하는 일 정당

국내 정치보다 당내 계파 갈등이 더욱 극심한 곳은 옆나라 일본이다. 일본 정치는 회파 간 밀실 합의가 없으면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계파 갈등이 구조화돼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등 자민당 의원 120여명이 모인 중의원 개혁실현회의가 2018년 6월 제안했던 개혁 제안에는 “국회 개혁을 본 회의서 계속적·주체적으로 논의하며 의원운영위원회, 국회 개혁소위원회의 논의 활성화 및 각 당·각 회파의 논의 심화를 기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여기엔 ‘회파의 존재는 일상적’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는 한 정당 안에 복수의 교섭단체가 공존하는 제도로부터 비롯된다. 국내 언론서도 곧잘 언급되는 자민당 내 ▲세이와정책연구회 ▲헤이세이연구회 ▲지공회 ▲굉지회 등 회파는 모두 독자적인 교섭단체들이었다. 

일본의 정치 구도는 다이묘(大名)의 지방(藩) 통치가 오랫동안 공고했고, 막부 붕괴 및 유신체제 성립 과정서 조슈·사쓰마·도사 등 토막파(討幕派)를 구성한 번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막부 세력을 멸망시킨 보신전쟁도 조슈·사쓰마·도사 번이 승리를 주도했다.

하지만 번의 갈등을 조율할 세력은 없었기 때문에, 조슈와 사쓰마의 주도권 다툼은 구 일본군으로 이어졌다. 육군은 조슈 번이 주도했고, 해군은 사쓰마 번이 주도했다. 육군과 해군은 서로를 다른 나라의 군대로 인식했다. 

자민당은 1955년 일본민주당·자유당 등의 합당으로 창당됐다. 당시 제1야당 일본사회당이 선전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본민주당이 제2야당 자유당 및 군소 정당들과 합당한 결과물이 자유민주당이었다. 국내 정치서 3당 합당 후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일본에선 이를 ‘55년 체제’라고 하고, 이후 시작된 자민당의 독주는 ‘자민 막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55년 체제는 1993년 8월 자민당의 중의원 과반 확보 실패 후 7개의 야당이 연립정권을 만들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킬 때까지 38년 동안 이어졌다.

이렇듯 자민당은 다수의 당이 합당해 정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회파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은
더 심해

자민당 내 회파는 크게 보수본류(保守本流)와 보수방류(保守傍流)라는 틀로 구분할 수 있다. 보수본류는 ▲평화헌법 개헌 반대 ▲경제 중시 ▲케인즈주의 ▲자유무역 ▲미일동맹 중시 등 지향점을 가진 온건보수 성향이다. 보수방류는 ▲평화헌법 개헌 찬성 ▲역사수정주의 ▲자주외교 등 노선을 견지하는 강경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인적 구성 과정에도 차이가 있어 보수본류는 관료 출신들이 많고, 보수방류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직서 추방됐다가 1951년 공직추방령 해제 이후 정계에 복귀한 정치인들이다. 1990년대부터 세를 잃었던 중도파는 혁신을 중시했던 제3세력이었지만, 대부분 자민당을 이탈했다.

남은 세력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파벌 지공회에 소속돼있다. 


보수본류와 보수방류가 크게 충돌했던 시기는 1970~1980년대였다. 보수본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보수방류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당총재·총리 자리를 놓고 약 10년 동안 대결했던 시기였다. 이들의 대결을 놓고, 일본에선 그들의 이름에서 각(角)과 복(福)을 가져와 ‘각복전쟁’이라고 불렀다.

둘의 대결에는 모략·금전거래·경선 부정 등 다양한 꼼수가 있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토건 중심의 확장 재정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고, 후쿠다 전 총리는 내수경제 활성화와 대만과의 친교 유지를 중시했다.

자민당은 태생부터 한국 정치가 선호하는 빅텐트 정당이었다. 다양한 회파가 공공연하게 이합집산하고, 과거 한국 정치에 있었던 당 총재의 절대적인 위상도 없다. 대체로 총재 취임이 곧 총리 취임이기 때문에, 당 총재는 회파 간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기류가 강하다.

일본식 파벌 정치는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로 정치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무시되는 경향이 짙다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회파 간 견제가 활성화돼있어 특정인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다. 아울러 회파 대부분은 겉으로라도 정책연구회를 표방하면서 각자의 정책을 제시한다. 그래서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달라져도 국민에게는 정권교체와 비슷한 체감을 준다. 근본적으로 각각의 회파가 독자적인 교섭단체로 등록돼있어 가능한 현상이다.

자민당이 회파의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에 의존하는 정치를 수십년 넘게 이어가면서, 일본 정치에서는 정·관·재계가 지나치게 야합하는 부작용이 구조화됐다. 일본의 정치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과정의 표준은 명문대 졸업 → 3년 내외의 대기업 혹은 공무원 근무 → 현역 의원인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 입문 → 아버지의 지역구 세습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면서 지역 조직·자금·지명도까지 함께 물려받는 셈이다. 

전형적인 
정관 밀착

지난 16일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오는 27일 예정된 제50회 일본 중의원 선거의 전체 출마자 1344명 중 136명(10.1%)이, 이들 중 자민당 전체 출마자 342명 중 97명이 세습 정치인이다. 여기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선거대책위원장도 포함된다. 고이즈미 위원장은 2008년 9월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돼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준 고이즈미 전 총리였지만, 그의 정치 인생서 가장 유명한 것은 파벌 부수기 시도였다. 그는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의 지지율 추락과 참의원 선거 패배 상황서 돌풍을 일으켜 총재에 당선됐다. 총리 취임 이후 일본 정계에 투하했던 가장 큰 폭탄은 우정 민영화였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우정성이 기업화돼 설립됐지만, 직원들은 모두 국가공무원이었다. 기업의 직원이 모두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이한 형태는 전·현직 우체국장들의 모임과 우정노동조합이 각각 자민당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게다가 우정공사가 관리하는 우편저금 잔고는 2007년 기준 약 182조엔이었다. 이 자금은 대장성에 위탁해 운용됐고, 대장성이 우편저금에 적용하는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높았다. 전형적인 정·관의 밀착이었다. 

우정 민영화를 시도하는 법안은 2005년 8월 중의원을 통과했지만, 참의원서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지면서 부결된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면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차기 총선을 ‘우정 민영화 총선’이라고 명명하는 등 승부수를 던진다. 이어 중진 의원 40명의 공천을 배제했고, 유명 여배우·아나운서 등 정치 신인을 대거 발탁해 그들의 지역구에 공천했다. 이것이 ‘고이즈미의 자객 공천’이었다. 

공천이 배제된 중진들은 신당 창당으로 맞대응했지만, 유권자들은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줬다.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은 2005년 9월 진행된 제44회 중의원 선거서 전체 480석 중 327석(68.1%)을 얻는 대승을 거둔다. ‘우정 민영화’라는 정책 이슈를 과감하게 투하한 후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선명성을 얻은 결과물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6년 4월 29.2%였던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20% 이하로 낮췄다. 이는 고리대금업을 광범위하게 영위하는 야쿠자에겐 큰 타격이었다. 야쿠자의 돈줄을 옥죄는 것도 파벌 부수기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고리대금업은 정·관계 모두 손을 대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이 역시 밀착이었다.

파벌 부수기 골몰한 고이즈미…결말은?
정작 초선은 ‘고이즈미파’ 가입 원해

이 외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금융기관에 대한 재무성의 낙하산 인사 파견 금지 ▲공제연금(공무원연금)과 후생연금(국민연금)의 통합 ▲공영방송 NHK 개혁 등 회파의 인적·물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줄기를 그때그때 잘랐다.

강한 지도력을 가진 1명에 의한 정당 운영 및 통치는 과거 한국 정치서 흔히 보던 양상이었다. 일본은 반대로 회파의 밀실 담합에 관계와 재계까지 연결돼 부정부패를 양산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대중정치 재능을 한국식 정치 기법과 결합해 일본에 충격을 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오로지 그만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제44대 중의원 선거서 당선된 초선 의원 83명에게 ‘회파 입회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초선 의원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소속 파벌이었던 모리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당시 별칭) 입회를 원하는 기류가 강했다. 

이는 일본 정치인에게 회파가 갖는 의미를 상징한다. 경제희 고마자와대 강사의 2019년 논문 ‘아베의 장기 집권과 자민당의 파벌 구도’에 따르면, 회파는 정치인에게 ▲각종 정보와 연수 기회 제공 ▲금전적·물리적·인적 지원 등을 제공 ▲의원들은 파벌 주요 인물에게 총재 선거 출마 보조 ▲총재 선거 당선을 위한 지지 활동 등을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이 관계를 클라이엔텔리즘(Clientelism)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서 유력 정치인과 신참 원로원 의원이 각각 파트로누스(Patronus)·클리엔스(Cliens) 관계를 맺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2024년에 이르러 거의 해산되고 있다. 정치자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등 규모를 축소하다가 대거 적발된 스캔들이 2022년 11월부터 불거졌기 때문이다. 세이와정책연구회·지수회·굉지회 등 주요 회파가 연이어 해산을 선언했고, 이시바 총리의 회파 수월회도 ‘당내 의원 그룹’으로만 남기로 했다.

현재 남은 회파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지공회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헤이세이연구회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회파들이 완전하게 해산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그만큼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과 현대 정치의 공통점은 ‘자리’로부터 비롯됐다. 조선의 동서 분당은 간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이조전랑 자리를 놓고 시작됐고, 현대 정치의 계파 갈등은 대부분 공천 문제로부터 불거진다.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계파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은 공천 학살을 주고받았다.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를 비판한 박용진 전 의원 1명의 공천을 주지 않기 위해, 후보 3명을 연이어 내보냈다. 

총재 1인이 견고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정당은 3김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계서 은퇴하면서 사라졌다. 이와 가장 비슷한 정치를 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의 파벌 부수기도 고이즈미 전 총리의 퇴임 이후 흐지부지됐다. 

끝나지 않는
자리 싸움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치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당무 개입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당 대표들과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우리 국회법은 단일 교섭단체를 규정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계파는 공식화되지 않는다. 공식화되지 않는 틈을 파고드는 일부 정치인이 있고, 당에 3김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는 대통령도 있다. 일본의 복수 교섭단체 제도·흐지부지 소멸한 고이즈미식 파벌 부수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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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