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파 먹는 여의도 철새들 막전막후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0.22 09:38:57
  • 호수 15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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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 갈등 풀 수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과거부터 정당을 옮기는 철새들은 많았다. 하지만 계파를 옮기는 철새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다. 대선주자의 부각·몰락에 따라 계파는 형성과 해체를 반복했다. 지나치게 당무에 개입해 계파 갈등을 확산시키는 대통령의 존재도 여전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지난 6일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 20명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서 비공개 만찬을 함께했다. 원외 인사로는 김종혁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이날 회동은 윤석열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극심한 가운데 진행된 것이라서 친한계의 본격적인 태동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친윤서
친한으로

현재 친한으로 거론되는 정치인 중 김 최고위원·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은 한때 친윤(친 윤석열)계로 분류됐다. 김 최고위원 및 신 부총장은 시사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윤 대통령의 편에 서서 이 대표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이 점화된 이후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친한 입장에 섰고,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연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국내 정가에선 정치인의 정당 이동을 유난히 민감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수(13회)의 당적 이동 전력을 가진 ‘피닉제(피닉스+이인제)’로 불렸던 이인제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매우 높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양당 대결 구도가 굳어지면서, 이제는 정당 이동보다는 계파 이동을 눈여겨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 이동이든 계파 이동이든, 유권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명분이 필요하다. 

정치사에는 늘 당쟁이 있었다. 특히 조선 당쟁에서는 거대 정당이 분열되는 흐름도 흔했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의 역사 속 당쟁에는 정책의 차이·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중국에선 환관 정치에 대한 견해 차이로 후한 말 청류파·탁류파의 갈등이 있었고, 북송 시절 왕안석의 신법을 놓고 신법당과 구법당의 갈등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각각 이황·이이라는 양대 유학자를 따르는 제자들이 학문적 계보 차이로 당쟁을 이어갔다. 계파 갈등으로 인해 분당하더라도, 상대 정당 혹은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로 인한 분당이 대부분이었다.

현대 한국 정치는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보다는 대권주자에 대한 줄서기 차원서 계파 갈등이 진행된다. 최소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갈등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의 발탁 혹은 구 민정계 등 인적 구성의 차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갈등엔 오로지 두 사람만이 존재하고,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대한 줄서기 이상의 의미는 부여하기 어렵다. 한 대표는 ▲이종섭 호주 대사 임명 논란 ▲황상무 시민사회비서관 거취 ▲의대 정원 확대 ▲해외직구 규제 ▲특검법 등 김 여사 관련 논란 등 각론에서는 윤 대통령과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윤 대통령과의 근본적인 정책 및 정치관 등 총론에선 차이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위의 견해 차이도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산발적으로 제시한 것에 불과했다.

지난 16일 재보궐선거서 국민의힘은 부산 금정구청장·인천 강화군수를 수성했다. 한 대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당시 한 대표가 유세 현장서도 ‘정부 쇄신론’을 강조했던 만큼 윤 대통령과의 충돌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대통령 지나치게 당무 개입해 갈등 확산
복수 교섭단체로 파벌 견제하는 일 정당

국내 정치보다 당내 계파 갈등이 더욱 극심한 곳은 옆나라 일본이다. 일본 정치는 회파 간 밀실 합의가 없으면 정국을 이끌어갈 수 없을 정도로 계파 갈등이 구조화돼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등 자민당 의원 120여명이 모인 중의원 개혁실현회의가 2018년 6월 제안했던 개혁 제안에는 “국회 개혁을 본 회의서 계속적·주체적으로 논의하며 의원운영위원회, 국회 개혁소위원회의 논의 활성화 및 각 당·각 회파의 논의 심화를 기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여기엔 ‘회파의 존재는 일상적’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이는 한 정당 안에 복수의 교섭단체가 공존하는 제도로부터 비롯된다. 국내 언론서도 곧잘 언급되는 자민당 내 ▲세이와정책연구회 ▲헤이세이연구회 ▲지공회 ▲굉지회 등 회파는 모두 독자적인 교섭단체들이었다. 

일본의 정치 구도는 다이묘(大名)의 지방(藩) 통치가 오랫동안 공고했고, 막부 붕괴 및 유신체제 성립 과정서 조슈·사쓰마·도사 등 토막파(討幕派)를 구성한 번의 영향력이 컸던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막부 세력을 멸망시킨 보신전쟁도 조슈·사쓰마·도사 번이 승리를 주도했다.

하지만 번의 갈등을 조율할 세력은 없었기 때문에, 조슈와 사쓰마의 주도권 다툼은 구 일본군으로 이어졌다. 육군은 조슈 번이 주도했고, 해군은 사쓰마 번이 주도했다. 육군과 해군은 서로를 다른 나라의 군대로 인식했다. 

자민당은 1955년 일본민주당·자유당 등의 합당으로 창당됐다. 당시 제1야당 일본사회당이 선전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본민주당이 제2야당 자유당 및 군소 정당들과 합당한 결과물이 자유민주당이었다. 국내 정치서 3당 합당 후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던 과정과 비슷하다. 

일본에선 이를 ‘55년 체제’라고 하고, 이후 시작된 자민당의 독주는 ‘자민 막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55년 체제는 1993년 8월 자민당의 중의원 과반 확보 실패 후 7개의 야당이 연립정권을 만들어 호소카와 내각을 출범시킬 때까지 38년 동안 이어졌다.

이렇듯 자민당은 다수의 당이 합당해 정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회파의 존재를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은
더 심해

자민당 내 회파는 크게 보수본류(保守本流)와 보수방류(保守傍流)라는 틀로 구분할 수 있다. 보수본류는 ▲평화헌법 개헌 반대 ▲경제 중시 ▲케인즈주의 ▲자유무역 ▲미일동맹 중시 등 지향점을 가진 온건보수 성향이다. 보수방류는 ▲평화헌법 개헌 찬성 ▲역사수정주의 ▲자주외교 등 노선을 견지하는 강경 보수라고 할 수 있다. 

인적 구성 과정에도 차이가 있어 보수본류는 관료 출신들이 많고, 보수방류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직서 추방됐다가 1951년 공직추방령 해제 이후 정계에 복귀한 정치인들이다. 1990년대부터 세를 잃었던 중도파는 혁신을 중시했던 제3세력이었지만, 대부분 자민당을 이탈했다.

남은 세력은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이끄는 파벌 지공회에 소속돼있다. 


보수본류와 보수방류가 크게 충돌했던 시기는 1970~1980년대였다. 보수본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와 보수방류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가 당총재·총리 자리를 놓고 약 10년 동안 대결했던 시기였다. 이들의 대결을 놓고, 일본에선 그들의 이름에서 각(角)과 복(福)을 가져와 ‘각복전쟁’이라고 불렀다.

둘의 대결에는 모략·금전거래·경선 부정 등 다양한 꼼수가 있었지만, 경제 정책에 대한 견해 차이도 있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토건 중심의 확장 재정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했고, 후쿠다 전 총리는 내수경제 활성화와 대만과의 친교 유지를 중시했다.

자민당은 태생부터 한국 정치가 선호하는 빅텐트 정당이었다. 다양한 회파가 공공연하게 이합집산하고, 과거 한국 정치에 있었던 당 총재의 절대적인 위상도 없다. 대체로 총재 취임이 곧 총리 취임이기 때문에, 당 총재는 회파 간 합의에 따라 결정되는 기류가 강하다.

일본식 파벌 정치는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로 정치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가 무시되는 경향이 짙다는 단점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회파 간 견제가 활성화돼있어 특정인의 폭주를 견제할 수 있다. 아울러 회파 대부분은 겉으로라도 정책연구회를 표방하면서 각자의 정책을 제시한다. 그래서 총리를 배출하는 회파만 달라져도 국민에게는 정권교체와 비슷한 체감을 준다. 근본적으로 각각의 회파가 독자적인 교섭단체로 등록돼있어 가능한 현상이다.

자민당이 회파의 이합집산과 밀실 합의에 의존하는 정치를 수십년 넘게 이어가면서, 일본 정치에서는 정·관·재계가 지나치게 야합하는 부작용이 구조화됐다. 일본의 정치인이 정계에 진출하는 과정의 표준은 명문대 졸업 → 3년 내외의 대기업 혹은 공무원 근무 → 현역 의원인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 입문 → 아버지의 지역구 세습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으면서 지역 조직·자금·지명도까지 함께 물려받는 셈이다. 

전형적인 
정관 밀착

지난 16일 <산케이신문>과 <교도통신> 보도에 따르면, 오는 27일 예정된 제50회 일본 중의원 선거의 전체 출마자 1344명 중 136명(10.1%)이, 이들 중 자민당 전체 출마자 342명 중 97명이 세습 정치인이다. 여기에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고이즈미 신지로 선거대책위원장도 포함된다. 고이즈미 위원장은 2008년 9월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로부터 후계자로 지목돼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다른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지역구를 아들에게 물려준 고이즈미 전 총리였지만, 그의 정치 인생서 가장 유명한 것은 파벌 부수기 시도였다. 그는 모리 요시로 당시 총리의 지지율 추락과 참의원 선거 패배 상황서 돌풍을 일으켜 총재에 당선됐다. 총리 취임 이후 일본 정계에 투하했던 가장 큰 폭탄은 우정 민영화였다. 

일본의 우정공사는 우정성이 기업화돼 설립됐지만, 직원들은 모두 국가공무원이었다. 기업의 직원이 모두 국가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이한 형태는 전·현직 우체국장들의 모임과 우정노동조합이 각각 자민당과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었던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게다가 우정공사가 관리하는 우편저금 잔고는 2007년 기준 약 182조엔이었다. 이 자금은 대장성에 위탁해 운용됐고, 대장성이 우편저금에 적용하는 금리는 시중금리보다 높았다. 전형적인 정·관의 밀착이었다. 

우정 민영화를 시도하는 법안은 2005년 8월 중의원을 통과했지만, 참의원서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반란표를 던지면서 부결된다.

그러자 고이즈미 총리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면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차기 총선을 ‘우정 민영화 총선’이라고 명명하는 등 승부수를 던진다. 이어 중진 의원 40명의 공천을 배제했고, 유명 여배우·아나운서 등 정치 신인을 대거 발탁해 그들의 지역구에 공천했다. 이것이 ‘고이즈미의 자객 공천’이었다. 

공천이 배제된 중진들은 신당 창당으로 맞대응했지만, 유권자들은 고이즈미의 손을 들어줬다.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은 2005년 9월 진행된 제44회 중의원 선거서 전체 480석 중 327석(68.1%)을 얻는 대승을 거둔다. ‘우정 민영화’라는 정책 이슈를 과감하게 투하한 후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선명성을 얻은 결과물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2006년 4월 29.2%였던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를 20% 이하로 낮췄다. 이는 고리대금업을 광범위하게 영위하는 야쿠자에겐 큰 타격이었다. 야쿠자의 돈줄을 옥죄는 것도 파벌 부수기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었다. 고리대금업은 정·관계 모두 손을 대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이 역시 밀착이었다.

파벌 부수기 골몰한 고이즈미…결말은?
정작 초선은 ‘고이즈미파’ 가입 원해

이 외에도 고이즈미 총리는 ▲금융기관에 대한 재무성의 낙하산 인사 파견 금지 ▲공제연금(공무원연금)과 후생연금(국민연금)의 통합 ▲공영방송 NHK 개혁 등 회파의 인적·물적 자산이 될 수 있는 줄기를 그때그때 잘랐다.

강한 지도력을 가진 1명에 의한 정당 운영 및 통치는 과거 한국 정치서 흔히 보던 양상이었다. 일본은 반대로 회파의 밀실 담합에 관계와 재계까지 연결돼 부정부패를 양산하고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설적으로 자신의 대중정치 재능을 한국식 정치 기법과 결합해 일본에 충격을 준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방법은 오로지 그만이 소화할 수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제44대 중의원 선거서 당선된 초선 의원 83명에게 ‘회파 입회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런데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초선 의원들은 고이즈미 전 총리의 소속 파벌이었던 모리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당시 별칭) 입회를 원하는 기류가 강했다. 

이는 일본 정치인에게 회파가 갖는 의미를 상징한다. 경제희 고마자와대 강사의 2019년 논문 ‘아베의 장기 집권과 자민당의 파벌 구도’에 따르면, 회파는 정치인에게 ▲각종 정보와 연수 기회 제공 ▲금전적·물리적·인적 지원 등을 제공 ▲의원들은 파벌 주요 인물에게 총재 선거 출마 보조 ▲총재 선거 당선을 위한 지지 활동 등을 진행한다.

일본에서는 이 관계를 클라이엔텔리즘(Clientelism)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서 유력 정치인과 신참 원로원 의원이 각각 파트로누스(Patronus)·클리엔스(Cliens) 관계를 맺었던 것과 비슷하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2024년에 이르러 거의 해산되고 있다. 정치자금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 등 규모를 축소하다가 대거 적발된 스캔들이 2022년 11월부터 불거졌기 때문이다. 세이와정책연구회·지수회·굉지회 등 주요 회파가 연이어 해산을 선언했고, 이시바 총리의 회파 수월회도 ‘당내 의원 그룹’으로만 남기로 했다.

현재 남은 회파는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지공회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헤이세이연구회 밖에 없다. 하지만 이 회파들이 완전하게 해산됐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회파 정치는 그만큼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조선의 당쟁과 현대 정치의 공통점은 ‘자리’로부터 비롯됐다. 조선의 동서 분당은 간관 인사권을 가지고 있던 이조전랑 자리를 놓고 시작됐고, 현대 정치의 계파 갈등은 대부분 공천 문제로부터 불거진다.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의 계파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은 공천 학살을 주고받았다. 민주당도 이재명 대표를 비판한 박용진 전 의원 1명의 공천을 주지 않기 위해, 후보 3명을 연이어 내보냈다. 

총재 1인이 견고한 지도력을 발휘하는 정당은 3김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계서 은퇴하면서 사라졌다. 이와 가장 비슷한 정치를 했던 고이즈미 전 총리의 파벌 부수기도 고이즈미 전 총리의 퇴임 이후 흐지부지됐다. 

끝나지 않는
자리 싸움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치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당무 개입을 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당 대표들과 수시로 충돌하고 있다.

우리 국회법은 단일 교섭단체를 규정으로 제시했기 때문에 계파는 공식화되지 않는다. 공식화되지 않는 틈을 파고드는 일부 정치인이 있고, 당에 3김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하길 원하는 대통령도 있다. 일본의 복수 교섭단체 제도·흐지부지 소멸한 고이즈미식 파벌 부수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ctzx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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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