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억 묻은’ 카카오엔터 신기루 투자

비욘드 코리아 불편한 현실

미래 위해 감행한 출혈
본전도 뽑지 못하고…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카카오그룹의 미래 비전이 담긴 글로벌 법인이 좌초 위기에 몰렸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면서 그렸던 청사진은 진작에 사라졌고, 빚에 허덕거리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 모양새다. 반전을 도모하기에는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

카카오그룹은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톡’을 발판 삼아 확장을 시도해왔고, 덩치를 키우는 과정에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는 존재감을 십분 발휘했다. 2010년 7월, 포도트리라는 상호로 출범한 이 회사는 카카오그룹에 편입된 직후부터 그룹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축으로 떠올랐다.

기대
컸지만…

카카오엔터의 쓰임새는 단순히 수익 창출에 그치지 않는다.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 또한 카카오엔터를 돋보이게 만드는 요소다.

카카오그룹 지배구조는 큰 틀에서 ‘김범수(동일인)→㈜카카오→자회사→손자회사’ 등으로 이어진다. 카카오엔터의 경우 ㈜카카오 휘하에서 수많은 계열사를 아우르는 위치에 서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카카오엔터의 종속기업으로 분류되는 국내외 법인은 총 47곳(국내 법인 35개, 해외 법인 12개)에 달한다. 이들은 ▲뮤직 ▲스토리 ▲미디어 업종을 영위하면서 카카오엔터의 지배를 받는다.


카카오엔터는 ㈜카카오의 부족한 지배력을 보충하는 역할도 충실히 수행 중이다. 카카오엔터는 SM엔터 지분 19.3%를 보유 중이며, 이를 토대로 ㈜카카오는 SM엔터를 지배하고 있다. ㈜카카오는 SM엔터 지분 21.0%를 보유했을 뿐이지만, 실질 지분율(㈜카카오+카카오엔터)은 40%를 상회한다.

이처럼 그룹 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별개로 최근 카카오엔터가 처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그룹의 미래 비전을 추진하고자 사들인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에서 촉발된 후폭풍이라는 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그럴듯한 취지
아쉬운 현실

2022년 2월 카카오그룹은 해외시장 공략 의지를 담은 ‘비욘드 코리아’라는 비전을 내세웠다. 지식재산권(IP) 등을 활용해 2025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내수 의존도를 낮추는 게 기본 취지였다.

비욘드 코리아의 선봉 역할은 카카오엔터가 맡았다.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K-콘텐츠를 연계해 사업을 추진할만한 여력이 충분하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그리고 이에 앞서 결정된 사안이 바로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 인수였다.

타파스미디어는 201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한 북미 최초의 웹툰 플랫폼이다. 북미시장에서 K-웹툰을 알리는 병참기지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타파스트리’라는 작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현지 작가들과 IP 개발에 힘쓰던 상태였다. 카카오엔터는 협력관계를 이어온 타파스미디어를 2020년 11월 관계사로 편입시켰고, 이후 주요 IP를 타파스미디어를 통해 북미시장에 공급했다.

래디쉬미디어는 2016년에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모바일 특화형 영문 소설 콘텐츠 플랫폼이다. 이 회사는 집단 창작 시스템에 기반한 자체 제작 콘텐츠 ‘래디쉬 오리지널’을 내세워 가파른 성장세를 나타냈다. 래디쉬미디어는 2020년에 전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매출 23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90% 이상을 래디쉬 오리지널에서 올릴 만큼 자체 IP에 대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카카오엔터는 2021년 5월 이사회를 열고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 품기로 결정했다. 당시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는 기업가치를 각각 6000억원, 5000억원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였고, 결과적으로 카카오엔터는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를 인수하는 데 90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썼다.

타파스미디어 지분 100%를 취득하는 과정에서는 4712억원이 투입됐다. 주식대금으로 1784억원, 현금 및 현금성자산으로 2928억원이 지급됐다.

래디쉬미디어를 편입하면서 투입된 비용은 3789억원(현금 3098억원, 주식 692억원)이었다. 또 래디쉬미디어는 우시아월드(아시아 무협 장르 IP 플랫폼)를 인수하면서 총 445억원(현금 269억원, 주식 176억원)을 투입했는데, 해당 인수는 래디쉬미디어 자금으로 이뤄졌다.

실패
귀결?

카카오엔터는 출혈을 감수하면서 인수한 두 회사를 앞세워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연결기준 카카오엔터 무형자산은 8249억원, 이 가운데 영업권은 437억원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손상차손’ 항목이다. 카카오엔터의 지난해 무형자산 손상차손은 1조69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91.8%에 해당하는 9245억원이 ‘영업권’ 가치 하락을 의미하는 영업권 손상차손으로 인식됐다.

영업권 손상차손 중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4600억원은 '타파스엔터테인먼트'에서 파생됐다. 이는 카카오엔터가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시미디어를 내세워 추진한 글로벌 시장 선점 전략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았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카카오엔터는 2022년 8월 래디쉬미디어가 타파스미디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타파스엔터테인먼트가 공식 출범했다. 카카오엔터가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를 인수한 지 불과 1여년 만에 결정된 사안이다.

합병법인은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는 물론이고, 우시아월드까지 아우르는 형태로 탈바꿈했다. 대표이사는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가 맡기로 결정됐는데, 조직 효율화의 필요성이 흡수합병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모양새였다.

실제로 카카오엔터에 인수된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는 2021년 연결 편입 기준 각각 112억원, 122억원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기간 매출은 타파스미디어 170억원, 래디쉬미디어 91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합병 효과는 미진했다. 타파스엔터테인먼트는 출범 첫 해인 2022년에 매출 491억원을 올리는 데 그쳤고, 순손실은 2282억원으로 확대됐다. 전년(타파스미디어·래디쉬미디어 합산 순손실 234억원) 대비 적자폭은 10배가량 커졌다.

지난해 역시 크게 다를 것 없는 흐름이 이어졌다. 매출이 전년 대비 30.9% 상승했음에도 순손실은 1년 새 2000억원가량 증가했다. 급기야 2022년 3876억원이었던 타파스엔터테인먼트 총자본은 천문학적인 순손실이 반영된 여파로 지난해에는 -241억원을 나타냈다. 완전자본잠식에 도달한 것이다.


야심차게 투자한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가 지금껏 별다른 결과물을 내지 못한 가운데 두 회사의 창업자들은 경영에서 손을 뗀 상황이다. 타파스미디어 창업자로서 타파스엔터테인먼트를 이끌던 김창원 대표는 지난해 초 퇴사 소식을 알렸고, 이승윤 래디쉬미디어 창업자는 2022년 말 경영에서 물러났다.

손 털고
정리 수순?

타파스미디어와 래디쉬미디어의 국내 법인은 생명력을 다한 모습이다. 타파스미디어가 지분 100%를 쥐고 있던 타파스미디어코리아는 2022년 레디쉬코리아에 합병되면서 자취를 감췄다. 래디쉬미디어의 100% 자회사였던 레디쉬코리아는 타파스미디어코리아를 합병한 이후 타파스엔터테인먼트코리아로 상호를 변경했다가 지난해 청산됐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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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간첩법 개정안’ 급물살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정치권이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보사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야 모두 공감한 분위기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진일보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보다 더 많은 간첩을 잡으려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이 부활해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다. ‘간첩법 개정안’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여당이다. 한 달여 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당론 추진’을 언급하면서부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는 국가정보원장 출신인 박지원 의원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다만 두 당의 개정안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과 관련해 차이가 있다. 국회 본회의 테이블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예상 못한 내부 세작 간첩법 개정안은 지난달 군검찰이 군 정보요원의 신상 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무원 A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언급됐다. 앞서 국방부 검찰단은 정보사 요원 A씨를 기소하면서 ▲군형법상 일반이적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뇌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 혐의를 적용했다. 국군방첩사령부가 처음 A씨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송치했으나 군검찰은 수사기록 검토 결과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군형법과 형법은 ‘적’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간첩죄를 적용하는데, 여기서 적은 북한을 의미한다. 군검찰이 A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북한과 연계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씨에게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자 정치권에서는 연일 논란이 이어졌다. 먼저 한 대표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적국’으로 한정했던 간첩죄 적용 범위를 ‘외국’으로 대폭 넓히는 간첩법 개정안도 당론으로 추진 중이다. 한 대표는 지난달 말 국회서 열린 간첩법 개정 입법토론회에 참석해 “이번 국회서 두 가지를 반드시 해내자”며 “간첩법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자. 그리고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할 수 있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부활시키자”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스파이를 적국에 한정해 처벌한 나라가 있느냐”며 “형법 조항서 ‘적국’을 ‘외국’으로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지난 1일 당 최고위원회의서도 “민주당이 찬성만 하면 ‘적국’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법 개정안이 반드시 통과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명 간첩법은 형법 98조다.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북한 연관성 없으면 관련법 적용 불가 적국 아닌 외국으로 조항 신설 추진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인 북한으로 한정해 북한 외 다른 나라를 위해 간첩 행위를 하더라도 간첩죄로 처벌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적국’을 ‘외국 및 외국인 단체’로 고치는 개정안이 지난 2004년부터 끊임없이 발의됐으나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간첩법 개정안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건 국민의힘이다. 강승규 의원은 지난달 같은 당 의원 24명과 함께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엔 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사회 혼란을 초래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수행하다 적발된 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았다. ‘외국, 외국인 단체나 외국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자(안보위협인물)가 허위 사실과 왜곡된 정보를 유포할 경우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간첩 행위를 하거나 간첩을 방조한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안보위협인물이 인지전을 통해 정부 정책 결정 또는 외교관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국가안보를 위협한 경우 10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특히 정보기관 소속으로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지난달 말 간첩죄의 적용 범위를 적국서 외국과 국내외 단체 및 비국가행위자로 확대하는 간첩법 개정안(형법·군형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외국이 국내에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할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고, 군사기밀뿐 아니라 국가의 핵심기술 및 방위산업기술에 대한 유출 행위에 대해서도 간첩죄를 적용토록 했다. 윤 의원 측은 “현행 간첩법인 형법 98조는 적국을 위해 간첩 행위를 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를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게 돼있다”며 “군형법 13조서도 비슷한 취지의 조항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적국에 해당하는 북한 외에 어느 나라를 위해서든 간첩 행위를 하거나 방조할 경우나 외국이 국내 단체를 만들어 간첩 활동을 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신중한 민주당 민주당은 국정원장을 지낸 박 의원을 필두로 간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의 법안은 법망 미비를 보완하기 위해 ‘적국’은 물론 ‘외국 정부 또는 그에 준하는 단체 및 외국 정부 산하단체’를 이롭게 하기 위해 간첩 행위를 한 자도 7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간첩 행위는 ‘국가기밀을 수집·탐지·보관·누설·전달·중개하는 행위’로 명확히 규정했다. 허위·날조 정보를 온·오프라인상에서 가짜뉴스 형태로 퍼뜨려 사회 혼란을 일으키고 정부 정책과 외교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향력 공작’(인지전)을 처벌하는 조항도 담았다. 이런 행위를 외국 등으로부터 대가를 받고 저지르는 경우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신분을 위조한 외국 정보기관원(흑색요원)이 인지전을 하다 적발될 경우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하겠단 구상이다. 박 의원은 “지금도 사이버상으로 자생적 공산주의 친북 세력이 교류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서 접선을 하지 않고 중국, 동남아시아 쪽에서 접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특히 산업기술 보호를 위해서도 간첩법 개정이 필수라고 강조하며 “진보적인 민주당서 내가 주장해야 국민을 설득하고 법안이 통과돼 국가를 지탱하고 산업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측 법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국정원 대공수사권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공수사권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이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주도로 통과돼 올해부터 시행 중이다. 한 대표가 국정원 대공수사권 부활을 당론으로 추진했다고 해도 야권의 반대가 심한 상황이다. 야권은 대공수사권 폐지는 불법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 등 국정원의 공안 탄압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 지금 정보전쟁 중 특히 여야는 최근까지도 대공수사·조사와 관련한 국정원 역할을 놓고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아가 대공수사권을 넘어 조사권까지 대폭 축소하자면서 사실상 국정원의 대공수사 ‘완박(완전박탈)’을 추진 중이다. 실제로 민주당 이기헌·김현·박홍근·윤건영 의원 등은 지난달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과 관련 사실조회 및 자료 제출 요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법은 ▲방첩·대테러·국제범죄조직에 관한 정보 ▲국가보안법 위반, 반국가단체와 연계가 의심되는 안보침해행위에 대한 정보 ▲사이버안보와 안보 관련 우주 정보 등에 대해 ‘조사권’을 보장하고 있다. 대공수사권이 없는 대신 현장 조사·문서 열람·시료 채취·자료 제출 요구와 진술 요청 등의 방식으로 조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개정안에는 이 조사권이 오히려 수사권보다 광범위하게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를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수사권의 경우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과 영장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만, 조사권은 이런 견제는 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압수수색과 신문 조사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골자다. 다만 민주당 내부서도 국정원의 대공조사권까지 없애는 건 과도하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 내에서 국정원 근무 경력이 있는 박지원·박선원·김병기 의원은 해당 법안 발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경찰의 대공수사가 제대로 자리 잡히지도 않은 상황서 과거로 회귀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며 “국정원이 경찰 대공수사에 힘을 실어주는 협력관계로 가는 게 더 옳지 않겠냐”고 전했다. 이 의원은 “대공수사와 정보수집 기능을 분리하는 게 글로벌 스탠다드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한 핵심요소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국정원 및 정보기관 출신 전문가들은 간첩법 개정이 10년 전부터 추진됐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3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으며 외국 간첩과 스파이들이 국내서 활동하는 경우가 적었으나 경제 대국이 된 지금은 다르다는 설명이다. 여야 국정원 대조권 두고 기싸움 한국은 미·중·러·일 스파이 ‘천국’ 국정원 파견 업무를 수행했던 부장검사는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사라지면서 간첩과 산업스파이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조직과 인물의 범죄 행위를 포착해도 법률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크게 축소된 건 사실”이라며 “중국과 북한 간첩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표면적으로 우리의 우방국도 간첩이 존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한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중국, 북한은 기본이고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등 해외 강국들은 국내 수도권서 정보활동을 벌인다. 이들은 외교관(회색), 언론사 특파원, 유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해 블랙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해외 각국 대사관에는 정보기관 담당 인사만 2명 이상 근무 중”이라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대학가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인 ‘산업스파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유학생과 연구자로 위장해 국내 대학의 연구실, 연구기관 등에서 암약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은 대학의 연구실을 매개로 대기업 등의 첨단기술 연구소까지 입지를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 역시 이 같은 현실을 알면서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받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학교 운영이 불가능한 대학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산업스파이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중국인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국내 대학에 유학 중인 외국인 학생 수는 2022년 기준 16만6892명으로 2013년(8만 5923명) 대비 2배 가까이 늘었으며 이 중 중국인 비중은 통상 4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강대 등 일부 대학은 중국인 전용 강의까지 개설할 정도다. 본희의 통과 가능성은? 앞으로 한국을 향한 중국의 기술 탈취 시도가 더 강력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중국이 기술 자립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 비영리기구인 국제교육원(IIE)에 따르면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는 2022~2023학년 28만9526명으로 집계돼 37만2532명을 기록했던 2019~2020학년 대비 22% 급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