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자존심 걸린 재계 라이벌 대전

밀고 밀리는 각축전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영원한 1위는 없다. 1위는 자리를 지키고자, 2위는 역전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비즈니스의 세계일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하기 마련이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소리 없는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재계에는 수많은 경쟁 관계가 존재한다. 수십년에 걸쳐 경쟁체제를 구축한 곳이 있는가 하면, 최근 들어 자존심 싸움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도 존재한다. 

새로운
파열음

한화그룹과 HD현대는 방산사업과 관련해 마찰을 빚으면서 신흥 라이벌로 떠오른 상태다. 특히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한화그룹에 속한 이후 갈등이 부각되는 양상이다.

2019년 HD현대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으나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점을 우려한 유럽연합(EU) 경쟁 당국의 반대로 기업결합 계획은 불발됐다. 결국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한화그룹 품에 안겼고, 이를 계기로 양사는 방산 분야에서 직접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수주를 놓고 고소·고발 등이 뒤따르면서 양사 관계는 급격히 냉각된 상황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2013년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KDDX 개념 설계도 등을 몰래 촬영해 내부 서버를 통해 공유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방위사업청은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의 제재 수위를 ‘행정지도’로 의결, 입찰 참가 자격 제한을 하지 않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은 최대 5년간 방사청의 사업에 입찰할 수 없는 ‘부정당업체’ 지정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대신 보안 규정에 따라 방사청 사업 입찰 때 부과하는 보안 감점(-1.8점)은 내년 11월까지 그대로 유지된다.

HD현대중공업이 사업 입찰 참가 제한 제재를 피하자 한화오션은 지난 3월 이 문제를 끄집어냈다.

한화오션 측은 군사기밀 유출 관련 HD현대중공업의 임원이 개입된 정황을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제출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한화오션을 허위 사실 적시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며 양사의 갈등이 격화됐다.

KDDX 기밀 유출 사건은 한화그룹 3세 김동관 부회장과 HD현대 2세 정기선 부회장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차기 총수로 입지를 다지고 있는 두 사람에게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실적은 경영 능력의 시험대다.

SK그룹과 롯데그룹은 바이오 사업을 두고 새롭게 경쟁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현재 SK그룹은 SK바이오팜을 내세운 신약 개발과 SK팜테코가 주축이 된 위탁개발생산(CDMO) 등에서 강점을 드러내고 있다. 관련 업계에서는 조만간 바이오사업이 그룹의 핵심 먹거리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롯데그룹 역시 바이오사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신동빈 회장은 올해 초 바이오를 비롯한 4대 신성장 영역을 중심으로 사업 교체를 추진하고 부진한 기존 사업은 매각하겠다는 뜻을 천명하기도 했다. 2022년 설립된 롯데바이오직스는 그룹의 바이오사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점쳐지는 계열사다.


바이오사업에서 성과를 내면 그룹 승계 작업이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언급한 사례가 최근 들어 주목도가 높아진 경쟁 관계인 것과 달리, 코오롱그룹-효성그룹,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 등은 전통적인 라이벌이라는 점이 부각된다. 이들은 기존 사업뿐 아니라 신사업에서도 치열한 눈치싸움을 진행 중이다.

50여년 전부터 화학섬유업종을 시작으로 수많은 사업군에서 경쟁을 펼쳐 온 코오롱그룹과 효성그룹은 최근 ‘타이어코드’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 2월 효성첨단소재를 상대로 타이어코드 특허침해 소송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지방법원에 제기했으며, 지난 6월 증거를 추가해 소장을 제출했다.

쟁점이 된 제품은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HTC)’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측은 관련 특허 3건을 효성첨단소재가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는 아라미드와 나일론을 꼬아 만드는 것으로, 기존 하이브리드 섬유코드보다 제조가 쉽고 일반 타이어코드보다 내구성이 뛰어나다.

이해관계 맞물린 갈등 구조
이해타산 따라 치열한 공방

국내에서는 코오롱그룹 측이 먼저 웃었다. 효성첨단소재는 2022년 하이브리드 타이어코드 특허 건에 대해 특허심판원에 무효소송을 걸었지만, 지난 3월 일부 기각, 일부 각하로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특허권을 인정받았다. 

‘K-뷰티’ 선봉장 격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건강기능식품 시장으로 전선을 넓혀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양사는 건기식 수요가 늘자 관련 제품군을 세분화해 전열을 정비 중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자사의 기업명이자 브랜드인 ‘아모레퍼시픽’과 ‘아모레’를 건기식 관련 새 상표를 내놨다. LG생활건강은 ‘어반 부스터’라는 이름으로 건기식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아직 양사 매출에서 건기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지만, 시장 확대 가능성을 보고 사업 확장을 지속 중인 상황이다.

건기식 사업에 힘을 쏟는 건 시장 규모 확대 추세에 편승하기 위함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6조2022억원으로 추산된다. 5년 전인 2019년(4조8936억원)과 비교하면 27%가량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도료 업계에서는 2위 자리를 놓고 노루페인트와 삼화페인트가 수십년에 걸쳐 치열한 경쟁을 펼쳐왔다. KCC가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가운데 양사는 오랜 기간 순위 변동을 반복했다.

다만 노루페인트가 2위 사업자로 자리매김하는 경향이 짙어진 상황이다. 실제로 2017년 노루페인트가 삼화페인트 매출을 추월한 이후 양사 간 매출 격차는 나날이 커졌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노루페인트가 1500억원가량 앞섰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까지 이어졌다. 노루페인트의 올해 상반기 매출액은 40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 늘었고, 영업이익은 272억으로 14.1% 증가했다. 건설 경기침체로 신축 건설 수요가 감소했음에도 건설 보수용 시장에 집중한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삼화페인트도 좋은 흐름을 나타냈지만 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삼화페인트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323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영업이익 155억원을 달성한 게 수확이었다. 삼화페인트가 상반기에 영업이익 150억원을 넘어선 건 2014년(235억원) 이래 10년 만이다.

그런가 하면 특정 품목에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시장 주도적 위치가 흔들리고 본격적인 경쟁체제가 구축된 사례도 목격된다. 농심과 삼양식품 간 관계에서 이 같은 흐름을 엿볼 수 있다.

농심의 압도적인 우세가 지속됐던 국내 라면 시장은 삼양식품의 급성장을 계기로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특히 올해 2분기에는 삼양식품의 기세가 거셌으며, 해외 부문 성과가 승부의 추로 작용한 양상이다.

삼양식품은 올해 2분기에 연결기준 매출 4244억원, 영업이익 894억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8.7%, 영업이익은 103.2% 증가한 수치다. 특히 해외 매출이 74.9% 증가한 3321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로 넓히면 수익성 확대가 한층 두드러진다. 삼양식품의 올해 상반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101억원, 169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2.6%, 149.6% 늘었다.

잡고
잡히고


반면 업계 1위 농심은 저조한 실적을 거뒀다. 농심의 연결기준 올해 2분기 매출은 860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18.6% 감소한 437억원에 그쳤다.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어난 1조7332억원이지만, 영업이익은 10.6% 감소한 1051억원에 불과했다. 내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주력 상품 가격 인하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 모습이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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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