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⑲목숨 건 악바리 싸움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4.09.09 04:00:00
  • 호수 14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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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야 임마, 너 일루 좀 와!”

“왜?”

“이 간나새끼는 간뗑이가 부었나.”

부엉이와 짱돌

부엉이가 달려들면서 짱돌의 옆구리를 힘껏 찼다. 


“이 새끼야, 누군 입이 없어서 못 먹는 줄 알어? 선배도 가만 있는데 쫄따구 새끼가 어디서 겁도 없이…….”

그러면서 옆구리를 움켜쥔 짱돌의 따귀를 다시 세게 올려붙였다. 

“어디 더 잡숴 보시지, 응?”

부엉이가 좀체 손찌검을 멈추려 하지 않자 짱돌도 드디어 울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또다시 날아오는 부엉이의 팔을 짱돌이 척 잡았다.

“야, 쓰벌.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

예기치 않은 짱돌의 반격에 부엉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쭈, 이 새끼가 꼬장 죽이는 거 봐.”


“야, 여기서는 니가 선밴지 모르지만 밖에 나가면 내가 더 선배야, 알어? 한두 대 때렸으면 됐지 이렇게 끝없이 잡치는 이유가 뭐냐? 쓰벌, 나중에 딴소리 없기로 하고 여기서 깨끗이 한번 붙어 볼까?”

“뭐라구? 하하, 이 자식이…….”

부엉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것도 그럴 게, 비유하자면 둘은 마치 좁쌀과 콩알이나 지렁이와 뱀처럼 덩치가 무척 차이났기 때문이었다. 

부엉이가 휙 몸을 날려 짱돌의 가슴을 사정없이 찼다. 짱돌은 피하지도 않은 채로 맞곤 길바닥에 굴렀다.

부엉이는 곧장 달려가서 발로 지근지근 밟았다. 그런데 짱돌은 재빠르게 요리조리 몸을 굴려 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기회를 보아 부엉이의 엉덩이를 걷어차고는 발딱 일어섰다.

화가 난 부엉이가 인상을 구기며 휙 주먹을 날렸다. 짱돌은 재빠르게 피했다.

부엉이는 주먹과 발길을 연속해 날렸다. 짱돌은 마치 사나운 범의 맹타를 무화시키는 담비처럼 재빠르게 피하다가 번개 주먹을 날렸다. 부엉이가 휘청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곧 반격이 시작되었다. 성난 부엉이의 바윗돌 같은 주먹이 강타하자 짱돌의 코에서 피가 튀고 이빨이 빠져 공중을 날았다.

연이은 타격으로 짱돌의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올랐다.

하지만 짱돌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혹은 전혀 흐르지 않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짱돌은 맞을수록 기진맥진하면서도 눈엔 독이 올라 죽기살기로 달라붙었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는 식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엔 때리던 놈이 먼저 지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야, 제발 이제 그만하자.”

너 죽고 나 죽자
한적한 철길 대결

“개소리 집어치워! 때린 새끼가 먼저 그만두자구? 어디 끝까지 가보자구.”

“자식아, 그렇다고 사람을 죽일 순 없잖아?”

“죽이든지 말든지…… 끝에 누가 나가떨어지나 보자구, 흥!” 

“그건 반칙이야, 임마!” 


“겁나는가 보군. 흐흥, 육지라면 기차놀이라도 한번 해볼 텐데 섭섭하군.”

짱돌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기차놀이라는 것은 생명을 건 게임이었다. 서울 거리를 떠돌 때 용운은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두 놈이 서열을 놓고 다투다가 기차놀이로 결정키로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다리 밑 거지들은 교외의 한적한 철길로 나갔다. 누군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거적을 두 개 준비해 왔다.

생명을 건 대결을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두 사람은 자신만만해 보였다. 말없이 서로 씩 웃어 보였다. 

멀리서 망을 보고 있던 아이가 소리쳤다.

“기차가 역에서 떠난다!”

두 놈은 나란히 철길 가운데 엎드렸다. 기차가 저만치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사나운 짐승처럼 돌진해 오고 있었다. 두 놈이 전혀 움직일 생각을 않자 구경꾼들이 더 초조해졌다.

“잘못하면 죽어!”

담도 어지간히 센 것 같았다. 기차가 열 발자국 안으로 들어서자 꽁치 놈이 먼저 철길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너 죽어 새끼야!”

철로변에 있던 누가 고함을 질렀다. 올챙이 놈은 그래도 가만히 있었다. 기차가 그를 깔아뭉개며 지나갔다. 비명 소리는 기차바퀴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거적을 들고 몰려들었다. 분명히 산산조각이 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올챙이 놈은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날 꽁치 놈은 고참의 임무를 인계했다. 패자는 군말 없이 승자의 휘하에 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거지 사회에서의 추방이라는 벌칙만 남게 되었다.

다음날 꽁치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마 다른 지방으로 떠난 것 같았다. 

사실 올챙이 놈은 지난 밤에 철로를 답사하러 역으로 몰래 숨어 들어갔던 것이었다. 기관차 밑에 엎드려 보았는데, 고개만 들지 않으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며 능글맞게 웃었다.

기차놀이

덩치가 큰 놈과 작은 놈의 대결이라 해도 쉬이 예측할 수는 없다고 용운은 생각했다. 회상에 잠겼던 용운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사람을 살인자로 만들려 하다니, 치사하다 자식아. 그렇게 억울하면 니가 차라리 나를 쳐라!”

부엉이가 먼저 지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다. 짱돌의 악바리 같은 싸움은 그렇게 해서 끝이 났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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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단독] 악명 높은 보이스피싱 총책 탈옥한 ‘김미영 팀장’ 포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최근 행적이 확인됐다. 지난해 탈옥에 성공한 이후 1년여 만이다. 박씨와 함께 탈옥에 성공했던 인물은 총 3명이다. 이들은 올해 초까지 말레이시아로 여러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박씨는 최근 필리핀 카비테 부근 한 시골 마을로 주거지를 옮겼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초부터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정훈씨의 탈옥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교·수사당국은 현지 담당자가 철저하게 관리 중이라며 ‘소극 행정’으로 대처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1년이 지난 현재, 박씨는 필리핀 서부 지역 한 시골 마을에 은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못 잡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는 필리핀 카마린스 수르 교도소에서 탈옥한 이후 올해 초까지 총 세 차례 이상 말레이시아 사바주로 밀항을 시도했다. 이들이 밀항을 시도한 곳은 필리핀 남서부 잠비앙가와 민다나오 다바오 시티다. 잠비앙가의 경우 여행경보 4단계인 흑색 경보(여행금지) 발령 지역이다. 외교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 없이 흑색 경보 지역을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제26조 등 관련 규정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잠비앙가는 우리나라 국민이 여행할 수 없는 곳인 셈이다. 박씨와 송모씨 등 ‘탈옥 멤버’들은 다바오 시티에서 두 차례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잠비앙가로 이동했다. 잠비앙가에서 술루 제도를 통해 말레이시아로 이동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술루 제도로 이동하던 박씨 일당들은 필리핀 반군에 억류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박씨가 밀항을 시도한 잠비앙가를 비롯해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는 이슬람 반군들이 주둔해 있다. 지난해 10월 말에도 무력 충돌이 발생해 최소 14명이 사망했다. 당시 민다나오 마긴다나오델수르주의 파갈룽간시에서 필리핀 최대 반군단체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의 두 지휘관과 수하 병력이 총기와 흉기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1970년대부터 분리주의 무장투쟁을 벌여온 MILF는 2014년 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다. 이를 통해 정부가 민다나오섬에 설치한 이슬람 임시 자치정부인 ‘방사모로 과도당국(BTA)’과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지역(BARMM)’ 구성에 참여했다. 잠비앙가·민다나오서 ‘뒷돈 도주’ 시도 이슬람 반군에 억류 후 풀려나 마닐라로 MILF는 2019년 9월부터 평화협정을 이행하기 위해 무기 반납을 시작했지만, 무장 해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여전히 총기를 보유한 MILF 병력은 수천 명 이상이다. 박씨는 반군들에게 마약 및 보이스피싱으로 벌어들인 돈 수천만원을 뇌물로 전달한 이후 풀려났다. 지난 5월 초 박씨는 송씨와 헤어진 후 필리핀 루손섬 카비테주 카비테 시티로 이동했다. 지난달 말에는 카비테 시티 외곽 한 시골 마을에 자신의 현지 부인인 A씨까지 불러 정착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그간 마닐라 타기그에서도 부촌으로 꼽히는 보니파시오 글로벌 시티에 거주했다. 현지인들은 보니파시오를 BGC 또는 글로벌 시티로 부른다. 필리핀의 청담동으로 불릴 만큼 고층 빌딩, 고급 주거지, 쇼핑 거리 등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파시오의 경우 냉장고와 에어컨 정도만 구비돼있는 콘도 한 유닛의 월세가 필리핀 돈으로 13만~15만페소(약 304만~351만원)에 달한다. 필리핀은 주차장도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주차장을 포함하면 월세도 10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더 늘어나게 된다. 같은 도시에 위치한 원룸 형식의 콘도 월세도 5만5000페소(약 128만원)에 달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경찰도 관련 첩보를 파악해 현지 수사당국과 공조 중이다. 아직 정확한 집 주소나 확실한 거주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이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 넘게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 왔다. 수억 비트코인에 차명 주택 부동산 소유 현지 부인이 조력해 “지속적 현금 조달” 특히,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게 “박씨가 마닐라에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하고 있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했다. 국내 정보기관은 박씨 일당의 움직임이 수상하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23년 12월과 지난해 3월 두 차례에 걸쳐 필리핀 교정당국에 박씨의 탈옥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박씨가 탈옥한 것을 두고 필리핀 교정당국은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외교부와 경찰, 법무부 국제형사과 등이 일부 파견을 가 현지에서 한국 범죄자들을 관리하는데, 공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범죄자와 면담을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그저 공문만 보내는 것으로는 범죄자들의 탈옥을 막을 수 없다. 당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잡나 박씨는 A씨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교도소의 취약점을 파악해 탈옥을 계획했다. 사전에 철저히 ‘탈옥 계획’을 구상하고 보안이 허술한 교도소에 잡혔단 뜻이다. 말레이시아로의 밀항 준비도 A씨가 현금 조달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A씨는 박씨가 교도소에서부터 환전한 수억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관리해 왔다. 박씨와 같은 교도소에 있었던 한 제보자는 “환전한 비트코인 외에도 A씨가 박씨의 차명 소유 자택 부동산 등 수십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