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0’ 김건희 소환 시한 카운트다운 막전막후

부르긴 불러야 하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이원석 검찰총장의 임기가 70여일 남았다. 이 총장은 임기 내에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사건을 모두 마무리할 모양새다. 명품백 수수 사건에서는 김 여사를 지근거리서 보좌하던 대통령실 행정관을 소환했고 도이치모터스 사건에서는 2심 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방조 혐의를 추가해 김 여사와 장모 최은순씨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 정치검찰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지만 이미 ‘불기소’라는 결과를 정해뒀다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 수사 속도를 올리고 있다. 명품백 수수사건에서는 김 여사의 측근인 대통령실 행정관을 소환했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를 수사 대상에 올렸다.

조 행정관
불러 조사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김승호)는 지난 19일 오전 대통령실 조모 행정관을 불러 조사했다. 검찰이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 행정관은 김 여사를 지근거리서 보좌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에는 제2부속실이 없어 조 행정관이 여사와 관련된 업무 대부분을 수행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그는 김 여사의 연결로 최 목사의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의 국정자문위원 임명이나 통일TV 재개 민원 등과 관련해 문자와 통화를 주고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최 목사는 지난 2022년 10월17일 조 행정관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김창준 의원님 건으로 ‘서초동’으로부터 연락받았다”며 청탁 내용을 검토한 결과를 설명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 행정관이 이후 국가보훈부 사무관의 연락처를 전달해 줬다며 문자와 통화 녹취 등을 검찰에 제출했다. 최 목사는 해당 사무관에게 조 행정관에 관해 묻자 “저와 그분은 통화한 적은 없고 파견 나가 있는 과장님께 말씀하셨나 보더라”고 했다면서 해당 통화 내용도 검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검찰은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한 핵심 참고인인 조 행정관을 상대로 당시 접견이 이뤄진 과정과 가방이 건네진 경위, 평소 최 목사의 청탁 여부, 최 목사 청탁 처리 결과 등을 상세히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대통령실 관계자들을 순차적으로 소환한 후 김 여사를 소환할 예정이다. 다음 조사 대상은 김 여사의 측근 중 한 명인 대통령실 유모 행정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유 행정관은 최 목사와 김 여사의 면담 일정을 조율하고 직접 최 목사를 마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또 최 목사가 명품백 전달 이전에 샤넬 화장품과 향수 등 180만원가량의 선물을 전달할 때 유 행정관과 함께 동석했던 코바나컨텐츠 직원이었던 정모씨도 조사 대상이다. 최 목사는 김 여사에게 화장품과 선물을 전달하자 김 여사가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업무 책상서 근무 중이던 정씨를 불러 포장지를 뜯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의 메모를 검찰에 전달하기도 했다.

명품백·도이치 수사 마무리 단계
검찰총장 후임 인선 작업도 시작
 

법조계에서는 명품백 수수 사건 전담팀이 최 목사가 주장한 청탁 여부와 명품 가방 수수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를 정립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재 명품백 수수 사건에 관한 보도를 살펴보면 고발인부터 시작해 사건 관계인, 김 여사 지근거리의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며 “명품 가방 수수 과정과 그 사이 오간 청탁의 내용, 그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건 마무리를 향해 가는 것은 명품백 수수 사건뿐이 아니다. 검찰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와 관련해 주가조작에 김 여사와 최씨의 계좌가 동원된 것과 관련해 방조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 2021년 12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수사2부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과 공범들을 주가조작 혐의로 기소했다. 

주가조작 사건 주범인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지난해 2월 1심 판결(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에 따르면 공소시효가 살아 있는 2차 시기(2010년 10월~2012년 12월)에 김 여사 계좌는 3개, 최씨 계좌는 1개가 주가조작에 동원됐다. 

이에 모녀가 ‘전주’ 역할을 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검찰은 1심 재판부에 ‘김 여사와 최씨가 도이치모터스 주식거래로 22억9000만원의 이익을 얻었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특히 최씨의 계좌는 권 전 회장이 직접 거래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도

당시 수사팀은 전주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되는 김 여사에게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했지만 김 여사가 거부해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수사팀은 김 여사를 서면으로 조사했지만 답변 내용이 부실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전주 가운데 유일하게 정식 기소됐던 손모씨는 1심서 무죄가 선고됐다. 손씨가 다른 피고인들과 공동으로 시세조종에 나섰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는 등 이유에서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손씨가 이른바 ‘작전’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손씨에게 주가조작 방조 혐의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하겠다고 신청했고,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달 이를 받아들였다. 검찰은 김 여사와 최씨에게도 방조 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손씨 등에 대한) 항소심 결과도(김 여사 수사에) 중요하게 작용할 거라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최초 기소 이후 2년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김 여사를 조사하지 않고 있다. 당초 검찰은 2심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항소심이 오는 7월2일 결심 공판을 진행하고 이르면 8일께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항소심 이후 전주 역할로 분류된 김 여사와 최씨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수사가 많이 진척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미 김 여사와 최씨를 수사 대상에 올려뒀으며 항소심 결과와 상관없이 소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검 내부서도
불가피 의견

검찰 내부서도 이미 김 여사의 소환이 불가피하다는 기류가 나온다. 명품백 수수 사건은 이미 사실관계 정립이 완료됐으며 이 총장이 두 사건에 대한 강력한 수사를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장이 사건 마무리에 힘을 주고 있는 이유는 남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의 임기는 오는 9월16일까지로 약 70일 남았다. 여기서 후임 검찰총장의 인선 기간을 빼면 수사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은 두 달 남짓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지난 검찰 고위급 간부 인사 교체서 김 여사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지휘 라인 교체는 물론 이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찰청 참모진도 대폭 물갈이됐다. 후속 인사서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수사 중인 부장검사들이 유임되긴 했지만, 지휘부가 교체된 탓에 방향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같은 인사로 법조계에서는 지난 검찰 인사 이후 이 총장과 대통령실의 갈등이 깊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장이 인사 이후 대검에 출근하며 “인사는 인사, 수사는 수사”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상당히 불편한 마음과 심기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사 이후 이 총장은 김 여사의 명품가방 의혹을 수사하는 부장검사로부터 직접 대면보고를 받는 등 이례적으로 특정 사건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재차 주문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대통령실에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내보이면서도 이 총장의 후임 인선 작업에 돌입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검찰 고위급 인사로 이 총장의 팔다리를 잘랐는데도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이 총장에게 사퇴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압박으로 이 총장이 김 여사를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은 두 달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달 내에 소환해야 이 총장의 후임 후보자가 인선되더라도 이 총장 임기 내에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임기 내에 김 여사가 연루된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이 총장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총장 임기 9월16일까지
“두 달 내 소환해야 끝”

이 총장이 임기를 시작한 이래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검찰이 김 여사가 연루된 사건은 늑장으로 처리를 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 야당과 관련된 사건은 빠르게 처리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을 종결했다. 이는 윤석열정부 관련 사건을 정치적으로 정석 처리한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앞서 권익위는 김 여사가 받은 명품 가방 선물은 대통령과 직무 관련성이 없기 때문에 신고 대상이 아니고, 직무 관련성이 있더라도 재미교포인 외국인이 건넨 선물은 국가 소유의 대통령기록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신고 의무가 없다며 청탁금지법을 어겼다는 신고에 대해 사건을 수사 기관 등에 넘기지 않고 종결하기로 했다.

권익위가 해당 사건을 종결하면서 온라인에서는 ‘권익위가 정부의 개가 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아니라 윤석열·김건희 권익위원회’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으며 권익위 홈페이지에는 ‘공무원 부인에게 300만원짜리 엿을 선물해도 되나요?’ 등의 조롱성 질문글이 쇄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검찰이 김 여사를 소환해 사건을 마무리지어 정치검찰 이미지를 벗겠다는 것이 이 총장의 복심이라고 법조계에서는 보는 셈이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이 총장은 최근 지인들을 만나 검찰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사건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놓고 있다”며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보다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이 총장은 임기 내에 김 여사를 어떻게 해서든 소환한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 총장이 어느 정도 수사 결과를 결정해 뒀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 부인이 연루된 사건의 민감성 ▲특수 수사 부서(반부패부)가 아닌 형사부서 사건을 수사 중인 점으로 미뤄볼 때 빠른 수사 결과를 내놓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정해둔 결론?

특히 영부인에 적용할 수 있는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불기소라는 결과를 정해두면서도 소환조사 등 할 수 있는 수사를 집중해 비판을 피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공무원이 아닌 영부인이 관련된 만큼 적용할 수 있는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의 경우, 공무원의 배우자가 수수한 것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어 법리적으로 기소하지 않을 이유가 충분하다. 게다가 김 여사가 받은 선물을 윤 대통령이 인지했더라도 관련 청탁에 관여한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뇌물죄 처벌도 어렵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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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