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차곡차곡 쌓아온 국민연금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 수준을 유지한다면 2055년에는 곳간이 텅 빌 것이라고 우려한다. 17년 동안 꿈쩍 않던 연금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상처만 남긴 채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지난 3월 연금개혁안이 발표됐다. 이해관계자 34인과 연금 전문가 10명이 머리를 맞댄 결과 ‘더 내고 더 받는 안’과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으로 압축됐다. 0에서 100까지 무수히 많은 숫자에 셈법을 더해 간신히 두 가지 안으로 간추려졌다. 그러나 여야는 이마저도 선택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17년째
평행선
더 내고 더 받는 1안은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기능 강화’와 ‘지속 가능성’을 골자로 한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장기간에 걸쳐 13%까지 인상하고, 소득대체율은 현행 40%에서 50%로 인상하는 것이다. 해당 안을 채택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61년으로 현행 대비 6년 연장된다.
2안은 더 내고 그대로 받는 방식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 안정과 미래세대의 부담을 고려했다. 소득대체율은 40% 그대로 유지하되 보험료율을 10년 이내 12%까지 인상하자는 것이다. 2안의 기금 소진 시점은 현행 대비 7년 연장된 2062년이다.
그동안 연금개혁이 이뤄지지 못한 데에는 무수히 많은 이유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소득대체율은 고차방정식으로 여겨진다. 소득대체율이란 연금액이 가입자의 생애 평균 소득서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만일 소득대체비율이 50%라고 치면 연금액은 가입 기간 소득의 절반에 달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정부는 연금개혁을 통해 재정의 안정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그 반대인 소득대체율에 방점을 찍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이하 연금특위)는 1안과 2안을 바탕으로 네 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열고 결과를 도출한 뒤 21대 국회 안에 연금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개혁안이 발표된 시점은 지난 3월로 4·10 총선을 한 달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표심이 떨어질까,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총선이 끝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연금개혁에 관한 논의가 이뤄졌다.
지난 4월14일 연금특위 산하 공론위원회는 ‘소득대체율 및 연금보험료율 조정’을 주제로 숙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은 두 번째 토론회로 그동안 여야가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놓고 충돌한 이유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연금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노후 소득을 강화함으로써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장하자는 ‘소득보장론’과 다가올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재정론’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소득보장론은 계속해서 내림세를 보이던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그만큼 미래세대의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재정론은 혜택 없이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으로 기존 가입자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이날 토론회서 발제를 맡은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후 소득 보장 강화론에 힘을 실었다. 남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2030세대가 26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한다면 이들이 돌려받을 연금은 현재가치로 대략 66만원이다. 이는 노후 최소생활비 124만원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게 남 교수의 주장이다.
“2055년 곳간 빈다” 살벌한 경고
합의되나 했더니 이번에도 공회전
남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고 가입 기간도 늘리는 노력을 해 국민연금으로 95만에서 100만원 가까이 받을 수 있게 하자”며 “여기에 기초연금을 얹어 노후 최소생활비를 확보하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재정안정 중시론을 주장했다. 석 교수는 “소득대체율 50% 인상안은 현행 40% 에 비해 재정적인 지속가능성을 악화시키는 개악”이라며 “초고령사회로 가는 한국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둔 개혁방안과 거꾸로 가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적립 기금을 유지하는 방안으로 해야 한다”며 “현재 연금 적립 기금이 100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보험료율은 인상하면 기금 규모와 수익 규모가 더 커져서 향후 보험료 인상폭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 차례의 토론 끝에 지난 4월22일 시민대표단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과 56%가 더 내고 더 받는 1안, 즉 소득보장론을 택했다. 재정안정론인 2안을 택한 이들은 42.6%였다.
당초 1차 조사에서는 1안을 선택한 비율이 2안보다 낮았지만 2차 조사에서는 결과가 역전됐다. 시민대표단이 숙의 과정과 토론을 거칠수록 소득보장론인 1안이 타당하다고 본 셈이다.
국회로 돌아온 여야는 곧바로 논의에 착수했지만 초반부터 사사건건 부딪쳤다. 연금특위 여당 간사인 유경준 전 의원은 1안에 대해 ‘개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유 전 의원에 따르면 수지 균형의 측면서 보험료율 1%p를 인상할 경우 보완 가능한 소득대체율은 대략 2%p다. 1안의 주장대로 보험료율을 현행보다 4%p 올린다면 소득대체율은 48%가 되는데, 1안은 이보다 2%p 더 올랐으니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라는 측면서 명백한 개악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민주당은 “소득보장을 우선시한 국민의 뜻”이라는 점을 내세웠다. 민주당 연금특위 일동은 입장문을 내고 “공론화위 결과를 존중한다”며 21대 국회 내 입법 성과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지난 4월29일에는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가 ‘연금개혁 추진단’을 꾸리고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영수회담서 논의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모두 빈손이었다.
21대 국회서 연금개혁을 매듭짓자는 민주당과 달리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서도 밝힌 바와 같이 해당 논의를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제안했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만큼 조급하게 해법을 내지 않고 22대 국회서 차근히 풀어내자는 뜻에서다.
43? 45?
문제는 숫자
결국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다. 지난 4월30일 여야 연금특위 위원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장장 4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는 서로의 이견만 확인한 채 마무리됐다.
이날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성준 전 의원은 “21대 국회서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 연금개혁에 합의하려고 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의지 없이 22대서 하겠다고 하는 것은 상당히 맥이 풀리게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윤 대통령이 연금개혁 논의를 22대 국회서 다시 논의하자고 밝힌 것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다만 정부 대표로 나온 이기일 복지부 제1차관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 국회서 계속 논의를 이어갈 수 있다는 취지였다”며 “22대로 넘기자는 취지는 아니었다. 바람직한 안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험료율을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를 봤지만 가장 복잡한 소득대체율은 놓고는 여야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민주당은 소득대체율이 45%을 제시한 반면 국민의힘은 재정안정을 위해 43%까지만 올려야 한다고 맞섰다.
국민의힘은 다층적인 구조개혁 논의 없이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모수 개혁만 논의해서는 연금개혁을 할 수 없다고도 주장했다. 구조개혁이 먼저 이뤄지는 게 이번 논의의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점에서다.
결국 지난 7일 연금특위 위원장인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상 21대 활동을 종료하게 되는 상황이 왔다”고 밝혔다. 진통 끝에 보험료율에 대한 합의만 도출하고 소득대체율은 2%p 차이를 두고 결렬된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여야 간사는 소통관서도 설전을 벌였다. 갑론을박이 길어지자 중간에 서 있던 주 의원은 난처한 듯 웃음을 지으며 이들을 말리기도 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에도 유 전 의원은 소통관 1층서, 김 전 의원은 2층서 각각 취재진에 둘러싸인 채 저마다 의견을 피력했다.
김 전 의원은 “보험료율이 1%p 올라가면 소득대체율은 2%p 올라가는 게 맞다”며 “소득대체율 2%p가 재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걸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했다. 2%p 차이가 17년 동안 못했던 연금개혁을 파탄시킬 만큼 중요한 차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끝자락서…
이제야 왜?
반면 유 전 의원은 의견을 달리했다. ‘2%p 차이에 대한 김 의원의 의견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일요시사> 취재진의 질문에 그는 “연금 고갈 시기는 1~2년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누적적자 수치는 1000조씩 늘어난다”며 “‘이 수치는 계산이 틀리다’ ‘합의된 수치가 아니다’ 등은 공론화 과정서 빠졌다. 이런 수치를 봤으면 젊은 세대들은 (생각을)바꿨을 거라고 본다”고 답했다.
유 전 의원은 연금특위 공론화 과정서 모수개혁만 하고 구조개혁은 논의가 안 된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결승 지점을 앞에 두고 몽땅 원점으로 돌아갈 지경에 이르자 여권 내 일각에서는 소득대체율을 43%와 45%의 중간인 44%로 타협하자는 의견까지 내놨다.
연금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탄 건 21대 국회 폐원을 일주일도 남겨두지 않은 지난달 23일에서다. 이날 민주당 이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국민연금 개혁, 이번이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조속한 개혁안 처리를 위해 소득대체율을 당초 제시했던 50%에서 45%로 낮추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며 “민주당은 연금특위 개최를 요청했다. 정부여당이 결단만 하면 28일 본회의서라도 연금개혁안이 처리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민주당의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45% 방안은 윤석열정부가 제시했던 안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끝으로 이 대표는 “이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개최할 용의가 있다”며 연금개혁의 공을 용산으로 던졌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의 주장이 ‘반쪽짜리’라고 비판했다. 유 전 의원은 SNS에 “소득대체율 45%안은 민주당이 주장한 안이지 윤정부의 안이 아니다”며 “이런 거짓말들로 인해 연금개혁이 늦춰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소득대체율 44%의 대안에 대해 2주가 다 되도록 침묵하다가 이제야 21대 국회서 꼭 개혁해야 한다는 저의가 무엇이냐”며 “정치 공세에 연금개혁을 끌어들이고 싶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연금개혁을 놓고 여야의 입씨름이 오가면서 논의는 점차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이로부터 이틀 뒤인 지난달 25일 이 대표는 돌연 “다 양보하겠다”는 말과 함께 여당이 제시한 소득대체율 44%를 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험료율 9%→13% 합의
소득대체율 놓고 팽팽
국민의힘을 향해서는 “이마저도 또 다른 이유를 대면서 회피한다면 애당초 연금개혁의 의지가 없었다고 국민들은 판단할 것”이라며 “지체 없이 입법을 위한 구체적 협의에 나서달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또다시 반박에 나섰다. 국민의힘의 주장에는 구조개혁을 포함한 부대조건이 포함됐는데 이는 쏙 빼놓은 채 마치 민주당이 선심 쓰듯 44%로 양보하는 모습이 연출됐다는 것이다.
결국 보다 못한 김진표 국회의장까지 나섰다. 김 의장은 지난달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21대 국회서 모수개혁을 하고 22대 국회서 구조개혁을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김 의장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함께 하자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다른 정치적 이유로 21대 국회서 무조건 개혁하지 못하게 하려는 억지 주장”이라며 “구조개혁을 이유로 모수개혁을 미루는 것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구조개혁과 모수개혁을 한번에 처리해야한다는 입장인 만큼 사실상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연금개혁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 개최 가능성도 제시됐다. 이와 관련해 김 의장은 “(당초 본회의가 예정된) 5월28일 하루에 다 하면 좋겠다”며 “다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27일이나 29일에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당은 정쟁과 시간에 쫓긴 어설픈 개혁보다 시간을 갖고 22대 첫 번째 정기국회서 최우선으로 추진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맞추면서 원포인트 본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대통령실 역시 여야 간 수치에 대한 밑그림이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이를 토대로 22대 국회서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결국 추가 논의는 이뤄지지 않은 채 21대 국회가 문을 닫았다. 연금개혁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25억 혈세를 쏟아부었지만 손에 쥐는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연금개혁안이 언제쯤 논의 테이블에 오를지는 미지수다. 2026년 지방선거과 2027년 대선이라는 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여야가 미지근한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법을
찾아서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국민 합의로 보험료율을 13%까지 올린 것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소득대체율 부분에서는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여야가 40%대서 1%p를 놓고 옥신각신 다투고 있지만 전문가 입장서 봤을때 소득대체율이 60~70%까지 올라야 퇴직 후 사망 전까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퇴직 연령이 불안정한 국가에서는 정해진 정년까지 근무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허 교수는 “연금개혁은 노인뿐만이 아니라 현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를 위한 쟁점”이라며 “이런 측면서 청년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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