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가족을 둘러싼 리스크로 평산마을이 뒤숭숭하다. 여의도 내 친문으로 불릴만한 구심점도 마땅치 않다. 조국·임종석·김경수·전해철 등 굵직한 인물이 있지만 좀처럼 손발을 맞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180석이란 거대 민주당을 지탱하던 친문은 다 어디로 갔을까?
각개전투하는 친문(친 문재인) 인사를 한데 모으기 위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평산마을을 찾은 이들과 회동하고 정부를 향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퇴임 2주년을 맞아 <변방에서 중심으로>라는 책도 집필했다. 그런데, 이 회고록이 오히려 ‘명-문 갈등’의 뇌관이 됐다는 평이 나온다.
따로 또 같이
문 전 대통령은 해당 도서를 통해 김정숙 여사의 인도 타지마할을 방문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2018년 김 여사의 타지마할 방문을 두고 “영부인이 나랏돈으로 관광 여행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상 외교자의)첫 단독 외교”라고 설명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인도 모디 총리가 허황후 기념공원 개장 때 꼭 다시 와달라고 초청했다”며 “이를 고사했더니 아내를 대신 보내달라고 초청해 아내가 나 대신으로 개장 행사에 참석했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외유성 출장’이라는 의혹을 꺾지 않으면서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법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국민의힘 김민전 수석대변인은 “김건희 여사 특검을 받는 대신 김혜경 여사의 ‘국고손실죄’ 의혹, 김정숙 여사의 ‘옷과 장신구 사 모으기’ 의혹 특검을 역제안한다”며 ‘3김 여사 특검법’을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반박에 나섰다. 김정숙 여사를 향한 특검법 요구는 ‘여권의 물타기’에 지나치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해식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정치적 공세를 펴고 있다”며 “김건희 여사에 대한 전방위적 방탄의 일환”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서는 문 전 대통령의 등장이 부담스럽다는 기류가 감지된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재발의할 예정이었는데 김정숙 여사의 문제가 다시 떠오르면서 모양새가 나빠졌단 설명이다. 굳이 지금 시점서 회고록을 발간해 다 지난 일을 재소환해야 하느냐는 불만도 입방아에 오르는 모양새다.
한 야권 인사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지난 총선 때 문 전 대통령이 등장해 낙동강 표심이 떨어졌단 이야기가 아직도 돈다. 그런데 이 시점서 전 정권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니 차마 말은 못 해도 (민주당은)난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회고록 오히려 독 됐다
점점 멀어지는 ‘명문정당’
정치권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현직서 물러선 만큼 이전보다 주목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그럼에도 친문 세력이 주기적으로 견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신 친문의 구심점으로 여겨지는 인사가 시차를 갖고 꾸준히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타지마할 공방’으로 민주당 안팎이 소란스러운 가운데 얼마 지나지 않아 친문 세력이 다시 힘을 받을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지난달 23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5기 추도식에 모습을 드러내면서다. 친문계가 자리하는 대표적인 연례행사인 데다가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까지 발걸음 하면서 이날을 기점으로 새바람이 불 것이란 관측도 제시됐다.
추도식 행사 진행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조 대표, 그리고 김 전 지사를 한자리에 모아 환담을 나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조 대표를 향해 “두 정당은 공통 공약이 많으니 서로 연대해서 빨리 성과를 내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친명(친 이재명)계 입장에서는 친문 세력을 다시 일으키려는 의중으로 해석될 만한 지점이다.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나 “점심식사 후 문 전 대통령과 조 대표, 김 지사와 상당히 긴 시간 환담을 나눴다”며 “우리 사회, 미래가 나아가야 할 길, 시국의 어려움 등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지사는 유학을 통해 배운 영국 정당 조직에 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표는 “김 전 지사가 각종 정당 활동을 많이 경험하신 거 같다”며 “이 대표에게 참조할 만한 유의미한 영국 정당의 모습을 많이 말씀해줬다”고 설명했다.
‘돌아온 김경수’ 복권 후 대권?
얄팍한 지지층 글쎄…조국은?
김 전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재인정부 핵심 인사로 지목되는 인물이다. 2017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첫 경남도지사로 선출되기도 했다. 험지 중 험지로 꼽혔던 만큼 김 전 지사는 단숨에 대선주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정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겼다. 김 전 지사는 만기 출소를 6개월 앞둔 2022년 12월 특별사면됐지만 이와 별개로 복권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28년 5월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됐으며 대권주자로서의 도전도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 대표 일극 체제로 굳어가다 보니 ‘이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김 지사를 복권할 것’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난무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조 대표의 복권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실형이 확정되지 않아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문정부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최재성 전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두 사람의 복권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극복해 무죄가 나오면 대선주자로서 확고하게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러면 조 대표와 김 전 지사에 대한 사면과 복권도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 이 대표의 명운과 두 사람의 사면복권이 묶여 있는 셈이다.”
친문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것이란 기대를 받는 김 전 지사는 막상 본인의 역할론에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그는 지난달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았고 일시 방문한 입장서 한국 현실 정치에 대해 일일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해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과 마찬가지로 김 전 지사 역시 자신의 세력이 없기 때문에 복권하더라도 친문의 구심점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이런 지점서 봤을 때)조 대표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본다”고 전했다.
언제까지?
현재로서는 이 대표의 견고한 체제 속 지난 정권의 주축이 힘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최요한 정치평론가 역시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문으로 불리는 인사들이)유의미한 정치 행보를 보이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아직은 난망이다. 추후 친문이 다시 뭉치는 움직임은 있을 수 있겠지만 큰 힘은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