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별곡 ①강화 화개정원

화사하다, 화개산오색꽃그늘

화개정원은 교동도에 있다. 교동도는 강화군 서쪽의 섬이다. 북한의 연백군까지 짧게는 2~3㎞ 거리다. 분단 이전에는 강화오일장과 연백오일장이 다르지 않았고, 교동도 아이들은 개성시나 연백군으로 통학했다. 교동도의 명물 대룡시장 역시 실향민들이 연백오일장을 본떠 만들었다.

교동도는 섬이지만 배를 타고 건너지는 않는다. 교동대교가 생긴 후로는 차로 오간다. 다만 다른 연륙 섬과 달리 최소의 절차가 필요하다. 교동대교 북쪽 검문소 앞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임시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민간인출입통제구역 민통선 안쪽이기 때문이다. (화개정원 홈페이지에는 간략한 민통검문소 출입안내가 나와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 또한 여행의 특별한 경험이다. 

여행의 묘미

화개정원 가는 길을 이처럼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6·25전쟁이 있었던 6월인 까닭이다. 화개정원은 화개산 북쪽 기슭을 아우른다. 정상부에는 화개산전망대 스카이워크가 있다. 강화군의 새인 저어새의 눈과 부리를 형상화했는데 북녘으로 비상하는 모양이다. 전망대는 실내외로 나뉜다. 야외 전망대는 바닥 일부가 투명한 스카이워크다. 아찔하지만 안전하다. 개장한 지 만 1년이 지났지만 수시로 바닥을 닦아 투명하다. 

전망대에서는 화개정원과 교동 고구저수지 그리고 바다 건너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까지 보인다. 광활한 풍경은 장쾌하고 후련해야 하지만 그 너머의 끝이 북한 땅이라 뭉클하다. 남과 북 사이 바다에는 특이하게도 배 한 척이 없다. 중립수역으로 조업이 불가하다. 그 사실을 알고 나면 실향민이 아니더라도 분단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남과 북의 바다는 경계가 없고 철책이 없어 한데 어울려 흐른다. 그 사실이 작은 위로가 된다. 

가까이 교동평야도 눈여겨볼 일이다. 원래 바다였던 땅을 간척한 농토다. 근래에 이뤄진 건 아니다. 고려 말의 일이다. 그때만 해도 지금의 교동도는 여러 개의 섬이었다. 강화도 해안 대부분은 고려시대 이후 오늘까지 간척으로 넓힌 땅이다. 스카이워크 반대편 남쪽 풍경도 볼 만하다. 석모도, 불음도 등 강화군의 또 다른 섬들이 바다와 어우러진다. 자칫 놓치기 쉬운 풍경이다. 


화개정원이 곧 전망대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초록이 싱그러운 이맘때는 정원을 산책하는 즐거움이 크다. 정원 구역은 크게 다섯 가지 테마정원으로 나뉜다. 입구에서 물의정원을 지나 역사문화정원, 추억의정원, 평화의정원, 치유의정원을 거쳐 화개산전망대 스카이워크에 이른다. 

정원 입구에서 전망대까지는 도보로 약 30~40분 거리다. 지그재그 산책로가 정원을 고루 누벼 오른다. 약 18만본의 식물을 식재해 볼거리가 많다. 봄꽃이 지난 자리에는 어느새 장미, 수국 등이 활짝 피어 반긴다. 중간중간 멍 때리기 존(zone)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선베드(Sun Bed), 해먹 등을 설치하고 그늘막을 드려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힐링하기 좋은 장소다. 

5가지 테마정원에서 산책하는 즐거움
무료하지 않도록 스탬프 미션도 마련

그 가운데 역사문화정원은 교동도 유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교동도는 송도(개성)나 한양(서울)에서 멀지 않아 고려와 조선시대 유배지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연산군으로 화개정원 내에 유배지가 있다. 집 주변으로 울타리를 치고 출입을 제한한 위리안치(圍籬安置)와 연산군이 귀향 올 때 탄 소달구지를 재현했다. 연산군은 교동으로 유배와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유배지 앞에서는 하루 다섯 차례 문화관광 해설이 이뤄진다. 

그냥 걷기가 무료하다면 모바일 스탬프 미션에 도전하자. 화개산은 ‘덮을 개(蓋)’자를 쓴다. 산머리가 솥뚜껑을 덮어 놓은 듯한 형태라 붙은 이름이다. 정원 곳곳에는 이를 상징하는 각기 다른 솥뚜껑 조형물 8개가 있다. 그중 6개를 찾아 인증하는 미션이다. 목표 달성이 어렵지 않고 성공하면 기념품(현재는 강화 쌀 500g)이 주어지니 욕심낼 만하다.

몸이 불편하거나 전망대가 목적인 이들은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 모노레일은 가파른 경사를 천천히 오르내려 느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왕복 1만3000원(화개정원 입장료 별도)으로 최대 탑승 정원은 9명이다. 주말이나 휴일 또는 단체여행객과 섞이는 경우 대기 시간이 길다. 

강화군에는 인천광역시가 선정한 인천 웰니스관광지25선 가운데 9곳이 위치한다. 웰니스 테마는 강화도를 조금 색다르게 여행하는 방법이다. 금풍양조장은 올해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신규 우수웰니스관광지다. 막걸리(탁주) 전문 양조장으로 1931년에 문을 열어 현재 3대째 운영 중이다. 인천시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옛 목조건물을 그대로 활용해 운치 있다.


와인을 연상케 하는 막걸리병 디자인이나 강화 쌀, 강화 인삼 등 지역 식자재를 활용한 프리미엄 막걸리 등이 흥미롭다. 현장에서 가벼운 막걸리 시음도 이뤄진다. 사전예약하면 막걸리 만들기 체험, 막걸리 지게미를 활용한 웰니스 체험 등을 즐길 수 있고, 술독, 우물 등이 남아 있는 2층 옛 제조실을 견학도 가능하다. 일부 체험에 포함된 막걸리 아인슈페너 ‘아인술페너’도 특별한 체험이다. 길상면의 책방들과 연계한 이벤트도 종종 개최한다. 

약석원은 인천시웰니스관광지로 강화 약쑥을 활용한 좌훈 체험관이다. 전통 좌훈 체험은 전통좌훈 40분과 쑥 온열 뜸 1시간(3만원, 전화예약 필수)으로 이뤄진다. 황토 벽돌 방에서 전통옹기 위에 앉아 좌훈한 후 온열 뜸기를 등과 배 위에 올려놓고 찜질한다. 강화 약쑥은 사자발쑥이라고도 불리는데 약쑥 가운데 그 효능이 빼어나다. 약석이라는 이름은 옛사람들이 쌀알 한 톨도 약이 되는 돌로 보았다는 데서 기인하는데 일회용 건강밥을 판매한다. 체험은 쑥뜸 향이 밸 수 있어 옷을 갈아입고 진행한다. 덕정산 북쪽 기슭에 위치해 인산저수지 전경이 푸근하게 펼쳐진다. 

돈대

강화를 이야기하며 돈대를 빼놓을 수 없다. 돈대는 적의 침입을 대비한 해변의 소규모 방어 시설이다. 강화에는 섬을 둘러 54개의 돈대가 있다. 각각의 지형에 맞춰 구축한 진지라 그 형태가 모두 다르다. 계룡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9년)에 지은 돈대로 유일하게 제작 연대가 전해진다. 서쪽 해안에 있어 석모도 너머로 지는 일몰이 아름답고, 내륙으로는 망월평야가 푸르다. 강화나들길 제16코스 서해 황금 들녘길이 지나 이어 걸을 수 있다. 명성에 비해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화개정원 → 계룡돈대 → 금풍양조장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화개정원 → 교동 대룡시장 → 계룡돈대
-둘째 날 약석원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금풍양조장

관련 웹 사이트 주소
-화개정원 https://hwagaejungwon.ganghwa.go.kr
-강화군 문화관광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금풍양조장 https://www.instagram.com/on_sul
-약석원 https://약석원.kr

운영시간
-평일 08:00~19:00(18:00까지 입장 가능) 
-주말 08: 00~20:00(19:00까지 입장 가능) 
-휴무 연중무휴 
-요금 화개정원: 어른 5000원, 어린이, 청소년&노인(65세 이상) 3000원, 유아(6세 이하) 무료 
-모노레일: 일반왕복 1만3000원, 소인(7세 이하) 1만1000원 

문의 전화
-화개정원 032)932-2336~7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562
-금풍양조장 070-4400-1931
-약석원 032)937-5338

대중교통
버스 서울-강화, 88번·3000번 버스, 약 2시간 소요. 강화터미널 정류장에서 화개정원 정류장까지 18번 버스 이용. *문의: 강화여객자동차터미널 032)933-2533

자가운전
올림픽대로 → 김포한강로 → 김포대로 → 강화대로 → 인화로 → 교동대교 → 교동동로 → 화개정원

숙박 정보
-호텔 에버리치: 강화읍 화성길50번길, 032)934-1688, www.ho televerrich.com
-남문한옥 대명헌: 강화읍 남문안길, 032)934-2021
-책방시점: 길상면 마니산로, 010-9931-0301 https://seej um.modoo.at


식당 정보
-대풍식당(물냉면):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032)932-4030
-수라전통육개장(옛날전통육개장): 강화읍 강화대로403번길 14, 032) 933-4949

주변 볼거리
연미정, 전등사, 강화소창체험관, 해든뮤지엄, 바람숲그림책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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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