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불편한 상륙기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4.04 09:53:30
  • 호수 14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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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자금이 몰려온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저가 물품으로 무장한 알리익스프레스(알리),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전자상거래)의 국내 공습이 심상치 않다. 최근 알리는 한국에 1조5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에 질세라 쿠팡은 3조원 이상 쏟아부어 2027년까지 ‘로켓배송’ 지역을 전국으로 확장하겠다고 나섰다. 일각에선 토종 업계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사실상 ‘유통 전국시대’의 막이 올랐다는 분위기다.

‘알·테·쉬(알리·테무·쉬인의 합성어)’를 필두로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교적 후발주자인 테무(Temu)는 출시된 지 1년 반 만에 50개국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 이커머스는 인천공항 등의 글로벌 배송물류센터(GDC)를 거쳐 빠르고, 저렴하게 수출길을 열면서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들이 한국시장 진출에 혈안이 된 이유 중 하나다. 

1조 쾌척

글로벌 배송물류센터(GDC, Global Distribution Center)는 전 세계 직구 시장의 핵심 시설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 배송을 위한 GDC는 국내외 전자상거래 업체 제품을 보관하고, 주문에 맞춰 제품을 재포장해 인근 국가의 소비자에게 배송하는 ‘환적’의 기능을 주로 한다.

이곳을 통하는 물량은 관세와 부가세 감면이 가능하다는 이점도 있다. 중국 이커머스가 우리나라를 유통허브로 활용해 세계 시장공략에 나서는 분위기다.

알리바바그룹은 최근 “한국에 축구장 25배 규모의 통합물류센터를 짓겠다”며 3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 판매자의 글로벌 판매 지원에 1억달러(1316억원)를 투자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글로벌 판매 채널을 연다는 계획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국내 알리 앱 사용자는 쿠팡에 이어 2위에 올라섰다. 알리와 테무의 이용자 수를 합치면 1300만명이 넘는다.

이에 쿠팡은 알리의 2배 규모인 3조원을 물류에 투자하겠다고 맞섰다. 알리의 성장세에 대응해 고객 이탈을 방지하고 신규 고객 유치로 시장을 지키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 쿠팡은 3년간 3조원 이상을 투자해 2027년까지 ‘전 국민 100% 무료 로켓배송’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다만 알리가 향후에도 공격적인 물류 투자를 지속할 경우, 쿠팡이 경쟁력서 밀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업계 관계자는 “쿠팡의 누적적자가 6조원에 이르는 상황서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은 알리를 견제하고 있다는 것”이라면서 “중국 이커머스와 출혈 경쟁으로 맞붙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알리바바그룹이 보유한 현금자산은 855억달러(114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시장에 투자 규모를 계속 늘려 쿠팡과 알리의 경쟁이 지속되면 국내 유통 기업들의 피로감은 높아질 것으로 우려된다.

국내 진출 후발주자인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핀둬둬는 지난달 20일, 실적 발표를 통해 충격을 안겼다. 지난해 4분기(10∼12월) 매출액이 1년 전보다 123%나 증가해 전망치를 한참 옷돌았다. 경쟁사인 중국 알리·징둥닷컴의 소매부문 매출 증가율이 불과 2∼3%대인 것과 대비된다. 

“축구장 25배 규모 통합물류센터 짓겠다”
‘알·테·쉬’ 국내 진출···무서운 영향력


매출 급성장의 원동력은 핀둬둬의 해외용 플랫폼 테무(Temu)다. 2022년 9월 미국에 처음 출시된 테무는 유럽을 거쳐 지난해 7월 한국에 상륙했다. 테무의 지난해 상품 거래액은 약 164억달러(약 22조원). 지난해 전 세계서 가장 많이 다운로드한 쇼핑 애플리케이션 1위(3억3800만건)에 올랐다.

한국에선 지난달 월간 활성 이용자 수에서 G마켓을 제치고 쇼핑앱 4위(581만명)를 기록했다.

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세가 거세지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조사에 나섰다. 공정위는 지난달 26일 네이버, 쿠팡, 알리 등 국내외 사업자를 대상으로 이커머스 시장 실태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소수 이커머스 사업자의 독과점 폐해를 막기 위해 시장구조·경쟁 현황·거래 관행 등을 심층 분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글로벌 이커머스 기업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국내 소비자와 사업자의 피해가 발생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

특히, 알·테·쉬의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규정에 어긋나는 광고 ▲유통금지 품목이나 유해 상품 판매 ▲가품 ▲위해 식·의약품 ▲청소년 유해매체물(성인용품) ▲개인정보 침해 등 여러 가지 피해가 일어나는 상황이다.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알리 관련 소비자 불만 접수는 2022년 93건서 지난해 465건으로 1년 사이 500% 급증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지난 21일 “중국 이커머스를 통한 해외직구가 늘면서 제품 환불과 민원도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중국 이커머스 진출로 국내 GDC 및 항공사들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 GDC서 처리한 해상-항공 복합운송화물은 9만8560t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복합운송화물은 해상으로 한국에 운송된 후 인천공항을 거쳐 해외로 나가는 화물을 말한다.

화물의 출발지는 99.6%가 중국으로 주로 동북부 전자상거래 물품이 실렸다. 모두 알·테·쉬 등에서 발송된 제품들이다. 이들 화물은 47%가 북미, 31%가 유럽으로 다시 운송된 것으로 전해진다. 

공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해외직구 물류거점으로 지정한 웨이하이의 경우 대형 화물공항이 없고 중국 국내 공항으로 육로 운송하는 것보다 인천~웨이하이가 더 짧다”며 “인천공항의 네트워크가 이점이 돼 상당량의 화물을 처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GDC로 이득 본 해외 이커머스
국내 항공사 반사이익···쿠팡은 울상

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여객 없이 인천공항에 정기편으로 취항한 화물 항공사는 총 18곳이다. 미국 항공사가 6곳으로 가장 많고 유럽과 중국이 각각 4곳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국발 물동량을 흡수하려는 물류창고 업자들의 움직임도 감지됐다. 이커머스 기업 입장서 GDC의 장점은 한 물류센터에 물량을 모아 인근 국가로 보낸다는 것이다.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은 우리나라의 핵심 물류 거점인 인천공항, 인천항 등에 설치된 GDC를 통해 미국, 호주 등으로 수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이다.


이를 주목한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GDC 제도 시범운영을 시작으로 유치를 확대해가고 있다. 현행법상 국내 GDC서 보관하고 있는 물품은 소비자에게 배송할 수 없다. 이에 정부는 GDC 운영과 직관된 법령을 손보고 있다. 지난 2020년 관세청은 중계무역만 가능했던 기존 규정서 GDC를 통해 들어온 해외 이커머스 물건이 한국 소비자에게 전달될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CJ대한통운 인천GDC센터의 경우, 지난 2018년 4월부터 인천공항 자유무역지역 내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부지 면적은 2만9430㎡로 1일 3만박스 정도를 처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센터는 글로벌 건강 라이프 쇼핑몰 ‘아이허브(iHerb)’의 아시아권 물류센터다. 미국서 들어오는 아이허브 제품을 보관했다가 일본, 싱가포르, 호주, 카자흐스탄 4개국으로 보낸다.

지난해부터는 센터 내 6264㎡를 증축해 물류 로봇 시스템 ‘오토스토어’를 도입했다. 오토스토어는 주문이 들어오면 실시간으로 로봇이 이동하면서 출고 작업자 앞으로 제품이 담긴 보관바구니를 전달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물류 로봇 시스템 오토스토어는 가로 77.7m, 세로 29m, 높이 5.3m의 큐브형 창고로 운영돼 그 이상 부피가 큰 물건은 관리할 수 없다.

최근 유통업계에 따르면, 알리는 독자적인 물류 시스템을 운영하고자 경기도 파주 일대 등에 물류창고 사업자들과 보관 사용 계약을 맺으려 시도 중이다. 한 물류회사 출신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알리가 인천공항과 가까운 경기도 파주 인근에 위치한 물류창고를 이용하기 위해 시장조사 중”이라고 귀띔했다.

어수선

그러면서 창고 운영사업자들의 무분별한 투자를 우려하기도 했다. 해외 이커머스의 막대한 물량을 보관할 창고를 짓겠다는 명분으로 은행 대출을 받는 사업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장변화에 따라 무분별하게 세운 창고가 무용지물이 될까 봐 우려스럽다”며 “담보 가치가 떨어진 부동산을 현금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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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