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사라진’ 민생당 국고보조금 추적

100억원서 460만원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정치적 계산에 따라 만들어진 정당은 그 쓰임을 다하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문제는 껍데기만 남은 듯한 정당에 끊임없이 ‘정당보조금’이라는 이름의 돈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다 쓰러져 가는 집처럼 보이는 곳의 이면엔 100억원에 가까운 ‘애먼 돈’이 존재했다. 과연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4‧10 총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각 정당의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활발해지는 모양새다. 공천서 탈락한 정치인을 품기 위한 ‘제3지대’ 정당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선거 공학에 따라 정치적 계산으로 구성된 정당은 지속성이 짧다는 한계를 지닌다. 

창대한 시작
초라한 말로

실제 선거가 마무리되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정치권은 다시 개편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서 국민의 외면을 받은 정당이 설 자리는 없다. 정치권의 관심은 물론 국민의 시야서도 빠르게 벗어난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거서 제3지대 정당이 받아 든 결과다. 

2020년 2월24일 창당한 민생당도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민생당은 21대 총선을 2개월 앞두고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의원들이 모여 만든 정당이다. 당시만 해도 현역 의원이 20명에 이르러 민주당,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이어 원내 제3 교섭단체였다.

하지만 총선서 지역구 후보 58명이 전원 낙선했고 정당 득표율은 2.71%에 그쳤다. 비례 배분 기준은 3%로 민생당은 21대 총선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선거서 의석을 얻지 못한 정당의 현실은 암울했다. 창당 때부터 구심점이 됐던 주요 인사는 물론 실무진까지도 당을 떠났다. 21대 총선이 끝나고 한 달 만에 민생당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꾸렸다. 그리고 22대 총선을 한 달 앞둔 현재까지도 비대위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비대위는 전당대회를 열기 전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비상 상황서 당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구성되는 기구다. 4년에 가까운 비대위 체제는 그동안 민생당이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 비대위 기간 내내 제기된 민·형사상 소송이 40여건에 달했다. 

21대 총선 참패 이후 2020년 5월29일에 출범한 비대위는 민생당 당헌에 규정된 ‘2021년 상반기 전당대회 개최’를 지키지 못했다. 또 2021년 4월7일 열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서 처참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당원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결국 이수봉 당시 비대위원장이 물러나고 이관승·김정기·황한웅(사무총장) 3명이 공동직무대행으로 지명됐다. 

21대 총선 직전 제3지대 등장
현역의원 20명으로 화려했지만…

이후 황 사무총장이 이탈하고 중앙선관위의 대표자 등록으로 이관승·김정기 공동직무대행 체제가 굳어졌다. 이·김 체제는 최소 올해 2월까지 유지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 사이 전당대회가 열리긴 했지만 당원자격 문제로 파행을 겪으면서 4년여의 비대위 체제가 공고하게 이어졌다.

2021년 8월 전당대회가 진행됐고 당시 서진희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문제는 총선서 참패한 민생당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시도당을 축소하는 과정서 불거졌다. 앞서 총선 직후 발족한 비대위는 17개의 시도당을 7개만 남기는 일종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때 해산된 시도당의 당원자격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는 정당법을 근거로 ‘시도당이 소멸하는 경우 해당 시도당의 당원이었던 사람은 당원자격이 상실된다’고 답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서 후보는 당시 소멸된 시도당 중 하나인 대전시당 소속이었다. 중앙선관위의 답변대로라면 서 후보는 전당대회에 출마할 당시 민생당 당원이 아니었던 셈이다.


민생당 관계자 A씨에 따르면 당원들은 해당 내용을 전혀 몰랐다. 민생당 선관위의 당선 무효 선언, 이·김 공동직무대행이 제기한 ‘선거무효 확인 청구 소송’서 1, 2심 재판부가 원고(이관승, 김정기)의 손을 들어 주면서 당권 다툼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그 결과 이 직무대행이 탈당한 지난 2월까지 3년8개월 동안 민생당은 ‘투톱’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 기간 동안 민생당에 지급된 정당보조금이다. 민생당은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원외정당이지만 21대 총선 이후에도 꾸준히 정당보조금을 받아왔다. 2020년 정당보조금은 총 907억원에 달했는데 20대 총선 임기 말까지 20석의 교섭단체 지위를 유지한 민생당은 117억원의 정당보조금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민생당은 21대 총선서 참패했지만 정당보조금은 끊기지 않았다. 정당보조금은 2·5·8·11월에 분기별로 지급되는 경상보조금, 선거 때마다 주는 선거보조금을 통틀어 가리킨다. 중앙선관위는 총선 총 유권자 수를 근거로 보조금 총액을 산출한 뒤 의석수와 득표율 등에 따라 정당에 지급한다. 

민생당은 의석은 없지만 21대 총선 당시 득표율이 2% 이상(2.08%)이어서 보조금 총액의 2%를 배분받는다. 그 액수는 9억5000여만원에 이른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단 1명의 후보를 내고 선거보조금 9억3000여만원을 받았다. 현행법상 보조금 지급 대상인 정당은 후보를 한 명이라도 내면 선거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당권 다툼
복마전

여기에 2022년 기준 37만여명에 이르는 당원이 내는 당비도 1년에 1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경상보조금과 당비로 1년에 10억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보조금까지 20억원가량의 정당보조금을 받는 셈이다.

A씨는 “21대 총선 참패 이후 현재까지 비대위 기간 동안 수십억원의 정당보조금이 지급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20대 국회서 받은 정당보조금까지 합치면 최소 80억원 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민생당 재정 상황은 ‘파탄’에 가깝다. 당직자의 월급을 주지 못한 기간이 있을 정도였다. 분기별로 나오는 경상보조금으로 급한 불을 끄고 선거보조금으로 돌려막는 식이라고 한다. 실제 <일요시사> 취재 결과 지난해 12월13일 기준 민생당 명의의 예금통장서 가용자금은 약 460만원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시도당에 일부 보내고 나면 중앙당이 쓸 수 있는 돈은 수십만원도 남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민생당 당원을 비롯해 관계자들은 한때 100억원에 육박하던 자산이 불과 몇 년 새 완전히 쪼그라든 상황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한 민생당 당원이 이관승·김정기 공동직무대행을 상대로 제기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준비서면을 입수했다. 2021년 파행으로 치달은 전당대회 이후 재선거를 치르지 않는 공동직무대행에 대해 직무정지를 처분해 달라는 소송이다.

해당 서면에 따르면 이·김 공동직무대행은 “정치자금법상 경상보조금 총액의 30%는 정책연구소, 10%는 시도당, 10%는 여성정치 발전을 위해, 5%는 청년정치 발전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돼있다”며 “경상보조금 2억3000만원 중에서 중앙당이 사용할 수 있는 최대 자금은 45%인 1억400만원에 불과하다. 월로 환산하면 3460만원 정도로 최소한의 활동비, 임대료, 관리비, 세금, 임금 등을 제하면 거의 남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항변했다. 

일각에서는 민생당 재정 고갈의 원인으로 이·김 공동직무대행을 꼽는다. 이들이 직무대행으로 재임하는 동안 예산 사용내역이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김 직무대행의 경우는 민생당 당원의 고발로 경찰 수사가 진행돼 검찰에 송치된 사건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석 없이도
1년에 10억씩

김 직무대행이 민생당 경기도당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예산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문제를 제기한 당원 B씨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김 직무대행이 ▲조직활동비를 현금으로 받아 증빙 없이 사용했고 ▲조직활동비 일부를 배우자에게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차량을 구입하거나 사업장이 불분명한 업체서 현수막을 제작하는 등의 방식으로 예산을 남용했다고 지적했다. 또 ▲청년정치 인식조사 용역 ▲정책 연구 비용 등 용역비를 집행하는 과정서 업체의 사업장 주소가 불분명하거나 업체가 사라지는 등 의아한 대목이 발견됐다. 

B씨에 따르면 2021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 말까지 민생당 경기도당서 지출한 내역은 최소 2억2000만원에 이른다. B씨는 김 직무대행과 당시 경기도당 회계책임자인 이모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사건을 맡은 부천원미경찰서는 ▲조직활동비 ▲청년정치 인식조사비 ▲2030 경제인식조사 용역비 등 명목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정치자금을 사적 경비 또는 부정한 용도 등으로 사용한 혐의가 인정돼 인천지검 부천지청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2022년 상반기 예산 집행 내역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사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도당위원장 활동비를 증빙 없이 썼다는 의혹, 용역비를 과도하게 집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천경찰청은 활동비 관련한 부분은 정치자금법 위반, 업무상 횡령, 업무상 배임 혐의를 인정해 송치했고 용역비 관련 부분은 불송치했다. 용역비를 돌려받았다는 게 불송치의 근거였다. 

이·김 공동직무대행을 비롯해 총 5명이 ▲정당법 위반 ▲정치자금법 위반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당한 사실도 확인됐다. B씨는 “이들은 회의비 명목으로 수백만원씩 받아 가고 공당의 대표는 급여까지 챙겼다. 공당의 대표가 당무지휘권을 가지면서 자신의 급여를 결정하게 되면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도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급여를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B씨는 민생당 내부도 문제지만 정당보조금을 지급하는 중앙선관위에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보조금을 지급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사용내역에 대한 명확한 감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중앙선관위는 매년 2월 정당이 제출한 정당보조금 사용내역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다. 

총선 참패 원외정당 전락
비대위 체제로 3년10개월 

정치자금법 제28조(보조금의 용도제한 등) 4항은 ‘각급 선거관리위원회 위원과 직원은 보조금을 지급받은 정당과 이의 지출을 받은 자, 그 밖에 관계인에 대해 감독상 또는 법의 위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보조금 지출에 대해 조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는 정당이 제출한 내역에 대해서만 조사한다. 법령에 맞게 정당보조금을 사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정당보조금 사용에 관해서는 당에 재량권을 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선관위에서 김 직무대행을 비롯한 민생당 관계자를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고발 진행 상황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민생당의 더 큰 문제는 제기된 의혹이 해결될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김 공동직무대행이 민생당을 상대로 제기한 선거무효 확인 청구 소송서 ‘선거무효’로 판단했던 항소심 판결을 뒤엎고 파기환송했다. 시도당 해산과 당원자격 소멸을 동일선상서 볼 수 없다는 내용이다. 당원자격의 소멸 여부는 당원에게 있다는 취지다.

선거무효 확인 청구 소송의 1, 2심 판결을 비롯해 중앙선관위의 답변까지 뒤집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2021년 8월 전당대회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던 서 후보가 다시 민생당 대표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앙선관위서 서 후보를 대표로 등록하면 대표권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대법원 판결이 지난달 29일에 나오면서 파기환송심 결과는 22대 총선 이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김 직무대행이 출마 선언을 했지만 민생당의 총선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정당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2% 이상의 득표율은 요원하다는 게 중론이다. 이번 총선에 후보를 내면서 받게 될 9억3000만원의 선거보조금 외엔 더 이상 민생당에 들어올 정당보조금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총선 이후 민생당이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한 민생당 당원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의 목적은 오로지 돈이었을 것”이라며 “선거보조금까지 전부 다 쓰고 당을 해산시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 후보가 대표권을 확보한다고 해도 빚만 남은 상태로 당을 넘겨받거나 사라질 가능성도 존재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기회
당 해산되나

민생당 당직자는 “(내가 하는 말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선거무효 확인 청구 소송 관련해서는 당 차원서 낼 입장은 없다. 또 고소·고발에 대해서는 당이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개인이 대응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직무대행은 “2월에 탈당했다. 민생당과 관련해서는 할 말이 없다”고 답했다. 김 직무대행은 전화, 문자메시지 등으로 접촉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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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