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선택 이해찬-김부겸 시너지 계산서

다시 소환된 올드보이 역할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선두로 ‘180석 압승’을 이끌어낸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와 문재인정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힘을 보탰다. 민주당에서는 ‘매머드급 선대위’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중도층 표심까지 흔들지는 미지수다. 세 사람의 합이 어디까지 확장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4·10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2일,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를 꾸리고 본격적으로 총선 채비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이해찬 전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하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구원투수
승부수는?

선대위 공식 명칭은 ‘정권 심판·국민 승리 선거대책위’다. 한차례 폭풍처럼 당내를 휩쓸고 간 공천 파동을 빠르게 잠재우고 ‘윤석열정부 심판론’을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선대위원장 또한 혁신·통합·국민참여·심판을 상징하는 인물로 구성됐다. ‘혁신 공동선대위원장’에는 민주당 영입인재인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사장과 황정아 박사가 발탁됐다. ‘통합 공동선대위원장’에는 홍익표 원내대표와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정부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줄기로 이어지는 민주 통합을 상징한다는 이유에서다.

‘심판 공동선대위원장’에는 백범 김구의 증손자인 김용만 영입 인재와 김용민·이소영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김 공동위원장은 친일 잔재 등에 관한 심판을 맡고 김 의원은 검찰 독재, 이 의원은 정권 비리에 집중할 전망이다.


마지막으로 ‘국민참여위원회’는 국민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서 참여 또는 추천으로 영입할 예정이다.

이날 선대위는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출범식 및 1차 회의를 진행했다. 이 대표는 “이번 선거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대결이 아닌, 국민과 국민의힘의 대결”이라며 “나라를 망치고도 반성 없는 윤정부의 심판을 위해 민주당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 국민이 승리하는 길에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역사의 갈림길마다 바른 선택을 해왔던 국민의 집단지성을 믿는다”며 “심판의 날에 국민들은 떨치고 일어나 나라의 주인은 영부인도, 천공도 아닌 국민이라는 점을 용산이 깨닫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대표도 “이번 총선은 내가 지금까지 치러 본 선거 중 가장 중요한 선거”라며 “우리가 꼭 심판을 잘해서 국민이 받는 고통을 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진실하고, 절실하고, 성실하게 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차례 휩쓸고 간 공천 피바람
‘큰 어른’ 등판…파동 잦아들까

끝으로 김 전 총리는 “우리가 심판론을 이야기하면 국민이 알아 주지 않겠느냐는 안일한 마음과 자세를 가지면 안 된다”며 “역대 선거를 보면 지나치게 자극하거나 반감을 불러일으켜 선거 전체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후보들은 자기 영혼을 갈아 넣어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선대위는 더 이상의 공천 파동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선대위 출범식 직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서 이 전 대표는 “이미 그것은(공천 갈등은) 다 지나간 하나의 과정”이라며 “다행히도 최근 경선서 진 분들이 흔쾌히 전체 선거에 동참하겠다는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어서 새로운 분열적 요소는 없을 것 같다”고 일축했다.


이 대표가 집토끼 이탈을 막고 나머지 두 사람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탄탄한 삼각형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컷오프나 경선 결과 등으로 인한 잡음·이탈을 이 전 대표가 제어하고, 친문(친 문재인) 상징성을 가진 김 전 총리가 계파 갈등을 봉합하는 방안이다.

이 전 대표는 다양한 직위를 거치며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1999년 국민의정부 시절 제38대 교육부 장관을 맡았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제36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문정부 시절 집권여당 대표를 맡았고 지역구 선거서 ‘7전7승’의 결과를 냈다. 2018년에는 제3대 민주당 대표를 맡았는데 이때 ‘민주당 180석’이라는 기록을 거두기도 했다.

이를 끝으로 이 전 대표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치를 떠나기로 한 그가 다시 민주당에 돌아온 계기는 윤정부를 심판하겠다는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선대위 출범식서 “현실정치를 떠났지만 이번 선거만큼은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절실한 심정이 들어서 선대위에 합류했다”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막강한 정치력을 지닌 인물인 만큼 민주당의 ‘큰 어른’으로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르게 재정비할 것이란 기대감이 큰 것으로 전해진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김 전 총리는 선대위 참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합동 입장문을 내고 “이 대표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는 민주당의 공천 작업이 폭발적으로 진행되던 때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많은 일이 발생한 만큼 내부 불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공천 및 경선 결과가 발표될 때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대부분의 비명(비 이재명)계가 하위 20%에 속했고, 원외 친명을 지역구에 내리꽂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때마다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에 불복해 당을 거칠게 비판하고 나가는 이들로 인해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김 전 총리는 이 같은 상황을 지적하며 “현재 진행되는 민주당의 공천은 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대표가 여러 번 강조했던 시스템 공천, 민주적 원칙과 객관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김부겸·정세균)는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위해서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한다. 그러나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지금의 상황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총선 승리에 기여하는 역할을 찾기가 어렵다”며 선대위 참여 조건으로 통합이라는 과제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로부터 김 전 총리가 마음을 바꿔 선대위에 합류하기까지 한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정 전 총리의 경우 노무현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어 선대위 합류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전해진다.


김 전 총리는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무능력·무책임·무비전, 3무 정권인 윤정부에 분명한 경고를 보내고, 입법부라는 최후의 보루를 반드시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당의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고심을 거듭한 이유에 관해서는 “우리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매서운 평가 때문”이라며 “무엇보다 공천을 둘러싸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컸다. 투명성, 공정성, 국민 눈높이라는 공천 원칙이 잘 지켜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국민께서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총리는 “과정이야 어쨌든 공천을 받지 못한 후보들과 그 지지자들께 납득할 수 있는 설명과 따뜻한 통합의 메시지가 부족한 것도 아쉬웠다”면서도 “모든 것을 떨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친명이니 친문이니, 이런 말들은 이제 우리 스스로 내버리자”고 강조했다.

아슬아슬
위태위태

김 전 총리가 선대위에 합류하면서 마침내 공천 파동이 잦아들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비교적 계파색이 적은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통합이라는 조건까지 내걸었던 김 전 총리가 선대위원장을 수락했다는 건 민주당이 숙제를 마쳤기 때문”이라며 “김 전 총리의 결정이 민주당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도 “김 전 총리는 친문계 인사로 공천 파동의 뇌관이었던 계파색을 띠고 있다”며 “그런 그를 선대위원장으로 모셔온 것 자체가 통합과 화합의 상징”이라고 해석했다.


김 전 총리의 합류를 시작으로 민주당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합류를 내심 기대하는 모양새다. 계파 갈등을 봉합하는 마지막 한 수가 ‘임 전 실장의 동참’이라는 의견이 제시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임 전 실장에게 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김민석 상황실장은 임 전 실장의 합류 가능성에 대해 “모든 것이 열려있다”고 가능성을 제시했다.

임 전 실장은 자신의 SNS에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 더 이상의 분열은 공멸이다. 윤석열정권 심판을 위해 백의종군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이제부터는 친명도, 비명도 없다. 모두가 아픔을 뒤로 하고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자고 호소드린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던 고민정 최고위원까지 복귀 사실을 알리면서 날 선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들었다는 평이 나온다. 앞서 고 최고위원은 공천을 둘러싼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도부 안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이 합심해야 한다는 당 지도부 차원의 설득이 이어지자 결정을 바꿔 복귀한 것으로 전해진다. 고 최고위원은 지난 “지금은 윤정부의 폭주를 막는 일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폭주에 저항하는 모든 국민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을 둘러싼 잡음을 한 꺼풀씩 걷어낸 선대위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곧바로 민심잡기에 돌입했다. 이재명·이해찬·김부겸 선대위원장은 지난 13일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막말 경계령’을 내렸다. 여야 할 것 없이 총선을 앞두고 언행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막말 리스크는 당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뿐만이 아니라 중도층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선대위 차원서 공식적으로 경고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윤석열 심판 벨트’ 순회 나섰지만…
흐리멍덩 ‘중도 공략집’ 해법은?

이 전 대표는 “선거 때는 말 한마디가 큰 화를 불러오는 경우가 참 많다. 여러 가지 선거 경험에 비춰 보면 말 한마디로 선거 판세가 바뀌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대위는 후보의 언행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공천 취소를 포함한 비상 징계 조치가 이뤄질 가능성도 열어뒀다.

국민의힘이 장예찬 후보의 ‘난교’ 발언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된 만큼 차별화를 두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서울 강북을 경선서 승리한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의 ‘DMZ(비무장지대) 발목지뢰 목발 경품 발언’ 논란이 불거져 마찬가지로 민심의 회초리를 피하지 못했다.

정 전 의원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둔 2017년 한 방송서 북한 스키장 활용 방안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DMZ에 멋진 거 있잖아요? 발목지뢰. 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는 거야. 발목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라고 발언한 바 있다. 2015년 경기도 파주 DMZ서 수색 작전을 하던 우리 군 장병 2명이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지뢰 폭발로 다리와 발목을 잃은 사건을 조롱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정 전 의원은 사과를 건넸다고 주장했지만 피해 장병들이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으면서 민주당은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 전 대표는 당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만큼 현 상황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결국 민주당은 지난 14일, 정 전 의원의 강북을 공천을 취소했다.

당의 고삐를 말아쥔 선대위는 ‘윤정부 심판 벨트’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심판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이 대표는 대전·세종·충북 청주을을 찾아 “윤정부가 삭감한 연구·개발(R&D) 예산을 확보하겠다”며 유세에 나섰다. 그는 “R&D 예산은 대전에 민생”이라며 “이 정권은 폭력적인 R&D 예산 삭감으로 대전의 오늘과 대한민국의 내일을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권 심판과 국민 승리가 가능할지 여부는 바로 대한민국의 중심인 이곳, 대전에 달려 있다”며 “오늘 함께하고 있는 일곱 명의 국회의원 후보, 그리고 중구청장 후보의 면면을 보면 승리의 확신이 살아 있다”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앞서 이 대표는 경기 여주·양평을 방문해 ‘서울-양평고속도로 게이트’ 의혹을 재점화했다. 지난 11일에는 수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순직한 ‘해병대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이슈화하기 위해 충남 천안을 방문했다.

이 밖에도 서천 화재 피해 발생 지역인 충남 보령·서천을 거쳐 엑스포 유치 실패로 ‘정부 무능론’을 부각하기 위한 부산 일정을 소화했다.

‘잡음 없는 공천’을 자랑했던 국민의힘 내부서도 뒤늦게 균열이 일었다.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재조준하려는 기류가 포착된다. 이 대표가 일선서 총선을 지휘한다면 타격은 불가피한 만큼 이 전 대표와 김 전 총리가 반 발자국 앞서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중도층
잡아라

일각에서는 3톱 체제에 관한 우려가 제기된다. 세 사람이 뭉친다면 야권의 확실한 지지를 얻을 수 있지만, 폭넓은 중도 확장을 위한 로드맵이 선명하지 못하다는 점에서다. 이미 공천 작업이 끝난 만큼 김부겸·이해찬 선대위원장이 너무 늦게 등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중도층 포섭 한계론’을 어떻게 해결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